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수의 인터스텔라] 우주인 이소연 “인생은 중력과 은총 사이… 야심없이 가볍게 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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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3.05.27. 오전 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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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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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인 다 달라... 꼰대, 영웅, 장관, 농부 다 있어
우주에서 보면 한국 작아… 그래서 더 위대해
2006년, 추락한 소유스 우주선에서 기적의 생환
정권 교체로 우주 사업 단절, ‘먹튀’ 프레임
‘우주에서 기다릴게’ 이소연의 애틋한 고백

여러 우주 시공간에 흩어져 사는 자아의 빅뱅을 그린 멀티버스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의 메시지는 ‘어느 우주에서 만날지 모르니 다정하라’였다.

어느 날 나는 이소연의 에세이 ‘우주에서 기다릴게’라는 책의 뒤표지 추천사에서 천문학자 심채경과 SF소설가 김초엽의 이름을 발견하고는, 다른 우주에 사는 세 여자의 다정한 연대에 감동했다.

실제로 가보고 만져보고 두드려 본 공학도 출신의 우주인 이소연, 우주의 스케일과 흐름을 파악하는 자연과학자 심채경, 시공간을 추월한 상상의 이야기를 만드는 김초엽… 완전히 다른 차원을 사는 사람들임에도, 이들에게선 ‘다정함’의 삼위일체가 느껴졌다.

한국 첫 우주인 이소연. KAIST에서 기계공학과를 마치고 바이오 뇌공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8년 4월 8일 러시아 소유스 로켓을 타고 국제우주정거장에 9박 10일을 머무르며 475번째 우주인이 되었다./사진제공=위즈덤하우스

“우리는 알아야 한다. 당시 우리나라가 우주인 사업을 추진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였는지, 이소연은 어떤 일을 했고 할 수 없었는지를…(천문학자 심채경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 저자)”

“묵은 편견의 먼지를 떨어낸, 우주인 이소연의 또렷한 목소리를 담은 레코드가 비로소 여기 도착했다. (소설가 김초엽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저자)”

정권이 바뀌는(노무현 정부에서 계획하고 이명박 정부 때 실행됐다) 과정에서 쏘아 올린 우주인 사업의 실망스러운 ‘손절’, ‘먹튀’ 프레임, 미국 시민권자라는 가짜 뉴스(이소연은 대한민국 국적자다)에 시달렸음에도, 이소연은 대한민국 최초의 우주인답게 인간에 대한 믿음과 미소를 잃지 않았다.

▲지구와 우주 사이의 시간을 정밀하게 기록한 이소연의 에세이 ‘우주에서 기다릴게’.

‘우주에서 기다릴게’라는 다정한 인사로 중력 그 너머의 안부를 묻는 이소연 박사를 만났다. 그는 2021년부터 혈액으로 말라리아 등을 판별하는 체외 진단 기기 회사의 해외 사업 부문을 맡아 미국에 거류 중이며, 올봄 잠시 방한했다.

-물리학 전공자인 줄 알았는데 바이오 뇌공학이 전공이라 놀랐다.

“바이오 엔지니어링으로 박사학위를 했다. 이전에 한 일은 또 미국 소프트웨어 회사의 웹 디자인 사업 개발, 영업 총괄 역할이었다. 마이크로 소프트가 클라이언트였다. 내가 사는 시애틀에 회사가 있어서 가볍게 돕는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재미있어서 여기까지 왔다.”

-목표를 가볍게 세우는 편인가?

“처음부터 무리하지 않는다. ‘궁금한데, 할 수 있을까?’ 정도. 주변의 좋은 친구들이 권해주면 빼지 않고 한번 해본다. 목표보다 사람이 중요하니까. 나를 우주로 이끈 동력도 다르지 않다. ‘우주에 가고 싶다’가 아니라 ‘어떤 사람이 우주인이 되는 걸까?’라는 궁금증이었다.”

-어떤 사람이 우주인이 되고 싶어 모였나?

“정말 다양했다. 경찰부터 전투기 조종사까지. 스타워즈에 빠진 분도 있고, 5살 때 로봇 꿈을 꾸다 30살에 로봇 박사가 돼서 온 분도 있었다. 2006년 당시 내 주변에는 병역특례인 카이스트 실험실 친구들밖에 없었는데, 우주의 꿈과 계획을 간직한 대단한 사람들을 본 거다.

‘저렇게 계획을 세워야 성공하는건데, 나는 글렀구나’ 그러고는 처음부터 신이 나서 사람을 관찰하며 다녔다.”

헤드 랜턴을 켜듯 항상 주변을 밝게 하는 이소연 특유의 친화력과 무해한 호기심이 그를 다른 세상으로 안내하는 듯했다. 그와 같이 있으면, 어쩌면 ‘행운에 근접할 자격’은 모든 타인을 웃으며 대하는 것뿐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3만 6천 명 중 최종 2인으로 선발된 이소연은 로켓 발사 두 달 전 예비 우주인에서 탑승 우주인으로 교체되었다./사진=채승우

몸가짐이 가볍고 선선했던 그는 오히려 긴장하던 사람들 사이에서 처음부터 눈에 띄었고, 3만 6천 명의 지원자 중 최종 2인에 뽑혔다. 마지막 토너먼트에 오를 때까지, 그 자신, ‘우주인 친구’로 충분히 만족했지만, 만약을 대비한 ‘대역’으로 최종 선발자와 함께 러시아 훈련에 참여하던 중, 러시아의 결정으로 현장에서 교체 투입되었다.

책에는 갑작스러운 우주인 통보로 그가 겪은 마음의 부담과 그런 이소연을 격려하는 동료의 말들이 기록되어 있다.

“여기서 딱 두 시간만 실컷 웃고 다른 사람 신경 쓰지 말고, 네가 우주에 가는 걸 마음껏 기뻐했으면 좋겠다.”-미국 우주인 존

“마음이 무거운 것 너무 잘 알고 있어. 평소 하던 대로만 하면 돼. 우리는 여기서 널 기다리고 있을게.”-우주정거장에서 기다리던 미국 여성 우주인 페기 윗슨

▲예비 우주인들이 입을 모아 말하는 가장 힘든 훈련은 무엇일까. 2~3시간 만에 체중의 5kg가 빠지는 해양 생존 훈련이나 귀환 모듈 시뮬레이션 같은 육체적인 것이 아니라 의사소통을 위한 외국어를 익히는 것이라고 한다. 소유스 우주선에서 산소, 물, 영양소만큼 의사소통이 가능한 수준의 러시아어는 생존에 필수였다./사진제공=위즈덤하우스

-책을 보면 터프하고 고압적일 것 같은 러시아 사람들이 당신을 배려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영화 ‘히든 피겨스’를 보면서 NASA에서도 남녀 차별이 심해서 놀랐는데 의외였다.

“(미소 지으며)사실 우주 비즈니스는 굉장히 남성 중심적인 성역이다. 성역할도 분명하고 여성은 투명 인간 취급도 당한다. “넌 어차피 우주에 안 갈 거야.” “네가 가도 다른 사람이 다 해야 하니, 넌 웃기만 해!” 이런 말을 서슴없이 한다. 그런데 그런 분들도 자기 딸은 그런 차별을 안 받았으면 하잖나.

동양에서 온 중학생처럼 보이는 쬐끄만 애가 최선을 다하니까, 본능적으로 애틋함이 발동한 것 같다. 못할 줄 알았던 애가 해내고, 좌충우돌하면서 잘하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며 응원하는 마음이랄까. 나는 탁월하게 타고나지 않았다. 그런데 그런 약함이 오히려 강점이 된 것 같다.”

-약함 그 자체가 아니라 약함을 자연스럽게 노출하는 힘이 타인의 마음을 움직인 거 아닐까. 낯선 환경의 적응력은 ‘나의 취약성을 인지하는 것’에서 시작한다고 제러미 리프킨 선생도 이야기했다.

“아하! 그런가. 나는 평생을 마이노러티로 살아서 그런 ‘약자의 자세’가 하나도 불편하지 않았다. 주류 사회에서 메이저로 대접받고 살았다면 어려웠겠지. 카이스트에서나 러시아에서나 그리고 지금까지도 나는 ‘떠도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있다.”

떠도는 사람이라는 말을 저토록 명랑하게 발음할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소유스 로켓/사진제공=위즈덤하우스

‘로켓이 발사되는 순간, 엄마 평생에 듣거나 본 적 없는 어마어마한 화염과 폭음이 일었다. 딸이 엄청난 폭발과 함께 하늘로 사라지는 모습을 보시곤 그 자리에서 쓰러지셨다… 농부의 딸로 태어나 초등학교만 나온 엄마는 딸이 우주에 가는 걸 보기 위해 러시아를 거쳐 카자흐스탄으로 온 것이 생애 최초의 해외여행이었다… ‘-’우주에서 기다릴게’ 중에서

-애써 큰 그림을 그리기보다 그때그때 흐름에 몸을 맡기는 것 같다.

“(반색하며)물론. 무엇보다 힘을 빼면 좋다. ‘대단한 일도 아니고 의도하는 바도 없다’는 생각으로 가볍게 몸을 띄우는 거지. 일례로 매년 4월에 모여 우주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유리스나잇’ 행사도 그랬다. 시작은 냉전 시대 최초로 발사된 유인 우주선의 우주인 유리 가가린을 기리기 위해 MIT에서 만든 모임이다. 한국은 내가 사비를 털어서 카이스트 친구들과 시작했는데, 처음부터 큰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웃음).

‘술 한잔하면서 우주 얘기하자’가 다다. 그런데 지금은 교복 입고 유리스나잇에 왔던 친구가 자라서 우주 스타트업 대표로 이 행사 후원을 한다. 그동안 욕도 많이 먹고 힘들었지만, 이런 결실들을 보면 행복하다.”

-무중력의 우주에서도 힘을 뺄 수 있나?

“하하. 우주선에서는 내려놓은 물건이 붕붕 떠다녀 찾으러 다니기 바쁘다. 유릿가루 같은 게 호흡기나 귀에 들어가도 치명적이라 늘 긴장한다. 몸은 맘대로 제어가 안 돼서 ‘우주 바보’가 따로 없다. 고문받는 것처럼 신경과 근육이 늘어나서 키도 3cm 정도 커진다. 우주 멀미도 괴롭고, 뇌압이 높아져 두통이 심하고 중력이 없으니 소화도 잘 안된다(웃음).”

-체력은 타고난 것인가?

“건강한 몸을 물려받았다. 그런데 체력은 또 다르다. 유학을 갔을 때 보니 미국 애들은 공부도 빡세게 하는데, 금요일 밤마다 놀기도 열심히 놀더라고. 아! 저 체력은 다 어디서 오는 걸까? 내가 IQ를 올릴 수 없다면 체력을 올려야겠다 싶어서 그때부터 노력했다. 아침엔 뛰고 점심엔 수영 하고 저녁엔 체육관 가고.

돌아보면 살면서 쌓은 것은 결정적인 순간에 다 도움이 되는 것 같다. 그동안 바이오, 전자, 기계… 여러 전공을 두루 거치면서 ‘나는 정체성이 뭐지?’ 고민했는데, 그 경험들이 우주에서 18개 다른 실험을 할 때 다 요긴하게 쓰였다.”

▲우주정거장에서 지구 사진을 촬영 중인 이소연/사진제공=위즈덤하우스

-그래서 그런지 우주에서 찍은 모든 사진에서 다 활짝 웃고 있어서 신기했다.

“나는 과자 하나를 먹어도 좋아서 까르르 웃는 사람이었으니까. 오히려 우주에 다녀온 뒤의 일들을 감당하느라 시니컬해지고 영혼이 좀 나갔었다.”

-돌아온 후 무슨 일이 있었나?

“(잠시 침묵하다)아침에 광주, 점심에 부산, 저녁에 인천… 빽빽한 강연 스케줄만 몇 년간 이어졌다. 그렇게 몇 년간 무대에 서서 같은 이야기를 계속하면 번아웃이 온다. 나중엔 머리카락이 한 움큼씩 빠지면서 ‘이러다 죽겠구나’ 경고가 오더라.

대한민국 우주인 사업의 목적은 공식적으로 두 가지였다. 첫째 우주인 배출을 통해 유인우주인 기술을 습득하고, 둘째 국민에게 우주 개발에 대한 관심을 넓힌다. 그런데 첫 번째 기술 개발 목적은 처음부터 책임질 사람이 없었다.”

우주인 사업을 제안한 정부와 우주인을 보낸 정부가 달라서 예정된 좌초였다고 했다.

“항공우주연구원 소속으로 실험 예산을 요청하기 위해 부처 관계자를 만나면, 기운이 빠졌다. ‘우주 다녀와서 유명해졌으면 됐지, 왜 자꾸 뭘 더 하려느냐’는 거지.”

-관료 사회의 ‘손절’ 분위기가 우주까지 닿을 줄은 몰랐다.

“한쪽에선 과학기술계의 아이돌, 우주쇼를 만들고 싶어 했고, 다른 한쪽에선 이 사람은 과학자인데 왜 후속 실험을 안 하냐고 비난하고. 기획한 사람과 이어받은 사람이 서로 마음이 달랐으니 어쩔 수 없었다. 나는 그 사이에 끼여서… 결국 내 길은 내가 찾아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해양 생존 훈련의 마지막 단계. 귀환 모듈 바깥에 나와 바다에 떠 있다 러시아 해군 함정으로 돌아온 직후./사진제공=위즈덤하우스

-이 문제에 시니컬한 사람이 아직도 많다. 이소연이 우주인이라는 행운을 누릴 자격이 있었느냐는 질문이다.

“엄청나게 엄밀한 심사를 거쳐서 대한민국 최고의 우주인이 뽑혔다고는 볼 수 없다. 3만 6천 명의 신청자 중에 토너먼트를 거쳐 30명 안에 든 분들은 다 훌륭했다. 그런데 그조차 더 적합한 분들이 독감에 걸렸거나 다른 사정 때문에 못 왔을 수도 있잖나. 기회의 많은 부분은 결국은 운에서 온다고 생각한다.”

항공우주연구원 의무 복무기간 2년을 넘겨 4년을 근무한 후 이소연은 UC 버클리대학으로 가서 MBA 공부를 마쳤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마음으로 기회가 될 때마다 감사하게 우주 경험을 나누고 있다.

-다른 나라의 우주인들은 어떻게 살고 있나?

“나라마다 실정이 다르다. 일본 최초 우주인은 산속에서 농사를 짓고 베트남 최초 우주인은 연락도 안 된다. 프랑스에서는 여성 인권이 상징적이라 장관까지 했고. 캐나다 여성 우주인은 주지사, 오스트리아는 보잉 임원도 하시더라. 어느 나라도 우주인의 인생을 국민이 결정하지 않는다.”

-가짜 뉴스에는 왜 대응하지 않나?

“가슴에 태극기 달고 우주까지 다녀왔잖나. 내 이야기를 읽으며 우주의 꿈을 꾸는 초등학생들 앞에서 가짜 뉴스 유포자들과 법정 공방을 벌이며 싸움을 하고 싶지는 않더라.”

-땅의 권력은 실제로 우주 공간에서 어떻게 영향을 미치던가?

“(어깨를 으쓱하며)담당 부처 이름이 과학기술부에서 교육과학기술부로 바뀌면서, 지상에서 우주로 매일 다급하게 확인하는 임무가 ‘이름표 교체했냐?’였다. 실험 이외에 새로운 패치를 바느질하는데 많은 시간을 보냈다(웃음).

사실 나는 우주에 있을 때 가장 자유롭고 행복했다. 지구와 통신할 때는 상대방 얼굴도 보이지 않아서 권력자와 얘기해도 긴장을 안 했다. 대통령님께도 ‘지구에 내려가면 밥 먹자는 약속 꼭 지키세요! 제가 찾아갈 거예요!’ 편하게 말도 했고.

얼마 전 ‘유랑지구’라는 영화를 봤다. 재난 상황에서 지구에 엔진을 달아 우주 공간으로 날려 보낸다는 설정이다. 예전 같으면 미국이 혼자 그걸 지휘하고 해결하는데, ‘유랑지구’에서는 모두 모여 각자의 언어로 함께 회의를 하더라. 우주를 떠도는 신세지만, 전 세계의 대통령이 함께 의논하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국제우주정거장에서 본 우리 나라 야경.

-높은 곳에서 지구를 내려다보면 무엇이 눈에 밟히나?

“(미소지으며)참 작은 한국… 내가 머물렀던 국제 우주 정거장이 지구 주위를 도는 속력은 시속 2만 8천 km다. 그 속도로 돌아야 안 떨어진다. 지구 둘레가 4만 km니까 90분마다 한 바퀴를 돈다. 돌면서 2~3분에 한 번씩 지나가는 나라 이름을 불러준다. 미국, 러시아, 중국은 여러 번 불리는데, 한국은 너무 작아서 그냥 지나가는 경우도 많다.

그런데 그렇게 작은 나라가 사람 하나를 우주까지 보냈잖나. 그게 참 묘하게 뭉클하다.

우주인들이 우스갯소리로 ‘너희 나라 너무 쪼끄매’라고 할 때마다 내가 그랬다. “네가 아내한테 전화하는 핸드폰, 애들 데리고 다니는 자동차, 다 한국에서 만든 거야.” 러시아의 힘을 빌려 우주로 왔지만, 그보다 일상을 만들어 주는 기술을 가졌다는 게 자랑스럽게 느껴졌다.”

-우주로 쏘아올린 발사체 누리호 소식을 들었을 때는 감동이 남달랐겠다.

“사실 당장 밥 굶는 데 누가 로켓을 개발하겠나. 러시아는 땅에서 많이 터뜨려 봤다. 많이 터뜨려 본 놈이 더 좋은 로켓을 만든다. 스페이스X도 땅에서 많이 터뜨린다. 그런데 우리는 땅에서 한 번도 못 터뜨려 봤다.

왜? 터뜨릴 돈이 없으니까. 그런 악조건에서 한번에 성공을 해낸 거다. 너무 놀랍다. 부품 만지고 조립하며 로켓을 자식처럼 생각한 현장의 그분들께 큰 박수를 보낸다. 이제 한국은 1톤 이상을 우주에 시험 발사할 수 있는 일곱 번째 나라가 됐다. 달 궤도 탐사선인 다누리호도 발사됐고.”

-보통 사람들은 이번 생애 우주여행을 꿈꿀 수 있을까?

“아! 내가 죽기 전에 우주여행이 싸질 것 같지는 않다(웃음). 우주에서 3분 자유 낙하로 머물고 오는 데 몇십억 달러다. 제프 베저스, 일론 머스크가 민간 영역에서 피치를 올리고 있으니, 관광은 좀 더 두고 봐야지.

당장은 GPS, 위성 인터넷이 우주 시장에서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큰 회사들은 무중력 상태에서 인공 장기를 3D로 프린팅하는 실험이나 금속 화학 실험 등 제조업 분야에 열을 올리고 있고.”

-’승리호’나 ‘고요의 바다’ 같은 SF 장르물의 자문을 맡으면 어떤 말을 들려 주나?

“매의 눈으로 ‘이게 맞다 틀리다’는 지적은 안 하려고 한다. 과학적 사실에서는 살짝 벗어나도 ‘우주가 되게 재밌다’는 느낌에 더 도움이 되려고 하지. 얼마 전에 ‘별들에게 물어봐’라는 드라마도 자문을 했는데 우주에서 연애하는 이야기다. 나는 9일간만 머물렀고, 동료는 다 유부남들이었지만 앞으로 더 길게 가면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 아닐까?”

▲이소연을 에스코트하는 첫 여성 우주인 테레시코바./사진제공=위즈덤하우스

-유리 가가린에 이어 1962년 우주인이 된 첫 여성 테레시코바가 2006년 당신이 소유스 우주선 발사대로 갈 때 에스코트를 해주는 사진을 봤다. 근사하더군. 우주인들의 우정은 좀 더 특별한가?

“하하. 같은 직업을 가진 사람들의 연대감도 비슷하지 않나? 우주인은 지금까지 600명 정도 된다. 우주를 다녀왔다는 것만 같고 다 다르다. 우주인 중에도 몰상식한 사람도 있고 꼰대도 있다. 모아놓으면 다양한 인간 군상이다.

회의하는 데 소리 지르고 삿대질하는 분도 다 자기 나라에서는 영웅이다(웃음). 반면 미국, 러시아의 젊은 우주인은 숫자가 많아서 직업 이상도 이하도 아니고. 가난한 나라는 자국에서 우주인이 움직이면 경찰이 호위를 할 정도지.”

-대한민국의 두 번째 우주인은 언제쯤 나올 수 있을까?

“글쎄. 최초의 우주인이 왜 필요했나? 이것에 대한 답을 먼저 내야겠지. 처음에는 상징성이라도 있었지만, 두 번째부터는 정밀한 책임이 필요하다. 현재까지는 모르겠다. 그 무거운 기회를 이어갈 정부, 정치인이 과연 있을지…”

▲지구에 불시착한 후 중력 때문에 넉다운 된 세 명의 우주인./사진제공=위즈덤하우스

-대중에게 자세히 알려지지 않았지만, 당신은 2008년 지구 귀환 도중 사고로 불타는 소유스 우주선에서 간신히 살아나왔다. 혹시 그때 일을 가끔 생각하나?

“그때를 떠올리면 다양한 감정이 든다. 착륙 모듈과 궤도 모듈이 분리되지 않은 채 타면서 사막으로 곤두박질쳤다. 그런 사고를 당하고 살아날 확률이 얼마나 될까…사고조사반 말로는 그 열에 5초만 더 있었어도 불타 죽었을 거라고 한다.”

‘어느 순간 우주선 내부에 빨간색 불이 켜지면서 삑삑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화면은 ‘탄도궤도로 귀환하는 비상 상황’을 알리고 있었다… 갑자기 우주선이 흔들리면서 충격이 가해지더니 눈 앞에서 연기 같은 것이 피어올랐다…

카자흐스탄 유목민들이 다가왔다… 하늘에서 떨어진 쇳덩어리에서 이상한 하얀색 옷을 입고 둥그런 모자를 쓴 뭔가가 나오더니 걷지도 못하고 기어다니는 모습을 본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했을까…

우리 셋은 ‘구조팀이 우릴 찾겠지!’ 믿으며 초원에 드러누워 있었다. 햇빛 때문에 눈이 부셨는데, 이불도 덮어주고 눈도 가려주었다. 정말 고마운 분들이었다… 우리가 타고 온 소유스 우주선은 산산이 분해되었다.’-’우주에서 기다릴게’ 중에서

-영화 ‘그래비티’를 보았을 때 기시감이 들었겠군.

“산드라 불럭의 리얼 모델이 내 친구였다. ‘그래비티’는 우주정거장 내부 사람들이 전부 죽는 장면부터 나에겐 공포영화였다.”

▲영화 ‘그래비티’의 한 장면.

산전수전 공중전을 다 겪었지만, 마침내 우주는 그에게 명예로운 출장지로 남았다. 분 단위로 짜인 임무를 수행하느라, 공항과 호텔만 오가다 온 빡센 출장처럼 그 아름다움을 충분히 눈에 담아 오지 못해, 더욱 가슴이 미어지는 출장지.

밤에 깨어 창밖을 바라보면 구부러진 지평선 너머 빨주노초파남보, 검은색으로 휘몰아치는 빛과 어둠의 심연에 가슴이 뛰었다고 이소연은 기억했다.

“정거장 안에서는 하루에 16번 해가 뜨고 진다. 그 모습이 너무 예뻐서 잊을 수가 없다. 그저 한가지 생각만 든다. 운이 좋아 이 시대에 지구에서 태어나 한국인으로 한평생을 누리다니…”

-이제 트라우마는 다… 극복되었나?

“웃으며 이야기한다는 건 그렇다는 거겠지. (아득한 눈빛으로)우주로 가기 직전에, 러시아 홍반장으로 불리는 교관이 나를 구조팀 바비큐 파티에 데려간 적이 있다. ‘너 내려올 때 도와줄 사람들이니 인사나 하라’고.

그분들이 추락 지점에서 500km 떨어진 곳에서 모두 귀 달린 후드 티를 입고 꽃다발을 들고 기다렸다고 했다. 훈련 내내 내가 귀 달린 후드 티를 입고 돌아다녔는데, 구조팀이 그 모습을 떠올리고 후드티를 맞춰 입고 하늘만 보며 기다렸다는 거다. ‘이 친구가 꼭 돌아오기를. 죽지 않고 돌아오기를’ 기도하면서… 나중에 듣고 정말 고마웠다.”

지구로 돌아온 후 중력이 더 고맙게 느껴지더라고 했다.

중력의 고마움을 깨달았다는 이소연./사진=채승우

“산소가 내 코에 머무는 것도 중력 덕분이다. 중력 때문에 내 몸이 무겁다고 불평하지만, 각자 짐 없는 삶이 어디 있겠나? 나가서 보니 1~2년 계획하며 살 수 있는 나라도 흔치 않았다.

말라리아 때문에, 내전과 자연재해 때문에 당장 내일을 모르는 경우가 정말 많다. 태어나면 당연히 학교 가는 나라, 여성이 밤에 혼자 걸을 수 있는 나라, 카페에서 핸드폰으로 자리 맡아두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더라(웃음).”

이소연의 말처럼 산다는 것은 중력의 무거움과 가벼움 사이를 오가는 것. 중력장 속의 인간은 야금야금 무언가를 계속하며, 때가 되면 겸손하게 은총의 파도에 올라탈 뿐이다.

기자 프로필

인터뷰 시리즈 '김지수의 인터스텔라'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더 나은 언어로 세상을 잇는 마인즈 커넥터(Minds connector), 인터뷰 탐험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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