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전쟁 겪은 듯" 하천 범람에 가까스로 '창문으로 탈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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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4.07.10. 오후 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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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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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완주 장선천 범람에 마을 주민들 산으로, 교회로 대피
10일 전북자치도 완주군 운주면 엄목마을 앞 장선천 제방이 무너지며 도로가 파손돼 있다. 2024.7.10/뉴스1 ⓒ News1 유경석 기자


(완주=뉴스1) 장수인 기자 = "자고 있는데 집으로 물이 들어찬 거야. 나가려고 하니까 현관문이 물에 밀려서 안 열려서 창문으로 겨우 나왔어."

10일 전북자치도 완주군 운주면 내촌마을에서 만난 임복성 씨(78)는 지난 새벽 잠결에 겪은 일을 회상하며 쓴웃음을 지었다.

임 씨는 이날 새벽에 잠을 자다가 집에 물이 차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 깜짝 놀란 임 씨는 곧장 옆에서 자고 있던 아내를 급히 깨웠고 현관문으로 나오려고 했다. 하지만 현관문은 열리지 않았다. 마당 가득 들어찬 물 때문이었다.

물은 순식간에 목까지 들어 찾다. 이에 임 씨 부부는 창문으로 탈출하듯 빠져나왔다. 집을 나온 임 씨는 아내와 함께 뒷산으로 올라갔다. 산에 올라가서 본 마을의 모습은 처참했다. 집 앞에 주차돼 있던 자동차가 떠내려가는 모습도 보였다.

임 씨는 "살면서 처음 겪는 일"이라며 "항아리고 뭐고, 마당에 있는 저온창고까지 둥둥 떠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2010년쯤에도 비가 정말 많이 왔었는데, 이번에 내린 거에 비하면 아무 일도 아닌 것 같다"며 "안 죽었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목 끝까지 물이 차올라서 겨우 집 밖으로 나왔을 때를 생각하면 설명이 더 안 된다. 가슴이 아파"라고 말했다.

10일 오전 만난 전북 완주군 운주면 중촌마을의 박귀례 씨(51) 집 2024.7.10/뉴스1 장수인 기자


밤사이 범람한 장선천과 가까운 곳에 위치한 박귀례 씨(51·여)의 집은 수마가 할퀸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하천 바로 옆에 있는 탓에 박 씨의 집에는 새벽 3시쯤부터 빗물이 들어찼다. 박씨는 아들 친구들과 90대 노모 등 집 안에 있던 8명의 식구를 깨워 인근 교회로 대피했다.

물이 빠져나간 뒤 돌아온 집은 냉장고와 세탁기 등 모든 물건이 진흙물에 섞여 뒹굴고 있었다. 집 인근에서는 곳곳에서 떠밀려온 자동차로 인해 휘발유 냄새가 코를 찔렀다.

박 씨는 "전쟁을 겪은 것 같다"며 "집안에 발을 못 디딜 정도라 일단 걸레질이라도 해보는데 닦아도 닦아도 그대로인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다른 주민 박영철 씨(76)는 빗물에 쓰러진 비닐하우스와 뒤엉켜 있는 집을 보면서 "새벽부터 집에서 쫓기듯 나와서 정리해 보고 있지만 끝이 없다"며 "봉사자들이라도 올 법도 한데 왜 아무도 안 오는 건지 답답하다"고 하소연했다.

인근 엄목마을 상황도 마찬가지였다. 마을에서 만난 주민들은 감나무와 수확을 앞둔 옥수수, 참깨, 콩 등이 모두 떠내려갔다는 사실에 망연자실한 모습이었다.

김웅일 씨(81)는 "논 1000평이 전부 물에 잠겼다"며 "집이 물에 잠긴 것도 속상하지만 농지는 빗물에 잠기면 바이러스에 감염돼서 3년 동안 농사를 못 짓게 되니까 그게 제일 심란하다"고 말했다.

10일 전북자치도 완주군 운주면 한 주택에서 주민이 침수됐던 주택을 정리하고 있다. 2024.7.10/뉴스1 ⓒ News1 유경석 기자


한편 전북자치도소방본부 등에 따르면 이날 오전 4시 11분부터 '하천이 범람해 마을 주민들이 고립됐다'는 운주면 주민들의 신고가 잇따라 접수됐다. 경찰에만 30건 넘는 신고가 접수된 것으로 확인됐다.

집 옥상이나 야산으로 대피한 총 27명의 마을 주민은 소방대원들에 의해 무사히 구조됐다. 구조된 주민들은 현재 운주면행정복지센터와 운주동부교회 등으로 대피한 상태다.

완주군 관계자는 "하천 옆 제방이 유실되면서 인근 마을로 범람을 한 것으로 본다"며 "현재 정확한 피해 상황을 집계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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