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체적 난국이다.
사이버렉카들의 쯔양 착취 사건은 그렇게 설명할 수밖에 없다. 해당 사건이 수면 위로 드러나게 된 과정부터 문제적이다. 가로세로연구소에서 사이버렉카들이 유튜버 쯔양을 협박해 금품을 요구한 정황이 담긴 녹취록을 공개했다. 이 과정에서 피해자 의중이나 안위는 전혀 고려되지 않았고 결국 피해 당사자는 본인 방송에서 4년간 이어진 전 남자친구의 폭행과 불법촬영물 유포 협박, 착취에 대해 고백했다. 쯔양은 눈물 흘리며 연신 죄송하다 사과했고 피해자를 괴롭히고 협박한 가해자들은 떳떳한 척 고개를 들고 있었다.
'친밀한 관계에 의한 폭력'이라는 이름의 젠더폭력
사건의 발단은 '전 남자친구'이자 전 소속사 대표였던 A씨와의 관계였다. A씨는 물리적 폭력과 더불어 불법촬영물을 이용해 피해자를 협박하고, 유흥업소에서 일할 것을 강요했다. 4년간 쯔양은 A씨로부터 40억원을 갈취당했다. 사이버렉카들은 이를 폭로하겠다며 또 다시 쯔양을 협박해 금품을 취득했다. 폭력, 착취, 협박, 약탈까지 사이버 렉카 협박 사건은 4중의 착취가 작용했다.
먼저 '친밀한 관계에 의한 폭력'이다. 세간의 인식과 달리 여성이 경험하는 폭력의 주요 가해자는 복면을 쓴 길거리의 누군가가 아니라 연인 관계이거나 연인 관계였던 사람에 의해 자행된다. 경찰에 따르면 2023년 교제폭력 신고 건수는 7만7천여 건에 이르고 검거된 피의자만 1만3939명에 달했다. 여성가족부에서 발표한 '2021년 여성폭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여성폭력을 경험한 피해자의 46%가 친밀한 관계에 있는 가해자로부터 폭력 피해를 입었다고 하니 이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알 수 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혀를 차면서도 도리어 문제 상황을 벗어나지 못하는 피해자를 탓하거나 외면한다. 허나 교제폭력은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하기에 가해자가 피해자의 연락처, 집주소, 관계 등 개인정보를 가지고 옭아매서 더 벗어나기 어렵게 만든다. 게다가 대부분의 폭력도 드러나지 않는 곳에서 발생하기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주변 조력자의 존재가 정말 중요하다고 이야기한다. 실로 한 외국 팬이 쯔양의 멍든 팔을 보며 영어로 안부를 묻는 댓글이 회자되기도 했다.
우리사회에는 여전히 '부부싸움은 칼로 물베기', '사랑싸움일 뿐'이라는 인식이 자리잡고 있어서 개입을 더 어렵게 만든다. 강의 때 참여자들에게 물어도 비슷한 인식이 나타난다. 길거리에서 누군가 싸우거나 맞는 것을 목격하면 어떻게 하겠냐는 질문에 열에 아홉은 개입하겠다고 응답하지만, 연인으로 보이는 관계라는 전제를 다는 순간 개입하겠다는 대답이 절반 이하로 줄어들고 연인 간 알아서 할 문제라고 하며 말을 줄인다. 이런 사회 분위기에 피해자를 탓하는 문화는 문제를 가중시킬 뿐이다.
여성의 성에 대한 이중잣대가 없었다면
여성을 향한 폭력은 한 차원에서 멈추지 않는다. 더 고도화되고, 악랄해졌다. 친밀한 관계에 의한 폭력은 '불법촬영물'을 이용한 협박으로 이어졌다. 여기서도 젠더위계는 드러난다. 상상해 보자, 만약 성별이 달랐어도 그런 협박이 가능했을까? 이성 연인이 같이 찍힌 영상이 유출되어도 왜 여성이 더 취약한 위치에 놓일까? 여성의 몸이 더 많이 성적으로 대상화되고 불법촬영물을 '국산 야동'이라는 이름으로 죄책감 없이 유포하고 시청하는 구조적 요인이 있기 때문이다.
사이버렉카들의 협박 역시 마찬가지다. 쯔양은 애초 협박으로 원하지 않는 일을 강요 당하며 착취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숨기고자 했다. 게다가 강압에 못 이겨 한 일에도 연신 사과했다. 많은 남성들이 '비즈니스'라는 명목으로 유흥업소에 들락이고 그 경험을 무용담처럼 드러내는 것과 너무나 대조적이다. 이 모두, 아직 우리사회가 여성의 성을 대상화하고, 여성에게 이중잣대를 들이고대고 있음을 보여준다.
젠더폭력을 만든 여성혐오 토양을 바꿔야 한다.
친밀한 관계에 의한 폭력과 불법촬영, 협박으로 돈을 뜯어낸 일련의 과정, 결국 핵심은 젠더권력구조라는 위계 아래서 발생하는 젠더폭력이다.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단지 일부 개인만 비난하고 처벌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다. 이런 범죄가 싹틀 수 있었던 구조와 토양에 질문 던질 수 있어야 한다.
이를테면 여성의 몸을 더 많이 성적으로 대상화 하는 문화에 대해 '성적인 욕구는 본능이니까'라고 변명하기보다, 우리사회에서 그 본능이 성별에 따라 어떻게 다르게 나타나는지, 그 표현으로 인해 누군가가 더 취약한 환경에 놓이게 되지는 않았는지를 질문해야한다. 여성의 몸을 성적으로 대상화 하고 불법으로 촬영, 유포, 시청하며 가십에 올리는 이들 앞에서 나의 역할을 물어야 한다.
'남성연대', 남성이 함께해야 끊어낼 수 있다.
진정으로 이러한 사건들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우리사회를 살아가는 여성들이 안전한 사회에서 더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살기를 원한다면 '남성연대'에 의한 젠더권력구조를 해체해야 한다. 이에 발끈할 남성들에게 당부한다. 여기서 지적하는 것은 단지 남성이라는 성별을 가진 개개인이 아니다. 그보다 '남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가부장제 아래서 동일한 이해관계를 공유하고 있다고 착각하며 차별과 폭력에 동조하고 공모하는 방식으로 그 젠더위계를 공고히 하는 것을 말한다.
이 사건의 직접적인 가해자들을 비롯해 피해자를 탓하는 문화부터 여성을 통제하는 여성혐오적 토양에 가담하는 이들이 그렇다. 이대로 정말 괜찮은가? 게다가 남성연대의 위계질서가 남성들에게도 실질적인 도움보다 부담과 어려움으로 다가오고 있지 않은가? 위계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남자다워야 한다'고 말하며 직접적으로 폭력을 휘두른 대다수는 같은 성별의 남성들 아니었나? 언제까지 더 약한 곳으로 향하는 폭력을 방치하며 '그래도 내가 여성들보단 낫지'하며 자족할 것인가.
우리는 그깟 성별보다 더 큰 존재가 될 수 있다. 피해자의 곁에, 약자 옆에 서자. 타인을 통제하는 토양을 만드는 이에게 비열하고 비겁한 짓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되자. 그것이 폭력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방법이다. 이 사건 앞에 선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외부 필자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