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장만 포화? 납골당도 얼마 안 남아… 유골 산·바다에 뿌리고, ‘디지털 묘지’ 대안 떠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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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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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교육] ⑧ 달라지는 장례 문화
부산의 한 납골당./사진=연합뉴스

급격한 고령화로 사망자 수가 급증하자 화장장 부족 현상이 계속되고 있다. 어쩔 수 없이 4일 장을 치르거나 다른 지역으로 ‘원정 화장’을 떠나는 유족이 많아졌다. 납골당 등 봉안시설 역시 포화를 앞두자 물리적인 장소 중심의 장례 문화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화장한 유골을 산·강·바다 등에 뿌리는 ‘산분장’과 ‘디지털 묘지’ 등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화장장만 포화? 납골당도 얼마 안 남았는데…
각 지자체에서 납골당 등 봉안시설도 포화 상태를 앞두고 있다는 자료를 내놓고 있다. 올해 초 부산시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일반 시민들이 이용할 수 있는 기장군 정관읍의 부산추모공원 가족봉안묘는 이미 다 찼다. 봉안당(8만9468기)과 벽식 봉안담(1만6992기)만 각각 4000기와 6000기정도 남았다. 매년 6000기 가량의 수요가 발생한다는 점을 감안할 때 내년 초면 지역 전체 봉안시설이 수용 불가 상태에 이를 전망이다. 울산의 공공 봉안시설 안치율은 90%에 육박했고 광주의 봉안 시설도 2030년이면 꽉 찰 예정이다.

개장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봉안시설까지 포화 상태에 다다른 이유는 급변한 장례문화 때문이다. 2001년까지만 해도 38.5%였던 전국 화장률은 2021년을 기준으로 90%를 돌파했다. 을지대 장례지도학과 이정선 교수는 “정부가 화장을 장려하기도 했고 묘지 조성 비용이나 성묘 등이 필요 없는 납골당이 선호됐다”며 “여기에 수목장, 화초장, 잔디장 등의 자연장도 가능해지면서 화장을 선택하는 비율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묘지보다는 낫지만 납골당이나 자연장도 고인마다 안치단, 나무 등이 필요하다. 계약기간은 최소 15년에서 30~45년으로 사망자가 출생자보다 많은 현 상태에서 시설을 추가 건립해야 한다. 정부는 화장장과 함께 봉안시설 건립을 추진하고 있지만 기피시설로 분류되는 탓에 난항을 겪고 있다. 지자체가 봉안시설 건립 방안을 발표하면 교통 불편, 자연 파괴, 부동산 값 하락 등을 우려한 주민 반대에 좌초되는 일이 반복되는 것이다.

내년부터 산분장 합법화… 그런데 추모는 어디서?
이러한 상황에서 유골을 강이나 바다에 뿌리는 ‘산분장’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자연친화적인 이미지와 더불어 사망 후 추모해줄 후손·친척 등이 없는 경우가 늘고 있기 때문. 실제 한국장례문화진흥원이 성인 152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장사정책 설문조사에서 산분장 찬성률은 72.8%에 달했다. 2022년 통계청 사회조사에서는 성인 응답자 5명 중 1명인 22.3%가 ‘화장 후 산·강·바다에 뿌림’을 선호한다고 답했다.



내년부터 산분장이 합법화된다./사진=클립아트코리아

그러나 현행 ‘장사 등에 관한 법률(장사법)’이 땅에 묻는 것만 장사 방식으로 규정하고 있는 탓에 산분장은 합법도 불법도 아닌 상태에서 제한적으로만 치러지고 있다. 이를 고려한 정부는 지난해 1월, 산분장을 장례 절차 중 하나로 인정해 2027년까지 산분장 이용률을 30%까지 올린다는 방안을 발표했다. 그로부터 1년여 후인 지난 2월에는 산분장을 자연장에 포함시키는 장사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내년부터는 산분장이 가능해질 전망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현재 시행령을 개정하고 있는 단계로 이해관계자 및 전문가들의 논의 과정을 더 거쳐야 구체적인 사안을 발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산분장은 고인을 추모하는 공간이 없다는 한계가 있다. 정부는 사유지 분쟁을 막기 위해 산분장지를 따로 마련한다는 방침이여서 개인 표식은 없을 가능성이 높다. 이정선 교수는 “실제로 유족들이 산분장을 망설이는 이유가 뭔지 살펴보면 고인을 형상화하는 실체가 없다는 게 가장 크다”고 말했다.

공간 부족에… 중국은 ‘디지털 묘지’, 일본은 ‘메타버스 성묘’까지
장례·추모를 위한 공간 부족은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일찌감치 매장이 금지된 중국에서는 장례 관련 여러 실험이 진행 중이다. 그중 대표적인 게 ‘디지털 묘지’다. 고인을 화장한 뒤 땅 속에 묻거나 납골당에 안치하는 게 아니라 은행 금고처럼 생긴 디지털 공동묘지에 안치하는 것이다. 유족이 방문하면 스크린에 고인의 생전 사진과 영상 등을 띄워주는 방식이기 때문에 묘지는 물론 봉안시설보다 필요 공간이 작다.



유골이 안치된 디지털 묘지 내부 모습./사진=블름버그

일본은 조문객 감소 등으로 10년 전부터 작은 장례, 디지털 장례 등을 실현해왔다. 상조업체들은 살아남기 위해 IT업체를 인수한 뒤 메타버스 성묘까지 서비스하고 있다. 가상공간에 고인의 묘지를 만들어두고 유족들이 아바타로 접속해 분향, 헌화하는 식이다. 공간의 제약이 없기 때문에 유족들이 각지에 흩어져있더라도 함께 고인을 추모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디지털 묘지는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이점이 있다. 그동안 장례 절차는 유가족과 조문객 모두에게 경제적인 부담이 돼왔다. 2015년, 한국소비자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평균 장사(장례 및 장묘) 비용은 1380만원가량이다. 10여년이 지난 최근에는 더 올랐을 것으로 예상된다. 가장 큰 부담은 묘지 및 봉안시실 이용료인데 사설 납골당의 경우 아무리 저렴해도 400만원부터다. 추모공간이 디지털화되면 확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젊은 상주 늘어나면 무덤 디지털화 될 것”
우리나라에서도 온라인 추모가 이뤄지고 있다. 지난 2020년 추석, 보건복지부는 성묘객들이 몰려 코로나 감염이 증가할 걸 우려해 ‘e하늘 온라인 추모·성묘 서비스’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홈페이지에 들어가 고인이 안치돼있는 추모 시설의 정보를 입력하면 영정사진을 등록하고 유족들이 글이나 음성, 영상 등을 남길 수 있도록 해 놨다. 해당 서비스는 명절 때마다 약 20만명이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에는 무연고 사망자 추모를 위한 ’e하늘 별빛추모관‘도 운영 중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현재로선 계획에 없지만 만약 산분장이 시행된 후 추모공간에 대한 국민 수요가 늘어난다면 e하늘 온라인 추모·성묘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에 대해서 검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무연고 사망자를 위한 ’e하늘 별빛추모관‘./사진=보건복지부 제공

이정선 교수는 “현재 온라인 추모는 변해가는 명절 풍속과 맞물려 성묘를 대체하는 식으로 활용되고 있다”며 “산분장이 도입되고 비대면에 익숙한 젊은 상주들이 늘어나면 아예 추모공간이 디지털화되는 것도 자연스러운 흐름이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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