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회 해산 승부수 마크롱, 29세 극우총리와 ‘동거’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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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우 열풍 ‘프랑스 정치’ 지각변동 전야
지난 20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반유대주의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관련 내용을 적은 플래카드를 든 채 시위를 벌이고 있다. 12세 유대인 소녀 집단 강간이 유대인에 대한 증오범죄로 드러나면서 오는 30일 치러지는 프랑스 총선에서 뜨거운 쟁점이 되고 있다. [AP=연합뉴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조기총선 승부수는 과연 통할까. 마크롱 대통령은 프랑스에서 9일 치러진 유럽의회 선거에서 극우 국민연합(RN)이 31.37%의 지지율로 81석 중 30석을 얻어 제1당이 되고, 자신의 르네상스는 14.60%(13석)에 그치자 그날로 하원을 해산했다.

마크롱의 결정은 과감했지만, 민심이 받쳐주지 않는다. 최근 여론조사를 종합하면 국민연합이 29.5~35%로 유럽의회 선거 이후에도 계속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주목되는 점은 사회당·불복하는프랑스·생태주의당·공산당 등이 이번 선거를 위해 연합한 신인민전선(NFP)이 25~28.5%의 지지율을 얻고 있다는 사실이다.

마크롱의 르네상스와 민주운동 등 중도 자유주의 정당의 선거연합체인 앙상블은 17~20%로 3위에 머물고 있다. 우파 공화당이 6.5~9%다. 의회 해산 3주 만인 이달 30일 1차 투표와 다음 달 7일 결선투표를 치르는 급박한 일정 속에 이변이 없는 한 마크롱의 중도파가 역전할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이번 조기 총선에서 국민연합이 제1당을 차지할 경우 프랑스 정치는 지각변동이 불가피해진다. 총리 임면권을 가진 마크롱은 극우에 ‘오텔 드마티뇽(Hôtel de Matignon· 총리관저)’을 내주고 ‘코아비타시옹(Cohabitation·동거정부)’을 이루게 된다. 다수를 차지한 정당이나 연합의 지지를 받는 인물을 총리로 임명하는 게 관례이기 때문이다.

마크롱(左), 바르델라(右)
코아비타시옹 정부가 들어서면 2022년 재선된 마크롱은 2027년 5월까지 ‘엘리제궁(Palais de l’ Élysee·대통령관저)’을 지키면서 극우 세력과 협치·공존을 추구해야 한다. 정치적으로 불편한 상황을 피하기 어렵다. 의욕적으로 추진했던 연금·노동 등 각종 개혁입법도 좌초할 수밖에 없다.

이민·무역·유럽통합은 물론 우크라이나·러시아와의 관계도 수정이 불가피해질 수 있다. 극우 세력이 애국주의·민족주의·전통주의를 강조하고, 성 소수자에게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정책에 심정적으로 동조하기 때문이다.

극우 세력도 정부를 맡게 되면, 책임 있는 정치세력으로서 자신들의 주장을 현실에 맞춰야 한다. 정책과 정부 운영 능력으로 국민 평가를 받게 되기 때문이다.

이런 극우 세력의 간판 정치인은 조르당 바르델라 국민연합 대표다. 1995년생으로 29세다. 2022년 10월 마린 르펜에 이어 국민연합의 대표를 맡았다. 2017년부터 대변인과 부대표를 맡으며 지도자로 성장 과정을 밟았다. 젊고 언변이 좋으며, 부드럽고 합리적이며, 겸손하게 대중의 요구에 귀를 기울이는 청년 정치인의 이미지로 각인됐다. 세상을 향해 분노에 가득 찬 혐오와 증오의 발언을 내뱉을 것 같은 극우의 기존 이미지를 탈피하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다.

바르델라는 여러모로 개성 있는 정치인이다. 극우 정치인으로는 독특하게도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는 60년대 이탈리아 서북부에서 이주했다. 친가도 할아버지가 1930년대 북아프리카 알제리에서 지중해를 건너왔다.

또 주목받는 게 바르델라의 사생활이다. 2017~2018년 케리드웬 샤티용과 사귀다 헤어지고 2022년부터 놀웬 올리비에와 살고 있는데, 모두 유력 극우 정치인의 딸이다. 케리드웬의 아버지 프레데릭은 국민연합 전신인 국민전선(FN)을 창당한 장마리 르펜의 고문이자 후원자이다. 놀웬은 장마리 르펜의 장녀인 마리카롤린 르펜의 딸이다. 극우정당 창설자의 외손녀이자 현 실세인 마린 르펜의 조카다. 바르델라는 르펜 집안의 ‘사위’ 격인 셈이다.

극우 정치인 집안 출신과 연속해서 사귀는 바르델라를 두고 상류층 여성과 사귀면서 신분을 상승시키려 했던 스탕달 소설 『적과 흑』의 주인공 쥘리앙 소렐을 떠올리는 사람도 적지 않다. 하지만 바르델라는 르펜 가문의 일원이라고 해서 정치 활동이 폄하돼선 안 된다는 입장이다.

프랑스 극우 열풍의 원인은 무엇일까. 첫째, 경제난과 경제적 불평등에 따른 소외층의 분노다. 구직자·실업자·임시직 등 경제적 소외계층이 정치인·관료 등 정치적 엘리트층이 자신들의 이익을 반영하지도, 심지어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도 않자 포퓰리즘의 극우 정치로 발길을 돌렸다는 지적이다. 프랑스 정치가 기존 ‘좌·우의 힘겨루기’에서 ‘엘리트와 민중의 대결’로 전환되고 있다는 의미다. 사회정체성 이론에 따르면 현재 극우 지지자들은 프랑스 특유의 톨레랑스(관용) 대신 편파적·감정적 편향을 바탕으로 세상을 ‘우리(Us)’와 ‘그들(Them)’로 나누는 부족성에 함몰되고 있다.

둘째, 유럽연합(EU)의 통합 심화로 유발된 비주류 소외계층의 반발이다. 주류세력이 도입한 이민수용·개방·세계화·관용 등 새 규범은 실업자·청년층·경제약자 등에겐 거북하고 부담스러웠을 수 있다. 이들에게 민족주의·국가주의·애국주의·보호무역주의를 내세우며 ‘영광스러웠던 과거로 돌아가자’고 외치는 극우의 전통주의가 먹혔을 수 있다.

셋째, 이념·대의·정책을 바탕으로 삼았던 전후 유럽의 정당 민주주의가 쇠퇴하고 개인 미디어를 바탕으로 ‘나의 이익’을 소중히 여기는 미디어 민주주의 시대가 열린 것도 이유로 꼽힌다. 이에 맞춰 극우 세력은 장기간에 걸친 정치 마케팅으로 ‘홀로코스트를 옹호하는 뿔 달린 괴물’이 아니라 ‘내 말을 들어주는 이웃’으로 이미지를 개선해 왔다.

이런 상황에서 치러지는 총선에서 누가 다수당을 차지하더라도 복지·노동·산업 분야의 마크롱 개혁은 속도 조절과 새판짜기가 불가피하다. ‘더 일하고 덜 받는’ 연금개혁은 중·노년층을 자극하고, 일하기를 압박하는 실업급여 개혁은 청년층의 불만을 불러 정치적 불안으로 이어질 수 있어서다. 하지만 이를 손보지 않으면 ‘혁신 정치인’ 마크롱은 존재 의미를 잃을 수 있다.

채인택 전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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