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마트는 되고 쿠팡은 안되고"... 공정위 '형평성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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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4.06.14. 오후 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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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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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거래위원회가 공정거래법상 위계에 의한 고객유인 혐의로 쿠팡과 CPLB(PB 상품 전담 납품 자회사)에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1400억원을 부과한다고 밝혔다. /사진 제공=쿠팡
공정거래위원회가 쿠팡의 자체브랜드(PB) 상품 상단 노출을 위계에 의한 고객유인 행위로 판단하면서 역차별 논란이 뜨겁다. 온오프라인의 장벽이 무너지고 유통업계의 경쟁도 다각화하는 가운데 대형마트에서 PB상품을 목 좋은 곳에 진열하는 것은 시장 논리에 따른 당위적 행위지만,  플랫폼에서 PB상품을 위쪽에 배치하는 것은 위법이라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국가적 차원에서 장려해야 할 PB산업의 위축이 불가피한 데다 쿠팡이 C커머스에 맞설 투자동력마저 잃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4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전날 공정거래법상 위계에 의한 고객유인 혐의로 쿠팡과 CPLB(PB상품 전담 납품 자회사)에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1400억원을 부과한다고 밝혔다. 이는 유통업계 역대 최대 액수이자 쿠팡이 첫 흑자를 기록한 지난해 영업이익(6174억원)의 23%에 해당한다.  

 
알고리즘 '조작' VS '자체' 알고리즘일 뿐
공정위는 쿠팡이 검색 알고리즘을 조작해 '쿠팡 랭킹순'에서 PB상품을 인위적으로 끌어올렸다고 봤다. 1~3단계로 구성된 알고리즘에서 쿠팡은 PB상품을 자체적으로 검색순위 상위에 고정했고, 소비자는 해당 상품이 판매량이나 별점 등 객관적 지표에 따라 산정된 것으로 오인해 구매를 결정했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쿠팡은 상품진열 방식은 유통업체 고유의 권한이라는 입장이다. '조작'이라는 프레임이 아니라 자체 알고리즘으로 고객 선호도를 반영했다는 것이다. '가격순'이나 '판매량순'과 달리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쿠팡 랭킹순'의 특성상 필요에 따라 설정값 개입이 필요한데, 공정위 논리대로라면 소비자가 아이폰을 검색했을 때 새로 출시된 아이폰이 아니라 기존 검색량이 많은 구형 아이폰이나 아이폰 케이스가 먼저 노출돼야 하는 셈이다.  

유통업계의 한 관계자는 "공정위의 결정은 기업경영 쪽보다 법 쪽에 치우친 경향이 있다"며 "수익모델이나 전략, 소비자 편의 측면에서 아쉬운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골든존' 제재없는 오프라인 마트
유통업계는 공정위의 결정이 초래할 부작용이 적지 않다고 본다. 먼저 형평성 논란이 꼽힌다. 대형마트는 PB상품을 구매가 가장 활발한 골든존(눈높이인 170㎝ 이하 매대)에 배치하는 데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기 때문이다. 통상 골든존 매출은 일반 매대에 비해 최소 4배 높다.  

특정 상품을 매장 내 유리한 위치에 전시하는 것은 유통업의 본질이다. 쿠팡의 알고리즘 노출 방식은 대형마트의 골든존 마케팅과 차이가 없지만, 공정위에 따르면 법에 저촉되는 것은 쿠팡뿐이다. 한 관계자는 "오프라인 PB는 살리고 온라인 PB는 묻는 꼴"이라고 말했다. 다만 공정위는 이와 관련해 "오프라인 매장의 PB상품 진열은 성격이 전혀 다르다"고 밝혔다. 

 
PB 산업과 투자 위축 우려
기업이 PB상품을 판매하는 것은 수익성 외에 미끼상품으로서 효과를 가졌기 때문이다. 비교적 저렴한 PB상품을 둘러보면서 트래픽과 체류시간을 늘리고, 결국 소비자의 타 상품 구매를 유도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PB 파트너사와 플랫폼 입점 업체 모두 상생하는 결과가 초래된다. 유통 선진국과 업체가 PB상품을 대폭 늘리는 것도 이런 이유와 맞닿아 있다.  

하지만 한국의 상황은 이번 사례로 역행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PB 개발이 필수적인 상황에서 쿠팡은 선도기업이 될 수 있음에도 제재를 가한 것은 옳지 못하다"며 "실효성 논란이 이는 대형마트 의무휴업일 규제 같은 사례가 재연되는 게 아닌지 걱정"이라고 했다.  

쿠팡은 더 이상 지금과 같은 로켓배송 서비스와 국내 유통 시장 투자는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쿠팡은 공정위 발표 직후 보도자료를 내고 "만약 공정위가 이러한 상품추천 행위를 모두 금지한다면 우리나라에서 로켓배송을 포함한 모든 직매입 서비스는 어려워질 것"이라며 "쿠팡이 약속한 전 국민 100% 무료배송을 위한 3조원 물류투자와 로켓배송 상품 구매를 위한 22조원 투자 역시 중단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유병준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오프라인은 되고 온라인은 안 되는 이중잣대는 모순"이라며 "현재로서는 과도한 규제라는 인상이 짙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결국 쿠팡의 투자 위축을 초래하고, 미래 젊은이들의 일자리가 줄어드는 부작용이 우려된다"며 "과연 쿠팡을 규제해 얻는 이익이 이보다 더 큰지 의문"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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