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판례 검색과 초안 작성까지… 로펌 업무 시간 45% 줄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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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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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영우’ 수준 AI 배치…법률 시장 혁신하는 리걸테크

사진 셔터스톡

# 로이터통신의 모회사 톰슨로이터는 월 15일(이하 현지시각) 생성 AI (Generative AI)를 활용해 법률 문서를 작성하는 ‘코카운슬(CoCounsel)’ 서비스를 마이크로소프트(MS) 워드(Word)에 통합한다고 발표했다. MS 애플리케이션(앱) 스토어에서 ‘코카운슬 드래프팅’ 앱을 내려받으면, 워드 화면에서 곧바로 코카운슬을 이용할 수 있다. 앞서 지난해 8월 톰슨로이터는 코카운슬을 운영하는 리걸테크(Legal Tech·법률 정보 기술) 기업 케이스텍스트(Casetext)를 6억5000만달러(약 8970억원)에 인수했다. 2013년 설립된 케이스텍스트의 기업 가치는 2022년 초 1억2500만달러(약 1730억원)였는데, 2년여 만에 약 다섯 배가 됐다.

# 영국 로펌 애셔스트는 6월 25일 미국 리걸테크 스타트업 하비(Harvey)의 생성 AI 도구를 도입한다고 밝혔다. 전 세계 4000여 명의 애셔스트 소속 변호사와 직원은 하비의 생성 AI를 업무에 활용하고 있다. 애셔스트는 2023년 11월부터 올해 3월까지 하비를 포함한 세 개의 생성 AI를 시범 도입한 결과, 법률 초안을 작성하는 시간을 평균 45% 줄였다고 밝혔다. 시범 도입에 참여한 애셔스트 구성원의 77%는 설문 조사에서 “AI(인공지능)가 서면 작성 시간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됐다”고 했다.

AI를 활용한 리걸테크 시장의 성장세를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가트너에 따르면, 글로벌 리걸테크 시장은 2022년 230억달러(약 31조7520억원)에서 2027년 500억달러(약 69조300억원) 규모로 확대될 전망이다.

오픈AI가 2022년 11월 채팅형 AI 챗GPT를 선보인 이후, 법률 시장은 대격동의 시기를 맞았다. 법조인은 업무 시간 대부분을 판례 검색과 서면 작성 같은 문서 작업에 할애한다.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학습한 AI는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주인공처럼 이 분야에서 탁월한 성과를 낼 수 있다. 오픈AI가 2023년 3월 챗GPT-4를 출시하며 전면에 내세운 것도 ‘변호사만큼 뛰어난 성능’이었다. 미국 변호사 시험 UBE(Uniform Bar Exam)에 응시한 챗GPT-4가 응시자 상위 10%의 성적을 받았다는 것이다. 기존 챗GPT-3.5가 상위 60%에 속했던 것과 비교된다. ‘이코노미조선’은 AI를 도입하는 국내외 기업과 사법부, 정부 관계자들을 인터뷰했다. AI 도입으로 변화할 미래 법률 시장의 모습을 정리했다.


플랫폼에서 AI 기업으로 바뀌는 리걸테크社

AI 발전 이전까지 리걸테크 기업은 변호사와 의뢰인을 연결하는 플랫폼이 주목받았다. 로앤컴퍼니의 로톡이 대표적이다. 미국 리걸줌(LegalZoom)과 일본 벤고시닷컴도 플랫폼으로 출발해 상장사로 덩치를 키웠다. 벤고시닷컴에 가입한 일본 변호사는 2022년 3월 2만1500명을 기록, 일본 전체 변호사 숫자의 절반을 넘어섰다. 반면 국내에선 대한변호사협회(변협)와 로톡이 변호사법 위반을 둘러싸고 2015년부터 작년까지 오랜 기간 갈등을 빚어 리걸테크 산업 성장이 더뎠다. 로톡에 가입한 변호사 수는 2021년 초 4000명에서 2022년 말 2000명으로 줄었다. 우리나라 전체 변호사는 약 3만5000명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등장한 생성 AI는 리걸테크 산업이 급성장하는 모멘텀이 되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지난해 발간한 보고서에서 현재 법률 직무의 44%가 AI에 의해 자동화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법률은 사무·행정 지원 직무(46%) 다음으로 AI 자동화 혁명에 가장 크게 노출되는 직무로 나타났다. 실제 리걸테크 기업은 AI 기술을 기반으로 한 혁신적인 법률 서비스를 속속 선보인다.

로앤컴퍼니는 7월 1일 AI 법률 비서 ‘슈퍼로이어’를 국내 출시했다. 로펌이나 기업 법무팀을 대상으로 하는 B2B(기업 대 기업) 서비스다. AI가 법률 검색, 서면 초안 작성, 문서 요약 등을 해준다. 로앤굿, BHSN, 인텔리콘연구소 등 국내 여러 리걸테크 기업도 법률 시장에 특화한 AI 서비스를 내놓고 있다. 해외 기업의 국내 시장 진출도 나타난다. 글로벌 기업 렉시스넥시스는 미국의 판결문과 법령을 폭넓게 학습한 ‘렉시스플러스 AI’를 지난 3월 국내 출시했다. 로펌도 리걸테크 기업에 의존하지 않고자 자체 AI를 개발하고 있다. 법무법인 율촌은 내부 구성원을 위한 생성 AI 도구를 국내 IT(정보기술) 기업과 협업해 개발 중이다.

보수적인 사법부도 AI 도입

전 세계의 사법부도 법률 시장을 뒤흔드는 AI의 영향에 주목하고 있다. 존 로버츠 미국 대법원장은 작년 연말 발표한 연례 보고서에서 “법학 교수들은 AI가 과제에서 B 학점을 받고, 심지어 변호사 시험을 통과한다는 사실에 놀라움과 불안감을 동시에 느끼고 있다”면서 “AI 없는 법률 연구는 곧 상상할 수 없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로버츠 대법원장은 “AI를 사용할 땐 주의가 필요하다”면서도 “변호사를 고용할 형편이 되지 않는 사람들에게 AI가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했다. 법 교육을 받지 않은 사람의 사법 접근성을 높인다는 관점에서, 싱가포르 사법부는 소액청구재판소(SCT·Small Claims Tribunal)에 생성 AI를 도입할 예정이다. 소송 당사자가 어떤 자료를 제출해야 하는지 알려주고, 상대방이 제출한 증거를 번역·요약하는 AI다.

특히 국내에선 재판 지연 현상이 사회적 문제로 떠올라, 효율성을 높이는 AI가 주목받는다. 천대엽 법원행정처장은 지난 1월 취임식에서 “당면한 사법의 과제는 재판 지연 해소”라며 “재판과 민원 업무에 AI를 활용하는 것과 같이 편의성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밝혔다.

사법 영역에 AI를 도입할 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할루시네이션(환각·AI가 생성한 정보에 허위 정보가 포함되는 현상)이다. AI를 토대로 작성된 변호사의 서면이나 판사의 판결문에 오류가 발생할 수 있어서다. 또 AI가 기존의 편견을 강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미국에서 양형 보조 도구로 활용되는 재범 예측 AI 컴퍼스(COMPAS)는 백인보다 흑인에게 더 높은 재범 확률을 부여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AI가 편향적이거나 차별적인 가치관을 투영할 수 있다는 얘기다. AI 연구자 데이비드 로자도는 24개 거대 언어 모델(LLM)의 정치 성향을 분석한 최근 연구에서 “LLM은 권위주의 대신 자유주의, 정치적으로 중도 좌파의 성향을 띠는 경향이 나타났다”고 밝혔다.

리걸테크의 종착점은 AI가 판단까지 내리는 이른바 ‘AI 판사’다. AI 판사는 전관예우나 ‘무전유죄 유전무죄’ 등 편파적인 판결에서 자유롭다는 장점이 부각되지만, 기계가 사람의 운명을 결정하는 데 대한 거부감과 윤리적인 논란도 많다. 순다레시 메논 싱가포르 대법원장은 지난 4월 인도에서 열린 ‘AI 시대의 사법적 책임’ 콘퍼런스에서 “가사 사건에선 종종 단 하나의 정답만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는 “법원의 과제는 당사자의 이야기를 듣고 실질적인 문제를 진단하며, 그들이 치유를 경험하고 나아갈 수 있도록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이라면서 “AI가 공감을 모방할 수 있을진 모르지만, 인간판사처럼 진심으로 공감하며 사회적인 지능을 발휘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Plus Point

리걸테크 도입 두고 이번엔 변협·대륙아주 갈등

이규철 법무법인 대륙아주 대표변호사가 3월 20일 서울 강남구 대륙아주 대회의실에서 AI 대륙아주 시연회를 열고 발언하고 있다. 사진 대륙아주

변협은 AI 대륙아주 출시에 관여한 대륙아주 소속 일부 변호사에 대한 징계를 추진하고 있다. 오는 9월 조사위원회를 열고 이들을 징계위원회에 회부할지 결정할 예정이다. 비(非)변호사인 AI가 변호사 활동을 하면서 이익을 창출하면 변호사법 위반이라는 것이 골자다. 변호사법 34조 5항은 ‘변호사가 아닌 자는변호사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업무를 통하여 보수나 그 밖의 이익을 분배받아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대해 대륙아주는 AI 챗봇이 제공하는 정보가 일반적·추상적 법률 지식이어서 변호사의 법률 상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맞선다. 슈퍼로이어 등 B2B AI는 변호사의 도구로만 활용되는 반면, AI 대륙아주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서비스다.

앞서 변협은 로톡과도 변호사법 위반 여부를 두고 갈등을 빚었다. 변협은 변호사법(34조 1항)이 금지한 유상 소개·알선·유인 행위를 로톡이 벌이고 있다고 주장하고, 공공 플랫폼 ‘나의 변호사’를 출시했다. 반면 로톡은 월 정액제를 기반으로 변호사들에게 광고비만 받을 뿐이라고 맞섰다. 변협과 서울지방변호사회 등이 로톡과 벌인 법적 분쟁에서 검찰, 헌법재판소, 공정거래위원회, 법무부는 로톡의 손을 들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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