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진영 대립 더욱 심화
● 북·러 조약 체결로 ‘사실상 동맹’ 수준 격상
● 중국 활용하려면 중국과 소통부터 정상화해야
● 비핵·평화·공영 위해 한·러 손잡아야 ‘윈윈’
● 사려 깊은 외교 전략과 유연한 대응 절실
윤석열 정부는 미국의 움직임에 적극적으로 호응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 들어 한미 공조가 더욱 강화되고, 캠프 데이비드 정상회의를 통해 한미일 안보협력이 본격 가동됐다. 중국과 러시아, 그리고 북한은 이에 대해 즉각 반발했다. 특히 러시아의 대응이 신속했다. 러시아는 동북아에서 미국이 주도하는 다자 안보연대의 겨냥점 중 하나가 자국이라고 인식한 것이 분명했다. 푸틴 대통령은 캠프 데이비드 합의 직후인 2023년 9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초청했다. 이미 이때 러시아와 북한은 양국 관계의 법적 기초를 격상시키는 문제를 합의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어서 이번 북·러 조약 체결로 탈냉전 이후 선린·우호 관계로 격하됐던 양국 관계는 ‘사실상 동맹’ 수준으로 다시 격상됐다. 9개월 만에 도달한 신속하고도 명시적인 ‘성취’라고 할 수 있다.
이번 북·러 조약을 통해 양국은 유사시 지체 없이 모든 수단을 동원해 서로 지원하기로 했다. 결과적으로 한반도와 주변 지역에서 진영 대립 구도가 더욱 첨예해졌고, 한국의 안보 환경도 더 나빠졌다고 볼 수 있다. 한·러 관계가 나아지는 방향으로 갈 가능성도 극적으로 줄었다.
이에 대해 윤석열 정부는 ‘규탄’ ‘궤변’ ‘어불성설’ 같은 언어를 동원해 강경 대응을 예고했고, 한미일 안보협력을 더욱 강화할 것이라며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 문제를 재검토하겠다고 발표했다. 한·러가 치고받는 과정으로 들어간 셈이다. 대응과 맞대응이란 악순환의 수렁으로 들어가면 한러 관계는 표류하다가 결국 좌초할 우려가 크다. 위태롭고 불안하지 않을 수 없다.
30여 년 전 한국의 북방외교로 러시아와 중국을 잃었던 북한은 ‘몰락(沒落)’의 위기를 핵 개발로 돌파하고자 했다. 그리고 이제 북한은 핵을 가지고도 러·북 안보협력 관계를 강화하는 반전을 이뤘다. 말하자면 북·러 관계의 화려한 ‘부상(浮上)’을 일군 셈이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2000년에는 북핵과 미사일 개발을 만류하러 처음 평양에 갔지만, 2024년 두 번째 방북 때는 정반대로 움직였다. 한·러·북 관계의 상대적 부침(浮沈)을 극명하게 보여준 것이다.
이러한 극적 대비가 보여주는 함의는 명확하다. 우선 한국과 러시아 간 이른바 전략적 동반자 관계는 지속적으로 형해화 과정을 걸어온 반면, 북한과 러시아 사이에는 의미 있는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가 이루어졌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이를 동맹조약이라고 불렀다. 그만큼 이번 북·러 전략적 동반자 관계는 한·러 전략적 동반자 관계와 용어는 비슷하지만 내포하는 의미는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다. 다시 말해, 강력한 안보협력 요소를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한·러 전략적 동반자 관계 속에는 애당초부터 침략받을 시 상호 지원한다는 개념 자체가 없다. 이제 러시아는 한국보다 북한과 진정한 의미의 전략적 동반자 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일이 북한이 핵과 미사일 개발로 국제 비확산 규범을 정면 도전하는 상황에서 이루어졌다는 점이 심각하다.
이와 반대로 양국이 관계를 개선해 동아시아에서 비핵, 평화, 공영을 위한 협력을 한다면 서로 윈윈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우리 모두는 지금 중대한 교차로(cross road)에 서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한·러 관계 개선을 위해 러시아와 한국이 할 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정리해 보고, 상호 공감대를 이뤄내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은 첫째로 러시아와 대증적으로 치고받으려는 관성을 통제해야 한다. 이 문제를 제기한 이유는 윤석열 정부가 날카롭고 대증적인 방법으로 대응하는 기질을 갖고 있어서다. 북·러 밀착은 사실상 한국 외교의 실패라고 볼 수 있는데, 이것을 덮겠다고 강경하게 대처하면 악순환에 빠져 더욱더 외교적 옵션을 상실하는 우를 범하게 될 것이다.
둘째로 한국이 미·러, 미·중 대립이라는 시대적 균열에 잘 대처하려면 먼저 미·러·중에 대해 통합되고 조율된 전략을 세워야 한다. 그 전략 속에는 미국과의 공조 수위는 어느 정도이고, 러시아와의 외교 공간은 어느 정도인지에 관한 ‘한국형 좌표와 방향성’이 있어야 한다. 그런 전략을 갖고 미·러, 미·중 사이에서 운신해 나가야 하고, 가치 외교의 수위도 정해야 한다.
셋째로 북·러 접근을 견제하기 위해 중국을 활용하는 방안도 검토할 만한데, 이는 우리가 직접 주도할 수 있는 사안이라기보다는 미국의 협력을 얻어야만 하는 사안일 것이다. 미국이 미·중 대립 구도 속에서도 중국과 특정 이슈에 대해서는 협의하고 협조하려는 자세를 더욱 적극화해야만 그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문제다. 다시 말해, 미국이 기후변화나 팬데믹 사안처럼 한반도 비핵화나 평화 정착에 대해서도 이를 미·중 대립과 별개 이슈로 삼아 소통과 협력을 추진하는 발상의 전환이 요망된다. 이를 위해 한국이 역할을 할 필요가 있다. 문제는 지금 한중 간 소통 상황도 썩 좋지 않다는 것이다. 예컨대, 윤석열 정부는 주한 중국대사의 발언에 발끈해 접촉 제한을 걸었고, 상호주의로 중국도 베이징의 우리 대사에게 접촉 제한을 걸었다. 중국을 활용하려면 중국과 소통부터 정상화해야 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지금 우리가 처한 위기의 순간에 정부가 한층 사려 깊은 전략과 유연한 대응으로 난국을 타개하기를 바란다. 지금까지 본 윤석열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은 단순하고 거칠다. 때로는 충돌을 불사하려는 듯하다. 심지어 미국도 염려하고 만류할 정도다. 백척간두(百尺竿頭)의 위기에 서 있는 한반도에서 진일보(進一步)할 길을 찾으려면, 지금까지 해온 접근 방식을 다시 생각해야 한다.