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베이 색 지우기' 돌입한 정용진 회장, 지마켓 구조조정 신호탄일까

입력
수정2024.06.24. 오후 4:23
기사원문
박재형 기자
본문 요약봇
성별
말하기 속도

이동 통신망을 이용하여 음성을 재생하면 별도의 데이터 통화료가 부과될 수 있습니다.

신세계그룹이 이커머스 계열사인 SSG닷컴과 지마켓의 인적쇄신을 단행했다. 두 계열사의 수장을 동시에 교체했지만 방향성은 각각 내부 승진과 외부 수혈로 다르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의 모습.   /사진 제공 = 신세계그룹
신세계그룹이 이커머스 계열사인 SSG닷컴과 지마켓 수장을 동시에 교체하면서도 미묘한 차이를 뒀다. SSG닷컴은 내부인사 승진, 지마켓은 외부인사 수혈로 인적쇄신의 가닥을 잡았다. 이인영 전 SSG닷컴 대표와 전항일 전 지마켓 대표는 지난해 9월 단행된 대규모 인사의 칼바람에도 나란히 자리를 지키며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의 신임을 받았지만, 성과주의 원칙에 따라 결국 물러나게 됐다.  

업계에서는 이를 두고 신세계그룹이 '이베이 색 지우기'에 돌입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 전 대표와 전 전 대표 모두 이베이코리아(현 지마켓) 출신인 데다, 특히 지마켓의 경우 대표이사 아래 C레벨 직책까지 외부 인사로 채웠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지난 2021년 지마켓 인수 당시 일정 기간 고용승계를 약속했던 신세계그룹이 이번 인사를 계기로 구조조정에 나설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SSG닷컴·지마켓, 대비되는 개편 방향
24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신세계그룹은 지마켓 새 대표로 알리바바코리아 총괄 겸 알리페이 유럽·중동·코리아 대표를 지낸 정형권 대표를 영입했다. SSG닷컴은 영업본부를 이끌어온 최훈학 전무가 대표이사를 겸직하도록 했다. 신세계그룹은 "이번 리더십 변화는 신세계그룹이 추진해온 이커머스 혁신 토대의 완성"이라고 밝혔다.   

SSG닷컴과 지마켓은 대표이사 영입에 앞서 조직을 개편했다. SSG닷컴은 통합, 지마켓은 분리였다. SSG닷컴은 기존 4개 본부(DI, 영업, 마케팅, 지원) 체제를 2개 본부(DI, 영업)로 줄였고, 지마켓은 기존 PX본부를 PX(Product eXperience)본부와 Tech본부로 쪼갰다.  

주목할 점은 이 조직들의 임원 구성에서도 두 계열사의 기조가 달랐다는 것이다. 대표이사 영입과 마찬가지로 SSG닷컴은 내부, 지마켓은 외부 인재를 앉혔다. SSG닷컴의 DI(Data·Infra) 본부장에는 이마트 DT(Digital Transformation) 총괄이었던 안종훈 상무가 옮겨갔다. 반면 지마켓 PX본부장에는 네이버 출신 김정우 상무, 신임 Tech본부장에는 쿠팡에 몸담았던 오참 상무가 합류했다.  
(왼쪽부터) 정형권 지마켓 신임 대표와 최훈학 SSG닷컴 신임 대표 /사진 제공=신세계그룹
 
이베이 색 지우기 돌입
업계는 이 가운데에서도 지마켓의 인적 변화에 주목했다. 대표이사 교체가 인수 이후 처음이라는 이유에서다. 신세계그룹은 2021년 특수목적법인(SPC)인 에메랄드SPV를 통해 지마켓(당시 이베이코리아) 지분 80.01%를 3조4404억원에 매입했다. 인수 당시 지마켓을 이끌었던 인물이 이번에 물러난 전 전 대표다. 그는 2003년 이베이코리아에 입사한 뒤 20년 넘게 한울타리에 있었다. 이베이 측 핵심 인사였던 셈이다. 신세계가 이베이 색 지우기에 나섰다는 평가가 나오는 배경은 이와 맞닿아 있다. 

SSG닷컴을 총괄하던 이 전 대표의 퇴진도 이를 뒷받침한다. 그 역시 이베이코리아 출신이기 때문이다. 2006년 1월 이베이코리아에 입사한 이 전 대표는 인수 당시 이베이코리아 최고재무책임자(CFO)였다. 이후 SSG닷컴 운영부문총괄과 지마켓 지원본부장을 겸직했으며 공동대표를 거쳐 지난해 9월 SSG컴 단독대표에 올랐다.  
(왼쪽부터) 전항일 지마켓 전 대표와 이인영 SSG닷컴 전 대표 모두 이베이코리아 출신이다.  /사진 제공=신세계그룹
이베이코리아 원년 멤버의 동반 퇴진은 지마켓의 구조조정 가능성을 시사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인수 당시 신세계그룹이 보장한 고용승계 기간이 종료된 데 따른 결과라는 것이다. 기업 인수 이후 고용승계 기간은 통상 3년으로 본다.

그룹에 편입된 뒤 적자전환한 지마켓은 지난해까지 누적손실 규모가 1078억원(2021~2023년)에 달했다. 그사이 오프라인 대형마트라는 본업마저 흔들렸고 모기업 이마트는 지난해 창사이래 첫 적자까지 냈다. 3조원이 넘는 인수비용을 3년이 지나도 회수하지 못한 신세계그룹 입장에서는 지마켓 리밸런싱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해석이다. 
압박 느끼는 지마켓 
지마켓의 기업가치는 인수 당시와 비교해 급격히 하락한 것으로 파악된다. 지마켓 지분 100%를 들고 있는 아폴로코리아의 주식 장부가액이 2021년 말 3조4000억원에서 지난달 기준 2800억원으로 줄었기 때문이다. 축소율만 91.8%다. 신세계그룹이 지마켓을 지배하는 구조는 '이마트→에메랄드SPV→아폴로코리아→지마켓'이다.  

지마켓 내부적으로는 불만이 고조되는 분위기다. 당초 신세계그룹이 지마켓을 인수한 의도는 쿠팡을 견제하는 동시에 이커머스 사세 확장을 위해서였지만, 정작 사들인 뒤에는 물류센터 건립 등 과감한 투자보다 당장 가시적인 실적과 내실 다지기 식의 수익성 압박이 심했기 때문이다. 한 관계자는 "판을 키워야 하는 상황에서는 적자를 감수해야 하는데, 인수 이후 분기별로 실적 압박이 반복되다 보니 내부에서 불만이 많았다"고 전했다. 

다만 신세계그룹 입장에서도 몸값만 3조4404억원인 지마켓이 기대와 달리 부진을 거듭하자 부담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인수 직전연도 지마켓의 영업이익은 850억원에 달했다. 신세계그룹이 인수대금을 전액 차입으로 지불했더라도 연간 800억~900억원 수준의 이자비용을 지마켓이 감당할 수 있었던 셈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인수 직후 곧바로 적자전환하면서 그룹의 재무 부담이 가중됐고, 이는 이번 인적쇄신의 원인이 됐다는 평가다.

기자 프로필

이 기사는 언론사에서 경제 섹션으로 분류했습니다.
기사 섹션 분류 안내

기사의 섹션 정보는 해당 언론사의 분류를 따르고 있습니다. 언론사는 개별 기사를 2개 이상 섹션으로 중복 분류할 수 있습니다.

닫기
이 기사를 추천합니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