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 빼는 약, 낙타 항체로 뱀독 치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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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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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40만명 생명 구할 수 있어

독사에게 물리면 맹독이 즉시 세포·조직을 파괴하기 시작한다. 최근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혈액응고제 '헤파리노이드'와, 낙타과 동물에게 있는 항체로 뱀독을 해독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영국런던자연사박물관, 캘럼 메어(Callum Mair)


독사에게 물리면 맹독이 즉시 세포·조직을 파괴하기 시작한다. 최근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혈액응고제인 헤파린과, 낙타과 동물에 있는 항체로 뱀독을 해독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잇따라 나왔다. 상용화되면 저개발 국가에서 수십만명의 생명을 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혈액 응고 방지제로 뱀독 붙잡아

호주 시드니대 연구진은 헤파리노이드가 뱀독에 들러붙어 세포 손상을 막는 효과가 있음을 세포·동물 실험으로 알아냈다고 17일(현지 시각) 밝혔다. 연구 결과는 이날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 중개의학’에 실렸다.

헤파린 같은 헤파리노이드는 간과 폐에 있는 다당류 분자다. 혈류를 타고 다니면서 피를 묽게 만들어 멍이나 혈전 같은 비정상적인 혈액 응고를 없앤다.

기존 뱀독 해독제는 매우 비싸지만 효과가 떨어진다. 독을 즉시 분해하지 못해 결국 세포와 조직이 망가진다. 수분~수시간이 지나면 뱀에게 물린 부위를 절단해야 하거나 장애가 생길 수 있고, 심각하면 사망에 이른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뱀에 물려 전 세계}에서 매년 약 8만 1410~13만 7880명이 사망하고, 그보다 3배에 이르는 사람들이 절단과 영구 장애 피해를 입는다. 대부분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와 남아시아, 동남아시아 등 빈곤한 농촌지역에서 발생한다.

게다가 뱀독은 수십 가지 성분이 든 혼합물이기 때문에 어떻게 세포와 조직을 손상시키는지 지금껏 정확히 알지 못했다. 연구진은 붉은침뱉는코브라(Naja pallida)와 검은목침뱉는코브라(Naja nigricollis)의 독이 어떻게 세포와 조직을 손상시키는지 연구했다. 이 코브라는 침을 뱉듯 독을 뿜어 물리지 않아도 근처에 있으면 치명적인 피해를 입는다.

연구진은 크리스퍼(CRISPR) 유전자 가위로 독의 영향을 분석했다.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는 DNA에서 특정 유전자를 잘라내는 효소 복합체이다. 이를 이용해 유전자를 하나씩 없애고 어떤 특징이 사라지는지 보고 해당 유전자의 기능을 알아낼 수 있다.

쥐 실험 결과 ‘헤파란황산염(heparan sulfate)’이라는 단백질을 만드는 유전자를 제거하면 뱀독을 주입하더라도 세포가 손상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헤파란황산염은 세포 표면에 있는 당분자다. 연구진은 독이 세포 표면에 있는 헤파란황산염과 결합하면서 세포를 파괴한다고 설명했다.

연구진은 인간 세포에 헤파리노이드를 처리한 후 뱀독을 뿌리는 실험을 진행했다. 그러자 뱀독이 헤파란황산염 대신 약물에 달라붙어 세포가 손상되는 일을 방지했다. 또한 독을 주입한 쥐에게 몇분 후 헤파리노이드를 투여하자 독에 손상된 상처의 크기가 줄어들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가 승인한 헤파리노이드 약물 중 가장 효과적인 것은 ‘틴자파린’이었다. 이 약물은 뱀독에 손상된 상처를 94%까지 줄였다.

블레어 페리(Blair Perry) 미국 산타크루즈 캘리포니아대 박사후 연구원은 18일 사이언스지에 “이번 연구는 크리스퍼 녹아웃 기술로 뱀독을 억제할 수 있는 화합물을 찾았다”며 “이번 연구 결과는 세포, 쥐 실험 결과이지만 인체에서도 비슷한 작용을 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시린 아마디(Shirin Ahmadi) 덴마크 공대 열대약리학연구실 박사후 연구원은 “현대 의학은 대부분 고소득 국가가 직면한 건강 문제에만 초점을 맞춘다”며 “이번 연구 결과는 특히 저소득 국가에서 수많은 생명을 앗아가는 열대성 질병인 뱀 교상(물린 상처)을 치료할 방법을 찾았다”고 밝혔다.

헤파리노이드가 항독제처럼 뱀독 피해를 완전히 막지는 못한다. 다만 연구진은 뱀에 물렸을 때 근처 약국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멍 빼는 약물로 병원에 가기까지 몇 시간 동안 조직 손상 없이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안데스 산맥에 사는 낙타과 동물인 라마는 사람 항체의 4분의 1 크기인 나노항체를 만든다. 과학자들은 이를 이용해 코로나 바이러스 침입을 차단하고 뱀독을 중화하는 연구를 하고 있다./영 옥스퍼드대

낙타과 동물의 항체로 뱀독 중화

덴마크 공대와 멕시코 국립자치대 공동 연구진은 지난 5월 독사인 산호뱀(Micrurus fulvius와 Micrurus diastema)의 독을 분해하는 나노항체(nanobody)를 개발했다고 밝혔다.

나노항체는 알파카나 라마 같은 낙타과(科) 동물의 항체로, 기존 항체보다 10분의 1 크기로 작아 이런 이름이 붙었다. 크기가 작아 기존 항체가 놓칠 수 있는 항원까지 공격할 수 있다. 코로나 항체 치료제로도 개발됐다.

항독제는 말을 이용해 만들었다. 뱀독을 말에 접종하면 그에 대항하는 항체가 생긴다. 이 항체를 추출해 뱀독에 대한 항독제를 만들었다. 하지만 이 말 항체는 뱀독을 효과적으로 중화하지만 인간에게 부작용을 일으킨다.

연구진은 항체의 양을 줄이면 부작용도 줄어든다고 보고 나노항체에 주목했다. 뱀독을 저농도에서 고농도까지 알파카와 라마에게 16주간 접종하고 나중에 나노바디를 채취했다. 쥐 실험 결과, 나노바디는 산호뱀 독소에 효과적으로 결합해 중화시켰다.

연구진은 나노항체가 뱀 교상을 넘어 감염성질환이나 자가면역질환, 암 치료제로도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 5월 21일자에 실렸다.

참고 자료

Science Translational Medicine(2024), DOI: https://doi.org/10.1126/scitranslmed.adk4802

Nature Communications(2024), DOI: https://doi.org/10.1038/s41467-024-48539-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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