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그는 전 소속사를 상대로 낸 약정금 반환 소송 2심에서 일부 승소했다. 앞서 2001년 2월 해당 소속사와 전속계약을 맺고 활동을 시작한 이루마는 2010년 9월 정산내역 공개 의무 위반, 정산 의무 불이행 등을 이유로 소속사에 전속계약 해지를 통보했다. 그해 6월 이루마는 자신이 소유한 음원 저작권을 음악저작권협회에 신탁하고 같은 해 12월 소속사와 전속계약 부존재확인 소송을 제기해 일부 승소했다. ‘꼼꼼히 살펴보라’는 그의 당부는 이 지난한 과정을 부디 후배들은 반복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 나온 조언이었다.
클래식계에서는 통상 사후 70년이 지나지 않은 음악가의 작품 공연을 선호하지 않는 편이다. 저작권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이 첩첩산중에 가깝기 때문이다. 저작권 보호를 받는 공식 악보를 비용 지급 후 사용해야 하고, 또 공연 실황을 방송으로 송출할 경우 방송 저작권료를 TV, 라디오 등 각 매체 형태별로 지불해야 한다. 당연한 절차이지만 그렇지 않아도 되는 공연이 대다수이기에 기획사 입장에선 까다로운 프로그램 취급을 받기 일쑤다.
매년 공연 예매 사이트에서 클래식 장르 상위를 휩쓰는 공연은 영화음악 콘서트가 꼽힌다. 영화에서 받았던 감동을 다시 한번 느끼고 싶은 관객들이 공연장으로 몰리는 이 콘서트는 이제 하나의 장르로 자리매김해 연말이면 전국 주요 공연장을 채우는 주요 프로그램이 됐다. 히사이시 조 영화음악 콘서트,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작품 OST 콘서트 등. 정작 무대에는 히사이시 조가 없다. 과거에는 관객들이 당사자가 없는 무대에 당황한 사례가 많았지만, 최근에는 그의 음악을 즐기려는 관객들이 그의 출연 여부에 개의치 않고 공연을 찾고 있다.
모든 공연이 저작권 계약이 원만히 체결된 무대면 좋겠지만, 과거에는 일부 콘서트 원곡자가 공연 여부조차 모르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고 한다. 한 공연장에서는 공식 악보 제출을 요구하자 해당 공연팀이 제출을 못 한 사례도 있었다. 공연계 관계자는 “저작권료보다 벌금이 더 싸니까 이런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라고 토로했다. 지난해 히사이시 조의 내한 일정이 취소되자 팬들 사이에서는 당사자가 없어도 공연에 관객이 꽉 차는데, 굳이 올 필요가 있겠냐는 자조 섞인 비판도 나왔다.
K-컬처, K-클래식이 세계를 휩쓸고 있다고 자화자찬하고 있지만, 정작 국내 공연계의 저작권 의식은 그에 못 미친다는 것이 공통된 의견이다. 일각에서는 저작권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공연이 계속되는 데엔 공연장의 방임도 큰 역할을 하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공연을 기획하는 단계에서 창작자의 권리를 존중하고, 그에 따른 정당한 비용을 지불하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의식 개선이 선행돼야 하는 점이다. 한국 시장이 먼저 저작권을 존중하지 않으면, 세계에서 침해당하는 K-콘텐츠 저작권에 대한 우리 정부의 권리 주장 역시 힘을 얻긴 어려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