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지금] 마크롱도 극우도 거부한 프랑스...남은 것은 '불확실성'

입력
수정2024.07.10. 오전 8:18
기사원문
유영혁 기자
본문 요약봇
성별
말하기 속도

이동 통신망을 이용하여 음성을 재생하면 별도의 데이터 통화료가 부과될 수 있습니다.

프랑스 조기총선 결과
어느 당도 단독 과반 확보 못해
좌우 협공에 1년 레임덕 전망되는 마크롱
지난 7일(현지시각) 프랑스 총선 후 유권자들이 파리 광장으로 모이고 있다. ⓒAP 연합뉴스


7일(현지시각) 치러진 프랑스 총선 결과는 '충격적(shock)'이었다고 BBC는 평했다. 그 결과 교착상태(deadlock)를 불러왔다고 CNN는 설명했다.

일주일전 1차 투표에서 돌풍을 일으켰던 극우 국민연합(RN)이 3위로 처졌고 좌파연합 신민중전선(NFP)이 약진했다.

어느 당도 단독 과반을 확보하지 못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유럽의회 선거에 이어 자신이 추진했던 조기 총선에서도 패했다.

전체 의석 577석 가운데 182석, 범여권은 168석, 극우 RN과 그 연대 세력은 143석을 각각 확보했다.

어느 연합도 289석의 단독 과반을 확보하지 못했다.

유권자들의 복수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9일(현지시각) 유럽의회 선거 결과 극우 정당에 참패할 것으로 알려지자 TV 연설을 통해 전격 의회 해산을 발표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마크롱 대통령은 지난해 3월 연금개혁안을 통과시켰다.

정년을 현재 62세에서 2030년까지 64세로 2년 연장하는 연금개혁안을 추진해 왔다. 연금액 완전 수령 총 근무기간을 2027년부터 현재보다 1년 늘어난 43년으로 늘리고 대신 최저 수령액을 월 1200유로로 높이는 내용도 담겼다.

마크롱 대통령은 의회 표결 없이 정부가 강행 입법할 수 있도록 한 프랑스 헌법 49조 3항을 발동하기로 결정했다.

이 법안은 압도적인 반대 여론에 부딪혔고 전국적인 대규모 파업과 시위를 유발했다.

지난해 4월 13일(현지시각)에는 프랑스 전역에서 100만 명이 넘는 시위대가 참여해 연금개혁 반대시위를 벌였다.

프랑스 최연소 대통령이었던 마크롱은 마크롱 정부의 3대 핵심 정책으로 신생기업 육성과 노동유연성 강화, 큰 폭의 법인세 감면 등 시장 친화 정책을 추진했다.

마크롱 대통령의 시장 친화 정책은 어느 정도 가시적인 성과를 거뒀다. 

프랑스의 실업률은 15년 만에 최저치로 떨어졌고, 프랑스는 해외 투자자들에게 매력적인 시장으로 떠올랐다. 

노동법을 개정해 기업의 고용과 해고를 쉽게 했고, 복지 재원이었던 부유세를 축소해 '부자들의 대통령'이라는 오명이 생기기도 했다.

뚜렷한 실적에도 유권자들은 반감을 품었다. 기득권을 옹호하는 그의 정책은 2018년 '노란 조끼 운동'을 촉발했다.

노란조끼 운동은 2018년 프랑스 정부의 유류세 인상을 계기로 일어났다. 프랑스에서는 모든 차량에 노란색 야광 안전조끼를 비치할 것을 의무화한다. 

유류세 인상에 반발한 운전자들의 항의시위는 점차 대통령 에마뉘엘 마크롱과 프랑스 정부에 대한 전체적인 불만을 표출하는 시위로 확산되었다.

마크롱 대통령은 두 차례 선거에서 참패했다.

프랑스의 AFP통신은 지난주 1차 선거가 끝난뒤 유권자들이 마크롱에게 복수했다고 보도했다.

마크롱, 좌우 협공에 최소 1년 레임덕

극좌 정당 LFI의 장뤼크 멜랑숑 대표가 7일(현지시각) 결선투표 후 연설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프랑스 헌법은 의회 해산 이후 최소 1년간은 의회를 다시 해산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마크롱은 최소한 1년간은 '헝 의회(hung parliament)'를 맞이하게 됐다. 

'헝 의회'란 의원내각제 정부 체제에서 의회 내 과반을 차지한 정당이 없어 불안하게 매달려 있는 상태hung)의 의회를 뜻한다.

2022년 대선 직후 치러진 총선에서도 마크롱 대통령의 범여권은 과반에 미달한 245석을 얻었다. 프랑스 집권 세력이 하원에서 과반 의석을 장악하지 못한 것은 20년 만에 처음이다.

프랑스 하원은 법률에 관한 토론, 제의, 개정, 투표 및 국정 활동의 감사 등의 역할을 한다. 하원은 불신임 결의 투표를 통해 내각 총사퇴를 행할 권한도 갖고 있다.

과반 확보 실패로 대통령과 총리의 소속 정당이 다른 '동거 정부'가 구성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영국 베렌버그의 홀거 슈미딩 수석연구위원은 "극우 돌풍이 꺾인 것은 유럽에는 안도감을 주고 있지만 프랑스는 정부를 구성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마크롱은 바뀌어야 하고 이는 좌파가 정책에 영향을 미칠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고 분석했다.

동거정부는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자크 시라크 총리(1986∼1988), 미테랑 대통령-에두아르 발라뒤르 총리(1993∼1995), 시라크 대통령-리오넬 조스팽 총리(1997∼2002) 등 앞서 3차례 있었다.

임기 절반이 남은 마크롱 대통령이 조기 레임덕에 빠질 가능성도 있다.

베를린 헤르티 대학원대학의 코넬리아 월 교수(총장)는 로이터 통신에 "마크롱의 위험한 모험을 했으나 명확한 의회 다수당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그는 이제 그의 당이 야심찬 법안을 통과시킬 수 있는 지원이 없음을 느끼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불안정한 상황은 2025년 여름까지 새로운 일상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돌풍은 껐였지만 단일 최대 정당 '국민연합'

프랑스 극우 지도자 마린 르펜(왼쪽)이 9일(현지시각) 국민연합 본부에서 연설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마크롱도 패배했지만 1차 투표에서 돌풍을 일으켰던 극우 국민연합(RN)도 승리하지는 못했다. 절반의 승리를 챙겼다.

국민연합은 절대 과반 의석 확보의 꿈이 좌절된 데서 나아가 지지율 1위에서 3위로 떨어졌다. 1차 투표예상과 달리 1위 수성에는 실패했지만 성공을 거둔 것도 사실이다. 국민연합은 2년 전만 해도 의원이 단 7명 이었다. 지난 의회에서는 88명의 의원이 있었고 지금은 140명이 넘었다. 

좌파연합과 범여권이 연합정당으로 실질적인 최대 정당은 국민연합이다. 1·2위를 차지한 좌파 연합과 범여권의 의석수에 비춰도 크게 밀리지 않는 규모다. 전통적인 우파인 공화당 의석수(40여석)보다는 3배가량 많다. 프랑스 정치권에서 극우 정당이 명실상부한 주류 세력이 됐다.

르펜 의원도 결과에 대해 "우리 승리는 늦춰졌을 뿐"이라며 "의석수를 늘렸으니 실망할 것 없다"고 말했다.

국민연합의 1차때 돌풍이 꺾인 것은 극우 정권에 대한 정치권과 유권자들의 우려때문으로 보인다.

르펜은 "대통령과 극좌의 부자연스러운 동맹이 아니었다면 국민연합이 절대 과반이었을 것"이라며 "(극우의) 조수는 계속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30일 치러진 1차 투표 때까지만 해도 국민연합이 최다득표를 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가 좌파 연합과 범여권에서 대대적인 후보 단일화를 이루며 예상 밖의 결과가 나왔다. 

프랑스 일간지 르몽드 단일화를 위해 좌파 연합인 신민중전선(NFP)에서 총 134명, 범여권에서 82명이 사퇴한 것으로 집계했다.

나치의 통치를 받은 뼈아픈 역사를 안고 있기에 프랑스인들은 극우의 부상을 극도로 경계해왔다.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 주장 킬리안 음바페는 "극우를 막아달라"고 호소했다. 

좌파연합의 동상이몽

15일(현지시간)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서 반극우 시위 중인 신민중전선 회원들 ⓒAFP 연합뉴스


이번 프랑스 총선에서 극우 돌풍을 저지하고 1위에 오르는 이변을 일으킨 신민중전선(NFP)은 극좌 성향의 굴복하지않는프랑스(LFI), 사회당, 공산당, 녹색당 등 좌파 4개 정당이 뭉친 좌파 연합이다.

이들은 지난 달 9일 유럽의회 선거에서 극우 국민연합이 압승을 거두고 이후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조기 총선 실시를 선언하자 국민연합의 총선 승리를 저지하기 위해 동맹을 맺었다.

평소 극좌 정당인 LFI와 나머지 정당들은 경제 정책이나 우크라이나 문제 등에 있어서 이견을 보였지만 극우 집권을 막겠다는 공동의 목표 아래에서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1930년대 유럽의 파시즘 부상에 맞서 결성한 좌파 연맹인 '민중전선'에서 이름을 따온 신민중전선은 그간 마크롱 대통령이 펼친 중도 우파 성향의 개혁 정책들을 폐지하고 '복지 국가'로의 회귀를 공약으로 내걸고 있다.

마크롱 대통령이 폐지한 부유세를 더 강화해 재도입하고, 고소득자·기업 등에 대한 세금을 늘려 정부 재원을 마련하겠다는 방침이다.

프랑스 전역에서 큰 반발을 불러왔던 마크롱 대통령의 연금 개혁도 폐기하겠다는 입장이다.

신민중전선은 2차투표를 앞두고 조직됐다.

이들은 반자본주의자들과 공산주의자, 사회 민주주의자들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정치지형을 갖추고 있다.

BBC는 이 연합이 "극좌파 투쟁가인 장뤼크 멜랑숑과 같은 인물이 포함돼 프랑스 좌파의 정치적인 특징인 파벌주의로 붕괴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신민중전선은 내각 구성에 의욕을 보이고 있으나정부 운영의 실질적 책임자인 총리에 누구를 앉힐지를 두고는 참여 정당 간 이견을 드러냈다.

인지도나 유권자에 대한 영향력 등만 놓고 볼 땐 신민중전선 내 최대 세력인 LFI의 장뤼크 멜랑숑 대표가 우선 순위다.

녹색당의 마린 통들리 설도 나오고 있다.

마린 통들리에 녹색당 대표는 프랑스앵테르 인터뷰에서 "신민중전선 내에서 총리 후보를 정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라며 "가장 좋은 방법은 합의를 통해 집단으로 지능적인 해결책을 찾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LFI, 사회당, 공산당, 녹색당 출신이 될 수도 있고 심지어 이들 외의 인물이 될 수도 있다"며 시민사회 진영에서 후보자를 찾는 방법도 배제하지 않았다.

확실한 것은 마크롱의 패배

7일(현지시각) 프랑스 파리 레퓌블리크 광장에 좌파 연합의 총선 승리를 축하하기 위한 인파가 몰려들었다. ⓒAFP 연합뉴스


이번 선거 결과는 프랑스 정치권의 불확실성을 키웠다.

프랑스 일간 르몽드의 칼럼니스트 실비 카우프만은 BBC에 "많은 것들이 명확하지 않다. 우리는 누가 졌는지는 알지만 누가 이겼는지는 모른다. 우리에게 일상적이지 않는 타협의 기술을 배울 수 있을지 아무도 모른다. 징조가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의회 해산과 조기총선 모험을 했던 마크롱 대통령은 정치적 자해로 상처를 입은 채 여전히 왕좌에 머물러 있다. 며칠 전(1차 투표)보다는 조금 더 강해졌다.

전혀 불필요한 선거 도박의 결과로 국회 의석의 거의 3분의 1을 잃었다. 신민중전선과의 거래로 여론조사 기관들이 예측한 돌풍을 잠재우는 데는 성공했다.

다만 마크롱이 패한 것은 확실하다.

마크롱 당을 이끌었던 질 르장드르 전 의원은 "공화국의 대통령은 행동하기 위한 약간의 원동력을 유지할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라를 이끌기 위한 역동성을 발휘하지 못할 것"이라며 "이런 점에서 마크롱주의(Macronism)는 7년만에 사망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기자 프로필

이 기사는 언론사에서 세계 섹션으로 분류했습니다.
기사 섹션 분류 안내

기사의 섹션 정보는 해당 언론사의 분류를 따르고 있습니다. 언론사는 개별 기사를 2개 이상 섹션으로 중복 분류할 수 있습니다.

닫기
이 기사를 추천합니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