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고발 사주 의혹’ 사건으로 기소된 손준성 검사에 대한 유죄 판단이 2심에서 뒤집혔다. 12월6일 서울고등법원 제6-1형사부(재판장 정재오)는 두 차례나 선고를 미룬 끝에 징역 1년이라는 원심을 깨고 손 검사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동시에 “검찰총장 등 상급자”가 고발 사주 의혹 사건에 개입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판결문에 명시했다. 당시 검찰총장은 윤석열이었다. 즉 재판부는 고발 사주 의혹 사건에 대한 책임이 상급자(윤석열 당시 검찰총장 등)에게 있지, 상급자의 지시에 따라 업무를 수행한 손 검사에게 있지 않다고 판단한 셈이다. 이로써 ‘윗선’이 누구인지 밝혀내는 게 고발 사주 의혹의 핵심이라는 사실이 다시 한번 명확해졌다.
재판부는 증거가 적절하게 수집되지 못한 점부터 지적했다. 재판부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서 압수수색한 한국법조인대관 홈페이지 검색 내역을 제외한 모든 증거가 위법하게 수집되었다고 봤다. 재판부는 이 사건 초동수사를 담당했던 서울중앙지방검찰청(서울중앙지검)을 향해 검찰 내부 게시판인 ‘이프로스’와 검찰 형사사법정보시스템 ‘킥스(KICS)’를 압수수색한 “실질적 피압수자인 피의자(손 검사)에게 압수수색 참여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것을 충분히 인지할 수 있었음에도 참여권을 보장하려는 어떠한 시도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압수수색을 진행한) 검사에게 영장주의 원칙과 적법 절차를 준수하려는 의지가 있었는지조차 의문스럽다”라고 비판했다.
재판부는 서울중앙지검으로부터 증거물을 넘겨받은 공수처 역시 “서울중앙지검 검사의 위법한 압수수색영장 집행 사실을 충분히 인지할 수 있었음에도 이를 실질적으로 해소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라고 판단했다. 피고인 손 검사 측의 주장에 손을 들어준 것이다.
가장 중요한 쟁점인 공직선거법 위반 여부에 대한 1심과 2심의 판단 근거는 달랐다. 1심 재판부는 손 검사가 1·2차 고발장 파일이 포함된 텔레그램 메시지를 생성하고 수집하는 데 관여했을 뿐만 아니라 김웅 당시 미래통합당 후보(이하 직위 생략)에게 메시지를 전송한 사실도 인정된다고 밝혔다. 다만 1·2차 고발장이 조성은 당시 미래통합당 선거대책위원회 부위원장(이하 직위 생략)에게 전달됐다는 이유만으로는 “선거에 영향을 미치려는 공직선거법 위반 행위가 기수에 이르렀다고 볼 수 없으므로”, 즉 미수에 그쳤으므로 공직선거법 위반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이에 대해 공수처는 1·2차 고발장의 실제 접수 여부와 상관없다며 항소했다. 선거에 참여하는 당사자인 정당(미래통합당)이 수사기관에 접수할 수 있도록 고발장을 전달하는 행위, 즉 ‘정보를 제공하는 행위’ 자체가 ‘선거에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는 행위’이므로 공직선거법 위반이라는 것이었다.
2심 재판부는 우선 손 검사가 대검찰청 수사정보정책관(수정관)으로서 ‘그 지위를 이용하여’ 관련 정보를 수집하고 1·2차 고발장을 작성하는 데 관여했다고 인정했다. 당시 수정관실에서 근무했던 성상욱 수사정보2담당관, 임홍석 연구관 등이 검색하여 수집한 지 아무개씨(‘제보자 X’) 실명 판결문 등의 정보 역시 “어떤 형태로든 수정관실 업무를 총괄·관장하는 피고인에게 보고되었다”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1심 재판부의 판단과 같다.
당시 ‘상급자’는 윤석열
그러나 2심 재판부는 ‘무죄추정의 원칙’을 강조했다. “이 사건에서 제출된 증거들만으로는 피고인이 김웅에게 각 메시지를 전송했다는 부분의 증명이 합리적인 의심이 없는 정도에 이르렀다고 인정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 근거는 ‘직접증거’와 ‘간접사실’로 나뉜다.
‘직접증거’는 말 그대로 직접적인 증거가 없다는 의미다. 김웅은 “(손 검사로부터 메시지를 받은) 기억이 없다”라고 재판 내내 부인했다. 그렇다고 손 검사가 김웅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장면을 직접 보거나, 손 검사가 “김웅에게 메시지를 보냈다”라고 말하는 것을 직접 들은 사람도 없었다. 손 검사가 김웅에게 직접 메시지를 보낸 것인지, 손 검사로부터 메시지를 받은 제3자가 다시 김웅에게 메시지를 전달한 것인지도 확실하지 않다. 텔레그램 앱 특성상 메시지가 ‘손 검사⟶김웅’ 순서로 전달되든 ‘손 검사⟶제3자⟶김웅’ 순서로 전달되든, ‘○○○(최초 전송자)으로부터 전달됨’이라는 문구가 표시되는 건 똑같기 때문이다. 1심 재판부는 손 검사와 김웅 사이에 제3자가 있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받아들이지 않았으나, 2심 재판부는 이를 인정했다.
물론 피의자인 손 검사가 자신의 휴대전화 잠금을 풀어 수사에 협조했다면, 제3자 개입 여부 등을 포함한 모든 의혹이 깔끔하게 풀렸을 것이다. 하지만 2심 재판부는 손 검사가 휴대전화 포렌식을 거부했다 할지라도 그 상황에서 혐의를 증명할 책임은 검사에게 있다고 봤다. ‘도둑이 제 발 저려서 휴대전화 잠금을 안 풀어주는 게 아니냐’는 식의 추론은 위험하다는 의미다.
2심 재판부의 ‘직접증거’에 대한 판단보다 눈여겨봐야 할 지점은 ‘간접사실’에 대한 판단이다. 사실상 이번 판결에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다. 2심 재판부는 손 검사가 김웅에게 메시지를 전달했을 가능성보다 오히려 손 검사가 검찰총장 등 상급자에게 직무 보고를 하기 위해 메시지를 전송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았다.
“1·2차 고발장과 그 기초자료인 이 사건 각 메시지 대상 정보의 작성·수집은 언론 등에서 검찰 또는 검찰총장(그 가족 포함), 검사장 한동훈 등을 상대로 공격하는 것에 대하여 방어하려는 차원에서, 제보자의 신원 및 전과 내역을 밝혀서 뉴스의 신빙성을 떨어뜨리고 (···) 최강욱, 황희석 등 여권 정치인 등을 고발함으로써 국회의원 선거에서 이들에게 타격을 주려는 의도에서 이루어졌다고 보인다. 그러한 업무 수행은, 법률에 위배되는지는 별론으로 하고, 피고인이 수정관의 지위에서 검찰총장 등 상급자의 지시에 의하여 기존에 수행하던 다른 업무(주요 재판부 분석 문건, 장모 대응 문건 등)의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졌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검찰 조직을 방어하기 위해 누군가가 야당을 통해 여권 인사를 저격하는 고발장을 접수시키려 함으로써 총선 결과에 영향을 미치려 했다는 ‘고발 사주 의혹’의 상당 부분이 개연성 있다고 재판부가 인정한 것이다. 다만 2심 재판부는 그 ‘누군가’가 손 검사가 아닌, 손 검사보다 ‘상급자’일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하급자인 손 검사가 상급자인 윤석열 검찰총장에게 텔레그램으로 보고하는 것이 이상하지 않느냐는 의문에 재판부는 이렇게 답한다. “당시 언론과 법무부 장관(추미애 전 장관)이 검찰을 거세게 공격하고 있었고 국회의원 선거를 일주일 정도 앞둔 시점이었기 때문에, 1·2차 각 고발장을 마련한다는 것 자체가 정치적·사회적으로 커다란 논란을 일으킬 여지가 있어서, 보안을 유지하며 은밀하게 진행할 필요성도 있었다고 보인다. 보안성 높은 텔레그램을 통해서 이른 아침부터 이 사건 각 메시지를 검찰총장 등 상급자에게 보고한다는 것이 꼭 그렇게 이례적이었다고 보이지는 않는다.”
앞서 재판부가 손 검사와 김웅 사이에 제3자가 존재할 가능성을 인정한 점, 그리고 손 검사가 상급자에게 보고하기 위해 메시지를 작성했을 가능성을 인정한 점을 연결해보면 한 가지 시나리오가 도출된다. 손 검사는 상급자에게 보고하기 위해 메시지를 작성했는데, 상급자에게 넘어간 메시지가 김웅에게 전달되는 상황이다. 즉 ‘제3자’가 ‘상급자’일 가능성이다.
재판부는 메시지가 ‘손 검사⟶김웅’으로 연결되는 흐름에 의문을 제기한다. “피고인과 김웅은 사법연수원 동기 검사라는 점 외에 특별한 친분 관계가 명확히 발견되지 않고, 이 사건 전후로 직간접적으로 연락을 주고받은 정황을 찾아보기 어렵다. 김웅이 검사에서 사직하자마자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여 선거운동으로 매우 바쁜 와중에 시간을 할애하여 피고인과 위와 같이 기민하게 소통하며 피고인의 부탁을 받고 이를 수용하여, 그 부탁의 취지를 조성은에게 그대로 전달하기로 했다는 것은 그 동기 등이 석연치 않아 선뜻 납득이 가지 않는다.”
대신 재판부는 ‘손 검사⟶상급자(제3자)⟶김웅’ 순서로 메시지가 흘러가는 게 더 합리적이라고 설명한다. “그보다는, 김웅이 자신보다 연수원 기수가 더 높은 사람이거나 검찰에서의 상사나 선배였던 사람 또는 자신의 선거운동을 도와줄 수 있는 사람 등에게서 그러한 부탁을 받고, 이에 따라 조성은에게 이 사건 각 메시지를 전달했다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위와 같은 사정 등에 비추어 보면 피고인이 아니라, 피고인에게 고발장 작성 등을 지시한 ‘검찰총장 등 상급자’가 미래통합당을 통한 고발을 기획하고 미래통합당 측에 고발장 등을 전달할 자로 김웅을 선택한 다음 김웅과 긴밀하게 연락을 취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만약 공무원인 손 검사가 ‘메시지를 전달받은 제3자가 수사기관에 고발장을 접수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알고 있었다면(미필적으로나마 인식하고 있었다면), ‘공무원 등 법령에 따라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는 자는 직무와 관련하여 또는 지위를 이용하여 선거에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등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할 수 없다’고 규정한 공직선거법 제85조 제1항을 위반한 것일 수 있다. 하지만 공수처가 제출한 공소장에는 이 시나리오까지 담겨 있지 않다.
2심 재판부는 재판 과정에서 공수처에 ‘제3자 전달을 통해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미필적 인식’까지 심판 범위에 포함돼 있는지 명확히 밝히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하지만 공수처는 따로 공소장을 변경하지 않았다. 따라서 재판부는 “별도의 공소장 변경 절차 없이 ‘피고인이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미필적 인식하에 ‘검찰총장 등 상급자’ 또는 ‘검찰청 소속이 아닌 외부의 제3자’ 등에게 메시지를 전송함으로써 공직선거법을 위반했는지를 심판 대상으로 삼을 수 없다”라고 밝혔다.
고발 사주 의혹 재수사 불가피해
공수처가 제3자 개입 가능성을 검토하지 않았으므로, 재판부는 공무상비밀누설·개인정보보호법 위반·형사사법절차 전자화촉진법 위반 등의 혐의도 모두 기각했다. 위 모든 혐의는 공무원인 손 검사가 자신의 지위를 통해 알게 된 사실을 외부인인 김웅에게 ‘직접’ 전달했다는 점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이날 재판이 끝난 뒤 손 검사는 “충실한 심리 끝에 무죄 선고를 내려주신 재판부에 경의를 표한다”라고 심경을 밝혔다. 대구고등검찰청 차장검사인 그는 2023년 12월1일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통과된 이후 직무정지 상태다. 헌법재판소는 ‘항소심 선고까지 탄핵심판 절차를 중단해달라’는 손 검사의 요청을 받아들여 지난 4월3일 이후 심판 절차를 멈췄는데, 항소심 선고가 나온 만큼 탄핵심판 절차도 다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기관이 출범한 이후 첫 ‘1승’의 기록이 사라지게 된 공수처는 “판결문을 받아본 후 상고 여부를 검토하겠다”라며 말을 아꼈다. 김웅으로부터 고발장을 전달받은 당사자이자 ‘고발 사주 의혹’ 제보자이기도 한 조성은씨는 2심 선고 이튿날 페이스북에 공수처의 수사 능력을 질타하는 글을 남겼다. “공수처는 2022년 5월 고발 사주 사건에서 공범 윤석열·한동훈을 제대로 수사하지도 않고 무혐의 처분을 했는데 2024년 12월 고발 사주 의혹 관련 손준성 항소심 재판부는 윤석열 개입을 적시하며 손준성 무죄판결을 내리게 했다.”
실제로 공수처는 2심 재판부가 명시한 “검찰총장 등 상급자” 즉 윤석열 당시 대선후보를 단 한 번도 소환조사조차 하지 않다가 대통령 취임식을 엿새 앞두고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당시에도 ‘검찰총장(윤석열)의 명령 없이는 움직일 수 없는 부하 검사(손준성)에게만 책임을 물으려는 것이냐’는 비판이 나왔다. 결국 2년 6개월이 지난 지금, 재판부는 다시 ‘윗선’의 책임을 묻고 있다. 법원이 “검찰총장 등 상급자”의 개입 가능성을 명시한 만큼, 이에 대한 재수사는 피할 수 없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