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1심 판결]① 검찰은 왜 이재용 회장을 기소했을까?

입력
수정2024.09.03. 오후 12:06
기사원문
박선우 기자
본문 요약봇
성별
말하기 속도

이동 통신망을 이용하여 음성을 재생하면 별도의 데이터 통화료가 부과될 수 있습니다.

이 기사는 2024년 05월 16일 17시 25분 넘버스에 발행된 기사입니다.
 
자본시장 사건파일
/그래픽=박선우 기자, 자료=게티이미지뱅크·삼성전자 홈페이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다시 재판정에 선다. 서울고법 형사13부(백강진·김선희·이인수 부장판사)는 오는 27일 오후3시 자본시장법 위반 등의 혐의를 받는 이 회장의 항소심 첫 공판준비기일을 진행한다.

이번 사안의 핵심은 이 회장이 경영권 승계와 지배력 강화를 위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을 합병하는 과정에서 부정거래, 시세조종 등에 관여했는지 여부다. 이에 대해 지난 2월 1심 법원은 이 회장에게 적용된 19개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임원 등 이 회장과 함께 기소된 피고인 13명에게도 무죄 선고를 내렸다.

이 회장이 기소된 지 3년5개월 만으로 106회에 걸친 재판 끝에 나온 결론이었다. 검찰 수사 기록 약 19만장, 증인신문은 80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판결문 분량만 약 1600쪽이다.

이처럼 방대한 기록은 재판에서 어떤 논의를 거쳐 '피고인들은 모두 무죄'라는 한 문장의 주문으로 정리됐을까. 다시 말하면, 이 회장에게 왜 무죄가 선고됐을까.

1심 판결문을 토대로 검찰 공소사실부터 짚어봤다.

 
검찰 "1994년부터 승계 작업...지배력 확보 위해 합병 추진"
검찰은 이 회장의 범행 동기와 배경을 1994년부터 이뤄진 경영권 승계 작업에서 찾았다. 이번 '불법 승계 의혹' 사건이 1990년대 중후반에 걸친 승계 작업의 연장선에 있다고 본 것이다.

판결문에 따르면, 당시 이 회장은 고(故) 이건희 삼성 선대 회장에게 증여받은 약 61억4000만원으로 상장 직전의 삼성그룹 계열사 주식 등을 매수한 뒤 해당 계열사가 상장되면 그 주식을 매각해 차익으로 자금을 확보했다.

이렇게 마련한 자금으로 1996년 이 회장은 에버랜드 전환사채(CB)를 인수했다. 당시 에버랜드는 주주에게 우선 배정하는 방식으로 CB를 발행했다.

그런데 기존 특수관계인 주주들이 CB를 인수하지 않자, 이 회장이 해당 실권분을 1주당 7700원에 사들여 전부 주식으로 전환했다. 이 회장은 약 48억3090만원으로 에버랜드 주식 31.37%를 취득해 에버랜드 최대주주에 올라섰다.

이후 에버랜드는 삼성전자 주식 7% 이상을 매입, 보유하던 삼성생명 주식을 1주당 9500원에 사들여 삼성생명의 최대주주가 됐다. 결과적으로 '이재용-에버랜드-삼성생명-삼성전자'로 이어지는 지분구조가 형성됐다. 검찰은 이렇게 이 회장이 그룹 승계의 기반을 마련했다고 판단했다.
/자료=이 사건 1심 판결문
또 삼성의 신수종사업(미래 산업을 이끌 유망한 사업) 중 하나인 바이오 사업을 에버랜드에 밀어주기 위해 삼성바이오로직스를 에버랜드 자회사로 두는 결정도 이뤄졌다고 했다. 

검찰은 삼성그룹에 대한 지배력은 그룹 상장 계열사 시가총액의 약 3분의2에 해당하는 삼성전자의 지배력 확보가 핵심이라고 봤다. 그러기 위해서는 삼성전자 주식 7.21%를 보유한 삼성생명과 4.06%를 가진 삼성물산에 대한 지배력을 확보해야 하는데, 이 회장 등이 논의한 방안이 '삼성물산과 에버랜드(제일모직으로 사명 변경) 간 합병'이었다고 판단했다. 
검찰은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으로 위와 같이 지배구조가 바뀐다고 판단했다.  /그래픽=박선우 기자
이때 등장하는 문건이 '프로젝트-G(Governance)'다. 검찰은 미전실에서 이 회장의 승계계획안인 프로젝트-G를 수립해 합병을 실행했다고 간주했다.

합병까지의 흐름은 이렇다. 이 회장이 최대주주인 에버랜드에 유리한 합병이 되도록 에버랜드는 제일모직 패션사업을 인수했다. 이후 회사는 제일모직으로 사명을 바꿨다. 2014년 12월 상장된 제일모직은 이듬해 삼성물산과 1대0.35의 비율로 합병했다. 이는 제일모직 주식 1주를 삼성물산 약 3주와 바꾼다는 의미다.

판결문에 따르면 검찰은 "당초 계획한 이 사건의 합병 목적대로 이 회장은 전혀 지분이 없던 삼성물산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고 이에 따라 삼성물산을 통해 삼성전자 주식 4.06%를 직접적으로 지배하게 됐다"고 주장했다.

 
이 회장에 자본시장법 위반 등 19개 혐의 적용
검찰은 2020년 9월 이 회장, 미전실, 삼성물산, 삼성바이오로직스 관계자 등 13명과 삼정회계법인을 기소했다.
검찰 공소사실 /자료=이 사건 1심 판결문
이 회장에게 적용된 혐의만 19개이며  다른 피고인들의 혐의까지 더하면 총 23개다.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위반 △업무상 배임 △주식회사 등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 위반 등이다.

검찰은 이 회장 등이 최소비용으로 삼성그룹을 승계하고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해 승계계획안을 마련했으며, 일방적으로 합병을 추진했다고 봤다. 

판결문에는 "마치 이 사건의 합병은 이 회장의 승계와 무관하고 미전실의 관여가 없으며, 삼성물산 경영진이 2015년 4월 하순경 제일모직 경영진으로부터 합병 제안을 받아 면밀한 검토 및 제일모직과 협상을 거쳐 자체적으로 결정한 것처럼 가장하기로 계획했다"는 검찰 측 주장이 기재돼 있다.
/자료=이 사건 1심 판결문
삼성물산과 삼성물산 주주의 이익은 고려하지 않았다. 검찰은 보도자료(2020년 9월1일)에서 "2015년 5월 당시 삼성물산은 제일모직에 비해 매출 5.5배, 영업이익 및 총자산이 3배에 이르는 규모였다"며 "(그럼에도) 주가는 오히려 제일모직이 삼성물산보다 2.6배 높아 '주가 기준의 합병비율'은 이 회장 등 제일모직 주주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하고 삼성물산 주주에게는 불리해 삼성물산 주주들의 반대 목소리가 높은 상황이었다"고 밝혔다.

검찰은 합병 목적과 배경, 효과 등에 대한 허위 공표도 있었다고 판단했다. 합병 효과에 대해 검찰은 "(합병 태스크포스(TF)가 제시한) 2020년도 합병법인 예상 매출 60조원 중 합병 시너지로 창출되는 액수가 얼마인지에 대해 전혀 특정되지 못했고 사업부문별 예상 매출 증가액에 대해서는 객관적 근거도 전혀 없었다"고 전했다.

또 검찰은 인위적 주가 관리, 삼성바이오로직스(제일모직 자회사)와 관련된 분식회계 등도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 회장 등 피고인들의 혐의와 관련해 검찰은 다수의 증거를 확보했다고 했다. 기소 당시 검찰은 "이재용 등 삼성그룹 관계자, 외부 자문사, 주주 투자자, 관련 전문가 등 약 300명에 대해 860회 상당의 조사 및 면담을 진행하고 서버 PC 등에서 2270만건(23.7TB) 상당의 디지털 자료를 선별해 압수 분석했다"며 "증거인멸 수사 과정에서 압수수색으로 바이오로직스 공장 바닥 등에 은닉된 다량의 서버와 하드디스크 등을 확보했다"고 설명했다.

 

<2편>으로 이어집니다.

 

기자 프로필

이 기사는 언론사에서 경제 섹션으로 분류했습니다.
기사 섹션 분류 안내

기사의 섹션 정보는 해당 언론사의 분류를 따르고 있습니다. 언론사는 개별 기사를 2개 이상 섹션으로 중복 분류할 수 있습니다.

닫기
이 기사를 추천합니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