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 모든 어머니는 위대하다는 걸 다시금 느끼는 하루였습니다."
"허리가 결려서 잠도 못 자고... 누워만 있고 싶네요."
지난달 30일 기자는 서울 성동구보건소를 찾았다. 이곳에선 예비 남편이나 임산부 체험을 희망하는 관내 구민들에게 임산부 체험복을 무료로 대여해 준다.
기자의 성별은 남성이다. 심지어 미혼이다. 하지만 임산부의 날을 앞두고 직접 임산부의 일상을 체험해 보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 성동구 소재 주민이 아니더라도 문의 후 체험이 가능하다.
체험용 캐리어 안에는 약 7㎏의 임산부 조끼가 들어있다. 7~8개월 된 태아와 양수의 무게를 합쳐 제작했다. 조끼 안쪽엔 산모의 체온 상승을 경험할 수 있는 발열 패치와 방광을 누르는 부분이 있다. 이밖에 오염방지를 위한 앞치마와 태아 심장박동기 등도 마련돼 있다.
보건소 관계자는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자는 취지로 이 사업을 준비했다"며 "요즘은 입소문을 타서 서울 다른 지역구 주민들도 많이 체험하러 온다"고 밝혔다. 이어 "성동구는 임신부 사업 관련 예산을 앞으로도 계속 마련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직장으로 향하는 버스를 기다리면서 수많은 사람의 시선을 느껴야만 했다. 그럴 때마다 괜히 휴대폰을 만지작거리거나 버스 시간표를 확인하며 애써 시선을 외면해야 했다. 하지만 이내 어깨와 허리가 결려 고개를 뒤로 젖힌 뒤 손으로 배를 받쳤다. 타인의 시선은 신경쓸 여유조차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탄 버스는 이미 사람들로 가득차 있었다. 시민들 사이에서 배를 잡고 의자 옆 빈 공간을 찾아 서둘러 손잡이를 잡았다. 우연의 일치였을까. 기자가 선 곳 바로 앞에는 임산부 좌석이 있었다. 그곳에 앉아 있던 한 시민은 조끼와 얼굴을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이내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5정거장 정도를 더 지나쳤다. 그러자 앞에 있던 승객이 자리에서 일어난 뒤 조끼 배 부분을 툭 치며 "저 이제 내리니까 여기 타세요"라고 말했다. 얼떨결에 앉은 임산부 좌석은 값비싼 소파 부럽지 않았다. 앉는 동시에 "후"하는 한숨이 절로 나왔다.
이날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밖이 아닌 사무실 안에서 업무를 봤다. 직장인 산모의 일과를 직접 경험해 보기 위함이었다.
우선 아랫배가 계속 눌려 화장실을 자주 가야만 했다. 횟수를 세 본 결과 오전 2번, 오후 5번 총 7차례 화장실에 들렀다. 평소보다 무거워진 몸과 높아진 체온으로 목이 자주 말라 물 마시는 횟수를 줄이는 건 생각할 수 없었다.
드디어 점심시간. 잠시나마 편하게 쉴 수 있었다. 오전 11시30분부터 점심시간이지만 밖으로 나가기 힘들어 회사 휴게실 안에서 끼니를 해결했다. 동료 기자에게 부탁해 사 온 간편 도시락을 먹었다. 밥을 먹으면서도 아랫배가 계속 눌려 불편한 상태로 식사할 수밖에 없었다.
짧은 점심시간을 마친 후 오후 2시엔 부서 회의가 있었다. 회의실로 들어가 다시 앉을 생각에 표정이 일그러졌다. 차라리 기자의 'MZ'력을 뽐내며 서서 회의에 참여하고 싶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이 다시 "후~"하고 숨을 내뱉으며 자리에 앉았다.
오후 7시10분 집에 도착했다. 그러나 쉴 수는 없었다. 저녁밥을 준비해야 했다. 원래는 참치김치찌개를 해먹으려 했으나 이내 포기했다. 최대한 간편히 준비하기 위해 3분 즉석 카레와 즉석밥으로 배고픔을 해결했다.
밥을 먹은 뒤엔 며칠간 밀린 설거지를 했다. 고개를 숙이고 그릇을 닦다 보니 허리와 어깨가 당겼다. 결국 어쩔 수 없이 조끼 배 부분을 싱크대 위에 올려두고 마저 설거지를 끝냈다. 물론 실제 산모라면 절대 해선 안 될 행위다. 이후 손으로 배를 받친 채 청소기를 돌렸다.
찰나의 꿈같은 시간을 뒤로 하고 다시 조끼를 입었다. 아무것도 하기 싫어 옆으로 누운 채 휴대폰만 바라봤다. 앉아 있으려 했지만 무거운 몸을 침대에 의지하는 편이 더 좋았다. 그렇게 이날은 평소보다 일찍 잠을 청했다.
남성도 힘든 임산부 체험… '공감대' 형성해야 잘 때도 조끼는 기자의 몸을 감쌌다. 똑바로 누우면 방광이 눌려 새벽에 화장실로 향했다. 옆으로 누워 있다가도 자세를 바꾸면 몸이 무거워 잠을 설쳤다.
다음날 오전 5시20분쯤 목이 말라 잠깐 잠에서 깬 뒤 부엌에서 물을 마셨다. 그리고 돌아온 침대 밑엔 언제 벗어 던진 줄도 모르는 조끼가 나뒹굴고 있었다.
'0.72명'. 지난해 한국 합계출산율이다. 도시국가 마카오를 제외하면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다. 정부 차원에서 저출산·고령화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방안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당장의 반등을 꾀하긴 어려워 보인다.
이번 체험은 출산율 증가를 위한 방안을 도출하기 위함이 물론 아니었다. 하지만 임산부가 겪는 일상에서의 현실적인 어려움을 제대로 마주할 수 있었다. 출산은 결코 여성이 홀로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큰 고통이 따른다는 점을 단 하루의 체험을 통해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임산부를 위한 제도적 뒷받침이나 사회의 관심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남성이라면 평생 느낄 수 없는 경험인 만큼 남녀간 서로를 배려하는 '상호존중'도 반드시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