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씩 채워지는 ‘채 상병 사건 수사 외압 의혹’ 연결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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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4.06.17. 오전 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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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채 상병 순직사건 조사 결과 회수’ 전후로 이종섭 당시 국방부 장관에게 수차례 전화를 건 사실이 확인됐다. 박정훈 대령 측은 ‘수사 외압’이 이 통화에서 비롯된 거라고 의심한다.
지난해 9월12일 국무회의에 함께 참석한 윤석열 대통령과 이종섭 당시 국방부 장관(오른쪽).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은 ‘채 상병 사건’ 주요 국면마다 직접 나섰다. 특히 해병대 수사단이 경북경찰청에 채 상병 순직사건 조사기록을 이첩한 지난해 8월2일에는 이종섭 당시 국방부 장관에게 직접 세 차례 전화를 걸었다. 채 상병 순직사건 수사를 지휘했던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대령)은 현재 항명 및 상관 명예훼손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이 재판과 관련해 6월3일까지 중앙지역군사법원에 제출된 통신사실조회 회신 결과(이종섭 전 장관 통화 기록)에 따르면, 이종섭 전 장관은 지난해 7월31일부터 8월9일까지 대통령실·정부 고위 관계자, 국민의힘 의원과 광범위하게 전화와 문자메시지를 주고받았다(〈그림〉 참조).

윤석열 대통령을 포함한 대통령실·정부 고위 관계자들이 ‘채 상병 순직사건 조사결과 회수’ 전후로 이종섭 전 장관에게 수차례 전화를 건 사실이 확인되면서, 박정훈 대령 측이 주장했던 ‘수사 외압 의혹’의 핵심 연결고리가 채워지고 있다. 박 대령 측은 경찰 이첩 보류·혐의자 제외 지시(7월31일)와 국방부 검찰단의 조사기록 회수 조치(8월2일), 이 전 장관의 국방부 조사본부 이관 지시(8월9일) 등이 윤석열 대통령의 통화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냐고 의심한다.

채 상병 사건에 대한 대통령실 관여 정황은 지난해 7월31일부터 두드러진다. 이날 오전 11시께 윤석열 대통령이 참석한 국가안보실 회의가 열렸다. 박정훈 대령은 이때 윤석열 대통령이 조사 결과를 보고받고 격노한 뒤부터 수사 외압이 시작됐다고 주장했다. 국가안보실 회의가 끝날 즈음인 같은 날 오전 11시54분, 이 전 장관은 대통령실이 사용하는 ‘02-800-’ 번호로 걸려온 전화를 받아 2분48초 동안 통화했다. 이 통화 직후인 오전 11시57분 이 전 장관은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에게 채 상병 순직사건 경찰 이첩을 보류하고, 이날 오후 2시로 예정된 언론 브리핑을 취소하라고 지시했다.

같은 날 오후 2시20분께 이종섭 전 장관은 정종범 당시 해병대 부사령관을 국방부 집무실로 불렀다. 그때 정 전 부사령관이 기록한 장관 지시사항에는 “누구누구 수사 언급하면 안 됨” “사람에 대해서 조치·혐의는 안 됨” “경찰이 필요한 수사자료만 주면 됨” “법무관리관이 수사단장(박정훈)에게 전화 검토” 등의 내용이 담겼다. 회의를 마치고 우즈베키스탄 출장을 가기 위해 이동하던 오후 2시56분, 이 전 장관은 임기훈 당시 국가안보실 국방비서관의 전화를 받았다. 11분15초간 통화가 이어졌다. 이날 임 전 국방비서관은 김계환 사령관과도 두 차례 통화했다.

7월31일 정종범 당시 해병대 부사령관이 기록한 장관 지시 사항을 토대로 만든 이미지.


해병대 수사단은 예정대로 지난해 8월2일 오전 10시30분쯤, 임성근 당시 해병대 1사단장을 포함한 8명의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를 적시해 채 상병 순직사건을 경북경찰청으로 이첩했다. 조사 결과 축소와 왜곡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박정훈 대령은 법에 따라 빨리 “경찰에 이첩하는 것만이 정직한 해병대를 지키는 길”이라고 판단했다. 이첩을 마칠 무렵인 이날 오전 11시45분께 조태용 당시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이 이종섭 전 장관에게 문자를 보냈다. 4분 후인 오전 11시49분부터 2분40초 동안 두 사람의 통화가 이뤄졌다. 김계환 사령관은 해병대 수사단이 경북경찰청에 조사기록 이첩을 마친 직후인 오후 12시4분, 이 전 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3분간 통화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여름휴가 첫날 한 일?



이후 윤석열 대통령이 본격 등장한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여름 휴가 첫날인 8월2일 오후 12시7분부터 자신이 검사 시절부터 사용하던 번호로 이종섭 전 장관에게 세 차례 전화를 걸었다. 발신 기지국은 대통령 관저가 있는 한남동이었다. 윤 대통령과 이 전 장관은 오후 12시7분부터 12시11분까지 약 4분 동안, 오후 12시43분부터 12시56분까지 약 13분 동안, 오후 12시57분부터 12시58분까지 1분간 통화했다. 박정훈 대령은 이날 오후 12시45분께 김계환 사령관에게 “현 시간부로 보직해임이다. 앞으로 많이 힘들 것이다”라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2023년 8월27일 군검찰 제출 진술서). 이 전 장관이 윤 대통령과 첫 통화를 마치고 30여 분이 지난 시점이다. 해병대 수사단이 경북경찰청에 이첩한 사건도 당일 회수됐다. 같은 날 오후 1시50분 유재은 국방부 법무관리관이 경북경찰청에 회수 의사를 밝혔고, 오후 7시20분 국방부 검찰단이 조사기록 일체를 되찾아갔다.

엿새 후 이종섭 전 장관의 통화 내역에 윤석열 대통령 번호가 한 차례 더 등장했다. 이 전 장관이 경북경찰청에서 회수한 사건을 국방부 조사본부로 이관하기로 결정하기 하루 전인 지난해 8월8일 아침 7시55분, 윤 대통령과 이 전 장관이 33초가량 통화했다. 국방부 조사본부는 다음 날인 8월9일부터 사건 재검토를 시작해 8월24일 경북경찰청에 사건을 다시 넘겼다. 해병대 수사단의 조사와 달리 국방부 조사본부 재검토 결과, 업무상과실치사 혐의 대상자는 8명에서 2명으로 줄었다. 혐의 대상자에서 임성근 전 사단장은 제외됐다. 이종섭 전 장관의 변호인 김재훈 변호사는 “국방부 장관이 안보 위협, 외교 현안, 잼버리 파행 해결 등과 관련해 대통령을 포함한 정부 주요 인사들과 수시로 소통하는 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라며 “통화 여부나 통화 내용에 대해선 밝힐 수 없다”라고 말했다.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과 이 전 장관 사이 통화에서 채 상병 순직사건 관련 언급은 없었다고 밝혔다.

6월4일 신원식 국방부 장관이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해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종섭 전 장관은 지난해 7월31일부터 8월9일까지 신원식 당시 국회 국방위원회 국민의힘 간사와도 13차례 통화를 나눴다(7월28일부터 7월30일 사이에도 전화 세 번, 문자 다섯 번이 오갔다). 두 사람 사이 통화는 해병대 수사단 압수수색 다음 날인 지난해 8월4일(5회)과 8월7일(5회)에 집중됐다. 이 통화 기록은 8월21일 국방위원회 회의에서 신 전 의원이 한 말과 배치된다. 당시 신 전 의원은 이 전 장관에게 “장관의 판단이나 엄정한 수사에 혹시라도 여당 간사가 전화하는 것이, 아는 척하는 것이 방해될까 봐 안 했다. 한 번도 전화를 한 적이 없다”라고 말한 바 있다. 관련해 국방부 관계자는 〈시사IN〉과의 통화에서 “장관이 당시 국방위 여당 간사로서 다양한 국방 현안에 대해 평소처럼 통화했다. 채 상병 관련 사안은 통화한 바 없다”라고 말했다. 지난해 10월 신 전 의원은 이 전 장관에 이어 윤석열 정부 두 번째 국방부 장관 자리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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