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추천 책] 보통의 한국인을 위한 도리깨 그리고 타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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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2.09.29. 오전 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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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하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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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굴레〉
R. 태가트 머피 지음
윤영수·박경환 옮김
글항아리 펴냄
<일본의 굴레>R. 태가트 머피 지음윤영수·박경환 옮김 글항아리 펴냄


지독한 사랑에 빠진 사람은 종종 눈에 콩깍지가 씐다. 진짜 모습을 알아채지 못하는 것을 넘어서 못난 모습마저도 좋게 봐버리는 우를 범하기도 한다. 반대로 지독한 혐오에 빠질 때도 콩깍지가 등장한다. 그 대상을 이해하길 단념하고 그저 또 다른 싫어할 거리만을 열렬히 찾는다. 좋아하는 마음이 좋아할 거리를, 싫어하는 마음이 싫어할 거리를 발굴하는 되먹임 구조를 벗어나는 일은 매우 어렵다. 깍지를 벗겨내고 알맹이를 보여줄 타작(打作)이 있기 전까지는.

최근 중국과 엎치락뒤치락하긴 하지만 일본은 한국인이 싫어하는 주변국 순위에서 전통적인 강호(?)다. 임진왜란과 일제강점의 아픈 기억에서부터 시작된 일본 혐오는 ‘위안부’ 등 역사 왜곡과 독도 영유권 분쟁을 넘어 2019년 수출규제에 이르기까지 나날이 강화됐다. 그렇게 혐오가 자라나는 사이 일본은 한국에게 불가해한 나라가 되었다. 더 큰 문제는 답을 찾지 못하는 것을 넘어 질문 자체가 사라져버렸다는 것이다. 출판과 사상의 자유가 보장되는 국가에서 역사적 진실을 어찌 저리도 철저히 무시할 수 있는지, 무능해 보이는 자민당은 어떻게 장기간 독주할 수 있는지, 책임감에 할복까지 한다는 국민과 달리 국가로서 일본은 왜 그 무엇에도 책임지려 하지 않는지 등, 제대로 싫어하기 위해서라도 마땅히 궁금해야 할 질문마저 자취를 감췄다.

〈일본의 굴레〉는 이러한 보통의 한국인을 위한 도리깨다. 40년간 일본에 거주해온 외국인으로서 저자는 일본의 민낯을 통렬하게 까발린다. 일본의 비상식적 행동 뒤에는 나름의 역사적 맥락과 뒤틀린 논리가 내재돼 있음을, 그리고 그것이 굴레가 되어 현재의 일본을 옥죄고 있음을 폭로한다. 책을 읽은 후 일본이 한층 더 낯설게 느껴진다면 오히려 좋다. 그곳이야말로 한국과 일본의 새로운 관계를 설정해나갈 시작점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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