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난·자금난 해결사 찾자” 창업자 떠나고 최대 주주 바꾸는 헬스케어 업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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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4.07.25. 오전 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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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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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특례 상장 이후 개발·사업 고전
최대주주 바꾸고 업종 변화도

일러스트=챗GPT 달리3


국내 헬스케어 업계에서 회사의 최대주주가 바뀌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경영난, 자금난을 겪다가 보유 주식을 매각하고 대표직을 내려놓는 것이다. 기업들은 최대주주를 변경하고 기업 체질을 개선해 돌파구를 찾고 있지만, 시장의 시각은 회의적이다. 기술특례 상장으로 코스닥 시장에 입성한 헬스케어 업체들이 연구개발(R&D) 지연으로 가시적 성과를 내지 못하면서 기술력에 대한 신뢰를 잃고 외면을 받는다는 지적이 나왔다.

24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올해 1월 1일부터 이날까지 ‘최대주주 변경’을 공시한 기업 수는 126곳으로, 이 중 제약·바이오, 의료기기 등 헬스케어 기업(화장품업종 제외)은 29곳으로 집계됐다. 헬스케어가 전체 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0%도 안 되는데 최대 주주가 바뀐 기업은 23%나 되는 것이다.

디지털 치료제(치료용 소프트웨어) 업체인 라이프시맨틱스는 오는 9월 4일 최대주주가 송승재 대표이사에서 우주항공용 소재 전문기업인 스피어코리아로 변경될 예정이라고 24일 밝혔다. 이 회사는 2012년 설립된 디지털 치료제 업체다. 회사는 지난 22일 이사회를 열고 스피어코리아를 대상으로 한 57억원 규모의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결의했다.

라이프시맨틱스는 스피어코리아가 주요 조합원인 럭키W신기술투자조합1호와 지오에너지링크에 총 316만 1850주를 주당 3530원에 양도하는 주식양수도계약도 맺었다. 이에 따라 모든 거래가 완료되는 9월 4일부터 스피어코리아가 최대 주주에 오른다. 창업자인 송승재 대표는 경영권 인계 후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난다.

라이프시맨틱스는 지난 2021년 3월 사업모델 특례상장을 통해 디지털 치료제 업계 최초로 코스닥 시장 입성에 성공했다. 상장 당시 라이프시맨틱스는 디지털 치료제들을 ‘레드필’ 브랜드로 개발하고 임상시험을 추진했다. 하지만 ‘레드필 숨튼’은 세계 최초 호흡 재활 디지털 치료제로 한국과 미국 인허가를 노렸지만 지난해 국내 임상시험에서 실패했다.

규제 당국의 승인을 받고도 실패한 헬스케어 업체들도 있다. 건강보험 급여를 받지 못해 판매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페어테라퓨틱스는 지난해 미국에서 디지털 치료제로는 처음으로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획득했지만 파산했다. 베터 테라퓨틱스도 세계 첫 2형 당뇨병 디지털 치료기기 개발해 FDA 승인을 받았지만 올해 4월부터 청산 수순을 밟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모두 미국 공보험 메디케어 급여화에 실패한 게 패인으로 평가됐다.

익명을 요구한 증권사 연구위원은 “시장이 조성되기까지 시간이 걸리는 사업에 도전한 건데, 안정적으로 사업을 추진할 만큼의 자금을 확보하지 못했다”며 “재무적인 성과를 내거나 중장기 사업을 뒷받침해 줄 수익원(캐시카우)이 없는 게 큰 리스크”라고 지적했다.

지난 2018년 기술성 특례로 상장된 파멥신도 최대주주, 대표가 변경됐다. 지난 23일 최대 주주가 타이어뱅크에서 김정규 대표로 바뀌었다. 2016년 당시 이 회사 최대주주는 글로벌 바이오벤처 투자사 오비메드의 카두세스 아시아(보통주 지분율 11.95%)였고, 노바티스바이오벤처스(10.45%), 창업자 유진산 전 대표(9.94%)가 주요 주주였으나 지금은 모두 빠졌다. 이 회사 창업자인 유진산 전 대표는 지난 1월 29일 사임했다.

창립 당시 이 회사의 주요 사업은 항암제, 혈관질환 등 신약 개발이었다. 최대 주주 변경과 함께 ‘해외자원개발사업’, ‘비철금속 제품 제조·판매업’, ‘전기차 전장품, 충전기 제조·판매업’, ‘충전 인프라 사업’, ‘자동화 모빌리티 제조·판매업’을 영위 사업으로 추가됐다. 회사는 내달 10일 임시 주총을 통해 이사진을 선임할 계획이다. 업계 관계자는 “스타트업의 가치이자 정체성이기도 한 창업자가 경영권을 넘기고 사업을 내려놓는다는 것은 현실의 한계를 느껴 탈출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임플란트 전문 업체인 솔고바이오메디칼(솔고바이오)도 최근 최대주주가 변경됐다. 김서곤 솔고바이오메디칼 창업자가 최대 주주였다가 2021년 김일 전 대표로 바뀌었고, 지난 6월 말 다시 주식회사 MDS테크로 변경됐다. 솔고바이오는 1995년에 설립돼 척추, 골절, 인공관절용 생체용 금속(임플란트), 외과용 수술기구, 체외진단기기, 온열매트 제조, 판매를 주요 사업으로 하고 있다.

솔고바이오메디컬은 1974년 설립된 우일공업사가 전신이다. 1995년 법인으로 전환하고 사명을 솔고로 바꿨다. 코스닥에는 2000년도에 상장됐다. 기술 특례로 상장하지는 않았다. 현재 회사는 김재욱 대표가 이끌고 있는데, 지난달 말 재무구조 개선을 사유로 1주당 액면금액 500원이 보통주 10주를 보통주 1주로 무상 병합하는 방식의 감자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오는 9월 5~29일 매매가 정지될 예정이라고 했다.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부회장은 “금융 시장 환경이 바뀌면서 국내뿐만 아니라 글로벌 투자 시장 전반이 위축돼 자금 조달에 어려운 벤처들이 늘었다”며 “그 영향으로 기업 가치가 하향 조정되면서 지분 매입과 인수합병(M&A)을 통한 최대 주주 변경도 잇따라 발생했다”고 말했다.

헬스케어 산업이 제도적 생태계를 완성하지 않은 문제도 기업이 흔들리는 이유로 지목된다. 기술 특례 제도를 통해 혁신 기술을 인정받은 기업들이 기술을 개발해 성과를 내야 한다. 하지만 제도는 단기적 성과를 요구한다. 이승규 부회장은 “기술 특례 기업은 현 제도상 5년 이내 재무 성과를 내야 한다”며 “이로 인해 돈을 벌 수 있는 별도의 기술과 사업을 찾아야 하는 것은 아이러니”라고 말했다. 산업적 특수성을 반영한 제도 개선과 지원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이 부회장은 “제약·바이오, 의료기기, 디지털 헬스케어 업종은 산업 특성상 신생 기업들이 첨단 과학 기술을 성숙시켜 시장에 안착하기까지 많은 시간과 자본이 필요한데, 시장에서 모두 해결하는 데 분명 한계가 있다”며 “정부의 벤처 투자 지원 펀드 조성 같은 제도적 뒷받침도 산업의 발전을 위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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