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자체가 부실한 상장사들 쫓는 게 핵심
금융당국·학계선 거래량 기준 수정 의견 있으나
’거래 부진=부실기업’은 아니라 당장은 손 안대
부실기업을 제때 퇴출하기 위해 한국거래소가 상장폐지(상폐) 규정 손질에 나선 가운데, ‘주식 거래량’ 기준은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거래량이 일정 수준 미만이면 상폐시키는 규정을 더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기는 하지만, 거래 부진이 곧 부실기업을 뜻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앞서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거래량이 거의 없는 기업을 콕 집어 상장 적격성에 의구심이 든다고 발언, 거래 부진 상폐 기준을 더 강화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 바 있다.
28일 금융당국 등에 따르면 한국거래소는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상폐 규정을 개선할 계획이다. 좀비 상장사를 시장에서 조기 퇴출해 다른 건전한 기업으로 증시 자본이 공급되도록 하기 위한 취지다. 현재 한국거래소는 ▲정기보고서 미제출 ▲감사보고서상 외부감사인 감사 의견이 부적정 또는 의견 거절 ▲자본 잠식 등에 해당하는 기업 등을 상폐 심사에 올리고 있다.
거래량도 상폐 기준 중 하나다. 하지만 이번 규정 개선의 초점은 기업의 본질인 재무 등이 부실한 기업을 골라내는 것이라 거래량은 현행 수준을 유지할 전망이다. 한국거래소 관계자는 “엄밀히 따지면 거래량은 기업의 본질과 상관이 없다”며 “거래량 상폐 기준을 (좀 더 타이트하게 잡을 경우) 한국거래소가 거래를 부추긴다고 해석될 여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현행 규정상 유가증권시장, 즉 코스피 상장 기업의 경우 2개 반기 연속으로 월평균 거래량이 유동주식 수의 1% 미만이면 상폐될 수 있다. 코스닥 상장 기업은 코스피보다 기간이 더 짧다. 코스닥은 2개 분기 연속 월평균 거래량이 유동주식수 1% 미만일 때 상폐까지 이어질 수 있다.
한국거래소가 부실기업이라고 판단하는 ‘1% 미만’이라는 거래량 기준은 정해진 지 약 20년이 됐다. 2005년 증권거래소와 코스닥증권시장, 코스닥위원회, 선물거래소 등이 통합해 한국증권선물거래소(사명 변경 후 한국거래소)가 출범할 때의 수치가 여전한 것이다. 당시 한국증권선물거래소는 거래량이 유동주식 수의 1% 미만인 기업을 투자유의종목으로 지정했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1% 미만이라는 기준은 그대로 상폐 요건까지 이어졌다.
하지만 거의 사문화된 조항이다. 거래량 부진을 이유로 상폐된 종목은 많지 않아서다. 우선주를 제외하고 가장 최근에 거래량 미달로 상폐된 건 2008년 디씨씨다. 그 이후 16년간 거래량 요건을 맞추지 못해 상폐된 종목은 없었다.
그렇다고 모든 종목에서 활발한 거래가 이뤄지는 건 아니다. 22일 상장 종목(스팩 포함) 2831개의 평균 거래량은 49만2442주였는데, 133개 종목은 아예 거래가 없었다. 5개 종목 중 1개 꼴(625개 종목)로 거래량 1만주 이하였다. 현재 요건이 널널해 웬만한 기업들은 다 맞춘다는 방증인 것이다. 또 증권사와 유동성공급(LP) 계약을 맺고 거래량을 끌어올릴 수도 있어 이를 빠져나갈 방법은 많다.
금융감독원이 거래량이 현저히 낮은 기업들은 시장에서 내쫓아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 것도 이런 배경이 작용했다. 이달 초 이복현 금감원장은 자산운용사 최고경영자(CEO) 간담회 이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거래가 거의 이뤄지지 않는 좀비 기업의 경우 일반 주주들이 빠져나갈 수단이 없다”며 “상장 제도의 좋은 면(자금 조달)만 취하고 책임이 없는 이런 기업을 계속 유지하는 게 맞는지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전문가 사이에서도 거래량 요건을 손봐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선임 연구위원은 “‘거래량 1% 미만’이라는 상폐 기준의 수준이 너무 낮은 것 아니냐는 의견들이 있다”며 “현실적으로 투자자와 기업의 반발이 있겠지만 1%가 적정한 수준인지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한국거래소는 연구용역을 거쳐 하반기 제도 개선 방향의 초안을 발표한 후 연말쯤 방안을 확정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