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나물·두부 싣고 마을로 들어가는 구멍가게가 있다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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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4.07.24. 오전 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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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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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락점빵 사회적 협동조합’에서 운영하는 이동형 마트 트럭 ‘이동점빵’은 매주 2회, 식료품 소매점이 없는 마을 42곳을 돌며 농촌 주민들을 찾아간다.
전남 영광군 묘량면 덕흥리 주민들이 마을 어귀에서 ‘동락점빵’의 이동식 마트 트럭인 이동점빵을 이용하고 있다. ©시사IN 신선영


“뭘 사지도 않는디 꼭 와서 들여다봉께, 고마와.”

전남 영광군 묘량면 당산마을 주민 박정임씨(87)가 경로당을 방문한 김동광 사회복지사(35)에게 말했다. ‘동락점빵 사회적 협동조합(동락점빵)’에서 운영하는 1t짜리 이동형 마트 트럭 ‘이동점빵’을 몰고 매주 2회, 마을 42곳을 누비는 김씨는 땀이 미처 식기 전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전남 영광군 묘량면 영당마을 주민들이 물건을 사기 위해 트럭 내부를 둘러보고 있다. ©시사IN 신선영
‘이동점빵’은 1t짜리 트럭을 개조해 좁은 마을 길을 다닐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시사IN 신선영


인구 1694명이 사는 전남 영광군 묘량면의 면적(44.7㎢)은 서울시 강남구 면적(39.5㎢)보다 넓다. 하지만 이곳에는 식료품 소매점이 단 한 곳도 없다. 유일한 구멍가게는 2010년에 문을 닫았다. 주민들은 장을 보기 위해 영광읍내까지 차로 15분을 운전하거나, 하루 5대에 불과한 버스를 기다려야 했다. 스마트폰 앱을 사용한 배달에 익숙하지 않은 노인들에게 식품 구매는 불가능한 일상이 됐다.

김동광 사회복지사가 주민이 부탁한 아이스크림을 보냉백에 담아 배달하고 있다. ©시사IN 신선영
몸이 아픈 독거노인을 살피는 것도 ‘동락점빵’ 직원들이 하는 일이다. 장을 보기 힘든 노인의 집앞에 필요한 물품들이 놓여 있다. ©시사IN 신선영


일본에서는 지역 상권 붕괴와 고령화 탓에 일찍이 ‘식품 사막화’와 ‘장보기 난민’이라는 용어가 생겼다. 이제 한국도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다. 통계청이 5년마다 발표하는 ‘2020년 농림어업총조사’에 따르면 전국 행정리 3만7563곳 가운데 73.5%인 2만7609곳은 마을 내 음식료품 소매점이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거동이 불편한 정지순씨(86)가 집 앞 골목에서 이동점빵을 기다리고 있다. ©시사IN 신선영
김동광 사회복지사(오른쪽)가 마을 노인의 집을 찾아가 안부를 묻고 있다. ©시사IN 신선영


전남 영광군 묘량면에서 노인복지 사업을 해오던 마을공동체 ‘여민동락공동체’ 구성원들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자 2011년 작은 가게 동락점빵을 만들었다. 거동이 불편한 주민을 위해 생필품과 식재료를 싣고 찾아가는 이동점빵도 시작했다. 현재 묘량면 주민을 포함해 400여 명이 동락점빵 조합원으로 가입돼 있다.

전남 영광군 묘량면 영양리와 운당리 사이 ‘여민동락공동체’에서 만든 ‘동락점빵 사회적 협동조합’과 ‘여민동락 재가노인복지센터’가 자리 잡고 있다. ©시사IN 신선영
김동광 사회복지사(오른쪽)가 ‘동락점빵’ 매장에서 동료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시사IN 신선영


타 지역에서도 이동형 마트 트럭이 조금씩 생겨나고 있다. 하지만 13년째 이어져온 이동점빵은 단순히 물건을 싣고 마을에 들어가 판매하는 일보다도 ‘이웃을 살피는 일’에 더 의미를 두고 있다. 3년 전 귀촌해 이 일에 동참한 김동광 사회복지사에게도 동락점빵은 이익이 남는 ‘사업’이 아니다. “점빵에서 값싼 콩나물과 두부가 가장 많이 팔려요. 콩나물시루가 비었다는 뜻은 마을 주민들이 물건을 사고, 밥을 해먹는 최소한의 삶을 주체적으로 이어가고 있다는 의미예요. 이건 사업이 아니라, 삶 자체예요.”

‘이동점빵’ 트럭 안에서 보이는 농촌 풍경. 13년째 농촌 마을을 누비는 ‘이동점빵’은 다른 농어촌 지자체에서 방문할 정도로 본보기가 되고 있다. ©시사IN 신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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