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수록 좋다? 크기에 대한 거의 모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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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즈, 세상은 크기로 만들어졌다
사이즈, 세상은 크기로 만들어졌다
바츨라프 스밀 지음
이한음 옮김
김영사

크기에 대한 우리의 일상적 판단은 감각을 통해 빠르게 진행된다. 이 책이 예로 든 것처럼 일본 비즈니스호텔의 방이 작다는 걸 알아차리거나, 내 앞에 줄을 선 사람을 비만으로 분류하는 것은 굳이 자로 재거나 체질량 지수를 계산하지 않고도 단숨에 이뤄진다. 물론 이런 감각이 정확한 건 아니다. 밤하늘에 높이 뜬 달보다 지표면에 가까운 달이 더 크게 보이는 것은 착시의 쉬운 예. 고대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이 직각과 직선을 구현한 듯 보이는 것은 사실상 착시를 감안한 건축적 기법을 적용한 결과로 여겨진다.

지각·착시·측정을 비롯해 이 책은 크기에 대한 온갖 이야기가 들려준다. 책 첫머리에 지은이는 큰 것에 대한 우리의 선호부터 지적한다. 최신 SUV 차량의 중량이 과거의 자동차보다 얼마나 늘었는지, 미국의 평균 주택 규모가 얼마나 커졌는지 등을 구체적 수치로 전하면서다. 또 다른 예로, 관광객을 불러 모으는 기념물은 대개 크고 높고 거대한 위용을 자랑한다. 기업이 커지고 경제가 성장하는 것은 흔히 당연시하는 목표다.

제임스 길레이의 1803년 판화. 거인국 브로딩낵 왕이 걸리버를 손에 들고 있다. [사진 김영사]
하지만 거대 유조선이나 항공기에서 보듯 비용과 편익 등은 크기에 한계를 제시한다. 도구와 가구 등은 인간 척도에 맞춰야 하는 영역이다. 이런 인체공학과 비용 사이에서 비행기 이코노미 좌석의 앞뒤 간격은 꾸준히 줄어들었다. 지은이의 예시는 비례·대칭·비대칭을 설명할 때는 미술과 현대건축까지 아우른다. 제프 쿤스가 만든 12m 높이의 강아지 조형물에서 보듯 기대와 맥락을 넘어선 크기는 종종 놀라움을 안겨준다. 지은이는 이른바 ‘황금비’의 허실도 지적한다. 그가 드는 예 중에는 한국의 미스코리아 대회 출전자들과 일반 여성들의 얼굴을 분석해보니, 양쪽 다 황금비에 들어맞지 않더라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이보다 좀 더 어려운 주제로 스케일링의 과학, 생물의 대사, 정규분포와 비대칭분포 등도 다뤄진다. 세계적 명성의 석학이자 환경과학자·경제사학자로, 통계와 수치에 능숙한 지은이의 면모는 『걸리버 여행기』의 분석에도 드러난다. 걸리버가 다녀온 소인국 릴리퍼트와 거인국 브로딩낵은 모두 상상의 산물이지만, 지은이는 소설 안팎의 정보를 토대로 소인국과 거인국 사람들의 평균 키와 체중을 추정하고 이에 따른 소설 속 설정의 몇몇 오류를 파고든다.

걸리버가 소인국 사람들보다 과연 몇 배나 많은 음식이 필요한지도 그중 하나. 지은이는 포유류의 대사가 체중에 비례하지 않는다는 사실과 함께 걸리버가 걱정한 것과 달리 소인국 사람 1728명분이 아니라 40명분의 음식이면 충분하다는 계산을 내놓는다. 나아가 생물의 대사 지수를 체중의 2/3제곱, 혹은 3/4제곱으로 제시한 연구 결과가 대두한 역사까지 전한다. 생물의 대사는 한편으로 도시의 대사, 다시 말해 이산화탄소 배출량에서 확인되는 에너지 흐름의 효율은 대도시라고 작은 도시보다 더 높지 않다는 지은이의 지적으로 연결된다. 정규분포와 비대칭분포에 대한 설명 역시 부의 편중과 경제적 불평등 문제, 비대칭분포의 극단에 자리하는 코로나19 같은 유행병에 대한 얘기로까지 이어진다.

책의 두께는 백과사전이 아니라 일반 단행본인데, 문장마다 빼곡하게 담긴 정보와 지식은 백과사전을 떠올리게 한다. 백과사전의 주제를 한 줄로 요약할 수는 없는 노릇. 이 책 역시 전체를 관통하는 메시지를 몇 문장으로 짚어낼 수 있으리라는 기대는 안 하는 게 낫겠다. 지은이는 “크기에 관한 지혜를 단 몇 가지 결론으로 압축해서 전달할 야심 찬 종합을 기대한 독자라면 좀 실망할지도 모르겠다”며 “크기는 그런 식으로 다룰 수 없기 때문”이라고 책 말미에 적었다. 이와 함께 책의 핵심적 내용을 1000자, 100자, 10자, 1자로 요약해 놓았다. 물론 읽는 재미라면 요약이 아니라 각 쪽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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