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굴은 원래 자연적으로 생긴 텅 빈 곳(동공)을 뜻한다. 최근에는 학술적 정의에서 벗어나 광물을 캐던 갱도도 동굴로 부르고 있다.
한여름 퍼붓는 장대비도, 지글지글 태양도 피하는 곳. 어둠의 자리에 빛이 들어가면서 별천지가 된 곳. 동굴이다. 중앙SUNDAY가 그곳에 빠져봤다. 동굴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도 펼쳐진다.
“못 갑니다.” 섭씨 33도로 치솟던 주말. 여성 넷이 택시에 후다닥 올라 “광명동굴이요”를 외쳤다. 개인택시 기사 임모(57)씨가 화들짝 놀라 나온 말이었단다. 한여름에 주말. 성수기를 맞은 광명동굴로 가는 길은 진득한 참을성이 필요하다. 동굴에서 2㎞ 떨어진 서독터널부터 서 있다시피 한 차들의 내비게이션에는 온통 ‘광명동굴’이 목적지로 찍혀 있다고 해도 무방하다.
광명동굴의 인생유전이 기막히다. 본명은 가학광산. 1912년부터 금·은·동·아연 등을 토해내다가 쓰임새를 다하고는 1972년부터는 새우젓 창고로 지냈다. 2010년 광명시가 본격 개발에 나서 관광자원으로 탈바꿈했다.
동굴 입구로 향하는 오르막 막바지. 여모(72·고양시)씨나 유모(28·광명시)씨처럼 사람들은 미리 짠 듯이 “어, 시원하다”는 말을 자동으로 내뱉는다. ‘어’ 말고도 ‘와’ ‘오’ 등 감탄사는 어떤 형태로든 포함된다. 이렇게 입구부터 찬바람을 쏟아내는 동굴 안의 기온은 12도(섭씨).
동굴 안에 공연장도 있다. ‘예술의 전당’이라고 부르는데, 광명시립합창단이 노래를 불렀고, 북콘서트가 열리기도 했다. ‘미디어 파사드’ 등 곳곳에 빛의 예술이 경이롭다. 여씨와 유씨는 모두 지난달 동굴을 찾은 뒤 친구를 데리고 다시 왔단다. 이 같은 재방문과 확산은 관광자원의 장수 비결이다.
광명시는 광명동굴이 개장한 2011년 이전까지 한 해 관광객이 3000여 명만 찾아 경기도 31개 시·군 중 꼴찌였다. 그러다가 광명동굴 하나로 140만 명 넘게 끌어들이게 됐으니, 노다지가 따로 없다. ‘광명의 기적’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사람들이 막히는 길 위에서 입을 앙다물고 참으며 가는 이유가 있었다.
“그것 봐라. 얼마나 유명해졌으면 외국인도 여길 오니.” 아빠가 말하며 슬쩍 눈길 주는 쪽을 쳐다봤다.
나는 논산 시민 신지현(24). 푹푹 찌는 여름날. 온 가족이 ‘시원한 곳’에 가자고 해서 친구들이 ‘핫 플레이스’라고 추천해준 반야사로 왔다. 고 이선균이 나오는 영화 ‘임금님의 사건수첩’을 여기서 찍었다지. 그런데 절에는 대웅전만 덩그러니 하나. 공간에 뭔가 채워주고 싶은 마음이 일 정도로 허전한데, 반전은 항상 뒤에 벌어지는 법. 바로 대웅전 뒤다.
동굴이 두 개다. 하나는 협곡동굴. 다른 하나는 동굴법당. 반야사 터는 일제강점기부터 석회석을 캐던 곳이었다. 파고 파다가 협곡과 동굴이 만들어졌단다.
협곡에는 ‘낙석 위험’이라는 경고문이 붙었다. 머리로 돌이 떨어진다? 뭐지, 이 서늘한 느낌은…. 협곡 안쪽 끝 또 다른 동굴 앞에서 밖을 향해 ‘인생 샷’을 건져야 하는데…. 동굴법당으로 내려서는 계단부터 소스라칠 정도로 바람이 쏟아져 나왔다. 엄마가 얇은 옷을 하나 더 걸쳤다. 온도계 앱으로 재보니 12도. 엄마와 함께 동굴법당의 천수천안관세음보살에게 절을 드리고 나오자 ‘수상한’ 통을 발견했다. 동굴법당 공기가 얼마나 시원했으면 스님은 그 통으로 끌어다가 대웅전 에어컨 대신 쓸까.
외국인까지 찾아오다니. 여기 정말 핫플이네.
하이. 난 호주에서 온 요리사, 톰(28)이라고 해요. 한국에 오려고 직장을 관뒀어요. 서울·대구·안동·부산 그리고 여기 울진. 여행 기간 5개월 중 3개월째가 되는 날, 성류굴에 왔어요. 총 길이 870m 중 개방된 270m를 찍고 되돌아오다가 기자의 레이더망에 걸렸어요.
입구에서 안전모를 줘요. 왜 주나 싶었는데, 석회가 빚어낸 자연 동굴이라 포복을 하고 갈 정도로 좁고 낮은 구간이 많아요. 그런데 그 입구 오른쪽을 자세히 봐야 해요. 글자(한자)가 새겨져 있어요. 안에도 그런 글자들이 많답니다. 성류굴의 묘미는 여기죠. (톰이 말한 ‘글자’는 신라 진흥왕이 행차했음을 알리는 내용, 신라 고관과 화랑들과 고려·조선의 벼슬아치 등이 ‘왔다 갔음’을 새긴 명문(銘文)들을 말한다.)
굴 안에는 광장이 12곳입니다. 호수 5곳도 있는데, 그 안에 어떻게 종유석과 석순이 자랐을까요. 빙하기 때 자랐다가, 이후 이 동굴 앞을 흐르는 왕피천의 물이 들어온 걸까요. 호수에는 손바닥만한 물고기도 있더군요. 지질·생태·문화·역사적으로 굉장히 흥미진진한 곳입니다. 그래서 얼마 전에는 세계지질공원 지정을 위한 유네스코 현장 실사단이 왔다 갔다지요.
평균 온도 14도인 굴을 나올까말까 망설였어요. 굴에 들어갈 때는 햇볕이 사납게 내리쬐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밖에는 장대비가 쏟아지고 있네요. 정자에서 비를 피하며 편의점 김밥 한 줄 먹고 다시 한국 구석구석을 찾아갑니다. 굿바이 미스터 킴. (톰은 양양·속초로 북상한 뒤 대각선 아래 방향인 군산·목포로 향한다고 했다.)
사람들은 우릴 ‘포 킴’이라고 불러. 우리 넷 모두 김씨이기 때문. 구리 인창초등학교 55회 동기동창이지. 내년 환갑 앞두고 놀아보자꾸나 찾아온 곳이 여기 활옥동굴.
떡하니 입 벌린 동굴입구부터 심상치 않았어. 울 엄마 표현을 빌리자면, 찬바람이 ‘허벌나게’ 쏟아져 나와. 오호라, 동굴 들어서자마자 자리한 상점에서 담요를 파는 이유가 다 있었구먼. 거기에다가 먼저 들어갔다가 나오는 분들 중에 옆 사람이 “괜찮아? 추운데 고생했어”라는 위로를 건네다니. 한여름 낮, 진기한 장면일세. 아니나 달라. 굴 안이 11도까지 떨어진다는 ‘경고문’도 있으니, 바깥 온도와 20도 이상 차이.
활옥동굴은 백옥·활석·백운석 등을 캐던 곳인데 많은 광산이 그렇듯, 일제강점기에 문을 열었다는군. 2019년 각종 빛 조형물과 와인바·공연장·건강시설 등을 만들고 관광자원으로 탈바꿈. 길이가 57km(비공식 87km)로 어마어마한데, 개방된 2.5㎞도 다른 동굴에 비해 긴 편이구먼. 활옥동굴의 백미는 역시 투명 카약을 몰고 암반수가 만들어낸 호수를 한 바퀴 도는 것인데, 운전하기가 영 쉽지 않은데.
모르긴 몰라도, 광명동굴과 묘한 경쟁구도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동굴 밖으로 나서니 다시 폭염. 태양을 잘도 피했었네. 이래서인지 나오면서 담요 환불 요청을 하는 분들이 많다는데. 하지만 환불이 안 돼.
오늘도 새는 어김없이 오후 5시경에 동굴로 돌아왔다. 용인 8경 중 한 곳인 조비산(295m). 이곳에는 먼저 클라이밍 명소가 됐고, 최근에 백패킹 명소 타이틀이 더해졌다. 그래서 낮과 밤의 주인공이 다르다. 낮에는 클라이머가, 밤에는 백패커다. 새가 돌아오는 때가 선수 교체 시간이다. 오후 5시에 클라이머들은 짐을 싸고, 백패커들은 짐을 푼다.
100여 년 전 규석을 캐느라 만들어진 동굴 안. 텐트에서 슬며시 나오는 빛이 여느 관광지 동굴 빛 조형물 못지않다. 백패커 이모(28·화성시)씨는 “비가 퍼부어도, 이른 아침 햇볕이 쏟아져도 동굴이 다 막아줘요”라고 말했다.
오전 8시. 새가 동굴에서 나갔다. 다시 선수 교체 시간이다. 백패커들은 짐을 싸 내려가고, 올라온 클라이머들은 짐을 푼다. 클라이머 이선영(57)씨는 “오늘은 깨끗하네요. 전에는 등반 루트 앞에 누가 큰일을 치렀더라고요”며 웃었다.
어느새 새가 다시 들어왔다. 백패커들이 텐트를 배낭에서 꺼내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