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은 지난해 두산그룹 계열사들의 분할 합병에 이어 이수페타시스, 현대차증권 유상증자에 제동을 걸었다. 삼성SDI가 유상증자를 실시하려고 금감원과 소통을 시도했으나 설득하지 못해 내부적으로 포기했다는 소문도 돌고 있다.
주주들은 금감원이 주가에 악재로 작용하는 유상증자를 막아주니 속시원하다는 반응이지만, 기업의 자금 조달 창구를 금감원이 뚜렷한 이유없이 강제로 틀어막는 것 아니냐는 반발도 나온다. 이수페타시스, 현대차증권은 금감원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정정된 증권신고서를 제출하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주가 변동성만 키우고 있다는 의견도 있다.
9일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지난 7일 금감원은 차바이오텍이 앞서 제출한 유상증자 증권신고서에 대해 정정신고서 제출을 요구했다. 차바이오텍은 지난해 12월 20일 장 마감 후 2500억원 규모의 주주배정 유상증자 계획을 밝혔다. 신주 2314만8150주를 1주당 1만800원에 찍어 자금 2500억원을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차바이오텍의 신주 물량은 기존 발행주식 수 대비 41% 수준이 될 전망이다. 회사는 유상증자를 통해 조달한 자금 중 각각 900억원, 200억원을 차헬스케어와 마티카홀딩스 증권 취득에 사용하겠다고 밝혔다. 나머지 1200억원은 운영자금, 200억원은 시설자금으로 쓰겠다는 방침이다.
차바이오텍의 주가는 유상증자 계획이 발표된 후 급락했다. 유상증자가 진행되면 기존 발행주식 수 대비 41% 수준의 신주가 시장에 풀리게 되는데 주가가 희석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유상증자 계획이 발표된 다음 거래일인 지난해 12월 23일 차바이텍의 종가는 30% 가까이 폭락해 1만5000원대였던 주가가 1만510원까지 떨어졌다. 금감원의 유상증자 제동 소식이 알려진 뒤 차바이오텍의 종가는 소폭 반등했다. 8일 차바이오텍의 종가는 전 거래일 대비 1.11% 오른 1만1830원이었다.
금감원은 정정신고서와 관련, “심사 결과 증권신고서 형식을 제대로 갖추지 아니한 경우 또는 그 증권신고서 중 중요사항에 관해 거짓의 기재 또는 표시가 있거나 중요사항 기재나 표시 내용이 불분명해 투자자의 합리적 투자 판단을 저해하거나 투자자에게 중대한 오해를 일으킬 수 있는 경우에 해당된다”고 했다.
금감원은 최근 기업의 유상증자 결정에 대해 적극적으로 제동을 걸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이수페타시스다. 이수페타시스는 지난해 55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기습 발표해 주주들의 반발을 샀다. 주주들의 반발이 계속되자 금감원은 이수페타시스의 유상증자 계획에 대해 두 차례 정정을 요구했다. 특히 2차 정정요구서 내용에는 주주들에 대한 설득 노력에 대해 기재하도록 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감원은 현대차증권이 추진 중이던 20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 증권신고서에 대해서도 정정신고서 제출을 요구했다. 이같은 유상증자 제동이 이어지자 유상증자 계획을 고심하다 포기하는 사례도 나왔다. 최근 글로벌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둔화)으로 돈줄이 마른 삼성SDI는 자금 확보를 위해 유상증자를 고려하다 금감원과 소통 과정에서 접은 것으로 알려졌다.
기업들의 ‘폭탄’ 유상증자에 시달려 온 개인 투자자들은 금감원의 결정에 환호하고 있다. 기업이 경영 과정에서 겪는 자금 압박 문제를 손쉽게 주주들의 쌈짓돈을 통해 해결하려는 분위기도 있던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장의 주요 목적 중 하나가 원활한 자금 조달이기 때문에, 금감원이 뚜렷한 명분 없이 기업의 의사 결정을 방해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신규 투자를 위한 대규모 자금 조달 등 다양한 목적으로 유상증자를 진행할 수 있다”며 “유상증자 역시 시장의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되는 사안이기 때문에 아예 유상증자 자체를 못 하게 만든다면 기업들이 자금 조달을 할 수 있는 창구가 막힐 수 있다”고 지적했다.
기업의 퇴로를 열어주지 않고 계속 증권신고서를 반려하면서 주가가 급등락하는 일만 반복되고 있다. 이수페타시스는 금감원의 정정 요구가 나오면 5~10% 급등하고, 다시 증권신고서를 제출하면 급락하는 패턴이 반복되고 있다. 지난 7일에도 이수페타시스 경영진이 소액주주들과 만난 자리에서 유증이 필요하다고 강조하면서 강세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8.52% 폭락 마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