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주의 건강편지]배운 사람은 자신의 무지를 안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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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4.02.26. 오후 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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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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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2월 26일ㆍ1610번째 편지

○배운 사람은 자신이 무지하다는 것을 안다.

○정의는 완전무결할 때에만 옳다.

○삶의 가장 큰 행복은 우리가 사랑받고 있다는 확신이다.

○삶이 꽃이라면, 사랑은 이 꽃의 꿀.

○상식은 교육의 결과가 아니라, 교육을 받았는데도 얻게 되는 것이다.

○웃음은 사람의 얼굴에서 겨울을 쫓아내는 햇빛이다.

○마흔은 젊음의 노년기, 쉰은 노년의 청년기(평균 수명이 늘어서 예순 또는 일흔이 노년의 청년기라고 해야 할지도···).

○음악은 말할 수는 없지만 침묵도 불가능한 것을 표현한다.

○미래는 여러 이름을 갖고 있다. 약한 사람에게는 불가능이고, 겁많은 사람에겐 미지이며 용기 있는 사람에겐 기회다.

○등불을 만든 것은 어둠이었고 나침반은 안개 덕분에 태어났다. 배고픔은 우리를 탐험으로 이끌었고, 곤궁은 우리에게 일의 진정한 가치를 가르쳐줬다.

평범해 보이지만, 곱씹을수록 맛이 우러나오는 명언이랄까요? 최근 우리 사회에서 갈등을 유발하는 이들과 거기 부화뇌동하는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보석 같은 목소리입니다. 물론, 어떤 사람에겐 아무 울림도 없을 가능성이 크지만···.1802년 오늘은 이 명언들을 남긴, 빅토르 위고가 태어난 날입니다.

프랑스 낭만주의 문학의 최고봉으로 《레 미제라블》 《노트르담 드 파리》 등의 대작을 남겼지요? "여자는 약하다, 그러나 어머니는 강하다"는 명언의 주인공이고요. 《레 미제라블》 출판 때엔 출판사에 '?'만 쓴 편지를 보내서, '!'만 쓰인 편지를 받은 일화도 유명하지요?

빅토르 위고는 성인(聖人)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습니다. 몸부림치는 삶을 살았다고나 할까요?자신의 바람기 탓이기도 했지만 스무살 때 결혼한 아내 아델이 친구와 야반도주하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마흔 살 때엔 당시 첫 아기를 임신 중이었던 19살 맏딸이 센강에서 보트 전복사고를 당해 숨지자 6개월 동안 펜을 들지도 못하고 슬퍼했으며 이후에도 우울증으로 고생했습니다.

위고는 공화주의자로 국회의원이 됐지만, 중도노선에 반발한 급진파와 노동자가 봉기를 일으키자 협상 대표로 나섰다가 나중에 국민방위군을 지휘해서 이들을 진압합니다. 나폴레옹을 지지했다가 독재의 길로 가자 이에 저항하다가 벨기에를 거쳐 영불해협의 섬으로 망명을 가야만 했습니다.

위고는 지독한 바람둥이었습니다. 여배우와 간통 혐의로 감옥에 갇히기도 했지요. 섬으로 망명갈 때에 재결합한 부인 아델, 자녀와 함께 애인도 따라갔는데, 그 애인 쥘리에트 드루에가 《레 미제라블》의 완성에 큰 도움을 줬지요. 위고는 "5만 프랑의 돈을 내놓으니 극빈자들의 관 만드는 값으로 사용되길 바란다"는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는데, 200만 명의 파리 시민이 추모행렬에 참가했다고 합니다. 심지어 파리의 홍등가가 모두 하루 문을 닫았다고 합니다.

위고는 섣부른 정의보다는 이해와 사랑이 우선이라고 봤습니다. 지식인의 섣부른 판단을 경계했습니다. 오늘은 여기저기 갈등들이 상처를 남기고, 사랑보다 분노와 증오가 도드라져 보이는 시기에 빅토르 위고의 명언들을 통해 스스로 되돌아보는 것은 어떨까요? 배운 사람, 즉 식자는 자신의 무지를 안다고 했는데, 우리 사회는 자신의 무지를 부정하는 사람이 너무 많은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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