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연금개혁 걷어찬 與, 매달 2.6조 부담은 미래세대 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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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4.05.28. 오후 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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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승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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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개혁을 하려면 의회 합의 능력이 있어야 한다. 그게 정치력인데 한국 국회는 정치력이 없다. 그래서 매번 개혁을 못 하는 것이다.”

올해 초 한 행사장에서 만난 여권 출신의 전직 경제수장은 ‘3대 개혁’ 질문을 듣고 이렇게 답했다. 아무리 개혁을 잘 준비해도 정치 때문에 무산되기 일쑤였다는 게 이유다.

지금 국민연금 개혁이 딱 이 꼴이다. 21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인 28일 연금개혁안 통과 불발이 유력하다. 여야 원내대표가 전날 비공개 회동도 했지만 입장차만 확인했다. 더불어민주당이 여당의 제안을 받아들였지만 국민의힘에서 돌연 “22대 국회에서 최우선으로 논의하자”며 합의를 거부한 탓이다. 연금개혁의 시급성을 알면서도 부족한 정치력 때문에 합의하지 못하는 전형적인 ‘정치 실패’다.

여당이 밝힌 표면적인 거부 사유는 ‘시간’이다. 국회 종료까지 시간이 없는데 졸속 처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연금의 구조개혁이 훨씬 중요한데, 숫자만 조정하는 모수 개혁만으로는 개혁의 동력이 떨어진다는 설명도 내놨다.

하지만 졸속이라는 주장은 명분도 설득력도 없다. 국회 연금논의의 출발점은 공론화위원회였다. 지난 2월부터 우리 국민 500명이 모여 공부와 토론을 거쳐 ‘보험료율 13%, 소득대체율 50%’라는 의견을 냈다. 시민들의 목소리를 바탕으로 여야는 보험료율 13%와 소득대체율 44% 안을 도출했다. 지금 모수 개혁이 졸속이라는 비난은 국민의 숙의 과정을 무시하는 태도다.

여권의 미적지근한 태도는 미래세대의 부담으로 이어지게 된다. 국회의장실에 따르면 연금개혁을 지체할 시 70년간 2156조의 적자가 쌓인다. 단순계산으로 매달 2조6000억원에 달하는 규모다. 지금 이 순간에도 기금은 저출생·고령화 현상으로 인해 빠르게 소진되는 중이다. 추가개혁을 하지 않으면 1990년생이 국민연금을 받기 시작하는 2055년 기금이 고갈된다.

재정안정과 소득보장을 놓고 대립해 온 전문가들마저 모수 개혁이라도 통과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놓고 있다. 미래세대에 부담을 가중시킨 채 21대 국회가 종료되면 안 된다는 호소다. 아직 시간은 있다. 이날 오후 본회의든, 내일 원포인트 국회든 연금개혁을 통과시킬 시간은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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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와 환경을 취재합니다. 매주 주말 손쉬운 경제공부 시리즈 <금융라이트>를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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