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 맞을 준비는 미리… "죽음 인정하고 추억 나눌 시간 가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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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3.09.05. 오후 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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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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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교육] ⑤ ​임종도 연착륙 중요, 작별 나눌 공간 마련해야…​
서울대병원의 임종실. 대부분 종합병원엔 임종실이 없으며 1인실은 운이 좋아야 이용할 수 있다./사진=서울대병원 제공

사랑하는 사람의 임종을 준비하라는 말을 들으면 깜깜하다. 대다수는 처음 겪는 일이므로 무엇부터 해야 할지 감도 안 잡힌다. 아직 당사자와 인사도 제대로 나누지 못했는데 어디선가 행정적인 절차들을 들이민다. 환자는 기존 증상이 심해지기도 하고 새로운 증상까지 더해져 힘들어한다. 이렇게 마지막 며칠 간 나타나는 변화를 자연스러운 현상이라 이해하는 건 환자와 가족이 중요한 시간을 잘 보내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다만 작별을 잘 고하기 위한 공간이 절실한 실정이다.

장기 부전 질환, 갑자기 악화해 임종 못 지키기도…
임종 과정에 돌입한 사람은 신체적·정신적으로 많은 변화를 겪는다. 지난 2018년 연세의료원과 가천대 길병원 연구팀은 말기 암환자 80명의 임종 48시간 전 특징을 살핀 연구를 발표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환자 및 보호자가 호소한 주관적 증상은 ▲수면 시간 증가(53.8%) ▲의식혼탁 및 섬망(50%) ▲안정 시 호흡곤란(28.8%) 순이었다. 의료진이 파악한 객관적 징후는 ▲혈압 감소(87.5%) ▲의식수준 변화(82.5%) ▲산소포화도 감소(75%) ▲맥박수 증가(73.8%) 순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모두가 똑같이 임종 과정을 밟는 건 아니다. 질환, 환자마다 차이가 있다. 예컨대 말기암은 짧은 기간 급격히 악화한다. 통상 기대여명은 3~6개월인데 대체로 맞아 떨어진다. 장기간, 천천히 악화하는 치매나 노쇠는 기대 여명을 예측하기가 어렵다. 다만 폐렴, 패혈증, 요로감염 등 합병증이 찾아오면 임종 과정에 돌입한다.

임종 과정이 없는 질환도 있다. 갑자기 증상이 악화해 사망하는 심부전, 신부전, 간부전 등이 대표적이다. 이런 질환들은 말기에 이르면 기대 여명이 통상 2~5년이다. 이 기간 동안 응급상황이 발생했다 호전되는 걸 수차례 반복하기도 한다. 보호자가 응급실을 왔다 갔다 하는 데 무뎌졌을 때쯤 응급상황에서 호전하지 못하고 사망하는 환자들도 많다. 임종을 지키지 못하는 대표적인 사례다. 이런 질환을 앓는 환자의 보호자에겐 급사에 대한 교육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임종 전 두려움, 보호자만 완화할 수 있다
임종 직전에는 당사자가 느끼는 감정을 살피는 게 필요하다. 죽음이 다가오는 건 당사자가 가장 잘 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몸 상태는 계속 나빠지고 이에 발맞춰 의식도 흐려진다. 이러면 다양한 이유로 두려움이 엄습한다. 통증에 의한 신체적인 고통, 사람들과의 단절에 의한 우울감, 나라는 존재가 없어진다는 실존적 두려움이 대표적이다.

두려움을 완전히 극복하기란 어렵다. 다만 보호자들이 곁에 있어 줌으로써 완화할 수 있다. 손을 잡아 주는 것만으로도 큰 위안을 줄 수 있다. 의료기관들은 청각이 끝까지 남는다는 과학적 근거에 따라 불필요한 말은 삼가고 사랑, 용서 등 마지막 인사를 전하라고 권고한다.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윤영호 교수는 “통증은 의료행위로 극복할 수 있지만 개인적으로 실존적 두려움은 극복하기 어렵다고 본다”며 “보호자들에게도 항상 하는 말인데 ‘당신의 삶이 내 안에서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확신을 주면 떠나는 환자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1인실을 임종실로? 감염병 격리·VIP 입원 등 하늘의 별 따기
문제는 마지막 인사를 나눌 공간이 부족하다는 현실이다. 한국인 75%는 의료기관에서 사망한다. 종합병원 내 중환자실이나 응급실, 요양병원이 대표적이다. 독립된 공간에서 임종하는 비율은 매우 낮다. 운이 좋으면 1인실로 가지만 보통은 임종 직전에 이르러서야 처치실로 옮겨지거나 다인실에서 가림막을 친 뒤 사망한다. 충분히 슬퍼할 시간은커녕 인사를 나눌 시간도 부족하다. 죽음을 목격한 같은 병실 내 환자가 충격에 빠지기도 한다.

현행법은 입원형·자문형 호스피스 전문기관에만 1개 이상의 임종실을 설치하도록 하고 있다. 이에 따라 임종실을 설치·운영 중인 호스피스·완화의료 전문기관은 종합병원 81개소와 요양병원 7개소뿐이다. 박중철 교수는 “설사 종합병원에 임종실이 있어도 자문형 호스피스에 등록돼야 하는 등의 조건이 붙는다”며 “종합병원들은 1인실을 임종실로 쓰면 된다는 입장이지만 대부분은 감염병 격리나 VIP들을 위해 쓰이고 있어 자리가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종합병원 및 요양병원에 임종실 설치를 의무화 하는 법안은 계류중이다. 이에 대해 의료기관들은 수가가 없어 병원 운영에 차질이라는 입장이다. 그런데 환자는 임종을 맞는 의료기관에서 치료받았을 가능성이 높으며 해당 의료기관 부속 장례식장을 이용할 가능성도 높다. 전국의 환자들이 몰리는 상급종합병원조차 임종실이 없다는 건 아쉽다.

임종도 연착륙 중요, “죽음 인정하고 지난 추억 나눌 필요…”
죽음을 많이 지켜본 전문가들은 임종의 ‘연착륙’을 강조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임종을 지키려는 의지는 강한 반면 죽음을 얘기하려고 하지 않는다. 환자의 죽음을 직감하면서도 효심이나 환자의 충격 등을 이유로 모른 척하는 경향이 있다. 기대 여명이 진단돼도 치료 행위만 이어가다가 임종아 닥쳤을 때 준비하곤 한다. 윤영호 교수는 “임상 지표를 가지고 구체적인 임종 시점을 예측하는 다양한 연구들이 이뤄지고 있지만 어려운 측면이 많다”며 “환자가 말기 질환을 앓고 있다면 연명의료결정이나 호스피스 입원, 기대 여명 등과 별개로 임종을 준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쉽지 않겠지만 말기 환자와 보호자가 죽음이 다가왔음을 인정하고 지난 추억에 대해 얘기하거나 새로운 추억을 만드려고 노력하는 게 중요하다. 임종이 임박해 환자의 의식이 흐려질 때면 늦는다. 박중철 교수는 “다른 것 필요 없이 환자와 보호자가 가장 행복했던 추억들을 하나씩 꺼내서 앨범도 보고 얘기도 나누고 하면 환자도 안정되고 보호자도 좋은 추억을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또 “병원에 있으면 환자와 보호자라는 정체성만 남는데 보호자는 환자를 살리기 위해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는 입장을 고수한다”며 “그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병이 심해지거나 나이가 들면 어느 순간 놓아야 될 것도 있고 그 놓은 자리를 좋은 추억으로 채우는 게 조금 더 좋은 이별에 가깝지 않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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