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스피스 권유하는 의사, 치료 포기했다는 뜻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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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3.07.25. 오후 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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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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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교육] ③​ 인식 낮고, 시설 부족… 호스피스 이용의 한계
게티이미지뱅크

더 이상의 치료가 어려운 말기암 환자들은 호스피스 입원을 권유받는다. 환자나 보호자들의 고통을 객관적으로 덜어줄 수 있는 선택으로 평가받기 때문이다. 그런데 환자들 생각은 다르다. 의료진이 호스피스를 권유하면 자신을 포기했다고 여기고 실망한다. 보호자들 역시 너무 이른 것 아니냐고 반문한다. 의료진들은 우리나라 호스피스 서비스가 적극적인 치료를 포기한 환자들에게만 제공되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말한다.

만족도 높은 호스피스? 말기암 환자 20%만 이용
호스피스가 병동이라면 호스피스 병동에서 이뤄지는 치료는 완화의료다. 완화의료의 목적은 임종 돌봄이 아니다. 환자와 보호자의 삶의 질 향상이다. 환자의 통증과 같은 신체적 문제와 더불어 심리사회적, 영적 문제도 치료 대상이다. 심리 상담이나 원예 치료, 음악 치료 등이 포함되는 까닭이다. 여러 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내 호스피스 서비스에 대한 만족도는 90%를 웃돈다.

그런데 우리나라 말기암 환자들의 호스피스 이용률은 낮다. 중앙호스피스센터의 ‘연도별 호스피스 서비스 이용률’에 따르면 지난 2020년 한 해 암으로 세상을 떠난 환자 8만2204명 가운데 단 23.0%인 1만8907명만 호스피스 서비스를 이용했다. 말기암 환자의 95%가 호스피스 서비스를 이용하는 영국과는 사뭇 다르다.

나머지 6만명이 넘는 환자는 요양병원이나 종합병원의 응급실에서 임종했을 가능성이 크다. 가톨릭대 인천성모병원 김대균 권역호스피스센터장은 “요양병원에서 임종하는 환자들이 가장 많고 그 다음이 종합병원 응급실 순”이라며 “말기암 환자 중 92%는 의료기관에서 사망하고 나머지 8%는 자택, 요양원 등이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완화의료 종류 많지만… 한국은 주치의가 포기해야 호스피스 입원
호스피스 이용률이 낮은 이유는 거부하는 환자들이 많아서다. 과거보다 인식이 나아졌다고는 하나 여전히 호스피스를 죽음과 동일시하는 환자들이 많다. 의료진이 호스피스를 권유하면 환자는 자신을 포기했다 여긴다. 보호자 역시 너무 이른 건 아닌지 의문을 갖고 적극적으로 항암치료를 해주는 병원이나 임상시험을 알아본다.

우리나라 완화의료가 가지는 한계 탓이 크다. 완화의료도 단계가 있다. 임종을 앞둔 환자를 대상으로 호스피스 병동에서 적용하는 전문완화의료 외에 급성기 병동에서 전문의가 제공하는 일반 완화의료, 모든 보건의료인이 제공하는 완화의료적 접근 등이 있다. 서비스 유형도 ▲자문형 ▲가정형 ▲입원형 ▲낮병동형 ▲사별가족지원형 등 다양하다.

예컨대 일본은 암 진단 시점부터 완화의료적 접근을 시작한다. 암 초기라도 완치를 목적으로 하는 적극적인 치료가 적용됨과 동시에 환자·보호자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완화의료가 시작된다. 병이 더 진행돼서 완치를 목적으로 할 수 없을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전문완화의료팀이 주된 역할을 맡는다. 김 센터장은 “요즘 해외에서는 일반 급성기 병동에서도 말기 환자에게 완화의료를 적용하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며 “이러면 환자 입장에서는 주치의가 나를 포기하지 않는다고 느낀다”고 말했다.

반면, 우리나라는 양자택일이다. 완치 목적의 치료를 포기해야 호스피스에 입원할 수 있다. 환자들이 입원을 미루는 이유다. 완화의료의 효과를 위해 전문가들이 권장하는 입원 시기는 사망 석 달 전이다. 그런데 말기암 환자의 평균 입원 기간은 3주다. 세브란스병원 완화의료센터 권승연(소아청소년과) 교수는 “어느 시점에 호스피스로 가야 할지 정하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라며 “완화의료팀이 오랜 시간 개입하고 꾸준히 소통하면서 적절한 시기를 안내해야 하지만 이 시스템이 부족하다 보니 말기암 환자들의 호스피스 입원 시점은 점점 늦춰지고 있다“고 말했다.

호스피스 이용 가능한 환자 매년 9만여명, 병상은 1500여개 뿐
양자택일의 호스피스라도 쉽게 이용할 수 없는 게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병상이 없어서다. 연간 호스피스 이용 가능 질환(암, 후천성면역결핍증, 만성폐쇄성 호흡기질환, 만성 간경화)으로 사망하는 환자 수는 9만명에 이른다. 그런데 올해 4월 기준 전국 호스피스 전문 기관은 107곳이다. 병상 수로 따지면 1500여개 정도다. 이마저도 공공의료가 책임지고 있어 가능한 상황.

응급실처럼 호스피스 뺑뺑이를 도는 환자들도 많다. 보호자들이 최소 3~4군데 정도에서 상담 받은 뒤 대기를 걸어두지만 자리가 날 지는 미지수다. 대기하다 사망하는 환자도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더불어민주당 인재근 의원은 “호스피스 병상이 부족해 한 병원에서만 대기 중 사망자가 100명에 달하기도 한다”며 “그러나 보건복지부는 기본적인 현황조차 관리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호스피스 인프라 확충 시급, 장기적으로는 가정 돌봄 마련책도…
전문가들은 일단 호스피스 병상과 인력을 늘리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말한다. 종합병원이 호스피스 병동을 운영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적자다. 환자들이 요양급여의 5%만 부담하다 보니 다양한 돌봄을 위한 추가 비용은 병원이 떠안게 되는 구조다. 최근 3년 호스피스 전문 기관은 늘어나기는커녕 6곳이 폐업했다. 호스피스 인력 수가와 보조금을 현실화할 방안을 찾는 게 필요하다.

호스피스 병동만 늘려놓는다고 끝은 아니다. 결국 좋은 죽음을 위해서는 자택 임종을 위한 기반이 마련돼야 한다. 말기 환자 대부분이 병원에 입원하는 까닭은 입원을 요하는 고통스러운 증상이 나타나서가 아니다. 환자를 돌볼 환경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김 센터장은 “세계보건기구에 따르면 생애말기 환자 중 3분의 2가량은 입원형 호스피스가 필요 없다”며 “1차 의료기관에서도 충분히 증상을 관리할 수 있지만 그런 시스템이 없으니 호스피스를 알아보라고 권유한다”고 말했다. 또 “결국 의료가 아니라 돌봄의 영역이 확대돼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호스피스의 의미를 제대로 알릴 필요도 있다. 지난해 한국호스피스·완화의료학회가 성인 1000여명을 대상을 실시한 설문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10명중 6명은 호스피스가 뭔지 몰랐다. 코앞에 닥쳐서 알게 되는 환자와 보호자들이 많으니 거부감도 클 수밖에 없다. 호스피스는 잘 죽기 위해 가는 곳이 아니라 잘 살기 위해 가는 곳이다. 권 교수는 “호스피스 완화의료는 죽음을 재촉하지도, 지연하지도 않는다”며 “입원 기간이 3주든 6개월이든 환자가 삶의 마지막까지 사회적인 관계를 맺으면서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목적”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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