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급 1만원 시대, 최저임금은 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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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4.07.10. 오전 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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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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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도 최저임금은 1만원 이상이 될 가능성이 크다. 업종별 차등 지급을 둘러싸고 노사가 팽팽히 맞섰다. 최저임금을 우회하려는 정부의 시도 역시 계속되고 있다.
6월25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제5차 최저임금위원회 전원회의가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시급 1만원 시대’가 눈앞에 다가왔다. 최저임금위원회(최저임금위)는 예년처럼 올해도 법정 시한(6월27일)을 넘겨 내년도 최저임금을 확정하게 되었다. 내년도 최저임금의 최대 화두는 ‘시급 1만원’ 여부다. 올해 최저임금이 시급 9860원인 점을 감안하면, 1.42%만 인상되어도 달성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올해 최저임금위에서는 최종 확정 임금만큼이나 최저임금을 둘러싼 다양한 논의가 주목받았다. 특히 도급제 노동자에 대한 최저임금 적용 문제와 업종별 차등 지급 문제를 놓고 노사 양측이 치열하게 맞붙었다.

도급제 노동자에 대한 최저임금 적용 문제는 최저임금위 첫 회의에서 등장했다. 5월21일 제1차 전원회의에서 노동계는 최저임금법 제5조 3항에 대한 논의를 진행해줄 것을 요청했다. 최저임금법 제5조 3항은 도급제 노동자에 대한 최저임금액을 따로 정할 수 있다고 규정해놓았다. 문제는 그동안 이 법 조항이 사실상 사문화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플랫폼 노동자(배달 기사 등), 특수고용직(택배 기사 등)과 같은 도급제 노동자는 노동시간을 파악하기 어려운데, 대신 실적을 바탕으로 최저임금을 산정하자는 요구가 등장하면서 최저임금위 초반 쟁점으로 떠올랐다.

도급제 노동자의 최저임금 적용 문제에 대해 사용자단체 관계자들은 ‘과연 이 논의를 최저임금위에서 하는 게 맞느냐’고 반론을 제기했다. 도급제 노동자에 대한 최저임금 설정 문제는 최저임금위가 아니라 정부가 결정해야 할 사안이라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노동계에서는 산재보험이나 고용보험이 적용되어 이미 노동자성이 일부 인정된 업종이라도 최저임금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장에 배석한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논의가 가능하다’는 유권해석을 내기도 했다. 최저임금법 제12조에 따르면 최저임금에 관한 심의 외에도 ‘그 밖에 최저임금에 관한 중요 사항을 심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논의 가능 여부’를 놓고 공전이 반복되었고, 결국 6월13일 제4차 전원회의에서 공익위원들의 ‘중재안’이 등장했다. 일단 올해 최저임금 산정 과정에서는 도급제 노동자에 대한 최저임금을 논의하지 않되, 노동계에서 최저임금법 제5조 3항에 해당되는 노동자의 유형·특성·규모 등 실태 자료를 준비해주면 추후 논의하자는 것이었다. 이를 노사 양측이 받아들이면서 최저임금위 논의는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었다.

‘다음 단계’로 등장한 것이 바로 업종별 차등 지급이다. 당초 올해 최저임금위에서는 경영계가 주장하는 ‘차등 지급 문제’가 치열한 전선이 될 것이라 전망되었다. 업종별 차등 지급 주장은 영세 소상공인이 많은 특정 업종에 한해 최저임금을 낮추자는 주장이다. 경영계 입장에서 수년 동안 주장해온, 특히 자영업자 업종 관계자들의 요구가 큰 이슈였다. 차등 적용은 그동안 최저임금위에서 수차례 표결했으나 번번이 무산된 사안이기도 하다. 노사 양측이 각각 찬성과 반대를 명확히 표명하는 가운데, 공익위원이 결과를 가르는 모습이 매년 반복됐다.

최저임금 차등 지급은 2022년 대선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공약한 사안이기도 하다. 2021년 12월 당시 후보 신분이던 윤 대통령은 “노동자 입장에서 보면 180만~200만원이 아니라 150만원이라도 충분히 일할 용의가 있어도 (최저임금 때문에 일하지) 못한다”라며 차등 지급을 공공연하게 주장했다. 경영계는 물론이고 일부 여당 정치인들 역시 여전히 차등 지급의 가능성을 놓지 않고 있다. 조정훈 국민의힘 의원은 6월17일 국회에서 관련 토론회를 열고 업종별로 최저임금에 차이를 두도록 하는 최저임금법 개정안을 발의하겠다고 주장했다.

차등 지급은 사실상 최저임금 무력화



그러나 현실적으로 지역별·업종별 최저임금에 차이를 두는 것은 쉽지 않은 문제다. 차등 적용이 ‘차별’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특히 노동시장에서 취약한 위치에 놓인 여성·노인·청소년 노동력에 대한 차별적 대우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6월25일 서울고용노동청 앞에 모인 여성 노동자 500인은 최저임금위에서 논의되는 업종별 차등 적용 문제가 성별 임금격차를 더 키울 수 있다며 반발했다. 현재 최저임금위에서 경영계가 주장하는 ‘하향 차등 적용 직종’은 숙박음식업, 보건사회복지 분야 등이다. 모두 여성 고용이 많은 서비스 업종이다.

노동계에서는 여성 등 취약계층이 피해를 입는다는 사실을 사용자 측 역시 알고 있을 것이라고 한다. 박정훈 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조 부위원장은 최저임금위 현장 의견 청취 과정에서 생긴 일화를 소개하며 이렇게 말했다. “현장 방문 중에 사용자 측 위원 중 한 명이 ‘업종별 차등 적용을 하면 주부와 여성의 고용이 늘지 않겠느냐’라는 말을 꺼냈다. 이 말을 듣자마자 다른 사용자 측 위원이 급히 제지하더라. 최저임금이 차등 적용된다면 결국 여성 노동자의 임금에 영향이 생기리라는 걸 사용자 측 위원들이 알고 있다는 의미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소속 노동자들이 5월21일 업종별 차등 지급 반대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연합뉴스


경영계가 주장하는 최저임금 차등 적용 방식이 ‘일부 업종의 최저임금을 내리는 하향식’이라는 점도 논란거리다. 업종별 차등 적용을 하는 나라들이 있긴 하지만, 대부분 특정 업종에 한해 최저임금을 높이는 ‘상향식 차등 적용’을 도입하고 있다. 국회 입법조사처가 6월21일 발표한 ‘최저임금 업종별 차등 적용의 쟁점과 과제’ 보고서에서도 하향식 최저임금 차등 적용이 최저임금제도의 법적 취지에 반한다고 지적한다. 경비원과 같은 감시·단속적 노동자까지 최저임금 적용 대상으로 포함해온 제도 특성을 고려했을 때, 단순 노동생산성이나 지불능력 등을 고려하여 최저임금을 더 낮추는 논의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결국 7월2일 제7차 전원회의에서 업종별 차등 지급 문제는 찬성 11표, 반대 15표, 무효 1표로 부결되었다. 그러나 ‘실질적 차등 적용’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외국인 가사도우미’와 같은 특정 업종에 한해 최저임금을 무력화하는 정책이 추진되고 있어서다. 6월19일 정부가 발표한 ‘저출생 추세 반전 대책’에 따르면, 정부는 하반기 중 외국인 유학생, 외국인 노동자의 배우자에 한해 가사돌봄 분야 취업을 허용하기로 했다. 최저임금 이하 급여를 받는 ‘외국인 가사도우미 도입’을 본격화한 것이다. 내·외국인 여부, 성별, 종교 등을 이유로 노동조건에 차별을 두는 것은 국제노동기구(ILO) 차별금지협약 위반이다. 이 때문에 그동안 정부의 ‘(급여가 낮은) 외국인 가사도우미 도입’은 벽에 부딪혀왔는데, 정부는 이들 가사노동 인력이 노동자가 아닌 ‘가사 사용인’이기 때문에 최저임금 적용 대상이 아니라고 설명하고 있다. ILO 협약 우회로를 만들기 위해 ‘최저임금보다 낮은 급여’를 받는 직종 종사자들의 노동자성을 소거한 셈이다.

노동계에서는 정부의 이 같은 인력 도입에 반발하며 사실상 최저임금 무력화라고 주장하고 있다. 노동시간 불규칙성 등 돌봄 서비스 노동의 특성을 세심하게 고려하지 않은 채 수요자가 부담하는 ‘비용’ 중심으로 논의를 전개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최저임금 논쟁은 내년도 최저임금을 확정한 이후에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가사도우미 이슈 외에도 ‘값싼 노동력’이 필요하다는 명분으로 정부가 업종별로 최저임금을 우회하려는 시도가 계속될 수 있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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