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칩 K아트]②"판매가 목적이 되지 않게…실험적 작품에 기회 더 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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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3.10.25. 오전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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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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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빈 리 테이트 모던 겸임 큐레이터 인터뷰
서구가 주류였던 미술계, 사회·환경으로 관점 변화
韓미술계 인프라 발달, 국제 아트페어 소화할 수준
작가이자 영국 프리즈(frieze) 매거진의 편집자로, 또 테이트 모던의 겸임 큐레이터로 활동하는 알빈 리(Alvin Li)는 중화권에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한국 작가들과의 협업을 통해 이들의 작업을 영국을 비롯한 유럽 미술계에 알려온 인물이다. 키아프와 함께 지난해에 이어 올해 서울에서 개최된 프리즈 행사 참석을 위해 한국에 방문한 그는 새로운 작가들의 작업을 지켜보는 한편 호암미술관에서 진행된 김환기 회고전을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말한다. 다음은 알빈 리와의 일문일답.

알빈 리 테이트 모던 겸임 큐레이터 . [사진제공 = 예술경영지원센터]


-오랜만의 한국 방문이라고 들었는데, 어떤 변화를 체감했는지 궁금하다

▲첫 방한 때는 인프라에 상당히 관심이 있었는데, 7년 만에 와서 보니 프리즈가 개최되는 등 상당히 국제화가 진행된 인상을 받았다. 소규모 독립 미술관 등 다양한 시설과 프로그램도 확인할 수 있었다. 국제 아트페어가 들어와도 충분할 만큼 한국의 인프라가 발달했음을 체감했다.

-한국 작가와 한국 미술이 유럽을 비롯한 주요 시장에서 어떤 관심을 받고 있는지, 그리고 또 어떻게 전망하고 있는지

▲런던에 거점을 두고 미국, 유럽, 아시아 등을 많이 돌아다녔다. 전체적인 관점에서 보면 작가들에 대해 탈서구중심적 관점(decoloniality)으로 조망하고 다양한 지역, 국가 출신의 예술가들에게 관심을 가지는 것 같다. 오랫동안 서구 중심적 관점이 주류를 이뤘다면, 요즘은 고유의 특성을 다루고 사회적으로 연계된 작업을 하는 작가들에 큰 관심이 집중되는 추세다. 그 외 기후 위기를 다루며 환경적으로 지속가능한 미래를 다루는 작가들의 행보에도 미술 시장에서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런 부분들이 요즘 미술계 전체의 시류라고 본다.

-12명의 한국 작가 스튜디오를 방문했는데, 어떤 인상을 받았는지 소감을 말한다면

▲한국의 많은 차세대 작가들을 만나고, 더 가깝게 교류하는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좋았다. 특히, 평소에 작업을 위해 작가들의 작품을 불 수는 있어도, 자세히 얘기하며 작품 세계를 공유하기는 어려웠는데 이번에 스튜디오를 방문하고 서로 직접 소통하면서 더 깊이 있는 교류를 할 수 있어서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예술경영지원센터에서 기획한 프로그램 구성도 유익했다. 12명 작가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작가는 이재이 작가다. 이재이 작가는 서울과 뉴욕을 오가며 활동하는데, 움직이는 이미지와 몸의 연결성이 특징적이어서 기억에 남는다.

실린더를 사용했던 류성실 작가도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는 관념적 작업을 진행했는데 작가 작업 자체도 흥미로운 부분이 많았다. 또 개인적으로는 포커스 아시아 프리즈의 심사위원으로 참여를 했는데 류성실이 실린더를 사용했던 작품이 상을 받았다. 류성실 작가의 전시에서 디스플레이해놓은 부분을 판매 중심적으로 생각하기보다 작가를 더 많이 보여주는 형태로 설치한 것은 미술계에서 꼭 필요한 부분이라 생각된다. 블루칩 작가들의 판매가 중심인 갤러리들의 분위기 속에서 다소 실험적으로 접근하는 이런 모습이 흥미롭고 이런 작가와 작품에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요즘 미술계에 필요하다고 본다.

김인배 작가 작업실을 찾은 2023 Dive into Korean Art: Seoul 참석자들. 이들 해외 미술계 주요 인사 18명은 서울·경기 소재 작가 12명의 작업실을 방문해 작품제작과정을 지켜보고 해외진출에 대한 다양한 방안을 모색했다. [사진제공 = 예술경영지원센터]


-한국 작가가 해외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준비해야 할 것이 있다면 어떤 것이 필요하다고 보는가

▲유럽의 경우엔 런던이나 파리 등의 도시에서 국제 레지던시 경험이 필요하다고 본다. 세계 각국의 예술가들이 와서 함께 살며 작업하는 공간인 레지던시에서 서로 생각을 공유하고 편안하게 대화를 하며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이 경험을 정말 추천한다.

1990년대 초반부터 한국 작가들은 한동안 국제 예술계에서 놀랍도록 두각을 드러냈다. 그다음 세대에도 가치를 인정받는 예술가들이 나왔다. 나는 항상 한국 예술가 중 매우 실험적이고 부단히 노력해 작업으로 보여주는 작가들을 봤고, 그들은 세계 미술 역사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바쁜 일정에도 아침부터 호암미술관에 방문했다고 들었다

▲전 세계 미술관의 컬렉션이 굉장히 초국가적 모더니즘의 변화를 기반으로 진행되고 있다. 나는 아시아 태평양 지역을 담당하는 큐레이터로 김환기 작가의 작품을 조사 차 보러 간 목적도 있다. 이곳저곳에서 이분의 작품을 보기는 했는데, 호암미술관에서의 전시는 그의 작품이 단계별로 변화하는 것을 전체적으로 조망하고, 또 예술가가 초국가적 문맥에서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볼 수 있는 좋은 전시였다. 한국과 그의 관계성, 다른 표현법(signifier)과 그것을 어떻게 다뤘는지, 그리고 그의 언어가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볼 수 있는 정말 아름다운 전시였다.

알빈 리는 지난 키아프 주간 동안 암스테르담과 서울을 오가며 작업하는 작가 이미래, 리움 미술관 큐레이터 추성아와 함께 '인프라스트럭쳐, 친밀감, 정동 노동: 아티스트 토크' 행사에 참여해 이 작가의 예술 실천에 대한 대담을 나누기도 했다. [사진제공 = 예술경영지원센터]


-예술계에서 여성, 흑인 등 비주류 예술가들을 등장시키는데 다소 의도적 관점이 느껴지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구조적으로 말하자면 예술계에는 전체적으로 시장에서 오랫동안 배척됐던 여성, 흑인, 또는 성 소수자 등의 비주류 예술가들이 지난 5년간 놀라울 정도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것은 ‘여성’ 작가로서 관심을 끄는 것이 아니라, 재료라던가 작품의 형태의 관점에서 독보적이기 때문에 관심을 받는 것으로 생각한다. 굉장히 흥미로운 작품들이 나오고 있다.

물론 이러한 변화가 남성 중심의 미술계에서 더 많은 기회가 다양한 예술가들에게 제공됐다는 점을 인정한다. 예술계가 다소 의도적으로 비주류 예술가들을 내세우는 점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정체성에 초점을 맞추는 분위기 때문에 아직 준비되지 않고 더 발전해야 할 예술가들이 있음에도 모든 갤러리가 그들을 단순히 핫이슈로 판매하기 위해 내세우기도 한다. 이러한 현상이 바람직하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진출한 작가들의 전시가 결국 나중에는 잊혀질 수 있고, 또한 사람들은 그것을 돌아보면서 안 좋은 인상만이 남게 되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예술가 개인이 아닌 구조적인 문제라는 것을 인식하고, 단순히 한 부분만 집중해서 띄워줄 것이 아니라 미술계에서 균형을 맞춰야 한다고 생각한다.

-키아프, 프리즈 서울에서 인상 깊은 작가와 작품은 무엇이었는지 궁금하다

▲아트페어는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한꺼번에 진행됐는데, 갤러리 현대가 지금은 돌아가신 한국의 여성 작가들의 작품들만 모아 전시한 점이 기억에 남는다. 일례로 이성자 작가의 그림은 인상적이었다. 개인적으로 한국의 전체적인 현대미술의 관념이 상당히 강렬하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앞으로 계속 더 알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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