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수의 인터스텔라] “그만둬도 괜찮다... ‘끈기’ 보다 ‘끊기’가 당신을 구원한다” 애니 듀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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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3.02.19. 오전 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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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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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버틸까, 그만둘까… 고민될 때는 그만둬야
에베레스트산 내려가다 사망한 사람 더 많아
반환시간, 중단기준 있어야 그만둘 수 있어
노벨 경제학 수상자도 ‘그만두기 코치’ 필요해
삶에는 더 많은 선택지 있어…'큇’ 애니 듀크 인터뷰

▲끈기와 집념이 상징이었던 무하마드 알리는 제 때 권투를 그만두지 않아 파킨슨병에 걸렸다.

우리는 집념과 투지의 시대를 지나왔다. 농경 사회를 거쳐 산업화 시대에 이르기까지 사회적 성공과 시스템의 안착에는 부모 세대의 ‘인내의 지분’이 녹아있다. 인내를 연료로 우리 삶은 앞으로 나아왔지만, 언제부턴가 똑똑해진 개인들은 ‘인내의 가성비’에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성실과 끈기는 과연 우리를 더 나은 세상으로 데려가고 있나? 혹시 낯선 선택지로 안내하는 ‘리스크 테이크’가 두려워, 우리는 관성에 따라 ‘가짜 성실’과 ‘억지 끈기’로 제자리를 맴돌며 자신을 학대하고 있지는 않은가?

나에게 가장 처음 포기의 신세계를 알려준 사람은 장기하였다. “제가 정의한 포기는 좀 더 자발적인 거예요. 삶에서도 음악에서도 불필요한 것, 못하는 걸 빼는 행위를 저는 ‘포기’라고 해요.”

가령 그는 손 근육이 마비되는 병을 앓게 되면서 프로 드러머의 꿈을 포기했고, 기타도 못 칠 상태가 되자 작곡과 보컬에만 전념했다. 그 과정에서 ‘싸구려 커피’ 같은 명곡이 나왔고, 가수로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나는 장기하를 통해서 ‘즐거움’과 ‘잘함’과 ‘계속함’의 평형은 ‘적절한 포기’에서 올 수도 있다는 걸 알았다. 포기는 자기만의 두각을 나타내기 위한 ‘선택’이었던 것. 그는 못 하는 게 있으면 짧게 절망한 후 자기를 잘 ‘설득해서’ 생의 방향을 틀었다고 했다.

최근 ‘부럽지가 않아’라는 노래를 부르는 그를 보면 경쟁과 비교의 중력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는 듯했다. 포기할 때는 약간 힘을 빼는 자세가 도움이 된다고 했다.

두 번째 만난 ‘포기의 달인’은 뮤지션 겸 화가 백현진이었다. 그는 말했다. “완성이란 없어요. 그저 손을 뗄 뿐이죠”라고. 다큐멘터리 감독 이길보라는 포기를 지속가능한 연대의 차원에서 접근했다. “편집을 더 하면 더 좋은 게 나올 수도 있지만, 파트너를 착취하지 않기 위해 이쯤에서 그만두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이런 식의 ‘손을 떼는’ 태도가 한편으로 완벽주의와 목표 지상주의에 대한 경종으로 느껴져서 신선했다. 그렇게 ‘포기와 중단의 미학’에 심취하던 중 시의적절하게 좋은 책을 만났다.

▲‘큇 Quit’을 발표해 계속하기에 경종을 울린 컬럼비아 대학 심리학 박사 애니 듀크.

자주 그만두는 사람은 어떻게 성공하는가라는 부제를 달고 나온 ‘큇Quit’이었다. ‘큇’은 충격적인 서사로 시작한다.

무하마드 알리는 33세에, 젊고 강한 포먼을 이기면서 ‘포기를 모르는 권투선수’의 상징이 되었지만, 그 뒤 40세가 될 때까지 신경 손상과 반복적인 판정패 등 ‘은퇴 사인’을 무시하다가 파킨슨병에 걸렸다. 버티는 것이 항상 최선의 선택은 아니며, 제 때 그만두지 못하면 큰 대가를 치른다고, 저자인 애니 듀크는 경종을 울린다.

애니 듀크는 역사상 최고 누적 상금을 수상한 세계적인 포커 플레이어로 거대한 ‘판돈’이 오가는 스릴 넘치는 포커판에서 ‘중단의 실전’을 익혔다. 컬럼비아 대학에서 심리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더 나은 ‘끈기’를 위한 ‘끊기’의 기술을 연구했다.

의사결정 전문가 애니 듀크를 이메일로 인터뷰했다. 그가 가르쳐준 ‘그만두기 코치’와 ‘중단 기준’이 ‘그만둘까, 말까’를 고민하는 당신에게도 유용한 가이드가 될 것이다.

-’큇 QUIT’이란 무엇입니까?

“‘큇 QUIT’은 어떤 일을 멈추는 것입니다. 동시에 그만두는 데서 그치지 않고 경로를 바꾸는 것이기도 하지요.”

-인내 없음, 조급함, 변덕스러운 충동과는 어떻게 구별되지요?

“충동적으로 그만두는 것은 선택의 기준이 ‘지금 내가 하는 일의 가치’에 있지 않습니다. 쉽게 흥미를 잃거나 게으른 ‘기질’ 탓이죠. ‘큇’은 최적의 의사결정 스킬입니다. 그만두는 것으로 얻어진 시간과 노력을 더욱 가치 있는 일에 활용하는 적극적 행위입니다.”

-’끊기’는 더 나은 일에 집중하기 위한 일종의 정리의 기술인가요?

“그렇습니다. 물론 인내와 ‘그릿(Grit 투지)’은 이루기 어렵고 가치 있는 일을 계속하는 데 매우 중요합니다. 하지만 때때로 유해해요. 매몰 비용에 빠지기 시작하면 현실적으로 이루기 어렵고 가치를 다한 일인데도 손을 떼지 못하거든요. 어떤 일을 하든 인내를 가지고 계속 해야 할 때와 그만두어야 할 때를 아는 건 중요합니다”

▲세스 고딘이 ‘내 인생을 바꾼 책’이라는 추천사로 찬사를 보낸 책 ‘큇Quit’. ‘버텨야 하는 시점과 떠나야할 시점’에 대한 뼈 때리는 충고가 가득하다.

-제때 그만두지 못한 대가의 사례로 무하마드 알리의 이야기는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알리의 에피소드로 책의 서두를 연 이유가 있나요?

“무하마드 알리는 20세기의 가장 유명한 스포츠 인물 중 한 명입니다. 사람들은 알리의 투지에 손뼉을 쳤지만, 그의 말년 선수 인생은 끝없는 끈기에 따르는 대가를 선명하게 보여줍니다. 이 인터뷰에서 제가 강조하는 건 하나예요. ‘끈기는 미덕이고 끊기는 실패’라는 생각을 버리세요. 상황마다 다릅니다.

알리의 끈기는 알리가 세계 헤비급 챔피언이 되는 원동력이었지만, 그는 신경질환을 경고한 의사의 말을 무시하고 권투를 지속해서 파킨슨병 진단을 받았죠. 인내와 투지는 분명 시간이 쌓여 폭발적 성과를 냅니다. 그러나 때로는 자기 파괴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도 잊으면 안 됩니다.”

-에베레스트산에 올라갈 때보다 내려갈 때 사망자 수가 8배나 많다고요. ‘그만둘 상황에 직면하기 전에, 언제 그만둘지 미리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문장이 강렬하더군요. 반환시간을 반복적으로 강조하는 이유가 뭐죠?

“그만큼 우리가 그만두는 결정을 ‘제때 제대로’ 못합니다. 특히 반환시간은 에베레스트산 정상 바로 밑까지 올라갔을 때처럼, 목표 달성이 눈앞에 보일 때 더욱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실제로 에베레스트산 정상을 불과 90m 남겨놓고도, 반환시간을 지키기 위해 베이스캠프로 하산하는 사례도 있어요. ‘그만두는 것도 옳은 선택’이라는 강력한 학습 효과가 없다면, 정상을 향해 계속 가려는 욕망을 포기하기 어려워요.

비전 없는 직장에 계속 머물거나, 서로를 갉아먹는 인간관계, 손해만 보는 사업에 집착하게 되겠죠. 이제 그만 하세요. 정상을 찍어도 하산하는 도중에 목숨을 잃습니다. 형편없는 대우를 받으며 불만족스러운 직장 생활을 이어가겠죠. 혼자 화를 삭이며 이별을 질질 끌 겁니다. 자본이 바닥나고 채무만 남게 돼요. 인생이 생각보다 길지 않아요. 돌이킬 수 있는 반환시간을 기억하고, 그 시간에 이르면 그만 하세요!”

▲등반에서 반환 시간은 가장 중요하다. 우리도 어느 시점에 이르면 인생의 반환 시간을 생각해야 한다.

-하지만 ‘포기의 시점’을 안다는 게 어떻게 가능한가요?

“정확히는 아무도 모릅니다. 일례로 뉴욕의 택시 기사 2,000명의 운행일지를 분석한 결과 기사들은 손님이 많을 때 너무 일찍 운행을 중지하고, 없을 때 너무 오래 버티는 패턴 때문에 8~15% 비율로 손님을 놓쳤어요. 그럼에도 불안할 때 버티는 습관을 바꾸기 힘들어했죠. 우리도 살면서 이렇게 비합리적으로 너무 오래 버티거나 너무 빨리 그만두는 실수를 자주 저지릅니다.

그만둘까, 계속할까는 사실 심리전입니다. 스티븐 래빗이라는 사회학자가 어려운 선택 상황에서 동전을 던져 ‘그만둘까’와 ‘계속할까’를 결정한 사람들의 만족도를 조사한 적이 있어요. 결과를 보면 그만둔 사람들의 만족도가 훨씬 높았습니다. 그 실험이 말하는 핵심은 이겁니다. 비슷한 비중으로 고민될 때는 그만두는 것이 훨씬 더 나은 선택이라는 것.”

주위를 둘러봐도 그 말은 사실이었다. 오랜 고민 후 이직이나 이혼, 이별, 이사를 결심하고 실행한 사람들은 이전보다 ‘더 행복하다’고 말했다. 그것이 긴 터널처럼 끝없는 고민에서 벗어난 해방감 때문인지, 실제로 새롭게 다가온 기회에 대한 만족감인지는 정확히 측정할 수 없다. 하지만 충동적 결정이 아니라는 것을 전제로, 그들은 한결같이 말했다.

“왜 좀 더 일찍 그만두지 않았을까?” 애니 듀크의 말대로 우리는 정말 너무 오래 참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무엇보다 나는 인생을 바꿀지 모를 어려운 결정을 앞두고 2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웹사이트의 가상 동전 던지기로부터 도움을 받으려 했다는 사실에 매우 놀랐다. 자기 파괴적인 ‘현상 유지’를 끝내는 데 동전 던지기의 도움을 받다니!

▲계속할까, 그만둘까 오래 고민했다면 ‘그만두는 것이 더 나은 결정’이다.

-사람들은 왜 그토록 그만두는 결정을 힘들어할까요? 저 또한 매 순간 그만두는 것의 리스크를 가정하고 감당하는 것이 힘들어서 익숙함에 안주해온 사람 중 한 명입니다만.

“무엇보단 우리는 ‘중단’ 혹은 ‘포기’라는 단어에 패배감을 떠올립니다. 몸과 마음이 부서져도 스스로 끝내는 건 못난 짓이라는 집단 강박에 사로잡혀 있달까요. 그만두기는 역사적으로, 문화적으로 부정적인 범주에 갇혀 있었죠. 그렇게 불행한 결혼, 탈진한 직장 생활, 부상당한 선수의 시간이 이어지죠. 타인에게 받을 비난을 상상하는 데 시간을 낭비하면서요.

우리의 본성이 쉽게 그만두지 못하도록 유도한다면, 적어도 ‘그만두기’와 ‘계속하기’에 대한 기댓값이라도 객관화할 수 있어야 하는데, 선택의 이해득실을 저울질하는 건 더 혼란스럽습니다.”

-제 얘기를 해보지요. 얼마 전 저는 오랫동안 일했던 정든 회사를 떠났습니다. ‘후회의 재발견’이라는 책을 쓴 미래학자 다니엘 핑크를 인터뷰한 후, 그가 제시한 ‘대담성 후회’를 최적화하기 위해서였죠. 제가 “성장과 모험을 위해 직장을 그만두고 싶다”는 고민을 털어놨을 때, 10명 중 9명은 ‘그만두기’를 만류하더군요. 50대 가장이 튼튼한 조직을 떠나는 일은 위험하다는 거죠. 사랑하는 친구들의 충고를 거스르기 어려웠지만, 제 안의 목소리를 거부할 수 없었고, 그로 인해 오히려 더 많은 준비를 할 수 있었어요. 만약 제가 당신에게 위와 같은 고민을 털어놓고 의견을 구했다면, 어떤 충고를 했을까요?

“무엇보다 저는 먼저 “지금까지 다니던 직장에서 자기 일에 얼마나 오랫동안 만족감과 행복감을 느꼈습니까?”라고 물어봤을 겁니다. 예를 들어, 당신이 3개월 동안 만족감을 느꼈다면, 나는 그 3개월 사이에 당신에게 ‘그만두라’고 말하는 신호는 어떤 게 있었는지 물었을 거예요. 그다음에 ‘중단 기준’을 함께 작성했을 겁니다.

중단 기준은 중요해요. 일을 중단하거나, 프로젝트 목표를 바꿀 때 손실을 줄이기 위한 기준을 뜻하죠. 그 중단 기준을 위해 묻겠지요. “직장을 그만두기 전에 어느 정도의 경제적 여유가 있습니까?” “그만두는 것 외에 다른 선택이 있습니까?”

최종적으로는 “직장을 계속 다닐 경우, 1년 후에 당신은 얼마나 행복할까요?” “직장을 그만두고 나서, 1년 후에 당신은 얼마나 행복할까요?” 두 상황에 따른 행복과 삶의 만족도를 비교해본 다음 결정하라고 조언했을 겁니다.

▲박수칠 때 떠나려면 중단기준을 명확하게 정해야 한다.

책에서 저는 많은 연봉을 받고 경영 업무를 맡게 된 의사와의 이직 상담 과정을 사례로 소개했어요. 저는 그녀에게 물었어요. “회사를 계속 다니면 1년 후 불행할까요?” “네. 아마도.” “이직하면 1년 후 불행할까요?” “아니요. 그건 모르죠.” 그녀는 나와 상담한 후 바로 회사를 그만뒀고, 결과적으로 매우 만족했습니다. 저는 그에게 중단 기준과 기대가치 같은 개념을 적용했어요.

박수 칠 때 떠나야 한다는 말, 자주 그만두는 사람이 성공한다는 말은 쉽지만 결정까지는 엄청난 고민이 필요합니다. 합리적인 선택을 하고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제가 말한 중단 기준과 기대 가치를 꼭 기억해주기 바랍니다.”

-중단 기준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만들 수 있나요?

“언제 중단하겠다는 구체적인 상태와 시점을 입력하면 됩니다. ‘n개월 후에 이 제품의 개발이 완료되지 않으면 개발을 포기하겠다’, ‘n개월 후까지 상대가 내게 청혼하지 않는다면 혹은 내가 청혼했는데 상대가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헤어지겠다’, ‘n년 후에도 특정 직위까지 승진하지 못하면 이직하겠다’라고 말이지요.

중단 기준의 핵심은 간단합니다. 감당하기 힘든 손실이 발생하기 전에, 그만두겠다는 결정을 이행하는 거죠. 떠밀려서 그만두거나 거대한 손실을 떠안을 때 그만두는 건 의미가 없어요. 그건 ‘그만두기가 아니라 상처뿐인 끝이자 종결’에 지나지 않습니다.

중단 기준을 세웠어도 저는 포커 게임을 할 때 그 기준을 100% 준수하지 못했어요. 우리는 나약한 인간이니까요. 완벽하진 않아도 조금씩 나아질 수는 있어요. 어쨌든 재앙이 닥치기 전에 상황을 체크한다면 점점 더 합리적인 판단에 가까이 갈 수 있어요.”

애니 듀크는 견뎌온 시간과 노력이라는 매몰 비용에 대해 일목요연하게 설명한다. 쉽게 말해 우리는 커진 ‘판돈’과 들인 ‘본전 생각’에 함몰된다. 게다가 시작하는 것과 달리 그만두는 건 과거와 현재, 미래를 동시에 계산해야 하니, 그 과정 자체가 대단히 복잡하다.

경험상 우유부단의 기간이 길어질수록 자기 불신도 깊어진다. 견디는 나에 대한 대견함보다 다른 선택지가 없어 버티는 나에 대한 분노가 커지면 자아 존중감마저 곤두박질친다.

▲이미 던진 것, 현재 가진 것을 잃을 것에 대한 두려움은 접고 일어나 다른 선택지로 가는 도전을 압도한다.

-과거에 비해 더 똑똑해진 우리가 투입된 시간·자본·에너지를 비교하는 일에는 왜 그토록 서투를까요?

“교육 수준이 낮거나 정보가 부족하거나, 계산을 잘못했기 때문이 아니에요. 매몰 비용은 말 그대로 매몰되는 현상이에요. 인지적 착각 같은 뇌의 인지 오류죠. 화살표 방향에 따라 동일한 길이의 두 직선 중 하나가 더 짧고 다른 것이 길어 보이는 뮐러-라이어 착시현상이라는 게 있어요. 이런 착시현상을 자각한다 해도, 그 착시현상에서 비롯된 힘이 너무 강력해 벗어나기 힘들어요.

이런 인지 편향을 극복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그만두기 코치’를 두는 겁니다. 인지 편향의 힘에 사로잡혀 있을 때, 밖에서 우리를 객관적으로 봐줄 수 있는 사람! 그들이 당신의 인내심이 ‘더 이상 가치가 없다’고 말한다면 제발 귀를 기울이세요.”

-그만두기 코치라고 굳이 명명하는 데는 이유가 있겠지요?

“뭔가를 그만두려고 했을 때, 혹은 포기하려고 했을 때 사람들이 위로와 용기를 주려고 했던 것을 기억할 겁니다. 하지만 당신에게 절실한 사람은 진실을 말해줄 수 있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듣고 싶은 말이 아니라, 우리가 들어야 할 말을 해주는 사람이어야 하지요.”

-포기의 본질이 ‘탐색과 확장’이라는 사실을 당신에게 가르쳐준 사람은 누구죠?

“구글 혁신 허브 조직 ‘X’의 CEO 아스트로 텔러입니다. 제가 만나본 최고의 ‘그만두기 달인’이죠. 아스트로 텔러는 구글에서 ‘그만두기의 중요성’을 증명했던 사람입니다. 그는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수많은 아이디어들을 만들고 취합하지만, 대부분 폐기합니다. 빠르게 포기하고 자주 그만두지만, 대신에 가치가 있는 일이라면 조직 역량을 집중했어요. 특히 “어려운 부분을 먼저 해결하라”라는 조언이 제게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세계적인 행동경제학자 대니얼 카너먼과 리처드 탈러. 그들의 서로의 그만두기 코치가 되어주었다.

-대니얼 카너먼과 리처드 탈러와의 만남은 어땠나요?

“평생을 인지 편향과 결정 오류에 대해 연구를 한 대니얼 카너먼 같은 사람도 제때 잘 그만두기를 어려워했다고 해요. 그래서 ‘그만두기 코치’를 곁에 뒀습니다. 그 코치가 바로 리처드 탈러였습니다.

세계적인 행동과학자에게도 그만두기 코치가 필요할 정도니, 그 필요성은 우리 같은 일반인에게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위대한 학자들과의 만남에서 통찰을 얻는 행운이 바로 이런 겁니다. 두 명의 노벨 경제학 수상자가 내게 말해주었듯이 우리도 소중한 사람에게 그만두기 코치가 되어야 합니다.”

“당신을 사랑하지만 가슴 아픈 말을 해줄 친구를 찾으세요”라고 했다는 대니얼 카너먼의 조언이 가슴에 와닿았다.

-한편 의사결정권자의 판단에 큰돈이 오고 가는 기업의 경우, 시작하는 결정과 그만두는 결정을 하는 사람을 따로 두라고 권했는데요. 왜 굳이 분리해야 합니까?

“배리 스토(Barry Staw)라는 사회학자가 했던 금융 연구를 예로 들지요. 채무자에게 대출을 실행할 때, 은행은 최초 대출 결정 후에도 여러 후속 결정을 내립니다. “추가 대출을 해줘야 할까?”, “조건을 재조정해야 할까?”, “재심사를 해서 대출 상환 가능성을 낮춰야 할까?” 같은 것들이죠.

배리 스토가 132개 은행의 대출을 9년간 추적한 결과는 흥미로워요. 첫 대출을 승인했던 책임자에 비해, 교체된 책임자가 대출 상환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더 빠르게 인정했어요. 새로운 책임자들은 대출을 승인한 사람이 자신이 아니기 때문에, 대출금을 손실로 처리하는 사례가 훨씬 많았습니다. 일의 시작을 결정하는 사람(최초 대출책임자)과 중단을 결정하는 사람(새로운 대출책임자)을 따로 두라고 조언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어요.”

▲시작을 결정하는 조언자와 중단을 결정하는 조언자는 따로 두는 것이 좋다.

-중단 결정권자가 더 객관적이라는 거죠?

“그렇습니다. 이 데이터는 기관투자자들에게 좋은 힌트가 됩니다. 즉, 주식 매입과 매도 시점을 승인하는 위원회를 따로 둬야 한다는 거죠. 큰 조직만의 일이 아닙니다. 그만두기 코치는 당신 개인을 위한 ‘새로운 대출책임자’이며, ‘매도 시점 승인 위원회’가 될 수 있습니다.”

-인생이 숫자로만 이루어진 주식시장 같을 순 없습니다. 그건 그렇고 배리 스토는 왜 9년간이나 은행 대출 문제에 그렇게 끈질기게 매달렸답니까?

“배리 스토와 관련한 또 하나의 인상적인 일화가 있어요. 해럴드 스토라는 사업가가 있었습니다. 그는 작은 전자제품 매장에서 사업을 시작해 1960년대에 캘리포니아 남부에서 가장 큰 소매 체인을 소유했지만,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몰입 상승의 늪에 빠져 수많은 중단 기준을 무시한 끝에 몰락하고 말았죠.

베리 스토는 해럴드 스토의 경영 실패를 비롯해 정부, 금융, 기업 경영 부문에서 몰입 상승과 그 결과를 분석했고 ‘사람들이 진흙수렁에 무릎까지 빠지는 이유’라는 제목의 논문으로 발표했습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배리 스토는 해럴드 스토의 아들이었어요.”

-부자지간에도 ‘그만하세요!’라는 조언은 어려운 일이로군요.

“그렇습니다. 아버지 해럴드가 K마트 그리고 다른 주주들과의 지는 싸움에 집착하고 있을 때 아들인 배리 스토는 사회학자로서 연구한 거죠. 왜 사람들이 부정적인 신호에도 불구하고 지나치게 오래 버티는지, 어떻게 하면 그만두고 잘 떠날 수 있는지…”

▲멈춤은 더 좋은 시작의 예비 단계다.

-분명한 진정성에도 불구하고 소중한 사람들에게 ‘그만하라’는 설득은 늘 조심스럽습니다.

“설득으로 그만두게 만들 수는 없습니다. 제 목표는 ‘그만둬도 괜찮다’고 느끼게 하는 겁니다. 그렇게 느낄 만한 적절한 도구를 제시하는 거죠. 이전에 저는 엠파티클(mParticle)이라는 기업에 영업 활동 중단 기준을 컨설팅했습니다. 엠파티클의 사원들은 실패로 끝날 계약을 전혀 감지하지 못했고, 그래서 영업 활동에 진전이 없었습니다.

영업팀과 중단 기준 관련 상담을 하면서 저는 ‘거래가 성사되지 못할 것이라는 신호는 더 일찍부터 있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실패를 상상하면서 미래를 내다본 후 원인을 알아내는 작업을 사전부검 (premortem)이라고 합니다. 이런 중단 기준을 교육받은 후 엠파티클의 사원들은 영업 실패율을 줄이고, 더 나은 기회에 공을 들이는 법을 배웠습니다.”

나 또한 인터뷰 인물을 섭외하는 과정에서 ‘계속할까, 그만둘까’를 고민할 때가 있었다. 과거에는 유명세에 집착해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는 마음으로 될 때까지 두드렸지만, 지금은 쿨하게 포기한다. 거절의 몇 가지 징후를 파악한 후, ‘세상은 넓고 만나야 할 사람은 많다’는 마음으로 새 인물에 눈을 돌리자 더 많은 기회가 찾아왔다.

가만 보면 우리는 자신에게 더 많은 선택지가 있다는 걸 모른 채 살아가는 것 같다. 언젠가 다리뼈가 부러진 채로 기어가서 결승선에 골인하는 일본 마라톤 선수를 보고 놀란 적이 있다. 그에게는 왜 완주만이 유일한 선택지였을까?

▲이혼, 이별, 이직, 은퇴, 종전… 그만두는 것은 패배가 아니라 또다른 시작이다.

-때로는 몸이 망가지는 데도 경기를 계속하려는 선수를 보면 안타깝습니다. 그라운드 밖의 감독과 관중이 무리한 ‘부상 투혼’을 발휘하지 못하도록, 도와주어야 하지 않을까요?

“맞아요. 저도 다리뼈가 부러진 채로 수십 킬로미터를 달리는 마라톤 선수들을 보고 놀란 적이 있어요. 선수는 사회가 정한 성패의 분위기에 휩쓸려 갑니다. 그래서 목표 설정을 할 때 항상 ‘그렇지 않다면’이라는 말을 포함해야 합니다.

과정에서 얻을 것과 잃을 것을 계산해야죠. 사회 구성원들도 결승선보다 출발선에서 전진한 거리를 가치 있게 평가해 줘야 합니다. 완주하지 못해도 배움과 즐거움을 얻을 수 있다고.”

-결국 ‘큇’은 ‘그릿’을 보완해서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새로운 시대정신이로군요.

“네. 저는 ‘큇’이 새로운 시대정신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많은 분이 ‘끊기의 중요성’에 새롭게 눈 뜨고 있어요. 그런 이유로 ‘큇’을 ‘그릿’에 대한 완벽한 변증법적 보완이라고도 하지요. 세상은 끊임없이 변하는데, 왜 처음에 정한 목표를 수정하지 않습니까? 유동적인 세상에서는 목표도 유동적이어야 해요.”

가치가 없는 일을 편집증적인 태도로 수행한다면 우리에게 남는 건 탈진뿐이라고 했다.

-혹시 ‘그만두기엔 너무 늦은 나이’라는 건 없을까요?

“시작하기, 계속하기, 그만두기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나이와 무관합니다. 모든 결정은 가장 큰 기대 가치를 제공하는 예측 결과에 기초해야 합니다. 당장 그리고 남은 시간 동안 자신에게 유리한 선택을 하면서 나아가는 거죠.”

▲세계적인 포커 플레이어이기도 한 애니 듀크. 언제 판을 접고 일어나야 하는지 결정하는 것이 결국 승률을 높였다고 한다.

-당신은 자신의 ‘중단 경력’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나요? 인생을 돌아보며 자주 그만둔 것에 만족합니까?

“저는 그만두기로 경로 변경을 많이 한 사람입니다. 대학원을 그만두고 포커 대회에 참가했고, 포커 게임을 그만둔 다음에는 책을 쓰기 시작했고, 지금은 대학원으로 돌아와 공부하면서 다음 책을 쓸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자주 그만두는 사람이지만 한편으로는 끈기도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당장 책 한 권을 쓰기 위해서는 상당한 끈기가 필요합니다). 일이 잘되기 위해서는 행운 역시 작용해야 하죠.

전문 포커 플레이어였을 때, 제가 했던 모든 게임에는 그만두기 결정을 해야 하는 순간이 있었습니다. 어떤 게임을 계속 해야 하는지, 언제 판을 접고 일어나야 하는지 순간순간 결정해야 했죠. 늘 이기진 못했지만, 최소한 늘 중단 기준만은 지키려고 노력했습니다. 그 덕분에 대체로 저는 다른 사람보다 승률이 높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인생 경기장에서 꺾이지 않는 마음과 포기하는 마음이 어떻게 서로를 일으킬 수 있을지 조언을 부탁합니다. 한국에서는 한창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는 말이 유행했거든요.

“일단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는 말은 정말 멋있군요. 저도 긍정적인 에너지를 느낍니다. 가령 포커 대회에서 결승전에 올랐다고 쳐보지요. 몇 번 실수하거나 운이 없어서 칩을 많이 잃었다 해도 저는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승부욕, 우승이라는 명예, 상금이라는 포상을 위해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을 되새겼을 거예요.

하지만 이런 특수 상황이 아니라, ‘가치가 없는 일’에 매달리면서 마음이 꺾이지 않으려 애쓰는 건, 도움이 되지 않아요. 성공은 어떤 일을 단순히 계속한다고 얻을 수 있는 게 아니거든요. 가치 있는 일을 계속하기 위해, 가치 없는 일은 최대한 빠르게 그만둬야 해요. 시간과 에너지는 한정돼 있으니까요.”

▲우리는 인생의 플레이어인 동시에 감독이다. 계속하기 위해 적절한 순간에 포기도 해야 한다.

인생의 플레이어로서 우리는 끈기와 집중력을 발휘해야 하지만, 인생의 감독으로서 우리는 의도적으로 끊고 전술적으로 전환을 시도해야 한다. 결국 얼마나 멀리 보느냐, 시야의 문제가 아닐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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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시리즈 '김지수의 인터스텔라'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더 나은 언어로 세상을 잇는 마인즈 커넥터(Minds connector), 인터뷰 탐험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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