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폭력 조폭' 같은 모순"…전공의 집단사직 진짜 이유[이승환의 노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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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4.04.01. 오후 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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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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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늘면 파이 줄어드는데 '수익창출원' 비급여 진료까지 통제
집단반발 배경 이것 아닐까?…노조법상 '파업'으로 인정 어려워
[편집자주] 신조어 No cap(노캡)은 '진심이야'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캡은 '거짓말'을 뜻하는 은어여서 노캡은 '거짓말이 아니다'로도 해석될 수 있겠지요. 칼럼 이름에 걸맞게 진심을 다해 쓰겠습니다.

의대증원에 반발한 전공의들의 진료 거부 이후 첫 주말을 맞은 24일 오전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진이 이동하고 있다. 2024.2.24/뉴스1 ⓒ News1 장수영 기자


(서울=뉴스1) 이승환 기자 = "전공의 집단사직은 노조법상 보장된 파업이 아닌데 언론들은 왜 파업이라 쓰는 거지요?"

최근 만난 법조계 취재원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파업의 사전적 의미는 '하던 일을 중지한다'는 겁니다. 정부의 의대 증원 방침에 반발해 최소 8897명의 전공의가 사직서를 냈고 그중 7863명이 병원을 떠나 '업무를 중단한 상태'입니다. 그런 만큼 파업으로 표현해도 무리가 아닌 것으로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법률상 의미를 따져보면 이 취재원의 말이 틀렸다고 할 수 없습니다.

◇정당한 파업이냐 아니냐 중요한 이유

먼저 헌법 제33조 1항에 따른 근로자의 단결권·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보장하는 것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입니다. 파업은 '쟁의 권리'로 상징되는 단체행동권에 포함되지요.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헌법과 노조법이 인정하는 노동 쟁의권의 입법 취지가 '근로자의 근로조건 개선'이라는 점입니다.

하지만 전공의들의 의대 증원 반대가 근로조건 향상을 위한 것이라고 보기 힘듭니다. 의대 증원으로 의사 수가 늘어나면 의료계에서 줄기차게 해결을 요구한 '주 80시간 이상의 혹독한 근로시간'을 오히려 개선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의대 증원은 파업의 법적 근거가 아닌 합법적 파업이 안 되는 주요 근거인 셈입니다.

이 때문에 전공의의 집단 업무중단은 노조법상 정당성을 갖춘 파업 등 쟁의행위로 해석하기 어럽습니다. 노조법이 인정하는 쟁의 행위에는 민·형사상 면책권이 부여됩니다. '집단사직' 전공의들은 이런 면책권을 기대하기 힘들다는 거지요.

의사들이 근로조건을 개선해달라면서 의사 확충을 위한 의대 증원을 반대하는 것은 마치 '비폭력 조폭'처럼 모순적인 주장이라는 비판이 많습니다. 의료계에서도 규모에 관한 이견은 있었지만 원래 인력 확충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분위기였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처벌 가능성을 감수하며 의사들이 집단행동에 나선 이유는 무엇일까요?

의사들은 "의사 확충이 아닌 의료수가를 올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의료수가는 건강보험공단과 소비자가 의료 행위와 관련해 지불하는 돈의 합입니다. 병원 또는 약국의 수익구조는 의료수가에 좌우되는 현실입니다.

주목할 것은 정부가 지난 1일 필수·지역 의료수가를 크게 올리기로 했다는 점입니다. 정부가 의료수가를 인상하겠다는데도 의사들이 의대 증원이 아닌 '의료수가 인상'이 필요하다며 단체 행동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다만 수가 조정 수준 및 방향이 구체적이지 않아 "정부를 믿을 수 없다"는 의사들의 반발 목소리에도 귀 기울일 필요는 있습니다.

◇'진짜 이유' 따로 있을까

의료계 일각에서는 '진짜 이유'가 따로 있다는 견해가 나옵니다. 정부가 의료 인력 확충 방안과 함께 제시한 필수의료 패키지 정책에 담긴 '급여·비급여 혼합 진료 제한'이 의사들의 집단 반발을 산 주요 배경이 아니냐는 분석입니다.

예컨대 혼합 진료는 비급여인 도수치료도 하고 급여가 되는 물리치료도 하는 것입니다. 급여는 건강보험이 적용되고, 비급여는 적용되지 않는 항목입니다. 비급여는 환자 본인이 비용 전액을 내야 해서 부담이 매우 큽니다. 그래서 환자들은 실손의료보험으로 비급여 진료 항목을 보장받곤 합니다.

정부 계획대로 혼합 진료가 제한되면 어떻게 될까요? 의료기관은 급여 진료와 비급여 중 하나만 선택해 진료해야 합니다. 이럴 경우 캐시카우(현금창출원)였던 비급여 진료가 사실상 제한돼 '개원의'들을 중심으로 수익이 줄어들 가능성이 큽니다. 도수치료와 백내장 수술 등 비급여 항목 진료에 집중해 큰돈을 만졌던 병·의원들의 수익 구조에 차질이 예상된다는 겁니다.

요컨대 정부의 혼합 진료 금지는 보험 재정 관리를 위한 비급여 진료 통제 방안입니다. 정부가 의대 증원과 함께 이 같은 통제 장치를 두려고 하자 의사들이 분노를 폭발하며 집단행동에 나선 것 아니냐는 해석입니다. 의사가 늘어나면 파이는 줄어드는데 주요 수익원인 비급여 진료까지 '패키지'로 통제하겠다니 의사들이 당연히 반발할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참고로 개원 전문의의 연평균 소득은 29만 8800만 달러(약 3억 9500만 원)입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벨기에(30만 1814달러) 다음으로 높습니다. 개원의들이 운영하는 동네병원의 비급여 진료비용은 종합병원의 2배에 달합니다.

미래의 고소득을 생각하며 '주당 평균 77.7 근무시간'을 견디는 전공의가 적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정부의 비급여 통제는 전공의들이 수련 과정을 마친 후 전문의로 개원해도 '고소득을 방해하는 방안'이 될 수 있습니다.

더구나 정부는 임상 수련을 일정 수준으로 마친 의사에게만 개원 면허를 주는 방안도 검토 중입니다. 개원 허용 기준을 까다롭게 하는 거죠. 현재는 의대 교육과정을 끝낸 후 국가고시에 합격하면 의사면허를 취득해 미용 등 비필수 분야 '일반의'로 개원할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개원의를 주축으로 하는 의사단체가 최근의 집단행동을 주도하는 것은 여러모로 시사적입니다.

전공의 집단사직은 명분 있는 단체행동일까요, 밥그릇을 지키려는 처절한 싸움일까요? 중요한 것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손봐야 할 의료계 관행과 체계가 한두 개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이승환 사회부 사건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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