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불법 거래소 차단' 손놓은 FIU-방심위…'테러 막듯' 법제도 시급[코인사기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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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4.07.19. 오후 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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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기획 <코인사기공화국-그들은 치밀했다>

④-⑵방통심의위, 불법 거래소 심의의결 '0건'
FIU도 추가 증빙자료 제출 안 해
경찰도 해외 거래소 조사 어렵다 종결
디지털 사기 통합대응 필요…플랫폼 자율규제도
네이버, 8월 밴드 정책 변경…카카오도 실행


가상자산(코인) 사기의 주 무대인 '불법 해외 거래소'가 정부 기관 간 책임 떠넘기기 속에서 2년 넘게 방치됐다. 금융위원회 금융정보분석원(FIU)은 거래소 접속차단 심의 요청을 한 후 별도 후속 조치 없이 방관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통심의위) 역시 불법성 모호 등을 이유로 수사 결과를 기다리겠다며 '소극 행정'으로 일관했다. 그 결과 심의 의결된 건수는 '0건'. 정부 규제 공백 속에서 해외 거래소들은 국내 사기 조직과 결탁해 대규모 피해를 양산했다. 학계에선 '테러'에 버금가는 다중피해사기범죄인 코인 사기를 막기 위해 플랫폼 자율규제와 정부 기관의 선제·능동적 대처를 위한 법제도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주요 창구인 플랫폼 업계도 '불법 투자 리딩방' 단속을 강화할 방침이다.

금융위원회 금융정보분석원(FIU)이 2022~2023년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정보 심의를 요청한 해외 가상자산사업자 심의 의결 자료. 자료=더불어민주당 이훈기 의원실

불법 거래소 '말'로만 단속…심의요청 4개월 만에 열린 소위


18일 아시아경제가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이훈기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방통심의위 통신심의소위원회(소위)는 2022~2023년 2년간 FIU가 2차례에 걸쳐 요청한 총 22개 가상자산사업자 62개 정보의 심의 요청 건과 관련해 '심의 중지'를 의결한 후 현재(2024년 7월)까지 단 한 건에 대해서도 추가 심의를 진행하지 않았다.

FIU가 처음 방통심의위에 심의를 요청한 것은 2022년 8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FIU는 16개 해외 가상자산사업자의 47개 정보에 대한 심의를 요청했으나 방통심의위는 당해 11월 통신자문특위의 자문을 거쳐 12월 제81차 소위를 열고 '심의 중지'를 의결했다. 주된 이유는 △FIU가 제시한 '불법 영업 기준'이 모호하다는 점 △해외 계좌를 보유한 내·외국인 영향 가능성 △경찰 수사가 진행 중이라는 점 등 때문이었다. 특정금융정보법(특금법)상 불법 거래소 규정 요건인 '한국인 대상의 영업'이 입증돼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낌새를 눈치챈 거래소들이 한국어 서비스를 종료하는 등 영업방식을 교묘하게 바꿨다. FIU는 1년 후인 2023년 7월에도 6개 해외 가상자산사업자의 15개 정보에 대해 추가 심의 요청을 냈으나 이 역시 당해 12월 제85차 소위에서 '심의 중지' 결정을 받았다. 소위는 "지난해 12월5일 심의 중지한 결정과 내용으로는 차이가 없다" 등의 이유로 의결했다. 이때는 통신자문특위의 자문조차 거치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양 기관은 불법성 판단·제재와 관련해 '핑퐁' 행보를 보였다. 방통심의위는 FIU 측에 심의 대상 가상자산 거래소를 이용하는 실제 내국인 현황을 확인해달라는 주문과 함께 거래소별 신용카드 결제 차단 시행 여부 등도 요청했다. FIU가 수사당국에 통보한 만큼 경찰의 판단을 기다려야 한다는 초기 입장도 고수했다. 다만 방통심의위가 요구한 자료는 사실상 제출이 불가능한 자료였던 것으로 관측된다. 실제 FIU로부터 수사를 요청받았던 서울경찰청 등 경찰 역시 이후 해당 사안에 대해 '입건 전 조사 중지'로 결정을 내렸다. 해외 거래소가 협조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방통심의위 관계자는 "해당 사안은 당시 소위에서 FIU가 제출한 기준과 자료를 근거로 법령에서 금지한 영업성 여부에 대해 면밀한 검토를 거쳐 심의 중지를 한 것"이라며 "두 차례의 위원회의 심의 중지 결정 이후 FIU 역시 최초 요청 당시와 변경된 영업성 입증 관련 기준 제시나 자료 제공은 없었다"고 말했다. FIU 관계자는 "금융위는 미신고사업자에 대해서는 법률상 관리·감독권이 없고, 특금법상 형벌 사항이므로 수사기관의 수사 등이 필요하다"며 "압수수색 등을 통한 거래내역 확보 등이 불가능한 등 대응 수단이 제한된 상태에서 (방통심의위에 자료 제공 당시) 최선을 다해 정보를 수집했고 미신고 사업자 대응 노력을 기울여왔다"고 밝혔다.

해외 코인 거래소 '멕시'에 상장된 SRT 거래 화면. 사진제공=SRT 등 코인 사기 피해자


규제 공백 속에서 해외 거래소와 결탁한 코인 사기는 더 활개를 쳤다. 일례로 2022년 당시 FIU가 심의를 요청한 16개 거래소 중 하나였던 엠이엑스씨(MEXC·멕시)는 2024년 현재 문제가 된 사기 코인 중 하나인 SRT가 상장된 거래소다. 과거 멕시는 1년간 거래소 신고수리를 하지 않은 채 한국어 서비스, 한국인 마케터 및 프로모터, 온라인 이벤트를 제공해 감시망에 걸렸다. 국내 거래소 규제 강화로 해외 거래소로 상장 수요가 몰리는 일종의 풍선효과도 반영됐다. 코인 지갑 전문업체 A 대표는 "지금 '엘뱅크' 같은 곳은 5000만원도 안 되는 가격으로 코인을 상장시켜주는 것으로 안다"며 "블록체인으로만 돼 있으면 상장시켜주고 그다음에는 아예 책임을 안 진다고 먼저 안내하기도 한다"고 귀띔했다. SRT를 비롯해 RNDX 등 L투자그룹의 코인 사기 피해자 중 한 명인 김주현씨(가명)는 "멕시는 원화 결제는 안 받고 달러로만 하는데 (법망을) 우회해 계속 운영되고 있다. 정부의 방침은 다소 아쉽다"고 했다.

여전한 불법 영업…적극 행정 필요

업계에선 코인 사기를 막기 위해 더욱 직접적인 행정 조치가 필요하다는 반응이다. 한국블록체인사업협동조합은 전일(17일) 국내에서 일부 해외 거래소가 불법 영업 중이라며 관계 당국의 실효성 있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협동조합은 "국내 거래소와 달리 정보보호관리체계(ISMS) 취득과 가상자산사업자(VASP) 신고 절차 없이 불법 영업하는 해외 거래소에 대한 조치는 실효성이 떨어진다"며 "영업 활동은 점점 더 과감해지고 교묘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관계 당국의 경고에도 여전히 국문으로 된 거래 플랫폼을 운용하며 거래소가 아닌 투자회사 형식의 법인체를 앞세워 자사 거래소의 영업, 마케팅 활동을 지원하고 곳도 있다"고 강조했다.

학계에서도 코인 사기로 인한 피해가 크다며 정부의 더욱 선제적 조치가 필요하다는 제언이 나왔다. 서준배 경찰대 행정학과 교수는 "코인 사기는 다중피해사기범죄로 공동체를 파괴하고 경제질서를 무너뜨리기 때문에 테러에 준하는 대응이 필요하다"며 "지금 코인 사기는 비대면, 초국경이 특징이기 때문에 사기 조직이 감옥에 가지 않는다는 걸 안다. 범죄자들을 단념(Deterrence)시킬 수 있을 정도로 수사당국이 요청했을 때 즉각적이고 통합적인 대응이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과거에도 이 같은 디지털 기반의 조직적 사기에 통합 대응을 해야 한다는 국회 차원에서의 논의가 이뤄졌지만 결국 21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한 채 폐기되기도 했다. 22대 국회 입성에 성공한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022년 대표 발의했던 '디지털다중피해사기 방지 및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안'이 대표적이다. 박재호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 안인 '다중사기범죄의 피해 방지 및 구제에 관한 법률', 김용판 전 국민의힘 의원 안인 '사기 방지 기본법안' 등도 비슷한 내용을 다뤘다. 22대 국회에서도 재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투자 사기 창구' 된 SNS…네·카도 리딩방 단속 고삐
네이버 '밴드'에서 스캠코인 'FVP'라는 키워드로 검색한 화면. 사진=FVP 코인 사기 사건 피해자


코인 사기 피해자를 모집하는 국내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상의 자율규제가 강화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미디어 통계 포털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한국인이 주로 이용하는 SNS 계정 중 네이버 밴드(27.7%)와 카카오스토리(21.0%)의 합은 48.7%로 절반에 육박했다. 네이버·카카오 등 플랫폼 업계는 투자 관련 대화방 중 '불법'을 규정하기 어렵다는 이유 등으로 자율규제에 소극적 행보를 보여왔으나 이달 말 개정 자본시장법 시행을 계기로 더욱 적극적인 규제에 나설 방침이다. 개정 자본시장법은 유사투자자문 업체의 양방향 투자 자문을 금한다. 리딩 자체를 막은 것이다.

네이버는 다음 달인 8월 초 '밴드' 활동 정책을 개정할 계획이다. 이 과정에서 이용 제한 내용에 '유사 수신' 및 '유사 투자자문' 관련 분류를 신설할 방침이다. 공인된 투자자문사가 아닌 불법 투자 광고 등을 모니터링해 '원스트라이크 아웃' 원칙을 토대로 문제 계정을 축출한다. 대상 자산군을 구체적으로 명시하지는 않지만 유사 수신의 행위상 문제가 된다고 종합적으로 판단될 경우 규제 대상에 포함한다. 악용 소지를 없애기 위해 구체적 모니터링 기준은 비공개로 한다. 카카오 역시 지난 15일 '카카오톡' 운영정책 개정을 통해 △주식 리딩방 운영 및 홍보 행위 금지 △가상자산 등 기타 투자상품에 대한 리딩방 운영 및 홍보행위 금지 △불법 스팸 대량 발송에 대한 제재 강화 등 내용을 공표한 바 있다.

블록체인 데이터 분석기업인 체이널리시스의 백용기 한국 지사장은 "사기 대응은 공공 및 민간, 시민 사회 전반의 협력을 촉진하는 일관된 전략이 필요하다"며 "효과적인 사기 예방은 강력한 공공 교육 노력에서 시작되며, 지속 가능한 해결책을 위해서는 전 세계적으로 사이버 범죄를 해결하고 불법 금융 네트워크를 저지할 수 있는 법 집행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훈기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관계자는 "미신고 해외 거래소의 불법 영업으로 인한 피해가 지속되고 있고, 한번 발생한 피해는 회복도 어렵다"며 "국내 투자자, 이용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금융당국과 방통심의위의 적극적인 협력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제보받습니다>

'가상자산 투자사기'에 대해 심층 취재 보도할 예정입니다. 코인 범죄 근절을 위한 종합 대응 방안 마련을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제보([email protected]) 부탁드립니다. 끝까지 취재해 보도하겠습니다.

<특별취재팀> ▲팀장 이선애 부장 △김민영 차민영 김대현 황윤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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