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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SUNDAY는 원영씨 같은 자살 사별자를 만났다. 전세사기 피해자와 재난 현장 경험자, 학교생활 부적응 청소년과도 얘기를 나눴다. 우울·불안·스트레스·공황장애·번아웃
10만 명당 자살 25.2명, OECD의 2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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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 사별자는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들과 이별한 사람들을 일컫는다. 이별이란 단어가 상징하듯 돈독한 이의 죽음으로 일상생활에 영향을 받는 친구와 연인까지 포함될 수 있기 때문에 유가족보다 넓은 범위다. 이들은 자살 사별을 겪지 않은 사람에 비해 우울증에 걸릴 위험은 7배, 자살 위험은 8.3배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 대해 원영씨는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죄책감을 갖는 대신 ‘애도’를 하는 게 중요하더라”며 자신의 경험담을 전했다.
지난 12일 만난 전세사기 피해자 정태운(31)씨도 자책을 거듭했다. 억울함을 호소하기도 했다. 그는 “분노 조절이 안 돼 울고 욕하고 물건도 수없이 집어던졌다”고 심경을 토로했다. 태운씨는 전세사기 피해를 입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A씨의 문자 메시지에 답장을 못한 데 대해서도 “죄책감이 든다”고 자책했다. 임상심리전문가 그룹 마인드웍스의 고선규 대표는 “자살예방교육에선 ‘자살 징후’를 포착해야 한다고 강조하는데, 이는 자살 사별자들로 하여금 ‘나는 왜 몰랐을까’라는 죄책감을 갖게 할 수 있다”며 “‘자살’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건 누군가에게 또 다른 상처를 남길 수 있는 만큼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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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해 전세사기 피해자 심리 상담을 지원하는 이지현 한국심리학회 재난심리위원은 “이들에겐 우울과 불안·분노·자책 등 정서적 어려움이 복합적으로 나타난다”며 “전쟁이나 국가적 재난 때 겪는 생존을 위협할 정도의 트라우마 반응을 보이는 분들도 적잖다”고 전했다. 권준수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스트레스·불안·우울 등 정신건강 증상의 경계선은 없다”며 “언제든 증상이 질병으로 악화될 수 있는 만큼 미리 대처하는 데 사회적 역량을 집중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아이 물건은 어느 것 하나 못 건드리고 있어요.” 2022년 10월 발생한 이태원 참사는 국가적 재난으로 꼽힌다. 지난 14일 만난 김자영(가명·63)씨는 아들 경원(가명)씨를 이태원에서 잃었다. 경원씨 신발은 그날 이후 현관문 한 자리를 계속 지키고 있다. 자영씨가 자신도 아프다는 걸 알게 된 건 8㎏이나 빠진 뒤였다. 재난과 참사로 심리적 외상을 입은 이들은 정작 당시엔 이를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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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참사에 따른 죄책감과 우울증은 고통스럽지만 누구나 겪게 되는 정상적인 반응이란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진단이다. 그럼에도 트라우마를 겪는 피해자들이 입을 다물 수밖에 없는 이유는 주위의 따가운 시선 탓이다. 이태원 참사 당시 “그러게. 거길 왜 가”라는 반응이 대표적이다. 백종우 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인명 피해 사건 상위 10위가 전부 인재인 곳이 한국”이라며 “그만큼 책임 소재가 사람으로 향하는 경우가 많아 진정한 사회적 애도가 뒤따르지 못하다 보니 정신적 치유가 더 힘든 것”이라고 진단했다.
재난 현장을 찾아가는 이들은 어떨까. 지난해 7월 경기도의 한 소방서에 출동 신호가 울렸다. 소방대원 10년차인 김모(42) 부장이 현장에 도착했을 땐 5세 여자아이가 교통사고로 이미 숨진 상태였다. 김씨는 순간 자신의 아이가 생각났고, 그날 이후 ‘내가 없을 때 아이가 죽을 수도 있다’는 강박감과 불안감에 시달리게 됐다.
소방동료상담소인 ‘소담센터’ 이상준 소장은 “소방공무원 중에서도 구급대원 3~5년차와 중간 관리직인 40~50대의 스트레스가 특히 심하다”며 “직업적 소명이란 이유로 희생을 당연시하다 보니 정작 자신의 마음 돌봄엔 무뎌지기 십상”이라고 말했다. ‘2023년 전국 소방공무원 마음건강 설문 결과’에 따르면 소방공무원들은 외상후 스트레스장애(PTSD)와 우울증(12.8%) 못지않게 수면 장애(27.2%)와 문제성 음주(26.4%) 문제에 시달리는 등 정신건강이 위험수위에 달해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불안감 틈타 사이비 종교 등 기승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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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잠들지 않았다. 서정일 전남 광양교육지원청 Wee센터 상담사는 새벽마다 문자를 받는다. 김지우(가명·15)·박선영(가명·16)양처럼 어린 학생들이 ‘옥상에 있다’는 식의 자살 암시 메시지를 보낸다고 했다. 지우와 선영이는 청소년 가장이다. 서 상담사는 “부모로부터 일찍이 버려진 데다 보호자나 조부모의 돌봄 손길도 부족해지면 사춘기 학생들은 자기 비관이 심해지기 쉽다”며 “이런 아이들처럼 가정의 돌봄 체계가 무너지면 지역사회와 국가가 가정 돌봄의 빈자리를 채워갈 수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불안정한 정신건강 상태를 비집고 사이비 종교나 무당, 비과학적 치료법이 확산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적잖다. 극심한 우울증을 겪는 이윤희(가명·45)씨는 최근 무당집을 찾았다. 한 번 굿할 때마다 300만원, 2년 새 4500만원이 들어갔다. 이씨는 “이게 내 잘못이 아니라는, 이렇게라도 하면 괜찮아질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이 그나마 가질 수 있는 희망이었다”며 고개를 떨궜다. 비과학적 치료에 대한 이 같은 맹신은 병원이나 심리상담센터를 찾을 경우 자칫 ‘정신병’이란 낙인이 찍힐 수 있다는 불안감이 아직도 우리 사회에 팽배해 있기 때문이란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정부는 이런 틈을 메우기 위해 다음달 ‘전 국민 마음 투자 지원 사업’에 나선다. 자살 사별자 원영씨도, 이태원 참사로 아들을 잃은 자영씨도 얼마 전부터 자조모임(비슷한 고통을 가진 이들이 스스로 모여 얘기를 나누는 모임)에 나가거나 전문가 상담을 받고 있다. 원영씨는 “모임과 상담을 통해 서로 한 발짝 다가서면서 ‘아, 좋다’는 느낌을 정말 오랜만에 받았다”며 “정신적으로 고통받는 많은 분에게 이런 소중한 기회가 널리 제공됐으면 싶다”고 말했다. 백 교수는 “정신건강 치유엔 주위 사람들의 도움과 조언이 필수”라며 “그런 점에서 공동체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 한국심리학회와 중앙SUNDAY 공동 기획 기사에서는 ‘자살’의 우회적 표현인 ‘극단적 선택’을 쓰지 않습니다. ‘극단적 상황에 내몰려 어쩔 수 없이 내린 최후의 결정’이란 본래 취지와 달리 자칫 개인적으로 ‘선택’ 가능한 행동 중 하나로 잘못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학계와 언론중재위원회 등의 우려를 반영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