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 유전 검증, 아직 시작도 못했다

입력
수정2024.06.17. 오전 6:30
기사원문
주하은 기자
TALK
본문 요약봇
성별
말하기 속도

이동 통신망을 이용하여 음성을 재생하면 별도의 데이터 통화료가 부과될 수 있습니다.

대통령의 깜짝 발표 이후 ‘동해 유전’은 정국의 핵심이 됐다. 현재까지는 액트지오 사를 검증하는 데 집중됐다. 분석 과정에 대한 본격적인 검증은 국회에서 이뤄질 전망이다.
2021년 6월28일 동해 심해지역에 위치한 ‘방어 구조’ 지역에서 해상시추 작업을 하고 있는 모습. ©한국석유공사 제공


6월3일, 윤석열 대통령이 국정브리핑 자리에서 깜짝 발표를 할 때까지만 해도 ‘영일만 석유 시추 계획’이 정국의 핵심 의제 수준으로 커질 것이란 예측은 어려웠다. 그러나 발표 직후부터 여러 의혹이 쏟아지며 현재는 국정조사를 해야 한다는 의견까지 나온다. 김승원 더불어민주당(민주당) 의원은 동해 석유 의혹이 너무 커져서 민주당의 2순위 의제가 됐다고 평가했다(6월12일, CBS 〈김현정의 뉴스쇼〉).

지금까지 영일만 석유 시추 계획을 둘러싼 대부분의 의혹은 미국 기업 액트지오에 집중돼 있었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세계 최고 수준의 심해 기술 평가 전문기업”이라고 소개했지만, 많은 이들에게 알려져 있지 않은 기업이었기 때문이다. 비토르 아브레우 액트지오 고문은 의문점을 해소하겠다며 한국에 들어와 6월7일 직접 기자회견까지 열었다. 그러나 액트지오를 향한 의혹 제기는 계속됐다.

액트지오를 둘러싼 의혹은 크게 두 가지다. 먼저 액트지오와 비토르 아브레우 고문이 물리탐사 심층 분석을 맡을 만큼 전문성이 있는지 여부다. 액트지오가 사실상 1인 기업이고, 법인 등록 주소지가 아브레우 고문의 자택인 것으로 드러나면서 전문성을 둘러싼 의혹이 불거졌다. 산업통상자원부(산업부)는 아브레우 고문이 다양한 ‘필드 경험’, 학술적 능력이 고루 증명된 인물이라며 “업계는 (아브레우 고문의) 전문성·평판을 매우 높게 평가”한다고 반박한다. 다만 산업부마저도 “심해 탐사 분석 결과의 신뢰성·전문성 확보에 네임밸류가 중요한 역할을 하며, 액트지오 기업명이 생소한 것은 사실”이라고 인정했다.

특히 오스트레일리아(호주) 최대 석유개발 기업인 우드사이드가 15년간의 탐사를 끝으로 ‘가망이 없다(no longer considered prospective)’라는 평가를 남기고 한국에서 철수한 점(〈시사IN〉 제874호 ‘포항 앞바다 석유 개발, 가망 있는 계획일까’ 기사 참조), 액트지오 홀로 탐사 원본 데이터를 보고 영일만 일대의 개발 가능성을 분석한 점이 추가로 밝혀지며 의문을 더했다. 물론 국내외 자문단이 액트지오의 분석 결과를 검증하긴 했지만, 이들은 원본 데이터를 보지 못했다. 액트지오의 분석 ‘방법론’을 검토했을 뿐이다. ‘큰 비용이 들어가는 프로젝트이기에 더 많은 전문가에게 분석을 맡겼어야 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최남호 산업부 2차관은 “복수 기관에 심해 탐사와 관련된 조사 자체를 맡기는 경우는 없다. 데이터는 한국의 기초자산이기에 이를 개방해서 또 검증을 맡기는 것은 리스크가 크다”라고 반박했다(6월10일 브리핑).

액트지오 계약은 합법적이었나



액트지오를 둘러싼 또 다른 의혹의 축은 한국석유공사와 액트지오 사이의 계약 과정에 집중돼 있다. 6월7일 〈시사IN〉은 액트지오가 2019년 1월부터 2023년 3월까지 ‘법인 자격 박탈(forfeits the charter, certificate or registration of the taxable entity)’ 상태였다는 사실을 확인해 온라인 기사로 보도한 바 있다. 한국석유공사가 액트지오에 분석을 맡긴 2023년 2월, 액트지오는 법인 등록이 말소된 상태였다는 의미다.

<그림 1> 미국 텍사스주 국무장관실에 제출된 액트지오 관련 ‘조세 미납에 따른 몰수명령서’. <그림 2> ‘복권신청서 및 취소·몰수 명령 파기 요청서’ 갈무리.


〈시사IN〉은 미국 텍사스 주정부 국무장관실에 등록된 액트지오 관련 서류 6종을 확보했다. 그중 두 가지 서류에서 액트지오가 약 4년간 ‘자격 박탈’ 상태였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첫 번째 서류가 〈그림 1〉에 나와 있는 ‘조세 미납에 따른 몰수 명령서’다. 이 서류는 2019년 1월25일부로 미국 텍사스주 국무장관실에 등록됐다. 서류에 따르면 액트지오는 서류 등록 당일부로 ‘자격 박탈’ 처분을 받았다. 텍사스주 국무장관은 액트지오에 대해 “법인의 법인설립인가서, 증명서 또는 등록증을 몰수하고 해당 몰수 사실에 관한 본 통지를 법인의 영구 대장에 기록하도록 한다”라고 명령했다. 이 서류에는 행정처분을 받게 된 구체적 원인은 적혀 있지 않다. 다만 이 처분이 ‘텍사스 세법(Texas Tax Code)’에 따른 것이라는 설명이 적혀 있다.

2023년 3월29일 텍사스 주정부에 접수된 서류(〈그림 2〉)를 보면, 자격 박탈 처분을 받게 된 구체적인 사유가 나온다. 액트지오는 “‘영업세(Franchise Tax)’ 신고서를 제출하지 않았거나, 주 영업세를 납부하지 않아서” ‘자격 박탈’ 처분을 받게 됐다. 이와 같은 처분을 받은 기업은 “복권되지 않는 한, 종료된 신고 법인이 설립되었던 사업 또는 업무를 계속할 목적으로 그 존재를 계속할 수 없다(텍사스 사업조직법·Business Organizations Code)”라고 명시돼 있다.

액트지오는 2023년 3월29일 ‘복권신청서 및 취소·몰수 명령 파기 요청서’를 제출함으로써 자격 박탈 처분에서 벗어났다. “불이행을 시정하고 수수료, 세금 및 벌금 전액을 납부”했기 때문이다. 한국석유공사가 공개한 영수증에 따르면 액트지오가 납부한 액수는 총 1650여 달러(약 227만원)였다. 텍사스주 국무장관실에 제출된 복권신청서 제출자에는 비토르 아브레우 고문 이름이 ‘사장(President)’ 명의로 적혀 있다.

6월7일 비토르 아브레우 액트지오 고문이 동해 심해 가스전 개발과 관련한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시사IN〉 온라인 보도가 나간 이후, 한국석유공사는 액트지오의 세금 체납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계약 자체에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6월8일 보도자료에서 한국석유공사는 “재판권이 제약받고, 법인 채무가 주주 등으로 이전되는 효과가 있을 뿐이며, 텍사스 주법에 따라 행위능력 일부 제한 상태에서도 ‘계약 체결은 가능’하다”라고 밝혔다.

그럼에도 계약의 타당성에 대해 언론과 정치권의 지적이 이어지자, 정부는 결국 사과했다. 6월10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최남호 산업부 2차관은 “계약 당시에는 (액트지오의 세금 체납 사실을) 몰랐다. 그런 부분까지 종합적으로 못 본 점에 대해서는 석유공사를 포함해 정부를 대신해서 죄송하다는 말씀 드린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액트지오가 “다른 계약 과정에서 체납 사실을 인지해 3월에 납부했다”라며 뒤늦은 세금 납부와 한국석유공사 사이 연관성은 부인했다.

하지만 여전히 의문이 남는 부분이 존재한다. 한국석유공사가 ‘법인 자격 정지’ 상태인 기업과 계약을 맺는 것이 국내법상 가능한지에 대한 문제다. 〈시사IN〉 보도 이후 공개한 보도자료에서 한국석유공사는 ‘텍사스 주법’ 저촉 여부만을 따졌을 뿐, 국내법상 문제가 없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자료 공개 못한다’는 산업부



야당에서는 해당 계약이 현행법 위반이라고 주장한다. 6월9일 서면 브리핑에서 이해식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국가계약법’은 지명경쟁입찰의 경우에도 이행 실적, 기술능력, 재무상태, 사회적 신인도 등을 사전에 심사하고 적격자만을 입찰에 참가”할 수 있게 규정한다며, “액트지오는 국가계약법상 계약 불가 기업”이라고 평가했다. 반면 산업부는 국내법상에도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최남호 산업부 2차관은 6월10일 브리핑에서 “국제 입찰에서 그게(액트지오의 체납 문제) 요건이 아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석유공사에서 납세증명서까지 첨부하게 되어 있지 않다. 요건에는 문제가 없다”라고 말했다.

다양한 의혹 제기에도 불구하고 영일만 석유 시추 계획을 둘러싼 검증은 아직 본격적으로 시작되지 못한 상태다. 심층 분석 결과를 도출하게 된 과정에 대한 자료를 산업부 및 한국석유공사가 공개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비단 액트지오와 한국석유공사 사이 계약 과정에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다. 동해 ‘대왕고래’ 지역에 20% 확률로 석유·가스가 매장된 것이 맞는지부터 검증이 시작돼야 한다.

산업부는 현재 국회가 요구한 자료를 대부분 ‘공개할 수 없다’고 말한다. ‘대왕고래’ 관련 탐사 자료가 영업 기밀이자 국가 자산이기에 자료를 제출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산업부 입장에서도 국회를 ‘패싱’하긴 어렵다. 산업부가 밝힌 바에 따르면 올해 편성된 예산으로 진행할 수 있는 단계는 ‘착수비’ 수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2025년 예산을 더 많이 투입해 본격적인 시추 작업을 진행하려면 국회 다수당인 민주당의 협조가 필수다.

더욱이 산업부는 영일만 시추 계획에 맞추어 전반적인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예컨대 산업부는 해저 석유·가스 시추 및 생산에서 가장 중요한 법률 중 하나인 ‘해저광물자원개발법’이 탐사와 소규모 시추에 중점을 두고 있다고 지적한다. 따라서 대형 시추가 예상되는 현재 상황에 맞춰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역설하고 있다. 법 개정을 위해서도 국회의 협조가 꼭 필요한 상황이다.

산업부 역시 국회의 요청을 무한정 무시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다. 기밀 자료이기 때문에 자료 자체를 제공할 순 없다고 하더라도, 자료를 열람하는 방식은 산업부 내에서도 고려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현재 베일에 싸인 자료들이 제한적으로나마 공개된 뒤에야 영일만 시추 계획에 대한 본격적인 검증이 시작될 전망이다.

기자 프로필

이 기사는 언론사에서 정치 섹션으로 분류했습니다.
기사 섹션 분류 안내

기사의 섹션 정보는 해당 언론사의 분류를 따르고 있습니다. 언론사는 개별 기사를 2개 이상 섹션으로 중복 분류할 수 있습니다.

닫기
이 기사를 추천합니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