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 후 뇌출혈로 사망…法 “수술 동의서로 환자 설명 의무 갈음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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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4.07.08. 오후 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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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인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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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측, 뇌출혈 등 부작용 설명 보호자에게 설명
대법 “환자 판단능력 있다면 본인에게 설명 전달돼야”
재판부, 대법 판례 근거로 “위자료 지급 의무 인정”

서울중앙지방법원./뉴스1

수술 과정에서 병원이 환자 가족에게 받는 ‘수술 동의서’만으로 환자에 대한 설명 의무가 면제되는 것이 아니라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가족 등 대리인 승낙을 환자의 승낙으로 갈음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례를 재차 확인한 판결이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5부(부장판사 최규연)는 지난달 19일 A씨 등 유족 3명이 학교법인 가톨릭학원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하고 약 4억50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시한 것으로 8일 전해졌다.

A씨의 남편인 B씨는 2020년 한 신경과 의원에서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눈이 감기는 등 ‘눈꺼풀 연축, 상세불명의 근육 긴장 이상’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일상 생활에 불편함을 느껴 눈 깜빡임 반사, 근전도 검사 등을 진행한 병원은 B씨에게 뇌 안의 특정한 구조물에 전기 신호를 흘려주는 치료 방법인 ‘뇌심부 자극술’을 권유했다. B씨는 이듬해 3월 이 수술을 진행하기 위해 가톨릭학원이 운영하는 병원에 입원했다.

병원 측은 보호자 A씨에게 ‘수술에 대한 설명 및 동의서’에 서명을 받았다. 이 동의서에는 ‘설명하는 것이 환자의 심신에 중대한 나쁜 영향을 미칠 것이 명백함’이라는 내용이 있었고 A씨가 이를 확인했다는 흔적을 남겼다. 수술 과정에서 출혈량도 없었고 급성 합병증이 발생하지 않는 등 B씨는 의식이 명료하고 안정적인 상태로 일반병실로 입원했으나 이후 급성 뇌출혈로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뇌출혈 수술을 진행한 뒤 수혈이 필요했지만 보호자 측은 종교적 이유로 거부했고, 수혈 없이 저체온 치료를 지속하던 중 B씨가 사망했다.

A씨와 그의 자녀들은 가톨릭학원에 대해 ▲치료 방법 선택에서의 과실 ▲경과 관찰에서의 과실 ▲뇌출혈 지혈조치 소홀 ▲수술 과실에 따른 뇌출혈 발생 등을 이유로 같은 해 10월 약 25억원 규모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다른 청구는 모두 기각했으나 수술 과실에 따른 뇌출혈 발생을 인정하고 손해배상 책임이 발생한다고 봤다. 뇌심부 자극술 수술 중 주의 소홀로 혈관을 손상시키는 등 과실이 있었다는 것이다.

특히 병원 측이 환자에게 수술에 따른 위험에 대한 설명 의무를 위반했다고 봤다. 재판부는 “수술에 이르기까지 치료를 받으면서 의료진과 상담했다는 사정만으로 망인이 수술 필요성이나 위험성을 충분히 비교하고 수술을 받은 것인가 여부를 선택할 수 있도록 뇌출혈 등 부작용의 위험이 구체적으로 설명됐다고 보기 어렵다”며 위자료 지급 의무를 인정했다.

당시 수술 동의서에는 수술 합병증으로 뇌출혈이 발생은 물론 이로 인한 사망할 수 있다는 취지의 수기 기재가 있으나 망인의 서명이 아닌 배우자 서명만 있었다. 재판부는 ‘환자가 성인으로서 판단 능력이 있는 이상 친족의 승낙으로 환자의 승낙에 갈음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고 친족에게 설명했다면 친족을 통해 환자 본인에게 설명이 전달돼 사실이 인정돼야 한다’는 대법원 판례를 근거로 설명 의무 위반이 있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B씨가 수술 전 판단 능력에 문제가 없었으며 A씨가 망인에게 본인이 설명들은 뇌출혈 등 부작용을 망인에게 전달했다고 볼 자료가 없다”며 “오히려 의료진이 수술 전 여러 차례 면담 과정에서 망인에게 ‘이 사건 수술이 아주 간단하고 절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면서 망인을 설득했다는 점 등을 종합하면 수술 동의서를 근거로 의료진이 망인에게 수술로 인한 뇌출혈 등 부작용을 설명했다고 볼 수 없다”고 했다.

다만 B씨가 뇌출혈 등 부작용을 들었더라도 수술받지 않았을 것이라고 증명되지 않았다며 재산상 손해배상은 기각하고 위자료만 인정했다.

가톨릭학원 측은 1심 판단에 불복해 지난 3일 항소장을 제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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