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지워졌던 ‘글 쓰는 여자들’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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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4.07.12. 오전 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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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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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문학사연구모임, 전 7권『한국 여성문학 선집』출간
여성문학사연구모임이 엮은 『한국 여성문학 선집』(민음사, 전 7권). ⓒ민음사 제공


김 소사·이 소사부터 김명순, 박화성, 박순녀, 김자림, 고정희, 정복근, 허수경, 김혜순....

남성들의 이름만 빽빽한 문학 전집에선 찾아볼 수 없던 이름들이다. 여성문학사연구모임이 엮은 『한국 여성문학 선집』(민음사, 전 7권)은 잊히고 지워졌던 이 '글 쓰는 여자'들의 성취와 이름을 되새긴다.

독창적이고 아름다운 문장으로 대중을 사로잡은 여성들과 그들의 작품을 엄선해 한 데 모았다. 근대 개화기 조선부터 1990년대 민주화 이후 한국까지의 시대를 역사적 전환점으로 구분하고, 시대마다 독자적인 개성과 전환을 이룬 여성 작가와 작품을 선별해 담았다. 날카로운 지성으로 식민 현실과 개발독재에 저항하고, 민주주의와 페미니즘이라는 시대정신을 파고든 여성 작가들을 만날 수 있다.

다양한 장르를 다룬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시, 소설, 산문, 희곡뿐 아니라 잡지 창간사, 선언문, 편지, 일기, 노동 수기 등 다채롭다. 제도화된 문학 형식 밖에 있다는 이유로 문학사에서 다뤄지지 못했던 다양하고 자유로운 '여성 글쓰기'를 총망라했다. 남성 중심 문단 체제에서 고고히 자신만의 성취를 이룬 여성들의 계보다.

필진들은 1898년 이름을 밝히지 않은 두 여성이 신문에 투고한 「여학교설시통문」을 '여성 글쓰기'의 원류로 봤다. 여성이 남성과 동등하게 교육받고 일할 권리가 있고 이를 위한 학교를 설립하자고 주장하는 내용이다. 두 여성이 이듬해 한국 최초의 여학교를 설립하고, 그로부터 20년 후 한국 여성문학의 원류인 나혜석, 김일엽, 김명순이 동시에 등장했다. 

전집도 1898년부터 출발한다. △1권 1898년~1920년대 중반 여성문학의 탄생 △2권 1920년대 후반~1945년 계급·민족·여성의 교차 △3권 1945년~1950년대 전쟁과 생존 △4권 1960년대 세대교체와 저자성 투쟁 △5권 1970년대 개발 레짐과 여성주의적 각성 △6권 1980년대 운동으로서의 글쓰기 △7권 1990년대 성차화된 개인과 여성적 글쓰기로 구성됐다.

문학사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 없이도 누구나 읽고 이해할 수 있도록 백과사전 식으로 구성했다. 모든 작품은 초간본 원문을 실었다. 장편소설은 작품 소개와 주요 장면을 발췌해 수록했다. 지금도 널리 읽히는 1990년대 소설과 시를 포함해, 쉽게 구할 수 없었던 1950~1970년대 작품도 담았다. 특히 희곡은 대부분 새롭게 소개하는 작품들이다. 

9일 서울 종로구 노무현시민센터에서 열린 민음사『한국 여성문학 선집』출간 기자간담회 현장. (왼쪽부터) 필진인 '여성문학사연구모임' 소속 김양선 한림대 일송자유교양대학 교수, 김은하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이선옥 숙명여대 기초교양대학 교수, 이명호 경희대 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이희원 서울과학기술대학교 명예교수와 객원 에디터 이경수 중앙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민음사 제공


필진인 '여성문학사연구모임'은 2012년 여성주의와 여성문학을 연구해 온 학자들이 결성한 모임이다. 한국 근현대 여성문학사 서술을 목표로, 국문학자인 김양선 한림대 일송자유교양대학 교수, 김은하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이선옥 숙명여대 기초교양대학 교수와 영문학자인 이명호 경희대 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이희원 서울과학기술대학교 명예교수가 뭉쳤다. 여기에 시 연구자인 이경수 중앙대 국어국문학과 교수가 객원 에디터로 참여했다. 『한국 여성문학 선집』은 이들의 첫 결과물이다.

김양선 교수는 9일 기자간담회에서 "기존 문학선집·전집에서 여성 작가의 작품은 '주변화된 것'으로 다뤄졌다. 문학사에서도 여성 작가의 작품들은 다뤄지지 않거나 문학성이 떨어지는 것으로 다뤄졌다"고 지적했다. 또 "기존 근대문학사에서 포착할 수 없는 여성 작가들을 한눈에 볼 필요가 있었다"며 "여성 작가들의 글쓰기는 근대 초기부터 있었고, 시기마다 특성이 있고, 변화하면서도 지속적으로 이어왔고, 그 산물이 결코 만만치 않다는 걸 독자들이 경험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전집을) 출간했다"고 말했다.

출간 전부터 독자들의 기대가 뜨거웠다. 온라인서점 알라딘에서 진행한 북펀딩으로 294권(약 2800만원)이 선판매됐다. 전집이 나오기 전부터 1쇄가 다 팔린 셈이다.  

여성문학사연구모임은 이후 "본격문학과 국민문학을 넘어 대중문학과 퀴어문학, 디아스포라문학을 포괄하고 해외 학회와 협업한 다양한 선집을 출간할 계획"이다. 세트 10만4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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