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혹의 무희 마타 하리, 생계 위해 독·프 사이 위험한 곡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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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전선, 정보전쟁] 미인계 스파이전 〈상〉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7년 10월 15일 프랑스 파리 뱅센 근처 군사훈련장에서 새벽의 정적을 깨는 총성이 울렸다. 미인계 스파이의 대명사 마타 하리의 사형이 집행되는 총성이었다. 프랑스 군사법원이 독일과 통모해 스파이행위를 저질렀다며 사형을 선고한지 3개월만에 마타 하리는 41세로 짧은 삶을 끝냈다.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고위인사들과 사랑은 나누었지만 정보기관의 스파이는 아니었다”고 주장하며 안대와 포박을 거부했다. 억울하다는 항변이었다. 실제로 당시 재판기록과 비밀해제된 정보기관 보고서 등을 보면 사형에 처할 정도의 심각한 스파이 행위 증거를 발견할 수 없는 것 또한 사실이다.

독일이 역정보 흘려 체포되게 만들어
20세기 초반 신비스럽고 우아한 매력으로 유럽을 뒤흔들었던 마타 하리. 수많은 영화와 뮤지컬·소설 등의 모티브가 됐다. [중앙포토]
마타 하리는 네덜란드 태생으로 본명은 마그레타 젤러였다. 19세에 결혼해 남편을 따라 네덜란드령 동인도(지금의 인도네시아)로 갔으나 7년 만에 이혼하고 1904년 파리로 돌아왔다. 마타 하리는 인도네시아에서 배운 자바춤으로 무희 생활을 시작했다. 생계를 위해서였다. 마타 하리라는 이름도 이때의 예명이다. 자바춤에 기초한 안무 형식의 스트립쇼가 신비스럽고 우아하다는 평가를 받으며 마타 하리는 유럽 사교계에서 큰 화제가 되었다. 검은 머리와 올리브색 피부 등 이국적이고 관능적인 매력은 일약 그를 유럽 상류층 인사들이 꼭 한번 만나고 싶어 하는 사교계의 혜성으로 만들었다.

그러자 유럽 정보기관들이 주목하기 시작했다. 상류층과 폭넓은 인맥을 가진 마타 하리를 이용할 경우 고급 정보를 수집할 수 있으리라는 계산 때문이었다. 먼저 독일이 나섰다. 1915년 독일 군정보국은 거액의 선금을 제시하며 마타 하리에게 스파이 활동을 제안했다. 1차 대전 중 공연축소로 경제사정이 궁해진 마타 하리가 이를 수락하자 독일은 스파이 기본교육만 마친 후 현장에 투입했다. 프랑스 고위층을 포섭해 군사, 정치정보를 수집하는 것이 주요임무였다. H-21이라는 암호도 부여했다. 마타 하리의 인생이 무희에서 국제스파이전으로 휩쓸려가는 위험한 게임이 시작됐다.

프랑스로 돌아온 마타 하리는 프랑스 최고 사령관인 모건 장군을 자기 집 댄스파티에 자주 초대해 깊은 연인 관계로 발전시켰다. 그리고 계획대로 이 관계를 이용해 프랑스 파리 방어를 위한 연합군의 병력 배치 등 군사정보를 입수해 독일에 넘겼다. 1916년에는 프랑스 정보당국도 마타 하리에게 100만 프랑을 주면서 독일에 대한 정보수집을 제안했다. 명백한 이중 스파이로 매우 위험한 게임이었으나 스파이에 대한 이해가 깊지 않은 마타 하리는 큰 고민없이 수락했다. 그러나 이를 눈치챈 독일 정보당국이 마타 하리가 독일 스파이라는 역정보를 흘려 프랑스 당국에 체포되도록 만들었다.

1917년 10월 프랑스 신문이 보도한 마타 하리 총살형 소식. [중앙포토]
이로 인해 마타 하리의 스파이 활동은 불과 2년만에 끝났다. 스파이 활동 기간은 짧았지만 형량은 최고형이었다. 프랑스 군사법원은 마타 하리의 행위가 연합군 5만 명을 희생시킬 수 있는 심각한 스파이 범죄라며 사형을 선고했다. 그리고 스파이임을 입증하는 증거로 화장용 도구로 위장한 비밀 잉크, 독일로부터 돈을 받은 은행 기록, 악보를 활용한 암호책 등을 제시했다. 그렇지만 사형 선고에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못할 정도로 중대한 간첩행위를 저질렀다는 직접적인 증거는 제시하지 못했다. 그런 까닭에 당시 독일에 연전연패해 궁지에 몰린 프랑스가 이를 타개하기 위해 마타 하리를 정치적 희생양으로 삼았다는 주장이 지금까지도 꾸준히 나온다. 1999년 비밀 해제된 영국 정보당국의 자료에는 “마타 하리가 중요한 군사정보를 독일에 제공했다는 증거는 발견하지 못했다”고 적혀 있다. 하지만 세상은 스파이와 무희의 경계인으로 살아온 마타 하리의 진실을 조명하기보다는 성적 관능미와 스파이라는 2개의 흥미적 요소를 버무려 연극, 영화 등 문화 상품화하는데 더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마타 하리보다는 덜 유명하지만 활약상에서는 조금도 뒤처지지 않았던 여성 스파이로는 미국 태생의 에이미 소프를 들 수 있다. 영화배우 뺨치는 미모를 갖춘 것은 공통점이었지만, 소프는 스파이 활동의 위험과 모험을 적극적으로 즐긴 타고난 스파이였다는 점에서 마타 하리와 달랐다. 소프의 스파이 본성을 세상 밖으로 끌어낸 것은 영국 비밀정보국(MI6)이었다. 1938년 소프가 영국 외교관 남편을 따라 폴란드 바르샤바 사교계에 진출해 뛰어난 사교성과 미모로 고급정보를 수집해오자, MI6는 소프야말로 진정한 마타 하리라며 그녀를 특채했다.

현대전 미인계, 팀 만들어 조직적 운영
영국 MI6 요원으로 2차 세계대전 때 연합군 승리를 도운 에이미 소프. [중앙포토]
정식 스파이가 된 소프는 2차 세계대전을 맞아 마음껏 능력을 발휘했다. MI6의 지시로 미국에 건너간 소프는 나치독일 반격을 위한 미·영 연합군의 북아프리카 상륙작전 즉 횃불작전를 지원하라는 임무를 받았다. 당시 친독(親獨) 국가인 이탈리아와 비시 정권하에 있던 프랑스의 주미 대사관을 통해 해군 암호정보를 빼내는 것이 핵심 임무였다.

언론인으로 위장해 워싱턴 외교가에 침투한 소프는 먼저 이탈리아 대사관의 알베르토 라이스 무관을 유혹했다. 소프는 자신을 이혼녀라고 밝혀 라이스의 관심을 끈 뒤 단계적으로 유혹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60세의 라이스는 물불 가리지 않고 소프에게 구애했다. 자신에게 푹 빠진 것을 확인한 소프는 대담하게 이탈리아 해군 암호를 원한다고 단도직입적으로 요구했다. 이에 라이스가 대사관내 비밀암호 입수 방법을 상세히 알려줘 손쉽게 확보했다.

비시 프랑스의 군사정보는 프랑스 대사관의 언론 담당관인 샤를 브루스를 이용해 입수했다. 워싱턴 사교계에서 이미 일면식이 있던 두 사람은 쉽게 가까워졌고 날이 갈수록 서로 사랑하고 있음을 말없이 확인할 수 있었다. 브루스는 소프의 정체를 알게 된 이후에도 소프를 도와주기 위해 자발적으로 정보를 제공했다.

소프가 입수한 정보들은 연합군의 횃불작전 성공에 크게 기여했다. 지중해와 북아프리카를 장악하고 있던 이탈리아와 비시 프랑스의 군사 움직임을 훤히 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횃불작전 성공으로 연합국이 유럽으로 진격할 수 있는 교두보를 마련할 수 있었다. 저명한 역사학자 데이비드 칸은 『암호해독의 역사 (The Codebreakers)』라는 저술에서 소프의 정보활동이 연합국 승리에 큰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정보전쟁
소프는 2차 대전이 끝난 뒤인 1950년 브루스와 정식 결혼해 정보계를 완전히 은퇴했다. 그리고 회고록 『그림자 없는 스파이(Cast No Shadow)』를 통해 미인계 작전 과정에서 자신도 브루스를 진정으로 사랑했으나 공적 임무 수행 중이라 사랑을 고백할 수 없었다고 솔직히 밝혔다. 결과적으로 소프는 스파이 임무와 사랑을 모두 성공시켰다. 마타하리와 다른 점이다.

남녀의 사랑은 천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 인간에게 행복을 주는 에너지인 동시에 생명을 잉태해 인류 역사를 잇게 하는 숭고한 얼굴을 가지고 있다. 반면, 한 사람의 인생을 파멸로 몰거나 한 나라의 국운을 기울게 할 수도 있다. 그래서 서양에서는 팜므 파탈(Femme Fatale), 동양에서는 경국지색(傾國之色)이라는 말이 나왔다. 정보와 연결되면 더 복잡해진다. 고결한 성(性)을 정보수단으로 이용하는데 따른 윤리적 비난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미인계 정보전의 실제 효과도 과대평가되었다는 비판이 있다. 『정보의 역사 (A History of Intelligence)』를 저술한 크리스토퍼 앤드류 캠브리지대 교수의 논지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정보현장에서는 다르게 접근한다. 미인계 정보전은 인간의 원초적 본능을 이용해 상대의 행동을 조종하거나 통제할 수 있으므로 가성비 높은 정보수단으로 생각한다. 현대의 미인계 정보전은 여성의 개인역량에 의존하던 과거 방식과 달리 팀을 구성해 조직적으로 운영하는 등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특히 윤리적 제약이 상대적으로 약한 권위주의 국가에서 미인계 정보전이 증가하는 추세다. 미인계 정보전은 은밀한 사생활 영역에서 이루어져 적발해 내기가 대단히 어렵다는 특징이 있다. 미국, 영국, 독일, 호주 등 자유 진영의 정보기관들이 러시아, 중국 등 권위주의 국가들의 미인계 정보전 증가를 계속 경고하는 이유다. 〈계속〉

최성규 고려대 연구교수. 국가정보원에서 장기간 근무하며 국제안보 분야에 종사했다. 퇴직 후 국내 최초로 비밀 정보활동의 법적 규범을 규명한 논문으로 고려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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