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셀 화재, 적극적으로 방치된 위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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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4.07.08. 오전 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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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튬전지 소재 특성상 관련 공장에서 화재는 빈번히 발생해왔다. 아리셀이 위험성을 알고 있었다는 정황들이 나오고 있다. 제도의 공백으로 아리셀 공장의 위험은 계속 방치돼왔다.[포토IN]
6월24일 경기도 화성시의 리튬 배터리 제조업체 아리셀 공장에서 화재가 발생해 23명이 사망했다. 미수습 환자를 옮기기 위한 침상이 화재 현장에 대기해 있다. ©시사IN 조남진


그날도 ㄱ씨는 여느 때와 같이 점심 장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고요한 산업단지에서 그는 실내에 켜놓은 TV 소리를 들으며 식재료를 다듬고 있었다. 출퇴근 시간과 점심시간이 아닌 때에는 모두들 공장 안에 있어서 ‘사람 그림자 하나 볼 수 없는’ 동네다. 전봇대에 덕지덕지 붙은 인력업체 스티커만 바람에 파닥거릴 뿐이다. 그런 ‘보통’의 날, 어느 시각, 뒷문을 열어놓고 일하던 ㄱ씨는 엄청난 굉음에 비틀거렸다. 이내 속이 울렁거릴 만큼 독한 화학물 냄새를 맡았다.

6월24일 오전 경기 화성시 서신면 전곡산업단지 내 아리셀 공장 3동에서 불이 났다. 공장에서 200m 떨어진 곳에서 함바 식당을 운영하는 70대 ㄱ씨는 “건물 한 동 굵기의 화염 같은 게 하늘로 치솟아 내내 타오르고” “타닥타닥, 쾅쾅 하면서 배터리 타는 소리”가 들리더니, “전쟁이 난 것처럼 하늘에 시커먼 연기가 가득 차서 머리가 핑 돌았다”라고 했다. 웅성거리는 사람들 속에서 불이 난 곳이 30~40대 조선족 여성 노동자들이 일하던 회사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어제도 점심시간에 ‘쪼르르 식당에 앉아 밥 먹으며 재잘재잘 떠들던 사람들’인데” 믿기지가 않았다.

6월24일 경기도 화성시 아리셀 공장 실종자 수색 현장에서 소방 관계자가 사고 위치를 설명하고 있다. ©시사IN 조남진


리튬 배터리 제조업체 아리셀 공장(총 11동, 연면적 5530㎡) 3동 2층에서 처음 발화가 시작된 때는 오전 10시31분이다. 이날 3동 건물에서 일하던 노동자 67명 중 52명이 불이 난 2층에 있었다. 2층 작업장에서는 리튬 1차전지(이하 1차전지) 완제품을 검수하고 포장하는 작업이 이루어지던 중이었다. 화재 당시 CCTV를 보면 처음에는 배터리 하나에서 작은 불이 난다.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더니 다른 배터리로 불이 옮겨붙는다. 직원들은 손으로 배터리를 옮기려 시도하고 일부는 비치된 분말 소화기로 진화를 하려고 한다. 그사이 추가 폭발과 함께 불길이 커진다. 결국 걷잡을 수 없이 불길이 커져 탈출을 시도하지만 노동자들은 작업장 내 출구가 아닌 반대편으로 향했고 막다른 벽 앞에서 고립됐다. 흰 연기가 실내를 채우는 데 걸린 시간은 단 15초에 불과했다. 이번 사고로 23명이 숨지고 8명이 다쳤다. 사망자 23명의 국적은 한국 5명(남성 3명, 여성 2명), 중국 17명(남성 3명, 여성 14명), 라오스 1명(여성)이다. 외국인 파견노동자들이 대부분이라 사고 당일까지 한국인 3명만 신원이 파악됐다. 6월26일, 화성시청에는 영정 사진 없는 임시 분향소가 마련됐다.

6월26일 오후 경기도 화성 아리셀 리튬전지 공장 화재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화성시청 로비 1층에 ‘서신면 전곡리 공장화재 추모 분향소’가 임시로 마련되어 있다. ©시사IN 신선영


이번 리튬전지 공장 화재는 전기나 기름에 의해 발생하는 화재와는 다른 양상을 보인다. 리튬전지 화재의 특성은 ‘열폭주’다. 리튬 배터리는 양극·음극·분리막·전해액 등으로 구성돼 있는데 열·압력·습도 등 외부 변수로 분리막이 손상되면 양극과 음극이 만나 과열되면서 화재가 일어난다. 전해액이 수분과 만날 경우 수소기체가 발생하며 가스가 팽창해 폭발이 커지기도 한다. 불씨가 잡힌 것 같아도 내부 발열이 계속돼 언제든 다시 발화할 수 있다. 리튬전지 화재 시 완진에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이유다. 이번 아리셀 화재에도 소방관 201명과 펌프차 등 장비 72대가 동원됐지만 최종 완진까지 22시간이 걸렸다.

특히 아리셀에서 취급한 군납품용 1차전지는 사용 온도 범위가 넓어 더위와 추위에 강하고, 재충전을 할 수 없는 대신 최장 20년간 사용할 수 있도록 내부에 고밀도 에너지를 응축한 제품이다. 이런 ‘급속충전 특성’ 때문에 군 통신장비 및 석유·가스 시추 장비 등에 사용된다.

아리셀 화재 현장에 나뒹굴고 있는 배터리 잔해물. ©시사IN 조남진


하지만 ‘고밀도 에너지’라는 특성 탓에 균열(내부 단락)이 생길 경우 위험이 커진다. 물질은 내부 에너지와 같은 크기의 에너지를 외부로 방출하기 때문이다. 전기차, 노트북, 스마트폰, 퀵보드 등에 쓰는 재사용이 가능한 2차전지는 출고 전 40% 내외만 충전해놓고 보관하지만, 아리셀에서 취급하는 1차전지는 무조건 100% 완충된 상태로 보관한다. 나용운 국립소방연구원 연구사는 이런 높은 고밀도 에너지가 발열하는 현상을 “내부가 압력과 함께 찢어지면서 급속도로 폭발하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나 연구사는 “아리셀 1차전지에 포함된 리튬은 최소 0.3에서 최대 8g 수준으로 양이 많지 않다. 그래서 물과 접촉해 수소 폭발까지 일어날 가능성은 낮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번 화재가 보여주듯 열폭주까지 막을 수는 없다. 이런 잠재적 위험이 1차전지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한계다. 전고체전지가 상용화되지 않은 현재, 리튬메탈 1차전지는 현존하는 기술하에서는 늘 화재나 폭발의 위험을 내재한 제품인 것이다.

그래서 ‘리튬전지 공장에서 불이 났다. 이상한 일인가?’라고 물으면, 리튬전지를 다뤄본 노동자들 대부분은 고개를 젓는다. 리튬 이온전지(2차전지)를 제조하는 삼성SDI 노동자들을 만나온 이종란 반올림 활동가는 노동자들의 말을 이렇게 전했다. “리튬 배터리는 ‘배터리’라고 부르면 안 된다. ‘폭발’이라고 불러야 한다.” 그만큼 화재가 일상적이다. 리튬 1차전지 재활용업체를 운영한 ㄴ씨도 〈시사IN〉과의 통화에서 “불나는 게 무섭고 너무 위험해서 이제는 리튬 배터리를 취급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재활용처리 과정에서 자연발화가 두 번 있었는데 한 번은 건물 반 동이 탈 만큼 큰 화제였다. 초기 진화라고 할 것도 없이 불이 너무 빨리 번졌다. 리튬은 습도, 온도, 충격에 의해 쉽게 자연발화하기 때문에 작업이 없는 날에도 매일 적재 장소에 가서 상태를 확인했다. 비 오는 날에는 절대 수거하지 않고, 무조건 수거한 당일 아니면 늦어도 다음 날 재활용 처리 작업을 했다.”



리튬전지의 생산·보관·재활용 처리 과정에서 크고 작은 화재는 매우 흔하다. ‘사소한 일’이라는 뜻이 아니라, 그만큼 리튬전지를 만들고 다루는 곳에서는 위험성을 인지하고 대책을 마련해놓는 일이 당연한 과제라는 뜻이다. 군납품용 1차전지를 취급한 아리셀 측이 이런 위험성을 몰랐을까? 아리셀 공장에서는 사고가 나기 이틀 전인 6월22일에도 화재가 발생했다. 박중언 아리셀 본부장은 “당시 작업자가 (불이 난 전지를) 불량 셀로 인지해 불량품 처리용 ‘후드박스’에 넣어둔 상태였다. 화재를 안전하게 대처해 처리했다”라고 말했다. 이 말에서 주목할 것은 ‘안전하게 대처했다’가 아니라 ‘후드박스(불량품을 처리하는 별도의 박스)’를 따로 구비해놓을 만큼 이 일이 비일비재했다는 점이다. 회사 측도 리튬전지의 화재 위험성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

비상구 앞에 둔 위험 적재물



더불어민주당 위성곤 의원실이 화성소방서로부터 확보한, 아리셀에 대한 ‘소방 활동 자료조사서 결과 보고(3월28일)’에서도 이러한 사실이 드러난다. 결과 보고서에는 ‘연소 확대 요인’으로 ‘사업장 내 11개 동 건물 위치하며 (화재)상황 발생 시 급격한 연소로 인한 연소 확대 우려 있음’이라고 적혀 있다. 특히 ‘다수 인명피해 발생 우려 지역(층)’ 항목에는 이번에 화재가 발생한 3동이 언급돼 있다. ‘3동 제품 생산라인 급격한 연소로 인한 인명피해 우려 있음’(위 〈그림〉 참조). 3개월 전 이미 사고가 경고됐던 것이다.

다만, 아리셀은 이런 경고를 무시하고 ‘적극적으로’ 관리를 소흘히 해 온 것으로 보인다. 사고 이후 두 가지 문제점이 지적된다. 첫째는 공간의 문제다.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 제16조에 따르면 리튬은 위험물로 간주돼 ‘작업장 외 별도의 장소에 보관해야 하며 작업장 내부에는 필요한 양만 두어야 한다’. 아리셀 공장은 이를 어겼다. 사고 직전 CCTV 기록을 보면 화재가 난 곳 바로 앞에서 노동자들이 일을 하고 있었다. 3동 2층에는 리튬전지 3만5000개가 보관 돼 있던 것으로 전해진다. 심지어 6월26일 소방 쪽이 언론에 공개한 2018년 아리셀 공장 내부 도면은 실제 화재가 난 작업실 내부와 구조가 다르다. 공장 사용 승인 시 아리셀이 제출한 2018년 도면에는 마치 화재가 발생한 배터리 보관 장소가 별도의 독립 공간인 것처럼 구분돼 있지만, 실제로는 공간 구분 없이 노동자 작업 공간과 리튬전지 적재 장소가 혼재되어 있었다.

전날 화재로 불에 탄 아리셀 공장에서 6월25일 경찰과 소방관들이 합동 감식을 하고 있다.©시사IN 조남진


게다가 안전보건규칙 제17조는 ‘위험물질을 제조·취급하는 작업장에 출입구 외에 안전한 장소로 대피할 수 있는 비상구 1개 이상을 설치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노동자들이 다수 숨진 아리셀 2층 작업장에는 출입구 외에 다른 비상구가 없었다. 심지어 비상구 또한 화재가 난 리튬전지 바로 뒤에 있었다. 비상구로 가려면 불을 뛰어넘어 탈출해야 하는 ‘비상식적인’ 구조였던 것이다.

백승주 한국열린사이버대학교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양방향 피난 설계’가 되어 있지 않은 점을 지적했다. “학교 교실에 있다고 생각해보자. 교실 한쪽 면엔 창이 있고, 다른 면엔 복도가 있다. 사고가 발생하면 양측을 모두 비상구로 이용할 수 있다. 복도로 연결되는 문도 앞뒤에 하나씩, 2개가 있다. 복도에 나가면 중앙계단과 양 끝 계단이 있다. ‘양방향 피난’이 계속해서 반복되는 구조다. 탈출구가 하나일 때보다 생존 가능성이 올라간다. 아리셀 작업장은 단 하나의 ‘양방향 피난 구조’도 갖추지 않았다. 위험 시나리오를 단 한 번도 고려하지 않은 사람의 설계물이다.”

현재 다중이용업소의 경우 지하뿐 아니라 지상층에도 주 출입구의 반대 방향에 비상구를 설치하도록 하고 있다(다중이용업소의 안전관리에 관한 특별법 시행령 별표1의2). 하지만 이런 기본적인 안전조치가 정작 아리셀같이 위험물질을 취급하는 공장에는 적용되지 않고 있었다.

6월26일 ‘아리셀 중대재해 참사 대책위원회’가 참사 현장 앞에서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기자회견을 열었다. ©시사IN 신선영


둘째는 예방 시스템 부재다. 신재생에너지 사업이 확장되는 과정에서 ‘리튬이온 배터리(2차전지) 에너지 저장장치(ESS)‘ 화재 사고가 이어지자 정부에서는 ‘전기저장시설의 화재안전성능기준(NFPC 607)’ 같은 행정규칙을 마련했다. 리튬이온 배터리는 전기차 배터리로도 이용돼 공포심이 커졌기 때문이다. 반면 위험도가 높은 리튬 1차전지에 대한 논의는 여전히 부족한 상태다. 익명을 요구한 한 방재 연구원은 군납품 1차전지 시장의 규모가 작고 폐쇄적이라 연구가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군납품 1차전지는 위험성에 비해 시장의 작은 규모와 폐쇄성 때문에 대중의 관심을 받지 못했고, 정부도 안전에 무관심했다.” 감사원은 2020년 ‘소방안전 인프라 구축 및 운영실태’ 감사 결과 보고서에서 금속 화재를 별도 분류해 소화기 규정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지만 반영되지 않았다. 지난해 3월, 소방청에서 ‘금속 화재용 소화기(D급 소화기)’의 성능 기준을 담은 기술 기준을 행정예고했다. 하지만 이 역시 심사 단계에 계류 중이다.

이런 제도의 공백 가운데 아리셀 공장의 위험은 ‘은밀하게’ 방치되어왔다. ‘2급 소방안전 관리시설물’로 분류된 아리셀은 1년에 한 번 자체 점검을 한 뒤 소방서에 신고만 하면 되었다. 스프링클러 의무설치 대상이 아니었고 5년간 고용노동부로부터 어떠한 산업안전 감독도 받지 않았다. 아리셀에 일용직 노동자들을 공급한 무허가 인력업체 ‘메이셀’의 주소지는 아리셀과 같은 건물이다. 메이셀의 전 이름은 ‘한신다이아’로 이곳 역시 아리셀의 모회사인 에스코넥의 안산 사업장과 같은 주소를 공유하고 있다. 두 업체가 불법 커넥션을 통해 일용직 노동자를 고용해 불법파견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나온다. 오래 묵은 불법과 제도의 공백 사이에 국내 화학공장 화재 역사상 최악의 인명피해가 터졌다.

산업안전보건기준에 따라 리튬은 작업장 내 별도 장소에 둬야 하지만 아리셀 공장은 이를 어겼다.©시사IN 조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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