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디지털 치료제로… 발달 장애인의 ‘사회인’ 기틀 마련한다” [조금 느린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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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달장애인 고동우 작가가 그린 '바다로 돌아가다'./사진=이슬비 기자

“안녕하세요. 박소현입니다.” 어눌한 발음이었다. 시선을 어디다 둬야 할 지 모르는 사람처럼 눈빛이 불안해 보였다. 플루트를 쥔 손도 안절부절했다. 보고 있으니 덩달아 긴장이 됐다. 사회자도 소현이의 불안감을 느꼈는지 “잘 할 수 있겠느냐”며 독려했다. 기우였다. 반주가 나오자 맑고 청아한 플루트 소리가 엑스포장을 가득 채웠다. ‘감격’이라는 단어 말고는 떠오르지 않는 순간이었다. 지난 12~13일 aT센터에서 열린 오티즘 엑스포에서 박소현 양의 플루트 연주 외에도 많은 공연을 감상할 수 있었다. 총 열 세팀이 무대에 올라 춤, 노래, 난타 등 다양한 무대를 선보였다.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 한인 발달장애인 오케스트라인 ‘오케스트라 숲’ 특별 무대도 이어졌다.



오티즘슈퍼스타K에 총 열 세팀이 무대에 올라 춤, 노래, 난타 등 다양한 무대를 선보였다./사진=이슬비, 신소영 기자


헬스조선은 발달장애인의 삶을 조명하는 ‘조금 느린 세계’를 연재한다. 발달장애인들이 우리 사회에 융화되고 자립할 수 있도록, 발달장애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 기획했다. 그 첫 순서로, 오티즘 엑스포 현장을 취재했다. 꾸준히 발전하고 있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인들을 위한 미래 설계 로드맵을 살펴봤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는 발달장애의 한 범주로, 아동기에 ▲사회적 상호작용 장애 ▲언어·비언어 의사소통 장애 ▲상동적인 행동·관심 등을 보이는 질환을 말한다. 어릴 때부터 전문적인 사회성 함양 등의 적절한 치료·교육을 받으면 증상을 개선할 수 있다.

소통의 매개체, 예술
엑스포에서 가장 눈에 띈 건 단연 자폐 스펙트럼 환자들의 창작물이었다. 많은 자폐 스펙트럼 환자들이 작가, 오케스트라 단원, 모델 등 다양한 예술 분야에서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었다. 엑스포에는 클라리넷 연주 단체 ‘드림위드앙상블’, 뮤지컬 단체 ‘라하프’, 모델·패션쇼 단체 ‘비긴21’ 등이 참여했다. ‘드림위드앙상블’ 관계자는 “우리 단체는 공연으로 매출을 내는 전문 단체”라며 “현재 단원은 11명이고, 연주력을 기반으로 채용한다”고 했다. 엑스포 한쪽에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인 작가들의 그림을 모아 전시한 오티즘 아트갤러리가 자리하고 있었다. 오티즘엑스포 주최사 함께웃는재단 관계자는 “갤러리에 그림을 올린 작가는 모두 갤러리를 열거나 다른 전시회에도 참여하는 프로 작가들”이라며 “지난 해에는 모든 그림이 다 팔렸고, 이번 전시에서도 많은 작품이 팔렸다”고 했다.


오티즘 아트갤러리, 러쉬 아트페어./사진=이슬비, 신소영 기자


발달 장애 사회에서 예술 분야는 말 그대로 '핫'한 분야다. 이전에는 증상 개선 효과가 좋아 치료의 한 방법으로 사용됐다면, 지금은 '자립'을 위해서 예술에 집중한다. 예술공간아트릿 이윤진 대표는 "발달장애인 의무 고용 정책으로, 발달장애인을 고용하는 회사들이 많아지면서 특히 발달장애 작가를 많이 고용하는 추세"라며 "미술에 재능을 보이면 직업 연계가 수월해지다 보니 미술 영역에 대한 부모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고 했다.

엑스포에는 직접 그림을 그려볼 수 있는 부스도 마련돼 있었다. 티비 모니터에 그림을 그리는 ‘톡톡박스’ 부스에서는 한 자폐 스펙트럼 장애 어린이가 집중해서 공룡을 그리고 있었다. 러쉬코리아에서도 러쉬 제품으로 그림을 그려보는 체험 부스를 운영했다. 장애 아동 전문 음악치료 기관 피어나 박혜인 대표는 "음악뿐 아니라 미술 등 예술 활동은 언어와 상관없이 가장 기본적인 의사소통의 도구"라며 "감정을 표현하면서 세계가 확장되고, 같은 분야의 이들과 교류하면서 사회성까지 확장될 수 있다"고 했다.



한 발달장애 아이가 부스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다./사진=이슬비 기자


돌봄 부담 덜어주는 ‘기술의 발전’

지금까지 발달장애 아동은 치료센터나 병원을 방문해 약물치료, 대면치료를 받아야 했다. 최근 디지털로 가정에서 치료받을 수 있는 발달장애 환자를 대상으로한 디지털 치료제 개발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디지털 치료기 개발전문기업 뉴다이브 이인영 연구원은 "아직은 승인받은 발달장애 환자 대상 디지털 치료제가 없다”면서도 “전 세계적으로 앱을 활용한 여러 디지털 치료제가 적극적으로 개발되고 있다”고 했다. 이어 "디지털 치료제가 대면 치료보다 저렴해 부모·사회의 경제적인 부담을 줄여줄 수 있고, 수도권에 편중된 치료 서비스를 먼 지역에서도 거리에 상관없이 받을 수 있어 큰 의미가 있다고 본다"고 했다.


왼쪽부터 와이닷츠 감정 이해 로봇 모모, 버디인, 연세대 행동심리연구실 Y-FACE, YESS./사진=이슬비, 신소영 기자


엑스포에는 다양한 디지털 치료기기 업체가 참여했다. 연세대 행동심리연구실에서는 임상 시험이 완료된 Y-FACE, YESS 등을 선보였다. Y-FACE는 자폐 아동·청소년의 눈 맞춤, 얼굴 인식, 사회인지 능력을 훈련하는 앱이고, YESS는 작업기억, 억제력, 계획력 등 전두엽 인지기능을 향상하는 앱이다. 와이닷츠에서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 아동이 표정을 보고 감정을 유추할 수 있도록 실제로 표정을 짓는 감정 이해 로봇 모모를 체험할 수 있게 부스에 전시했다. 버디인은 자폐 스펙트럼 장애 아동이 학교에 들어가기 전 사회성을 함양시킬 수 있도록, 학교를 배경으로 하는 여러 시나리오로 프로그램을 구성했다. 지난 5월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확증 임상시험 계획을 승인받았고, 곧 임상시험에 들어갈 예정이다. 버디인 부스 관계자는 “10~18세 발달장애인을 주 대상으로, 아이들이 실제로 겪을 법한 사회적 상황에서 분위기를 읽고 답을 생각해 보며 친구와 친해지는 연습을 하게 된다”며 “매일 10분 이상 주 5회, 6주 사용하면 실제 사회적 능력 발달 수준을 높이는 데 큰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스스로 건강 챙기고, 일할 수 있도록 돕는 단체 많아
성인이 된 자폐 스펙트럼 장애인을 위한 부스도 있었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에서는 '자신만만 직장인되기', '알기 쉬운 노동 상식', '알기 쉬운 경제 이야기', ' 알기 쉬운 직업 정보서' 등 성인이 되고 직장을 가진 후 알아야 하는 내용들을 자폐 스펙트럼 장애 환자 눈높이에 맞춰 제작한 책을 배포했다. 실제로 한 자폐 스펙트럼 장애 성인 환자가 필요한 책을 고르고, 겪었던 상황에 관해 얘기하며 의견을 구하기도 했다. '소소한 소통'에서는 월경, 비만 등 일상생활에서 알아야 하는 상식을 자폐 스펙트럼 장애 환자가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작성한 책을 공유했다. 소소한소통 백정연 대표는 "건강·의료에 대한 정보가 많지만 발달장애인은 이에 접근하기 어렵고, 장애 특성상 비만을 스스로 관리하는 것도 쉽지 않다" 며 "우리가 만든 책이 발달장애인들이 스스로의 건강을 지켜나가도록 돕는 길잡이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소소한소통 부스에서 쉽게 작성한 책을 전시하고 있다./사진=신소영 기자


자폐 스펙트럼 장애 환자만을 학생으로 모집하기 위한 대학들도 엑스포에 참가했다. 안산대 에이블자립학과 김병철 교수는 “발달장애 학생들도 대학에 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 엑스포에 참가했다”며 “발달장애 학생들은 초·중·고를 거치면서 또래 집단을 형성하기 어려운데, 대학에서 관계성·사회성을 배우고 성장하면서 사회인이 되는 기틀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에이블학과에서는 사무 행정 보조, 보건의료 보조 등의 기술을 가르친다. 이 외에도 대구대, 대구사이버대 등이 엑스포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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