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죽으면 누가…" 23년간 돌보던 조현병 딸 살해한 60대 엄마

입력
수정2024.12.25. 오전 5:00
기사원문
박태훈 기자
본문 요약봇
성별
말하기 속도

이동 통신망을 이용하여 음성을 재생하면 별도의 데이터 통화료가 부과될 수 있습니다.

중1 딸 정신장애 앓자 공무원 관두고 치료 전념[사건속 오늘]
상태 악화하자 결심…징역 3년형, 15개월 남기고 성탄절 특사
ⓒ News1 윤주희 디자이너


(서울=뉴스1) 박태훈 선임기자 = 성탄절, 부처님오신날 등을 맞아 정부는 특별 사면 복권 조치를 취하곤 한다.

사면 복권은 헌법 제79조에 따라 대통령이 선고된 형의 집행을 면제 또는 감형하거나 복권하는 것으로 대통령이 지닌 가장 강력한 권한 중 하나다.

정부가 사면 복권 대상자를 발표하면 일부에선 '마음으로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반응을 내놓기도 한다.

하지만 2021년 12월 25일 성탄절 특별 사면으로 풀려난 A 씨(당시 66세 1955년생)에 대해선 '잘됐다'는 반응이 주를 이뤘다.

A 씨가 비록 딸을 죽인 범법자였지만 그의 기구한 사정에 눈물짓지 않는 이들이 없기 때문이다.

귀여운 딸, 듬직한 남편을 둬 남부러운 것이 없었던 공무원 A 씨의 기구한 운명은 딸(1984년생)이 중학교에 입학하던 1997년 시작됐다.

딸에게 갑자기 조현병과 양극성 정동장애(조울증)가 찾아온 것.

이로 인해 딸이 학교생활은 물론이고 정상적 사회생활을 하지 못하자 A 씨는 직장을 그만두고 딸의 치료에 전력했다.

병원이라는 병원은 다 찾아다니고 좋다는 약은 다 구해다 먹였지만 차도가 없었다.

ⓒ News1 양혜림 디자이너


B 씨의 상태는 갈수록 악화됐다.

엄마가 주는 약을 거부하고 욕설하고 눈에 보이는 물건을 마구 집어 던졌다.

이 정도만 됐어도 A 씨는 딸을 달래가면 버틸 수 있었겠지만 B 씨의 인지 기능마저 계속 떨어지는 바람에 A 씨는 하루 종일 딸 곁에서 돌출 상황을 통제해야 했다.

견디다 못한 A 씨는 이따금 딸을 정신병원에 입원시켰지만 그곳에서도 의료진을 공격하는 등 극단적 성향을 보여 '도저히 돌볼 수 없다. 퇴원하시라'는 권유까지 받아 울며 겨자 먹기로 딸을 다시 집으로 데려오곤 했다.

그러던 중 2020년 벚꽃이 날리던 어느 날 A 씨는 어르신 교통카드를 받았다.

만 65세가 된다는 사실에, 자신과 남편이 살아온 날보다 살날이 더 적다는 사실에 우울증에 빠져 들었다.

딸을 돌보는 것도 힘에 부치고 또 "남편과 내가, 우리가 죽고 나면 저 자식은 누가 돌보겠는가"라며 신세 한탄을 하던 A 씨는 남편이 집을 비운 2020년 5월 2일 밤 잠든 딸을 보고 또 쳐다보다가 "차라리 내 손으로 보내자"고 결심했다.

집안에서 찾은 흉기를 손에 든 A 씨는 잠든 딸의 가슴에 박아 넣고 말았다.

그때가 5월 3일 새벽 0시 55분을 막 넘긴 무렵으로 A 씨의 신고를 받은 119가 서울 강서구 A 씨 집으로 와 B 씨를 살폈으나 이미 숨진 뒤였다.

ⓒ News1 DB


살인 혐의로 A 씨가 재판에 넘겨진 가운데 변호인은 "딸을 23년간 밤낮으로 돌봐온 까닭에 심신이 극도로 지쳐 번아웃 증후군이 찾아왔다"며 "그로 인해 정상적인 판단력이 현저히 떨어진 상태에서 사건 범행에 이른 점을 살펴달라"고 읍소했다.

이를 방청석에서 지켜보던 가족과 친척, 지인들은 흐르는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2020년 11월 6일 1심인 서울남부지법 형사13부(부장판사 신혁재)는 "피고가 범행의 과정을 상세히 기억하고 진술한 점 등을 볼 때 범행 당시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없었다거나 미약한 상태에 이르렀다고는 보이지 않는다”며 변호인 주장을 뿌리쳤다.

재판부는 "피고가 아무리 오랜 기간 정신질환을 앓아 오던 피해자를 정성껏 보살펴 왔고 부모라고 할지라도 자녀 생명을 함부로 결정할 권한은 가지고 있지 않다"고 질타했다.

다만 △ 계속된 노력에도 불구하고 피해자의 상태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던 점 △ 이에 따라 차츰 심신이 쇠약해져 이 사건 범행에 이른 것으로 보이는 점 △ 중증 정신질환자에 대한 치료와 보호의 몫 상당 부분을 국가와 사회보다는 가정에서 감당하고 있는 점을 볼 때 "이런 비극적인 결과를 오로지 피고 책임으로만 돌리기 어렵다"며 참작 동기 살인 양형 기준(3년~5년)을 감안, 징역 4년 형을 선고했다.

ⓒ News1 DB


2021년 4월 29일 항소심인 서울고법 형사13부(부장판사 최수환)는 A 씨에 대해 "부모가 죽은 후 혼자 남을 딸을 냉대 속에서 살게 할 수 없다는 판단에 한 범행임을 참작했다"며 살인 혐의로는 가장 낮은 징역 3년 형으로 1년을 감형했다.

재판부는 "23년간 피해자 치료와 보호에 전념하던 중 스트레스로 인한 우울증을 겪은 것으로 보이는 점, 남편도 선처를 호소하고 있고, 딸을 죽였다는 죄책감을 가지고 살아갈 것으로 보이는 점을 감안했다"고 감형 이유를 밝혔다.

검찰이 상고했지만 대법원 3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2021년 8월 7일 2심 판단이 옳다며 징역 3년 형을 확정했다.

A 씨 사연이 알려지자 정부는 그해 성탄절 특사로 A 씨를 석방했다.

성탄절 새벽, 형기를 1년 3개월 3일 남기고 A 씨는 교도소를 나와 가족들 곁으로 돌아갔다.

기자 프로필

이 기사는 언론사에서 사회 섹션으로 분류했습니다.
기사 섹션 분류 안내

기사의 섹션 정보는 해당 언론사의 분류를 따르고 있습니다. 언론사는 개별 기사를 2개 이상 섹션으로 중복 분류할 수 있습니다.

닫기
이 기사를 추천합니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