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역항암제에 안 듣는, 암환자도 치료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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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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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역억제제와 면역관문억제제 함께 썼더니…혈액암 환자의 46%에서 암세포 사라지고, 2년 후 87% 생존
화학항암요법은 암세포는 물론 면역세포까지 무차별 공격한다. 이 때문에 머리카락이 빠지고 메스꺼움 구토 등 부작용도 나타난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면역항암요법을 쓰지만, 잘 안 먹히는 환자도 꽤 많다. 이들 환자 치료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병용요법이 나왔다. 우선 혈액암의 일종인 호지킨 림프종에서 치료 효과가 확인됐다. 추가 연구가 뒤따를 전망이다.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면역항암제에 반응하지 않은 암 환자에게 면역억제제인 룩소리티닙을 기존의 면역관문억제제와 함께 쓰면 상당히 큰 치료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미국 스크립스연구소는 JAK(야누스 키나제) 억제제로 승인받은 면역억제제(룩소리티닙)와 면역항암제인 면역관문억제제(니볼루맙)의 병용 요법이 혈액암의 일종인 호지킨 림프종 등 일부 암을 퇴치하는 데 효과를 낼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스크립스연구소는 기초 생체의학 분야의 선두를 달리고 있다. 여기엔 노벨상 수상자 등 내로라하는 과학자들이 포진해 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면역억제제(룩소리티닙)와 면역관문억제제(니볼루맙)를 함께 쓰는 병용요법을 시작한 지 2년 뒤 호지킨 림프종 환자의 87%가 생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환자의 46%는 암 진행 징후가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 암세포가 사라지는 상태(관해)에 이른 것이다. 이들 환자는 면역관문억제제에 반응하지 않거나 재발한 사람들이었다.

면역항암제에는 면역관문억제제와 면역세포치료제가 있다. 그 중 면역관문억제제(Immune checkpoint inhibitor)는 사람의 면역기능을 활성화해 항암 효과를 낸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이 약물 요법의 혜택을 누릴 수 있는 건 아니다. 혈액암인 호지킨 림프종처럼 반응이 좋은 편인 암종에서도 환자의 약 10~20%는 면역관문억제제에 반응하지 않는다. 이들 환자는 화학항암요법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화학항암요법은 암세포를 없애기 위해 인체를 무차별 공격한다. 이 때문에 부작용이 심하게 나타난다.

연구팀에 의하면 면역관문억제제를 쓰는 것은 잠겨 있는 '면역 브레이크'를 풀어 암세포 공격을 강화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는 면역체계의 분자적 '브레이크 해제'에 해당한다. 면역관문억제제는 암세포만 표적으로 삼아 집중 공격하는 걸 가로막는 단백질 장벽을 없앤다. 이를 통해 면역체계가 면역회피물질(PD-L1)에 속지 않고 암세포를 제대로 인식할 수 있게 도와준다.

연구팀은 호지킨 림프종 환자를 대상으로 면역억제제(룩소리티닙)와 면역관문억제제(니볼루맙)의 병용 요법에 대한 제1상 임상시험 및 전임상 모델 연구를 수행했다. 그 결과 면역억제제를 면역관문억제제와 함께 쓰면 T세포의 반응이 크게 강화돼 암 퇴치 효과가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의 공동 첵임 저자인 존 테이자로 교수(면역학·미생물학과)는 "차세대 면역항암요법 개발이 한창이다. 우리는 종전의 치료 한계를 넘어서고 있다"고 말했다.

T세포는 암 및 감염과 싸우기 위해 면역체계에서 생성된다. T세포가 약해지면 암 환자는 더 이상 면역관문억제제에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이런 현상을 'T세포 고갈'이라고 한다. T세포가 만성적으로 암세포에 노출될 때 이런 현상이 발생한다.

연구팀은 룩소리티닙 같은 JAK(야누스 키나제) 억제제가 T세포의 생산량을 늘리고 면역관문억제제와 그 '면역 브레이크' 해제 효과를 개선할 수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JAK 억제제는 염증을 일으키는 것으로 보이는 신호를 제한해 면역체계를 진정시킨다.

연구팀은 여러 암과 지속적인 바이러스 감염이 있는 생쥐를 대상으로 각종 전임상 모델 연구를 수행했다. 그 결과 룩소리티닙과 니볼루맙의 병용요법이 면역세포인 T세포와 자연살해(NK) 세포를 많이 늘린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연구팀은 이 결과를 바탕으로, 미네소타대 연구팀과 함께 면역관문억제제에 반응하지 않거나, 초기 반응 후 재발한 호지킨 림프종 환자 19명을 대상으로 제1상 임상시험을 했다. 종전 연구 결과를 보면 룩소리티닙은 그 자체론 암 치료에 효과가 없었다. 하지만 이번 면역관문억제제와의 병용요법에선 상당히 좋은 효과를 냈다. 연구에는 캘리포니아대, 워싱턴대, 미네소타대, 아이오와대, 위스콘신-매디슨대 등도 참여했다.

이 연구 결과(JAK inhibition enhances checkpoint blockade immunotherapy in patients with Hodgkin lymphoma)는 국제학술지 ≪사이언스(Science)≫에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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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중앙일보 의학담당, 보건복지부 환경부 과기정통부 법무부 검찰 등 출입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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