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는 성호르몬, 유전자 등 생리학적 차이 있어
질환의 원인과 진행 달라 진단·치료도 달라져야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라는 책 제목처럼 남성과 여성은 꽤 다르다. 염색체와 성호르몬, 생식기관이 다른 모양이고 생리학적 특성도 다르다. 이 때문에 같은 질환이라도 남녀에 따라 원인이나 진행 양상, 치료 방법이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학계는 오랫동안 남녀의 차이를 고려하지 않았다. 특히 신약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임상시험을 할 때 참가자는 주로 남성이었다. 여성의 몸에서 약이 얼마나 효과가 있고 어떤 부작용이 일어나는지 연구가 잘 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어떤 약물은 여성에게 치명적인 부작용을 일으키기도 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수면제인 졸피뎀이다. 졸피뎀을 복용하고 일으킨 교통사고가 여성에게서 더 많이 일어났다. 졸피뎀이 체내에 머무르는 시간이 남성보다 여성에서 더 길기 때문으로 나중에 밝혀졌다. 반대로 여성질환으로만 생각돼 임상시험에서 남성을 고려하지 않아 남성이 피해를 보는 경우도 있다. 유방암과 골다공증의 경우다.
지난 8일 경기도 성남시 분당서울대병원에서 만난 김나영 분당서울대병원 성차의학연구소장(소화기내과 교수)은 “남녀에 따라 질환이 다르게 발생하므로 이를 고려한 기초연구, 임상연구가 반드시 필요하다”며 “이러한 ‘성차의학’은 정밀의학, 맞춤치료에 반드시 필요한 기본요소”라고 말했다. 다음은 김나영 교수와의 일문일답.
–성차의학이란 어떤 학문인가.
“쉽게 말해 남녀 차이를 의학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이다. 1990년대 이전까지 의학은 주로 남성 중심이었다. 질환을 진단하고 분석하고, 치료하는 일이 남성편향적이었다. 이후 그 사실을 자각하면서 여성의 건강에도 주목했다. 초기에는 산부인과학처럼 여성 생식기관이나 내분비에 주로 관심을 기울였다. 최근에는 당뇨병이나 심혈관 질환도 남녀 차이가 있음이 알려졌다. 2000년대 들어 생물학적인 성(sex)과 사회문화적인 성, 젠더(gender)도 질환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성차의학이라는 학문이 탄생하게 됐다. 즉, 성차의학은 남녀 한쪽으로만 치우치는 편향성을 지양하는 의학 연구를 진행함으로써 남녀 모두의 건강에 도움이 되게 하는 학문이다.”
–의학연구에서 성별 구분이 왜 필요한가.
“여성과 남성의 차이가 질병 발생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각 질환 증상 표현이나 치료 반응이 다른 경우가 많다. 이는 성염색체와 성호르몬, 유전적인 성향, 그리고 사회문화적 환경이 각 질환 발생에 큰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각 질환을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남녀 차이에 관심을 갖고 체계적으로 연구해야 한다.”
–질환 원인이나 증상이 남녀 따라 다른 예는.
“가장 대표적인 것이 협심증, 심근경색 같은 심장질환이다. 남녀 간 증상 차이가 가장 크다. 흔히 심장질환이 발생하면 ‘가슴이 찢어지는 듯이 아프다’고 생각하는 데 이것은 남성의 경우다. 여성은 이보다는 약하게 통증이 온다. 그 이유는 남성은 혈전이 관상동맥에 쌓여 있다가 떨어져 나가면서 극심한 흉통을 일으키는 반면, 여성은 흠집이 살짝 나는 식으로 조용히 진행되기 때문이다.
암도 남녀에 따라 차이가 크다. 소화기암은 남성이 여성보다 많다. 위암·대장암·간암·췌장암 등이 2배나 더 많다. 여성이 남성에 비해 소화기암에 덜 걸리는 이유는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의 수용체가 암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는 덕분이다. 이 때문에 대장암 검사를 대개 50~75세까지 하라고 권고하는데, 여성은 5년 뒤인 80세까지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폐경 후 에스트로겐이 줄면서 대장암이 발생할 위험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신경정신과 질환도 성차가 있다. 남아가 여아보다 뇌성마비는 3배, 자폐 스펙트럼 장애(자폐증)는 4배나 더 많다. 예를 들어 자폐증은 엄마가 임신 중 감염됐을 때 태반을 통해 영향을 받아 발생할 수 있음이 최근 밝혀졌다. 임신부가 세균이나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도록 더욱 조심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자폐증 자체도 남아에게 증상이 뚜렷해서 여아보다 더 일찍 진단을 할 수 있다.”
–성별 차이를 고려하지 않아 문제가 된 적이 있나.
“미국 회계감사원이 1997~2001년 사이 극심한 부작용 때문에 시장에서 퇴출한 의약품 10종을 조사했다. 그랬더니 이 중 8개가 남성보다 여성에게 더 위험한 것으로 밝혀졌다. 예를 들어 기능성 소화불량에 쓰는 약인 시사프라이드는 소화도 잘 되고 메스꺼움도 없애는 효과가 우수했다. 그런데 여성에게서 더 자주 부정맥, 심장마비 같은 치명적인 부작용이 일어났다. 향후 그 원인이 드러났다. 심장이 피를 내뿜어 다시 돌아오기까지 시간이 남성보다 여성에서 좀 더 길어 무리가 갔기 때문이었다.
불면증 치료제인 졸피뎀도 여성에게 더 치명적인 부작용이 일어났다. 미국에서 여성 운전자들이 졸피뎀 복용 후 교통사고를 일으키는 일이 다수 일어났다. 조사 결과 성별에 따라 졸피뎀을 흡수하는 비율과 시간이 다르기 때문인 것으로 드러났다. 졸피뎀은 지방에 잘 흡수된다. 이 때문에 상대적으로 체내 지방이 많은 여성의 몸에 오랫동안 남아 부작용을 일으켰던 것이다. 결국 FDA는 졸피뎀을 첫 복용할 때 여성은 남성의 절반만 하도록 권고했다.”
–성차의학은 여성에게 불리한 연구를 찾는 학문인가.
“꼭 그렇지 않다. 유방암이나 골다공증처럼 여성질환으로 생각돼 남성에게서 연구가 잘 되지 않았던 질환들도 있다. 학계는 남성 유방암이 전체 유방암의 약 0.5% 정도일 것으로 보고 있다. 남성 유방암은 에스트로겐 수용체와 관련된 것이 99%로 여성(83%)보다 더 많다. 남성호르몬인 안드로겐 수용체가 관련된 경우도 97%로 여성(61%)보다 높다. 즉, 호르몬 수용체와 관련이 깊다. 반면 여성 유방암은 HER2라는 유전자와 관련이 상대적으로 많다. 남성 유방암 환자는 여성 환자에 비해 생존 기간이 2년 짧다. 남성 유방암이 상대적으로 늦게 진단된다는 점이 큰 영향을 미친다.
골다공증도 이와 비슷하다. 남성 골다공증은 생각보다 흔한데, 발견이 늦어 골절이 된 후에야 진단하는 경우가 많다. 국민건강영양조사에 따르면 한국 70대 이상 남성의 18%가 골다공증이지만 실제로 치료를 받는 사람은 이 중 16.2%에 불과하다. 여성은 폐경 후 골다공증이 많이 발생하지만, 남성은 노화나 호르몬 변화가 아닌 다른 이유로 골다공증이 발생한다. 주로 생활 습관이나 영양 상태, 질환, 약물과 관련이 있다.
–사회문화적인 남녀 차이도 차이도 질환에 영향을 주나.
“성별에 따라 의료기관 이용률이 다르다는 점이 질환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데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여성들은 담석이 생기면 복통을 참지 못해 곧바로 병원을 방문한다. 즉시 수술을 받을 수 있다. 반면 남성은 복통이 있어도 무시하고 참는 사람이 상당히 많다. 이 때문에 담낭 결석이 일으키는 담낭염, 급성췌장염, 담관염 같은 합병증이 생긴 뒤에야 병원을 찾는다. 그래서 남성은 담석 관련 질환으로 수술 받는 연령도 상대적으로 높고 동반질환도 많은 편이다. 환자들은 물론, 의료진도 이러한 남녀 차이를 알면 병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국내 성차의학 연구는 어느 정도 수준인가.
“이미 서양은 1980년대부터 성차의학 연구를 시작했다. 성차의학에 특히 관심이 높은 곳은 미국과 캐나다, 독일·스웨덴 등 유럽이다. 각각 성차의학연구소들이 있어 활발히 연구 활동을 하고 있다. 예를 들어 미국에는 스탠퍼드대에 여성건강·성차의학 센터(WHSDM), 메이요클리닉에 여성건강연구센터가 있다. 여성의 건강과 함께 성별에 따른 질병 차이를 이해하는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한국은 2012년에 심장학회가 여성심장연구회를 만들면서 성차의학을 시작했다. 2016년부터는 여성과총 젠더혁신센터 중심으로 스탠퍼드대와 성차의학 연구를 협업했다. 나는 대장암의 성 차이를 연구하는 한국연구재단 과제를 진행하면서 본격적으로 성차의학 연구를 시작했다. 2021년 ‘소화기질환에서의 성차의학’이라는 책을 냈고, 이듬해에는 스프링거 출판사를 통해 영문으로 냈다. 지난해 3월 분당서울대병원에 국내 최초로 성차의학연구소가 생겼다. 이제 본격적인 성차의학 연구를 할 수 있게 된 셈이다.”
–성차의학연구소는 현재 어떤 연구를 하고 있나.
“우리 연구소에는 각 분야 기초·임상 연구자 38명이 있다. 최근 우리 연구팀은 성차, 연령 같은 요인과 장내세균총의 변화, 그리고 대장암 발생 간 상관관계에 주목해 실제 환자 데이터를 바탕으로 이를 분석하고 있다. 대장암 환자는 대개 남성이 여성보다 2배쯤 많다. 2021~2022년 분당서울대병원에서 대장암 진단을 받은 환자들의 대변 데이터를 분석했다. 그 결과 대장암을 앓는 55세 이상 남성은 유해균이 많은 것으로 확인됐다. 54세 이하 남성이나 여성은 오히려 유익균이 더 많았다. 즉 장내세균이 대장암을 일으키는 데 일조를 한다는 얘기다. 이외에도 여성은 미만형 위암에, 남성은 장형 위암에 잘 걸리는 이유를 알아내기 위해 쥐와 세포주, 조직을 활용해 연구하고 있다. 에스트로겐과 연관이 있다고 보고 그 호르몬 수용체 분포가 건강한 사람과 위암환자 간에 어떻게 다른지 관찰하고 있다.”
–앞으로 어떻게 연구를 더 이어나갈 생각인가.
“아직도 논문을 보면 상당수 연구가 성별 차이를 고려하지 않고 분석됐다. 성차의학을 널리 알리고 또한 관련 연구를 진행해 남녀 모두 환자를 치료하는 데 도움을 주고 싶다. 앞으로 개인맞춤형 정밀의학이 대세다. 그런데 정밀의학을 하려면 성별과 연령이 기본 요인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밀의학을 실현하기 위해서라도 성차의학 연구를 활발히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