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체코 재무부가 두코바니 5·6호기 원전을 짓기 위한 자금 조달 계획안을 마련하고 유럽연합(EU) 승인 절차를 시작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국내 원전업계에서 나온 평가다. 체코 정부의 자금 마련이 순탄하게 이뤄지면서 3월 본계약도 차질 없이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는 평가다. 앞선 지난해 7월 한국수력원자력과 대우건설·두산에너빌리티 등 민간기업으로 구성된 ‘팀코리아’는 체코 정부로부터 두코바니에 1000㎿급 원전 2기를 짓는 신규 원전 사업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하지만 12·3 비상계엄 사태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가 이어지면서 본계약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졌다. 정국 주도권이 원전에 부정적이었던 더불어민주당에 넘어갔기 때문이다.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도 대통령 탄핵 직후 국회에 출석해 “체코 측에서 국내 상황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고 어려움을 털어놓기도 했다. 원전업계의 한 관계자는 “체코가 자금 조달에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다는 것은 본계약 체결에 문제가 없다는 점을 확인해 준 것”이라며 “어려움 속에서 큰 고비를 넘겼다”고 말했다.
국회가 최근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에 대한 탄핵소추안까지 통과시키면서 ‘국가 간 계약’ 성격이 짙은 원전·방산 수출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원전은 15년여 만에 수출에 성공하면서 새로운 먹거리로 떠올랐다. 꾸준히 성장하던 방산 수출은 지난해 주춤했지만, 군함 등 조선 분야가 새롭게 부상하면서 미래 성장동력으로 부상 중이다.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원전은 사실상 정부와 정부 간 계약이기 때문에 어수선한 정국 속에서도 사업을 이어가려면 여야를 초월해 국회의 전폭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일단 체코 정부가 신규 원전을 건설하기 위한 자금 조달을 시작한 만큼 두코바니 원전 본계약은 무난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체코 당국 역시 3월로 예정된 계약 일정은 차질 없이 진행될 것이란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전력망을 공유하는 EU 국가는 원전과 같은 발전 시설 건설 전에 EU의 승인을 거쳐야 한다. 두코바니 2기의 원전을 짓는 데 필요한 자금은 24조원 정도다.
문제는 이후다. 친(親)원전 정책을 내세운 윤석열 정부는 출범 이후 체코 두코바니 원자력발전소 2기 사업 우선협상대상자에 선정되고 테밀린 원전 2기 사업 우선협상권을 얻어냈다. 아랍에미리트·이집트·폴란드·루마니아에서는 원전 관련 한국 기업의 투자 유치, 원전 개발계획 수립 협력, 기자재 공급 등의 성과를 내기도 했다. 하지만 탄핵 정국 속에 대형 원전 3기를 새로 짓고, 소형모듈원전(SMR) 개발을 골자로 한 윤석열 정부의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이 오리무중이다.
국회 보고만 남은 상황에서 비상계엄 사태가 터지면서 결국 해를 넘겼다. 산업계에서는 민주당이 정국 주도권을 잡은 만큼 11차 전기본에 대한 전면 재검토 가능성도 내다본다. 재생에너지 비율이 낮다며 일부 시민단체의 반발도 이어지고 있다. 만약 재검토가 진행된다면 신규 원전 건설이 백지화될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원전 수출에도 힘이 빠질 수밖에 없다.
세계원자력협회에 따르면 2030년까지 전 세계에서 160여 기의 원전 건설이 계획돼 있다. 한국은 건설 역량, 원자로 기술, 가격 경쟁력 등을 종합할 때 이 중 약 70기를 수주할 실력과 경험이 있다고 평가받고 있다. 또 수출 역량이 있는 국가는 사실상 러시아·일본·프랑스·미국·중국·한국 정도여서 수출 잠재력이 높다는 평가다. 정동욱 중앙대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는 “기술적으로나 경험적으로 경쟁국에 뒤지지 않기 때문에 정부의 지원이 더해지면 수주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고 말했다.
여러 악재 속에 주춤했던 방산 수출 역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이 국방비 지출 비중을 늘리는 데다 중동 지역에서도 지정학적 위기가 커지며 방산 수요가 늘어나서다. 영국 국방 싱크탱크인 제인스인포메이션에 따르면 지난해 세계 방위비 지출 총액은 2조4480억달러(약 3582조원)로 1년 전보다 4.2% 늘어나며 역대 최대치를 찍었다.
특히 루마니아가 신형 전차 도입을 위해 국내 업체와 협상 중이고, 중동과 유럽 일부 국가에선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의 수리온 헬기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여기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한국에 군함을 포함한 조선업 협력을 요청했다. 하지만 방산 역시 국가 간 신뢰가 중요한 분야다. 국내 방산 제품 구매에 적극적 의향을 보였던 폴란드가 국내 정치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는 게 단적인 예다.
폴란드는 한국의 대표적 방산 파트너 국가로,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이후 군사력 증강을 위해 한국과 협력을 강화해 왔다. 이런 가운데 비상계엄과 탄핵 사태가 터져 적잖이 당황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국내 방산 업계 관계자는 “정부 간 거래인 방위산업 특성상 정치적 혼란이 추가 계약 체결과 무기 인도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며 “방산 거래는 양측 정부 사이의 교류와 신뢰가 매우 중요한 만큼 주도권을 쥔 국회가 적극 지원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