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3 수능이 인생 결정"…그 선생님의 경고, 맞았을까[이승환의 노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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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3.11.26. 오전 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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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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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신조어 No cap(노캡)은 '진심이야'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캡은 '거짓말'을 뜻하는 은어여서 노캡은 '거짓말이 아니다'로도 해석될 수 있겠지요. 칼럼 이름에 걸맞게 진심을 다해 쓰겠습니다.

202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일인 16일 전북 전주시 한일고등학교 앞에서 수험생들을 마중 나온 학부모들이 북적이고 있다. 2023.11.16/뉴스1 ⓒ News1 유경석 기자


지난 16일 새벽, <뉴스1> 사건팀 기자 11명이 모인 카카오톡 단체 방이 쉴 새 없이 울렸다. 수능 당일 고사장 인근을 취재하던 기자들이 시시각각 단톡방에 올린 보고였다. 수능 현장은 '불안' '초조' '응원' '추위'라는 열쇠말로 요약됐다. 수험생들은 긴장했고 학부모들은 간절했으며 취재 기자들은 고교 시절을 떠올렸다.

필자도 25년 전인 1998년의 교실을 떠올렸다. 고등학교 입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30대 후반이던 선생님은 우리 반에서 표정 변화 없이 중저음으로 말했다. "앞으로 3년이 너희 인생의 30년을 좌우할 것이다. 그 결과는 너희가 책임져야 해." 3년 뒤 치르는 수능이 인생을 결정할 것이라는 조언이자 무시무시한 경고였다.

그 무렵 방과 후 찾던 학원 강사는 깜빡 졸고 있던 필자를 한심하다는 듯이 바라봤다. 강사는 "너 그런 식으로 공부하다가 OOO이 될 것이야"라고 혼냈다. OOO는 특정 직업을 의미했다. 당시 직업을 비하하는 발언으로 학생들에게 동기를 부여하려는 '교육자'가 적지 않았다.

공교육 교사도, 사교육 강사도 필자를 책상 앞에 진득하게 앉히지는 못했다. 수능을 치르고 이듬해 대학이 아닌 새벽 거리를 쏘다녀야 했다. 그 시간대 활기를 띠는 동대문 도매시장에서 옷을 사들인 후 온라인으로 판매했다. 2000년대 초반 '온라인 쇼핑몰' 붐이 일어나던 시기였다. 대학생들이 흔히 하는 아르바이트보다는 넉넉하게 벌 수 있었다.

대학에 들어간 것은 20대 중후반 때였다. 통상적인 시기에 입학하는 또래보다 졸업이 한참 늦었다. 서른두 살이 돼서야 겨우 기자 일을 시작했다. 이마저도 운 좋게 취업한 것이다. 많은 회사에서 '30대 초반의 신입'을 부담스러워했고 취업 후에도 이런 분위기는 한동안 감지됐다.

그래서 선생님 말씀대로 '3년간 열심히 공부해 고교 졸업 후 바로 대학에 입학해야 했다'고 후회했을까? 그렇지 않다. '동대문 경험'은 어떤 상황이 닥치더라도 굶고 살지는 않을 것이라는 자신감을 심어줬기 때문이다. 현재 위아래 중간에 끼어 선후배 눈치를 보는 처지지만 그나마 자존심을 지키며 일하는 것도 그 자신감 덕분이다. 동대문 새벽시장을 누빈 경험은 취재 '현장'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되고 있다.

번듯한 대학 졸업장 없이 귀감이 되는 사례는 요즘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유튜브 채널 '30대 자영업자 이야기'에서는 학력이 아닌 성실함과 사업 감각으로 성공한 젊은 사장님들이 등장한다. 교과서와 수능 지문엔 나오지 않는 지혜와 통찰력을 발휘해 이른 나이에 대기업 임원 수준의 자산을 보유한 30대 자영업자들도 있다. 해당 영상들을 시청하면서 '요즘 똑똑한 사람들은 사업을 한다'는 얘기를 실감한다.

수능 당일 새벽, 후배들의 보고를 읽다가 마침내 무릎을 쳤다. 한 어머니의 응원 메시지 때문이다. 살얼음판 같은 긴장감이 이어지는 서울고 고사장으로 향하는 아들에게 어머니는 호탕하게 외쳤다. "공부가 인생의 전부 아냐. 쫄지 말고!"

이런 어른들이 늘어나면 얼마나 좋을까. 공부는 결국 행복해지려고 하는 것인데 공교롭게도 인생의 전부가 아님이 명백할 때 수험생과 학부모, 청년들이 더 행복해질 것이다. 지난해 기준 서울 상위권 15개 대학에 입학한 비율은 전체 수능 응시자의 10%에 불과하다.

마지막으로 어머니의 멋진 응원에 한마디만 보태고 싶다. 지난 16일 수능을 보지 않았거나 망친 이들에게 감히 전하는 메시지다. '앞으로 더 큰 세상이 있으니, 수능 그까짓 것에 쫄지 말라'고. 고3 수능 성적표를 확인한 직후 내 인생은 끝난 줄 알았다. 그러나 당시에 전혀 예상하지 못 했던 일을 하며 지금 밥벌이는 하고 있다.

이승환 사건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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