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15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제79주년 광복절 경축식. 윤석열 대통령은 경축사 서두에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하신 순국선열과 애국지사들께 경의를 표합니다. 유가족 여러분께도 깊이 감사드립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순국선열과 애국지사’ 유가족과 후손 대부분은 거기 없었다. 광복회를 비롯한 56개 독립운동단체는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 내 백범김구기념관에서 따로 기념식을 개최했다. 단순 불참이 아니었다. 김형석 신임 독립기념관장 임명에 항의하는 의미였다. 광복절 기념행사가 둘로 나뉘었다. 사상 처음 벌어진 일이다.
논란의 중심에 광복회가 있다. 광복회는 독립유공자와 그 유족, 후손들이 조직한 단체로, 보훈단체로서의 법적 지위를 보장받는다. 독립운동 문제에서 광복회의 목소리는 다른 시민단체보다 위상이 높다. 이 단체의 광복절 행사 불참은 단순한 사건이 아니다. 대한민국 독립운동 세력의 대표가 정부에 등을 돌렸다.
현 광복회장은 이종찬 회장이다. 이 회장은 우당 이회영 선생의 손자다. 이회영 선생 집안은 조선시대 수차례 정승을 배출한 명문가였다. 1910년 한·일 합병이 되자 그해 12월 이회영 6형제는 전 재산을 급히 처분해 만주로 이주했다. 현재 가치로 수백억 원에서 수조 원에 달하는 천문학적 금액이다. 만주 독립운동 조직과 한인 단체를 조직하는 데 이 자금이 들어갔다.
이종찬 회장의 정치 성향은 보수에 가깝다. 그는 육군사관학교 16기 출신으로 박정희 정권 중앙정보부에서 일했다. 1980년대에는 여당인 민주정의당과 민주자유당 소속으로 4선 의원을 지냈다. 국민의힘의 뿌리가 되는 정당으로, 당시 대통령은 전두환과 노태우였다. 윤석열 대통령과 이종찬 회장은 특수한 관계다. 이 회장의 아들인 이철우 교수(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는 윤 대통령과 초등학교, 대학(서울대 법학과) 동창이다. 윤 대통령은 2021년 이철우 교수와 이종찬 회장을 두고 “집안끼리도 가족처럼 지내던 사이”라고 밝힌 바 있다. 50년 이상 ‘가족’처럼 지내온 보수 인사 이 회장은, 8월10일 청년헤리티지아카데미 특강에서 윤석열 정부를 맹비난했다. “독립기념관 관장이 뉴라이트 깃발을 들고, (중략) 매국이 아닌가?” “대통령 주변의 밀정이 연극을 꾸몄다.”
이종찬 회장은 특히 두드러진 사례일 뿐이다. 독립 유관 단체와 역사학계 전체의 반발은 더욱 거세다. 역사학회·한국근현대사학회·한국역사연구회 등 48개 역사 관련 학회·단체는 8월13일 성명을 내고 “민족 자주와 독립 정신의 요람인 독립기념관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김형석 신임 관장이 “일본의 식민 지배와 친일파를 옹호하는 인사”라고 주장했다. 8월8일에는 ‘순국선열, 애국지사 독립유공자 후손 일동’이 독립기념관 앞에서 집회를 열어 이번 인사를 비판했다. 8월13일 광복회는 용산 대통령실 인근 전쟁기념관 앞에서, 항일혁명가기념단체연합은 광화문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모두 김형석 관장 임명을 반대하는 내용이었다.
“현대사 왜곡” 주장한 학계의 외부인
독립기념관 노동조합까지 들고일어섰다. “김형석 관장의 사퇴를 관철시키기 위해 강력한 투쟁을 전개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옥주연 독립기념관 노조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은 〈시사IN〉과 통화에서 “노조원 전체의 투표를 거쳐 성명을 냈다. ‘설마’라고 생각했는데 취임 후 행보를 보고 확신이 들었다. 인터뷰에서 ‘친일파 명예 회복’을 이야기한 일이나, ‘1945년 광복됐다는 건 역사를 잘 모르는 것’이라는 발언 등을 보고 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라고 말했다. 옥 위원장은 김 관장이 8월15일 서울에서 열린 경축식에 참석하고, 독립기념관 자체 경축식에 불참한 일도 거론했다. “광복절 정부 기념행사를 독립기념관에서 연 적은 있어도, 관장이 서울 기념행사에 가느라 독립기념관 행사에 불참한 일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독립기념관 노조가 정치적 목소리를 낸 것 또한 처음 있는 일이다.
역사학계에서 김형석 관장은 유명 인사가 아니다. 그는 고등학교 교사로 일하다가 1995년 40세에 사학 박사학위를 얻었다. 논문 제목은 ‘명말의 경세가 서광계 연구’로, 16세기 명나라 관료에 대한 내용이다. 1997년 ‘한민족복지재단’을 설립하고 초대 회장을 맡은 뒤에는 근 20년간 사실상 학계를 떠나 있었다. 2022년 〈뉴시스〉 인터뷰에서 김 관장 스스로 이렇게 말했다. “한민족복지재단 회장을 오랫동안 맡으면서 연구에서 손을 놓고 있었다. 그러다 제자리로 돌아와 역사책을 다시 보니 현대사가 너무 왜곡돼 있었다.”
객관적으로도, 주관적으로도 한국 독립운동사 학계에서 김형석이라는 인물은 외부인에 가깝다. 역사학계에는 ‘김형석이라는 독립운동사 연구자가 있다는 사실 자체를 처음 알았다’는 이들도 많다. 정치 성향을 따지기 이전에 독립기념관장으로서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이야기다. 그런 그가 취임 후 “〈친일인명사전〉에 사실상 오류가 있더라. (중략) 억울하게 친일 인사로 매도되는 분들이 있어서도 안 되겠다”라고 말했다. 8월8일 독립유공자 후손들의 항의 속에서 간신히 취임식을 치른 뒤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한 발언이다.
김형석 관장은 뉴라이트일까. 주진오 명예교수(상명대 역사콘텐츠학과)는 지난 20여 년간 뉴라이트 학자들과 논쟁해온 대표적 사학자다. 주 교수는 ‘나는 뉴라이트가 아니다’라는 김형석 관장의 말을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사실 뉴라이트(학자)들도 김 관장을 잘 모를 것이다. 존재감이 없다. 뉴라이트 활동에 특별히 기여한 바가 없다.” 그런데 주 교수에 따르면 김 관장이 뉴라이트가 아니라고 강변하는 데에는 다른 이유가 있을 수도 있다. “이제는 ‘내가 뉴라이트다’라고 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뉴라이트 단체도 시들하다. 이명박 정부, 박근혜 정부 때 교과서 파동을 거치며 세가 꺾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사라진 건 아니다.” ‘뉴라이트 활동’을 하지 않았고(혹은 못했고), 스스로 뉴라이트라고 밝히지도 않지만, 김형석 관장의 논리는 뉴라이트와 같다는 게 주진오 교수의 평이다. 주 교수는 김 관장의 개별 발언 이상으로, 정부가 그에게 부여한 임무가 중요하다고 본다. 그를 비롯한 역사학자들은 “독립운동사를 이승만 중심으로 재편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본다.
김형석 관장의 견해는 2022년 낸 책 〈끝나야 할 역사 전쟁〉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표지에는 이승만 전 대통령과 백범 김구 선생의 사진을 나란히 배치했다. 김 관장은 책 앞머리에서 ‘국민 통합 사관’이 필요하다며, ‘이승만·김구 두 사람 모두를 국부로 모시자’고 주장한다. 하지만 본문 전체를 살피면 ‘이승만 띄우기’에 가깝다. 책의 주된 화두는 ‘건국’이다. 그는 ‘1948년 건국설’이 옳다며, 여기 동의하지 않는 학자들의 생각은 ‘분단 사관’이라고 비판한다. “이승만 정부를 분단을 고착화시킨 반민족 세력으로 매도”하려는 게 그들의 목적이라고 썼다. 1919년 임시정부 수립이 건국이라는 주장은 “일종의 궤변”이라고 적었다.
똑같이 ‘국부’로 모시자면서도 김 관장은, 김구 선생은 깎아내리고 이승만 전 대통령은 추어올린다. “국제정세를 정확히 판단하여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통일 노선보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우선하여 국가의 기초를 다진 이승만과, 당시의 상황은 비현실적이었지만 통일을 강조하여 미래 통일 한국을 위한 이상의 기초를 심어놓은 김구”를 대비했다. 더 노골적인 대목도 있다. “이승만은 국제정세를 정확히 파악하고 (중략) 건국을 완성하였다.” “김구는 국제정세를 파악하지 못하고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반대하였을 뿐 아니라 북한의 김일성과 남북 협상을 시도하였고, 정부가 수립된 후에도 대한민국의 정당성을 부정했다.” 책에서 그는 대한민국 건국 과정을 비판적으로 보는 시각이 “자학 사관”이며, “역사학의 정치화”라고 비판했다.
사학자들은 김형석 관장이나 뉴라이트의 사관이야말로 특정한 의도를 지닌 정치 프로젝트라고 반박한다.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실장, 고려대 한국사연구소 연구교수 등을 지내다 최근 퇴임한 역사학자 박한용씨는 이번 일에서 이명박 정부의 건국절 프로젝트를 떠올렸다. 정치적 상황과 관변 학자들의 논리가 그때와 같다는 것이다. ‘자학 사관’이라는, 뉴라이트 ‘전가의 보도’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한다. “뉴라이트 학자들은 역사학 전공자들이 아니라 경제학 등 타 분야 학자들이다. 이들에게 일제강점기 연구는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다.” 그는 뉴라이트의 역사에 대한 관심이 ‘한강의 기적’ ‘OECD 가입’ ‘산업화와 민주화 동시 달성’에서 출발했다고 말했다. “자랑스러운 현재의 대한민국을 어떻게 해석하느냐가 논제다. ‘비결’이 무엇인지 설파하는 것이다. ‘민족주의라는 망령에 빠지지 않고 이승만이 친일파 엘리트를 청산하지 않아서 빠르고 효율적으로 발전했다’는 게 그들의 결론이다.”
왜 꼭 이승만이어야 하는 걸까
이 주장은 사학계에서 소수설에 가깝다. 15년 전 뉴라이트 학자들은 정치세력과 합작해 제 생각을 구현하려 했다. 지지 기반이 허약했던 이명박 전 대통령이 이들을 받아들였다. 이승만 재조명 사업이 시작되고, ‘건국절’ 추진 논란이 불거졌다. 박 전 교수는 “보수세력 내 기반이 약한 윤석열 대통령도 같은 상황일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이승만 신화를 정권의 이념적 배경으로 삼는다는 것이다. 지난해 국가보훈처는 이승만기념관 건립 계획을 밝혔으나 반발에 부딪히자 모금을 통한 민간 건립으로 계획을 바꿨다. 윤석열 대통령과 오세훈 시장 등이 직접 기부에 참여했다.
다른 보수 정치인이 아니라 ‘이승만이어야 하는’ 실리적인 이유도 있다. 이승만은 친미와 반공, 그를 위한 친일파 용인의 아이콘이다. 주진오 교수는 윤석열 정부의 외교관에 맞아떨어지는 인물이라고 말한다. “한·미·일 동맹은 역대 보수 정권 모두의 난제였다. 미국은 한·일 관계가 동맹 수준으로 격상돼 북한과 중국을 포위하길 원하는데, 우리 국민 정서는 일본과의 동맹을 용인하지 않는다. 이를 누그러뜨리려면 철저한 반공과 남북 대립이 정당화되어야 한다. 그 역사적 뿌리로 삼을 만한 이가 이승만이다.” 김형석 관장이 ‘명예 회복’ 대상으로 백선엽을 거론한 것 역시 이승만 반공주의의 연장선상에 있다. 백선엽은 스스로 간도특설대의 독립군 토벌 이력을 시인했지만 김 관장은 책에서 증거가 불충분하다고 주장한다. 게다가 백선엽이 공산화로부터 대한민국을 구했다며, “설령 (백선엽에게서) 친일의 과오가 발견되더라도 구국의 공적마저 지울 수는 없다. 구국의 가치는 독립의 가치와 비교해도 결코 적지 않기 때문”이라고 썼다.
김형석 관장 임명은 ‘독립기념관장’이기 때문에 유독 두드러진, 빙산의 일각이라고 보는 시각이 다수다. 정부 산하 3대 역사 연구 기관으로 불리는 동북아역사재단, 국사편찬위원회, 한국학중앙연구원은 일찌감치 뉴라이트 인사가 자리를 채웠다.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으로는 올해 1월 박지향 서울대 서양사학과 명예교수가 취임했다. 뉴라이트 성향 도서 〈해방전후사의 재인식〉(2006)을 공저한 영국사 학자다. 동북아역사재단은 일본의 역사 왜곡에 대응하기 위해 설립된 기구다. 지난 5월에는 허동현 경희대 교수가 국사편찬위원장에 올랐다. 박근혜 정부 시절 국정 역사 교과서 편찬 작업에 참여한 인물이다. 7월 한국학중앙연구원장이 된 김낙년 동국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반일 종족주의〉의 공동 저자다. 이 책은 식민지근대화론을 다룬다.
2021년 퇴임한 이준식 전 독립기념관장은 김형석 관장 임명을 두고 “어떠한 자격도 갖추고 있지 못한 사람을 정부 의도에 따라 핀셋으로 집어내듯 그 자리에 앉혔다”라고 비판했다. 독립유공자 지청천 장군의 후손인 이 전 관장은, 긴 시간을 들여 그 이유를 설명하기에 앞서 상황을 이렇게 비유했다. “독립기념관장이 어떻게 친일 인사 명예 회복을 생각하고, 말하는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건 전두환에게 5·18기념관 관장을 맡긴 것과 다를 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