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익위가 닫은 ‘디오르 백’, 국회·검찰이 열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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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4.07.03. 오전 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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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하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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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10일 권익위가 ‘디오르 백 사건’을 종결 결정했다. “공직윤리 시스템이 형해화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민주당은 김건희 특검법을 당론으로 채택했다.김건희 여사는 제20대 대통령 선거 이전부터 윤석열 대통령의 ‘아킬레스건’이었다. 유력 상대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에 대한 검증이 주로 후보 본인에게 집중된 것과 달리,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에 대한 검증은 상당수 김건희 여사에게 쏠렸다.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국민대 박사학위 논문 표절 및 허위경력 기재 의혹, 이른바 ‘7시간 녹취록’에 나온 미투운동 폄하 발언 등 종류도 다양했다.

통일 운동가인 최재영 목사가 선물한 300만원 상당 명품 가방을 수수한 이른바 ‘디오르 백 사건’은 김건희 여사를 둘러싼 논란의 정점이다. 2022년 9월13일 최재영 목사는 ‘위장 취재’를 하기 위해 손목시계형 몰래카메라를 찬 채 김건희 여사를 만나러 갔고, 김 여사가 명품 가방을 수수하는 장면을 녹화해 공개했다. 해당 영상에 따르면 김건희 여사는 최 목사에게 “왜 자꾸 이런 것을 사오느냐. 정말 하지 말라”고 말하면서도 선물을 거부하지 않았다. 대통령실은 별 입장을 내놓지 않고 사건을 넘기려 했지만 비판 여론은 계속됐다. 결국 지난 5월9일 취임 2주년 기자회견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제 아내의 현명하지 못한 처신으로 국민께 걱정 끼쳐드린 부분에 대해서 사과를 드리고 있다”라며 영상이 공개된 지 약 6개월 만에 처음으로 사과했다.

그로부터 약 한 달 뒤, 명품 가방 사건을 둘러싼 논란이 재점화됐다. 지난 6월10일 ‘반부패 총괄기관’인 국민권익위원회(권익위) 전원위원회에서 명품 가방 수수 사건을 ‘종결’처리했기 때문이다. 신고된 사건에 대한 권익위의 처분은 크게 ‘이첩’ ‘송부’ ‘종결’ 세 가지로 나뉜다. 범죄 혐의가 있거나 수사·조사 필요성이 있을 경우 ‘이첩’ 처분을, 명백한 거짓인 경우 등에는 ‘종결’ 처분을, 이첩도 종결도 확정할 수 없는 경우에는 ‘송부’ 처분을 내린다.

국민권익위원회 정승윤 부위원장이 6월10일 정부세종청사에서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종결 처분을 내리며 권익위는 크게 세 가지 근거를 들었다. 청탁금지법(이른바 ‘김영란법’)상 공직자의 배우자를 제재하는 규정이 없고, 디오르 백 등 선물을 받은 것이 ‘직무 관련성’이 없으며, 직무 관련성이 있더라도 최재영 목사가 외국(국적)인이기 때문에 윤 대통령이 금품 수수를 신고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반부패 총괄기관인 권익위가 김건희 여사의 금품 수수 사건에 면죄부를 줬다는 비판이 일었고, 전원위원회 의결에 참여한 위원 중 한 명인 최정묵 권익위원이 종결 처분에 반발하며 위원직에서 사퇴하기까지 했다. 최 위원은 6월18일 입장문에서 “법리적으로 충분히 다툼의 여지가 있었고, 국민이 알고 있는 중요한 비리로 판단할 수 있는 문제가 ‘혐의 없음’으로 종결됐다. 많은 국민께서 이 결정에 실망하셨고, 그 실망감과 불신을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다”라고 밝혔다.

〈시사IN〉 취재 결과를 종합하면, 명품 가방 수수 사건에 관련된 결정을 앞두고 권익위원들에게 제공된 자료는 다른 사건에 비해 부실했다. 사실관계와 관련 법령, 법리적 검토가 종합적으로 담기는 통상의 사건 자료와 달리, 명품 가방 수수 사건 자료는 법리 검토에 치중되어 있었다. 사건 당사자인 김건희 여사와 수행 인원, 최재영 목사에 대한 조사도 전무했다. 최재영 목사는 이에 대해 〈시사IN〉과의 인터뷰에서 “권익위가 요청하면 상세히 진술할 계획이었다. 권익위원들에게 정보를 제공했다면 권익위 판단이 달라졌을 것으로 확신한다”라고 말했다.

명품 가방 수수 사건은 ‘간신히’ 종결 처리됐다. 위원들의 의견은 피신고자 최재영 목사와 윤석열 대통령에 대해서는 ‘종결’ 8명, ‘송부’ 7명으로 갈려, 단 1표 차이로 사건 종결이 결정됐다. 피신고자 김건희 여사에 대해서는 ‘종결’이 9명, ‘송부’와 ‘이첩’이 각각 3명으로 사건이 종결됐다. 다만 다른 두 피신고자와 달리 김건희 여사에 대해서 “범죄 혐의가 있거나 수사·조사 필요성이 있다”라고 판단한 위원이 세 명이나 됐다.

송부·이첩했어도 달라질 것 없다?



권익위가 이 사건에 대해 ‘종결’이 아닌, ‘송부’ 또는 ‘이첩’ 결정을 내렸으면 무엇이 달라졌을까. 실질적으로 달라지는 것이 당장 생기지는 않는다. 권익위가 사건을 송부·이첩하는 대상은 수사기관인데, 이미 서울중앙지방검찰청(중앙지검)에서 이 사건을 수사 중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권익위가 종결 처분을 한 다음 날 이원석 검찰총장은 “검찰은 검찰 차원에서 수사 일정을 차질 없이 진행할 것”이라는 뜻을 밝혔다.

하지만 명품 가방 수수 사건을 권익위에 신고한 참여연대 측의 생각은 다르다. 선거법 위반 사안에 대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행정처분을 내리는 것처럼 과태료 등 권익위 차원의 행정처분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주무 기관이 위법성이 있다는 유권해석을 내린다면 수사기관 역시 이를 무시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참여연대는 주장한다. 이재근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은 “권익위가 위법하다고 이첩을 한다면 수사기관도 사건을 쉽게 뭉개거나 무혐의 처분을 내리진 못할 것이다. 적어도 사실관계는 부인할 수 없기에 종결이 나올 것이라곤 예상하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참여연대는 6월19일 종결 결정을 비판하며 권익위에 이의 신청을 했고, 같은 사안에 대해 다시 한번 권익위에 재신고를 할 계획이다.

종결 판단이 내려진 이후 열린 6월24일 권익위 전원위원회에서 일부 위원들이 반발하는 사태도 있었다. 종결 처분에 따른 의결서를 각 위원들이 확인하는 과정이 있었는데, 일부 위원이 ‘소수의견도 의결서에 담아달라’고 요구했기 때문이다. 이미 다수결로 결정된 종결 처분을 뒤집을 수는 없지만, 적어도 논의 과정의 투명성 등을 위해 의결서에 소수의견을 담아달라는 주장이었다. 권익위는 소수의견을 명시한 전례가 없다며, 7월8일 열릴 전원위원회까지 법리적 검토를 하겠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최재영 목사가 김건희 여사에게 준 선물들. 디오르 백(맨 위), 샤넬 향수와 화장품(위 왼쪽), 위스키. ©최재영 목사 제공


권익위가 종결 처분을 한 뒤 야당은 김건희 여사에 대한 공세 수위를 높였다. 6월13일 정책의원총회를 연 더불어민주당은 ‘김건희 특검법’을 당론으로 추진하기로 결정했다. 지난 제21대 국회에서 발의된 특검법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만을 대상으로 했지만, 새 특검법에는 명품 가방 수수 사건도 특검법 대상으로 추가했다. 권익위를 소관하는 국회 정무위원회 야당 간사인 강준현 민주당 의원은 〈시사IN〉과의 통화에서 “명품 가방 수수 사건을 담은 김건희 특검법이 통과되면, 당연히 권익위의 종결 결정 과정도 특검 대상에 포함된다”라고 말했다.

권익위의 종결 결정으로 다시 이목은 검찰로 쏠린다. 명품 가방 수수 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이 김건희 여사를 소환조사할지, 어떤 결론을 내릴지에 따라 사건의 향방이 크게 달라질 전망이다. 핵심은 결국 ‘직무 관련성’이다. 공직자의 배우자는 직무 관련성이 있을 때에만 금품을 받는 것이 금지되기 때문이다. 최재영 목사가 김건희 여사에게 준 선물이 윤석열 대통령의 직무와 관련돼 있는지, 다시 말해 ‘청탁의 의미’가 있었는지가 관건이다. 권익위 역시 종결 처리의 주요 논거로 ‘직무 관련성이 없다’는 이유를 든 바 있다.

“청탁의 의미가 있는 게 맞다”



〈문화일보〉 등 보도에 따르면 검찰은 명품 가방 등 선물이 ‘청탁’의 목적이 아니라고 보고 있다고 알려졌다. 5월31일 2차 조사를 받은 최재영 목사가 “청탁이 발생하지 않았다”라는 취지로 진술했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최재영 목사는 해당 보도를 부인한다. 최 목사는 “2022년 6월20일 김건희 여사를 처음 만날 때 사서 간 샤넬 화장품과 향수는 청탁의 의미가 아닌, 기쁜 마음으로 한 선물이 맞다. 그러나 그 만남에서 문제의식을 느껴서 위장 취재를 시작했고, 그 이후에 준 선물들(책 8권, 전통주, 위스키, 램프, 명품 가방)은 청탁의 의미가 있는 게 맞다. 검찰 조사에서 샤넬 화장품과 향수에 대해 한 말이 일반화돼 와전됐다”라고 반박했다.

김건희 여사에게 명품 가방 등을 건넨 최재영 목사가 6월26일 〈시사IN〉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시사IN 박미소


다만 최재영 목사는 금품 제공에 자신의 사익 추구는 없었다고 주장한다. 최 목사 말에 따르면 그가 주장한 ‘청탁’은 크게 세 가지다. 최 목사가 부대표로 있는 ‘통일TV’ 재송출 요청, 김창준 전 미국 연방 하원의원의 국정자문위원 임명 요청 및 김 전 의원 사후 국립묘지 안장 요청이다. 최 목사는 통일TV 재송출 요청 등 청탁이 현실화되기 어렵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며, 세 가지 청탁 모두 위장 취재를 위한 것이었다는 입장이다. 최 목사는 “사익은 없었지만, 청탁과 뇌물을 염두에 둔 건 맞다. 내가 처벌받아야 한다면 적장을 안고 뛰어든 논개가 되겠다”라고 말했다.

검찰 수사 및 특검 추진과 별개로, 국회도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대통령실을 소관하는 국회 운영위원회, 권익위를 소관하는 국회 정무위원회 모두 현안질의 또는 입법 청문회 형식으로 사건 진상을 파헤치겠다는 계획이다. 6월19일 조국혁신당은 김건희 여사를 알선수재 및 직권남용 혐의로 공수처에 고발했다. 직무와 관련해 금품을 수수했다 하더라도 배우자는 청탁금지법상 처벌 대상이 될 수 없지만,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로는 처벌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재근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은 명품 가방 수수 사건을 둘러싼 일련의 일들을 “한국 사회의 시스템이 형해화(형식만 남고 가치나 의미가 없게 됨)되고 무너지고 있는 현상”이라고 평가했다. 나름 촘촘하게 짜여 있는 한국 공직윤리 시스템에 ‘예외’를 만들어내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 사무처장은 “누구든 잘못을 할 수 있다. 명품 가방 수수가 무조건 탄핵 사유라고 보는 것도 아니다. 부적절한 처신에 대해서 초기에 사과했으면 될 문제였다. 그런데 대통령을 감싸려다 보니 권익위가 국민들로부터 조롱거리가 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누구라도 이렇게 법 위에 군림하는 사태를 용납해서는 안 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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