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민진의 웨이투고] 데드라인이 좋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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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4.06.24. 오전 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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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시간 정도 남았다. 자체 정한 마감 시한까지는. 만약을 위해 진짜 데드라인 보다 두 시간 정도 당겨 뒀다. 요즘 내게 있어 '마감'이라 함은 언론 매체에 실을 원고 마감인데, 데드라인을 코앞에 두고도 유독 글감조차 잡히지 않는 날이 있다. 오늘이 그렇다. 쫓기는 심정이다. 째깍째깍 시곗바늘 소리가 원래 저리 컸던가. 벽에 걸린 시계를 자꾸만 쳐다본다.

사실 글이란 뭘 어떻게 쓸지를 정하는 게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니까 주제를 정하고 글감을 챙겼다면 시름을 던다. 아이디어가 중요하다. 구상만 완료되면 정작 쓰고 다듬는 건 큰 문제가 아니다. 아무 생각없이 넋 놓고 있었던 것도 아닌데 오늘따라 마음에 안 들어서 쓰다가 도중에 버린 아이디어가 많았다. 영어로 'Kill'(죽이다), 기자 시절 쓰던 업계 용어로 여러 번 자체 '킬(Kill)했다'. 마감을 앞두고 쓰던 기사가 킬 되어 다른 걸로 공백을 메워야 할 때 느꼈던 압박감을 다시 맛볼 줄이야. 커피도 몇 잔이나 마셨고, 초조한 마음에 생라면까지 부숴 먹었다. 나는 글이 잘 안 풀리면 뭔가 씹어먹을 걸 찾는 습관이 있다. 체중의 2%에 불과한 뇌가 전체 에너지의 20%를 쓴다더니, 머리를 세게 가동하면 먹을 게 필요하다.

그런데 지금 입가에 슬며시 미소가 떠오른다. 쫓기는 마음에 일단 쓰기 시작한 건데 다행히도 글의 윤곽이 잡힌다. 내용을 이어가 완성할 수 있겠다. '마감 시한의 효용'을 말해보려 한다. 역시 죽으란 법은 없고, 두드리면 열리고,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는 게 맞다. 마감이 있어서 두드리게 되고 뜻을 세우게 된다. 자, 본론으로 들어가자. 일을 하면서 깨닫는 사실이 있다. 내가 은근히 마감 시한이 주는 압박감을 즐긴다는 거다. 크게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하나는 데드라인이 없다면 좀처럼 느낄 수 없는 엄청난 몰입과 집중의 시간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어쨌든 마감 후엔 이 일에서 벗어나는 해방감을 예상하기 때문이다. 몰입과 해방! 집중과 자유! 대개 산만하고 따분한 일상에서 이 얼마나 신선한 자극들인지. 데드라인 덕분에 얻을 수 있는 귀한 쾌감에 나는 생각보다 중독돼 있다. 더불어 시간 안에 일을 마무리한 후 마시는 차가운 맥주 맛, 찜 해 뒀던 영화 한 편을 보는 시간, 오래 앉았던 자리에서 일어나 바깥 산책에 나서는 일 따위가 주는 즐거움까지도 알고 있다.

다만 전제가 있다. 마감 압박에 시달린 끝에 이런 기쁨을 느끼려면 말이다. 역시 두 가지다. 하나는 자신 혹은 타인과의 마감 약속을 꼭 지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째깍째깍 시간이 가는 동안 걱정과 불안이 커질지라도 '어떻게든 해낼 수 있다'고 자신을 믿는 것이다. 마감 약속을 대수롭지 않게 어겨도 괜찮다고 생각한다면 데드라인은 당연히 의미가 없다. 시간에 쫓길수록 자신감을 잃고 위축된다면 데드라인은 약보다 독이 된다. 다행히도 두 가지 전제에 나는 꽤 강한 편이다. 내게 마감 시간이 있다는 건 약속을 충실히 지킨다는 의미이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도록 스스로를 부단히 독려한다는 뜻이다.

인생은 결국 크고 작은 마감의 연속이다. 마감이 있기에 크고 작은 열정이 생긴다. 삶의 가장 큰 마감이 죽음이던가. 끝이 있기에 지금 몰입한다. 어쨌든 오늘도 글을 완성했다. 여러분께 띄운다.

조민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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