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프 범벅' 봉변당한 모나리자…인질이 된 명화들[예잇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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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4.01.29. 오후 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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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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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미술품,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1503)가 지난 주말 봉변을 당했다. 28일(현지시간) 프랑스 농업정책 전환을 요구하는 환경운동가 두 명은 프랑스 파리 루브르박물관에 들어와 건강하고 지속가능한 식량에 대한 권리를 요구하며 모나리자를 향해 수프를 끼얹었다. 이들은 테러 직후 그림 앞에 서서 “우리 농업 시스템은 병들었다. 우리 농민들은 일하다 죽어가고 있다”며 “예술과 건강하고 지속 가능한 식량에 대한 권리 중 어떤 것이 더 중요한가”라고 외쳤다.

28일(현지시간) 파리 루브르박물관에서 환경운동가 여성 2명이 모나리자를 향해 수프를 뿌리고 있다. [사진 파리 AFP=연합뉴스]


환경단체의 ‘명화 테러’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지난해 6월엔 스웨덴 스톡홀름 국립박물관에 전시된 모네의 작품 ‘화가의 지베르니 정원’(1900)에 붉은색 페인트를 바르고 풀칠한 손을 붙인 두 명의 기후활동가가 현장에서 체포됐다. 앞서 2022년에는 호주 빅토리아 국립미술관에서 전시 중인 피카소 작품 ‘한국에서의 학살(1951)'에 영국 환경단체 ‘멸종 저항(Extinction Rebellion)' 회원 두 명이 순간접착제를 바른 자신의 손을 붙여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빈센트 반 고흐의 ‘해바라기’, 구스타프 클림트의 ‘죽음과 삶’,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보티첼리의 ‘프리마베라’ 등 이들의 테러 대상은 미술사에 남은 명작 수만큼이나 날로 늘어나는 추세다. 이들이 유독 명화에 집착하는 이유는 충격 효과로 단시간 내에 언론과 대중의 관심을 환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술작품 보존이 중요한 만큼 지구와 환경도 보호받아야 한다고 강변하는 활동가들은 자신들이 토마토수프나 으깬 감자 등 작품 훼손에 치명적이지 않은 음식물을 사용한다고 주장한다. 또, 보호 처리가 된 작품을 엄선하기 때문에 실제 액자나 조각상 받침대, 벽면 등에만 피해를 준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명화를 타깃으로 하는 에코 테러리즘(eco-terrorism)이 이어지자 세계 주요 박물관 92곳은 '박물관 미술품에 대한 공격'이라는 성명을 통해 “활동가들은 대체 불가능한 작품들이 훼손에 취약한 점을 과소평가하고 있다. 작품들은 세계문화유산으로써 보존돼야 마땅하다”고 규탄했다.

반복된 테러로 인한 대중의 피로감이 깊어져서일까. 미국의 사회학자 데이나 피셔 메릴랜드대 교수는 "전략적 혁신과 새로운 방식은 미디어의 관심을 끌지만, 항상 마음과 생각의 변화로 이어지지는 않는다"고 지적했다. 기후 위기 호소를 위해 명작 훼손을 서슴지 않는 활동가들의 진정성은 이미 반달리즘과 이슈화라는 자극적 알고리즘에 잠식돼 점차 희미해져 가고 있다. 평화적 시위와 캠페인 등의 영향력이 미미하다고 해서 이들의 테러가 정당화될 수는 없다. 명화는 기후만큼이나 인류가 보호해야 할 대상이지, 인질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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