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수의 인터스텔라] 우연한 성차별주의자? 남자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입력
수정2023.11.25. 오전 9:09
기사원문
김지수 기자
본문 요약봇
성별
말하기 속도

이동 통신망을 이용하여 음성을 재생하면 별도의 데이터 통화료가 부과될 수 있습니다.

전 JP모건 기술 디렉터가 ‘남성 연대’ 만든 이유
남녀 누구나 ‘우연한 성차별주의자’ 될 수 있다
남성은 잠재력으로, 여성은 과거의 성취로 승진
성평등? 윤리 보다 유리한 것, 승패의 키는 리더
탐욕적인 일자리? 개인 아닌 팀 별로 보상해야
성균형은 남녀 모두를 위한 길, 대화로 풀어야
포용성 캠페인에 ‘여성’ 단어 안 넣는게 좋아

▲ ‘포용성을 위한 남성 연대(Men for inclusion)’의 공동 창립자 개리 포드(Gary Ford) 전 JP모건체이스 글로벌 디렉터. 유엔여성기구 성평등센터에서 개최한 제1회 서울 성평등 담화에 참가하기 위해 방한했다./사진=채승우

미팅에서 발언권을 빼앗길 때, 상사나 동료에게 부적절한 언행을 당할 때, 커리어 확장의 기회를 박탈당했을 때, 당신 편을 들어준 직장 동료를 둔 적이 있는가?

여기, 그런 사람이 있다. 대표적인 남성 표준 직장인 금융 기술기업에서 일하다, 어느 날 “왜 내 주위에 나만 남자지?”라는 의문을 품고, 직장 내 성평등을 위해 뛰어든 사람. 현재 아마존에서 날개 돋친 듯 팔리는 직장 내 포용성을 위한 핸드북 ‘우연한 성차별주의자(The Accidental Sexist)’의 공동 저자이자 ‘포용성을 위한 남성 연대(Men for inclusion)’의 창립자인 개리 포드다.

개리 포드는 JP모건체이스의 글로벌 기술 디렉터로 일하던 어느 날, 주변 50명의 직원 중 ‘나홀로 백인 남성’인 걸 자각한 후 기술업계의 ‘성비 불균형’을 파헤쳤다. 나름 공감 능력이 풍부하다고 자부했으나, 막상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경청해 보니 여성의 커리어에 ‘보이지 않는 장벽’이 많았다고.

중요한 건 성차별이 악의적이거나 고의적이 아니었다는 것. 우리가 처음부터 인간의 표준을 남성으로 정했기 때문에 발생한 문제일 뿐이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상황을 기준으로 현실을 받아들인다. 그리하여 남자들은 여자의 현실을, 여자들은 남자의 현실을 잘 모른다.

이후, 그는 여성의 커리어를 돕고 남성의 대화 참여를 주도하는 ‘남성 연대’ 활동을 시작했고, 영국, 미국 아시아 전역의 기술 생태계에 이 선한 불씨는 들불처럼 번져갔다. 포용성이 높은 조직일수록 이직률이 낮으며, 병가를 적게 내고 지속가능한 높은 성과를 냈다.

11월의 포근한 어느 날, 유엔여성기구 성평등센터에서 개최한 제1회 서울 성평등 담화에 참가하기 위해 장녀 이사벨라와 함께 내한한 개리 포드를 만났다.

“지금 비즈니스 업계에서 성평등은 매우 중요한 이슈입니다. 직장에서 약점을 털어놓아도 안전하다는 것, 과하게 터프 가이인 척할 필요가 없다는 것, 이 모든 과정의 핵심에 ‘포용적인 리더’가 있습니다”라고 그는 ‘리더의 역할’을 강조했다.

▲그는 금융, 에너지, 교육, 건설 및 정부 기관 등의 여러 다양성 워크숍을 주도하고 있다./사진=채승우

-최근 여성 경제학자 클라우디아 골딘이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했다. 골딘 교수는 120년간의 데이터를 분석해서 성별 소득격차의 주요 원인을 ‘탐욕적인 일자리’로 지목했다. 기업이 그동안 ‘시간을 올인하는 자리’에 막대한 급여를 지급하는 보상 체계를 유지해 왔기에, 가계 구조상 여성은 육아와 돌봄을 남성은 탐욕적인 일자리를 담당하게 됐다는 거다. 성별 소득 격차와 가정 내 불평등의 범인으로 ‘탐욕적인 일자리’가 지목된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일하는 문화가 점차 바뀔 거다. 데이터를 보면 다행히 한발씩 전진하고 있다. 앞으로 금융 분야의 ‘탐욕스러운 일자리’에 큰 변화가 있을 거로 보인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는 ‘유연한 일자리’와 남성들의 적극적인 동참을 해법으로 내놨다. 남녀 모두 탐욕스러운 일자리의 희생양으로 보고, ‘서로를 대체할 수 있는 유연한 팀’으로 일하라는 거다. 전문성 있는 일조차 대체가능한 파트너 구조로 만들면 서로의 비움을 채울 수 있다는 얘긴데, 그동안 ‘대체 불가능한 인력’을 최고의 성취로 인정했던 상식이 바뀔 수 있을까?

“일자리 문화는 기업 혼자서는 안된다. 인사 시스템, 정부의 보조, 지역 사회가 함께 논의 해야 한다. 삶에서 중요한 게 뭔지, 개인들은 무엇을 추구하는지… 보상과 급여 체계에 그 변화를 반영해야 한다.”

-현장에서 그 변화의 조짐을 보았나?

“일단 보상 체계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단순히 수치적 목표 달성만 측정하지 않고 다양성과 포용성 지표를 성과 체계 안에 넣는 식이다. 앞선 기업들은 역차별 문제를 고려해서 다양성보다 일단 포용성 부문에서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동료, 상사, 후배 등이 서로 포용성 리스트에 따라 점수를 매기도록 360도로 평가해서 그 점수를 공개한다든가. ‘무엇을 달성했나’보다 ‘어떻게 달성했나’를 세밀하게 평가하는 거다.”

-추측건대 당신도 현업에서는 장시간 근무해서 고위직에 오르지 않았을까?

“맞다. 그래서 나는 썩 좋은 롤모델은 아니다(웃음). 금융 분야뿐 아니라 학계, 법조계, 언론계도 다 마찬가지 아닌가? 경쟁이 치열하고 더 일할수록 계약도 따고 특종도 하고, 그걸 영광의 상징처럼 여기니 당장 바꾸자고 하면 저항도 있을 거다.

그런 구조는 여성이 대표성이 낮은 것과 상관관계가 있다. 탐욕적인 일자리가 유지되기 위해 여성이 돌봄을 담당하고, 가사와 육아 노동은 무급으로 처리돼 왔으니까. 그래서 실험이 필요하다. 남녀가 돌봄 노동을 50대50으로 했을 때, 장시간 노동에 대한 입장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내가 일한 기술 분야는 8시간 이상 일하면 퀄리티가 떨어진다. 그걸 알고도 여전히 오랜 시간 일하는 걸 당연하게 여기는 문화가 바뀌지 않았다는 게 신기하다. 최근 영국의 한 기업에서 실험을 해보니 주 4일 근무와 5일 근무의 효율이 같았다는 뉴스도 있다.

지금 주목하는 변화는 금융계와 학계가 점점 더 개인보다 팀에게 보상하는 것으로 바뀌고 있다는 거다.”

▲남성들이 압박감을 느끼지 않도록 세심한 워딩을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팀으로 보상하는 것이 ‘탐욕적인 일자리’ 개선에 효과가 있나?

“물론! 포용성이 뛰어난 팀은 내가 옆 사람보다 더 잘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포용적인 리더 아래 서로 격려하고 돕는 문화가 발생한다. 하지만 여러 장벽이 있다. ‘일이 취미일 정도로 좋다’고 하는 사람에게 일하는 시간을 줄이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은행권은 2009년 이후로 수익이 떨어진 적이 없어서, 기존의 성공을 지탱했다고 믿은 장시간 노동 신념을 리더들이 바꿀 수 있을지도 관건이다.”

-리더가 중요한가?

“중요하다. 좋은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모델이다. 가령 나도 6시가 넘으면 이메일을 보내지 않는다. 모아놓았다가 다음 날 아침 근무 시간이 되면 한꺼번에 보낸다. 직원들이 근무 시간 외에 답할 의무가 없으니까.

휴가 갈 때도 “2주 동안 이메일에 답하지 않겠다”고 미리 말한다. 휴가 기간에 계속 확인하는 것 자체가 직원들을 못 믿는다는 시그널이잖나.”

-여성 리더들은 어떤가?

“JP 모건에 있을 때 유능한 CFO였던 메리안은 출산 후 일주일에 3~4번 아이를 보러 오후 4시쯤 일찍 퇴근했다. 처음엔 몰래 나가더라. 그런데 ‘그런 모습은 공개적으로 보여주는 게 좋다’는 조언을 들은 후엔 일부러 모두가 보도록 “육아 하러 일찍 갑니다!” 큰 소리로 인사하고 나갔다. 그런 모습이 불씨가 돼서 문화를 바꾼다. 엘리트들이 더 나서서 육아 휴직을 쓰고 유연 근무를 하면, 그 모습이 더 쿨하게 느껴지는 법이다.”

-당신은 JP모건에서 금융 기술 서비스 분야의 고위 관리자로 일하면서 여성의 숫자가 현저하게 적은 것에 문제의식을 느꼈다고 했다. 그 고민을 CEO인 JP모건과 함께 공유하며 왜 여성들이 기술 분야의 커리어를 이어갈 수 없는지 탐구했고, 현장의 여성들과 깊은 대화를 나누며 ‘우연한 성차별’을 알아차렸고, ‘포용성을 위한 남성 연대’ 링크드인 회사까지 설립했다. 나는 글로벌 대기업 임원인 백인 남성이 이런 식으로 커리어를 전환했다는 게 놀랍다. 편견 없는 가정에서 성장했나?

“좋은 질문이다. 나는 워킹맘 가정에서 성장했다. 부모님이 내가 9살에 이혼하셨기 때문에 한 자녀 가정의 외동으로 성장하면서, 어머니는 나의 롤모델이었다. 어머니는 성실하게 성공하셨고, 내게 좋은 영향을 미치셨다.

▲개리는 영국 런던에서 부인 줄리(Julie)와 함께 살고 있으며, 두 명의 자녀 이자벨라(Isabella)와 릴리(Lily)가 있다./사진=채승우

내가 속한 집안도 동네도 부유하지 않아서, 나는 가족 구성원 중 최초로 대학 교육을 받은 사람이었다. 고등학교 졸업자 중 최초의 대학 입학생 3명 중 한 명이기도 했고. 공정한 경쟁, 공정한 기회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이런 배경 덕이다.

돌아보면 나는 운 좋게 기술 분야에 발을 디뎠다. 기술은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고 논리와 숫자를 기반으로 해서 좋았다. 그 뒤 JP모건에서 경영진으로 수백 명의 구성원을 이끌게 되면서 사람에게 관심을 갖게 됐다. 특히 개인보다 팀이 좋은 성과를 내는 걸 돕는 걸 좋아했다. 포용성은 팀이 좋은 성과를 내는 데 매우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관찰해보니 여성의 난관 중 어떤 점이 특히 눈에 들어오던가?

“여자들은 충분히 잘하고 있어도 ‘내가 자격이 있나?’를 의심한다. 가면증후군이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공정 본능’이 자극됐다.”

▲아마존 베스트셀러인 포용성 핸드북 ‘우연한 성차별주의자’.

-당신이 공저자로 참여한 핸드북 ‘우연한 성차별주의자(The Accidental Sexist)’는 아마존 베스트셀러가 됐더라. 우리가 모르는 대표적인 우연한 성차별엔 어떤 것이 있나?

“가령 우리는 여성이 성실하고 세부적인 관리에 강점이 있다고 보고 행정 업무 등 다소 덜 중요한 것을 맡긴다. 이에 비해 남성은 리더십과 성공 야망을 높이 평가받는다. 남성은 잠재력에 따라 승진할 가능성이 높지만, 여성은 과거의 성공에 따라 더 높은 기준을 채워야만 승진하게 된다.

JP 모건에서도 여성 엔지니어가 핵심 개발에서 벗어나 관리를 요청받는 것을 종종 보곤 했다. 이런 걸 안다면 리더가 행정 업무의 경우 순차적으로 배분한다든가 해결책을 논의할 수 있다.”

-역차별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나?

“연구에 따르면 긍정적인 차별에 둘러싸여 있다고 믿는 남성, 자신이 가장 피해를 보는 집단이라고 믿는 남성이 20%가량 된다. 직장 내 현실 데이터(성별 임금 격차 등)를 보면 사실이 아니다. 여러 번 말하지만 평등이 한쪽 성이 아니라 남녀 모두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된다는 걸 알리는 게 우선이다.”

-주변 남성들이 당신을 고깝게 보지는 않는가?

“성평등, 포용성이 팀의 성과에 더 도움이 된다는 증거가 차고 넘치는데, 남들이 뭐라든 내가 신경 쓸 필요가 있을까?(웃음) 이 일의 출발은 이타주의가 아니라 이기주의다. 우리 모두 더 나은 환경에서 일하길 원하지 않나? 나는 순전히 나를 위해 이 일을 한다.”

▲포용성은 팀의 실적을 높이는 주요 변수로 작용한다.

-’극한 배려 사회’가 도래했고, 앞으로는 배려를 선점하는 게 경영에 ‘유리하다’는 걸 기업들은 이미 다 알고 있는 것 같더라.

“맞다. 어떻게든 변화를 촉발하고 싶다. 여성들은 동성끼리는 힘든 점을 나누지만, 남성들과는 잘 공유하지 않는다. 그래서 공개적으로 워크숍이 중요하다. 동료들과 이 문제를 꺼내 터놓고 이야기해야 한다.”

-혹시 ‘너는 누구 편이냐?’는 질문을 받은 적 있나?

“종종 받는다. “남성들이 더 손해”라고 화내는 분들도 있다. 그럴 땐 먼저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 묻고 최대한 이야기를 귀담아듣는다.

현장의 얘기를 들어보면 교육 분야라든가 몇몇 부분은 실제로 남자들이 뒤처져 있기도 하다. 계속 남자들의 목소리를 듣고 취합해서 누구도 소외되지 않도록 하고 싶다. 이 일은 하나의 성을 위한 게 아니라 모두를 위한 거니까.”

성평등을 옳고 그름으로 갈라치기 하지 않고, ‘경청’과 ‘경쟁력’으로 접근하니 희망이 보였다.

-사실 한국의 MZ세대와 알파 세대 등 청년 세대는 차별받지 않고 동등하게 교육받은 연령층임에도 불구하고 능력주의와 경쟁 스트레스, 그리고 정치인들의 보수적 프레임에 갇혀 제로섬 게임의 남녀 대결 구도가 형성되어 있다. 포용성을 위한 남성 연대 활동을 해본 결과 특별히 더 적대적이거나 우호적인 연령층이 있었나?

“막 사회에 진출한 청년들은 그래도 성차별 관행이 많이 개선된 환경에서 자랐다. 여성 롤모델들도 많아졌고. 그래도 일부 분야는 여전히 미흡하다. 컴퓨터 공학은 전체의 20%만 여성이다. 그런 환경에서 몇 년간 생활하면 남녀 모두 가치가 편향될 수 있다. 학교에서 더 많은 교육 프로그램이 제공되어야 한다.

사회에 막 진출한 MZ세대는 자기 커리어 쌓기에 바빠서, 남을 도울 여유가 없다. 오히려 35~50세쯤의 남자들에게 “어린 자녀가 있으니, 지금보다 나은 환경을 물려줘야 하지 않겠냐”고 다가가면 마음이 열린다. 시니어 리더들도 “성공했으니 돌려줘야 하지 않겠나”라는 말에 설득이 된다.

가장 어려운 나이대는 중간급 매니저다. 이분들은 커리어가 멈췄다는 피해의식과 저항감이 있다. 브렉시트와 트럼프 지지를 했던 분들과 묘하게 겹친다. 중간급 매니저들을 어떻게 안고 가야 할지 계속 고민 중이다.”

▲'멘 포어 인클루전' 한국 프랜차이즈를 맡아줄 분이 있다면 연락달라고 요청하는 개리 포드./사진=채승우

-딸들이 조언을 해주나?

“두 딸의 멘토링 덕에 더 솔직해지고 계속 균형을 잡아가고 있다. 아내와 딸은 내가 세계 최대의 파생상품 플랫폼을 안정화하며 잘 나갈 때보다, 지금의 나를 훨씬 더 자랑스러워한다. 그게 큰 동기 부여가 된다.”

-멘 포어 인클루전 조직의 확장성은 어느 정도인가?

“2016년에 JP모건 내에서 2천 명 이상의 남성에게 확대됐고, 2018년에는 싱가포르, 인도, 아르헨티나, 미국 등으로 뻗어나갔다. 미국에도 다른 유사 조직이 있는 걸로 안다. 시니어 리더를 모델로 하는 UN의 He for She도 있고, 북유럽도 앞서 시작했다.

이번 서울 성평등 담화에 남성 참가자가 30%나 되는 걸 보니 희망이 있다. ‘멘 포어 인클루전’ 한국 프랜차이즈를 맡아줄 분이 있다면 연락 달라(웃음). 정말로 경쟁력 있는 비즈니스 아이템이다.”

-특별히 눈에 띄는 에이스 기업들을 꼽아본다면.

“영국의 엔터테인먼트 기업인 스카이는 여성들을 위한 코딩 아카데미를 직접 설립했다. 기술, 금융, 공학 기업들이 여성 공백의 문제를 알고도 손 놓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스카이의 적극성은 놀라운 시도다.

일본계 글로벌 투자 회사인 MUFG도 ‘우연한 성차별’ 리스트를 살펴보니 남녀의 차이가 가장 적게 나왔다. 보험과 자산 관리 기업 아비바(AVIVA)도 결혼한 남성 직원이 육아 휴직을 얼마나 사용하는가를 성과 지표에 기록하고 있다.”

-안타깝지만 한국은 요즘 젠더 이슈가 좌우 갈등으로 불거지면서 매사 조심하려는 분위기가 있다.

“그래서 나는 기업에 일단 파일럿 워크숍을 가져보도록 조언한다. 그동안 절반 정도는 남녀가 함께, 절반 정도는 남성만으로 구성된 워크숍을 진행했는데 만족도가 높았다. 임원들, 최고 경영진들도 함께 참가한다. 결코 일방적인 트레이닝이나 교육이 아니다. 자발적이고 진솔한 대화라는 게 핵심이다.”

▲명령해서도 가르쳐서도 안 된다. 모든 사람은 문제 해결을 좋아한다.

-어떤 남성이 호의적인가?

“눈치 보지 않고 쿨하게 자기 라이프를 찾는 사람들이 있지 않나. 예컨대 좀 더 유연한 스케줄로 일하는 사람, 육아 휴직을 완전히 사용한 사람, 강한 페어플레이 감각을 보이는 남성들이 있다. 여성 멘토가 있었던 남성도 성별 편견 경험에 대한 지식이 훨씬 더 높다.”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보다 ‘함께 해법을 찾는 것’이 더 중요한가?

“그렇다. 문제 해결의 욕망을 일으켜야 한다. 아무도 비난해서는 안 된다. 수십 년 동안 성평등 문제에 접근해도 개선되지 않는 것은 남성들이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압박감을 느끼지 않도록 안전한 공간을 만들어줘야 한다

명령해서도 가르쳐서도 안 된다. “이런 문제가 있으니, 아이디어를 내달라”고 해라. 모든 사람은 문제 해결을 좋아한다. 집단 지성으로 같이 풀면 된다.”

-능력주의의 선봉에서 달렸던 미국과 달리 영국은 요즘 성찰의 브레이크를 걸고 균형을 잡아가는 느낌이다.

“한때는 미국이 잘 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요즘 미국은 인종 갈등이 심각해서 젠더 이슈는 잊히거나 정치화되는 경향이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상대를 속단하지 말고 무조건 물어보라.” 온유한 활동가 개리 포드./사진=채승우

-마지막으로 우리 모두가 ‘우연한 성차별’을 자각하고 해결하기 위한 팁을 부탁한다.

“리더가 먼저 나서야 한다. “나는 포용적인 리더가 되고 싶다. 하지만 나도 실수를 한다. 혹시 내가 불편하게 만들거나 소외시켰던 언행이 있다면 기탄없이 얘기해 달라. 공개적으로 혹은 따로 찾아와서 얘기해달라”고 지속해서 말하고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회의 의장이라면 포용성에 우선순위를 둘 것이라고 선포하는 게 맞다. 리더가 타인의 말을 중단시키거나 아이디어를 훔치지 않고 모두에게 발언권을 줄 것이라고 공표하면 그게 기준이 된다. 그러면 누군가 불편한 행동을 하고, 이게 아니다 싶을 때 얘기해도 괜찮다고 느낀다.

또 성이 다른 팀원이라도 배제하지 않고 소통해야 한다. JP모건에서 들은 여성의 불만 중 상당수가 ‘남성 매니저가 자신을 배제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는 것이었다. 정말 잊어서는 안 될 게 있다. 상대를 속단하지 말고 반드시 ‘물어보라’.

어린 자녀가 있는 여성들을 배려한다고, 아예 주말 긴급회의나 해외 프로젝트에서 제외하면 그들은 자신이 중요한 일에서 배제당했다고 느낀다. 물어보면 직접 자기 의사를 말하고, 잘 해내는 경우도 많다. 중간급 매니저라면 한 사람에게 동일한 업무가 반복되지 않도록 공정하게 배분하고, 편안한 커피 룰렛 시간을 자주 가져라.

마지막으로 이런 프로그램에 남성을 참여시키고 싶다면 타이틀에 ‘여성’이라는 단어를 넣지 않는 게 좋다. 약간의 창의성만 발휘한다면 미묘하게 이름을 바꿀 수 있고, 사전에 괜한 오해를 막을 수 있다.”

기자 프로필

인터뷰 시리즈 '김지수의 인터스텔라'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더 나은 언어로 세상을 잇는 마인즈 커넥터(Minds connector), 인터뷰 탐험가입니다.

이 기사는 언론사에서 생활 섹션으로 분류했습니다.
기사 섹션 분류 안내

기사의 섹션 정보는 해당 언론사의 분류를 따르고 있습니다. 언론사는 개별 기사를 2개 이상 섹션으로 중복 분류할 수 있습니다.

닫기
이 기사를 추천합니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