"투자는 선택…개인에게 애국 위해 손해 보는 투자 강요 못해"
(서울=뉴스1) 정윤미 기자 =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연일 환율이 급등하면서 미국 등 해외 주식시장이나 암호화폐(코인)에 투자한 이른바 '서학 개미'들의 입가에 미소가 번지고 있다. 미국 증시는 물론 암호화폐 가격이 오른 데다 환율 급등에 따른 반사이익까지 거두고 있어서다.
특히 상대적으로 정치에 관심이 적은 MZ세대들에겐 이번 계엄 사태로 무력감이 더해지면서 '제2의 아메리칸드림' 열풍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27일 만난 30대 전문직 남성 B 씨는 자신을 '서학 여왕개미'라고 밝혔다. 억대 연봉을 7 대 3 비율로 미국 주식과 코인에 투자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는 계엄 선포 당시 코인거래소가 잠시 먹통 됐던 기억을 떠올리고는 그래도 저점에 비트코인을 매수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며 안도했다. 그러면서 "이번 사태를 보면서 더 이상 우리나라에 미래는 없다고 느꼈다"며 "이민 못 가는 서러움을 미국 주식 계좌를 보면서 달래고 있다"고 솔직한 심정을 밝혔다.
서울 영등포구 한 대형서점에서 투자 관련 서적을 구경 중이던 30대 직장인 정 모 씨(32)는 "주변에서 다들 미국 주식 하라고 하길래 보러왔다"고 말했다. 입사 이래 5년간 매달 적금처럼 월급의 일정액을 삼성전자 주식에 투자해 왔다는 정 씨는 한숨 푹 내쉬며 "이번 사태를 계기로 국내 주식시장 투자(국장)는 안 하기로 마음먹었다"고 토로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인터넷 커뮤니티 등에는 '환율 쇼크'로 해외 투자에서 많은 수익을 남겼다는 인증 글이 쇄도하고 있다. 이를 접한 MZ세대들의 서학개미로 유입은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당분간 고환율 추세가 이어질 거로 예상되면서 미국 주식 시장이 하락하더라도 환차익으로 손실을 어느 정도 만회할 수 있어서다.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는 '우리에겐 환율이 있다'는 제목에 "S&P500 내려도 우리의 계좌는 항상 오른다"는 글까지 올라왔다. 게임업계 종사자 D 씨는 "지금 환율 너무 좋다"며 "미국 주식 몰아서 한방에 몰아서 투자했던 게 신의 한 수"라고 밝혔다. 온라인상에는 "요즘 분위기가 미장 안 하면 바보가 된 것 같아서 고민 중" "미국 주식 투자 지금 해도 괜찮을까요" "미국 주식이 정말 대단하고 이익을 엄청나게 갖다주나요" 등 질문이 계속 올라오고 있다.
일각에서는 "나라 망하니까 미국 주식 그만해라"는 우려 섞인 지적도 나온다. 개인뿐만 아니라 기관 투자자들의 해외 투자에 따른 자본 유출로 국내 유동성이 점차 고갈될 거란 이유에서다.
한순구 연세대 경제학 교수는 "젊은 사람들 혹은 개인 투자자 문제로 볼 것이 아니고 우리나라 정부와 기업이 문제"라며 "주주에게 정당한 가치를 돌려줄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니까 투자자들이 돌아선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투자는 개인 선택"이라며 "개인에게 애국심을 위해 손해 보면서 투자하라고 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